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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3일 월요일

"박근혜 탄핵이 끝? 이제 시작, 헌 세상 갈아엎자"


17.02.13 21:13l최종 업데이트 17.02.13 21:13l






 단양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유문철 씨는 흙이 좋아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적어도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단양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유문철 씨는 흙이 좋아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적어도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지유석

박근혜 정권이 출발할 때부터 최강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끊었다. 송파 세모녀도 절망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사고로 삶을 잃었고, 구의역 김군을 비롯하여 한 해 2400명이 산재로 죽었다.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사회를 만들지 말자는 다짐이다.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들이 왜 죽었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에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박근혜 정권과 싸워온 사람들' 기획을 내보낸다. - 기자 말

단양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유문철씨는 흙이 좋아 흙으로 돌아간 농민이었다. 적어도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흙을 동경해왔던 그는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이후 거리로 뛰어나가 싸웠다. 고 백남기 농민이 숨을 거두자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온몸을 던져 그의 주검을 지켰다. 백남기 농민의 장례를 마친 후엔 전봉준투쟁단을 꾸려 서울로 진격해 들어왔다. 그러다 공권력에 막혀 또 거리에서 날을 지새웠다.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우리 농업의 뿌리인 쌀농사를 지키는 것이다. 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 흙으로 돌아간 사연과 거리에서 투쟁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 고향을 떠났다가 수 년 전 귀농해 유기농업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계기로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는지요?
"단양 바로 옆 제천이 고향입니다. 단양에서 차로 30분 거리이니 아주 가깝지요. 귀농한 지 올해 꼭 10년째입니다. 올해 10살이 된 아들 한결이 이름을 딴 저희 농장이름이 단양한결농원이에요. 전 제천에서 나고 자라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로 대학 진학을 했습니다. 경제학과 경영학 공부를 했고 회사에 들어가 수출부서에서 근무하며 해외지사 근무를 여러해 했습니다. 

농사를 짓는 집은 아니었지만 주변이 온통 농촌인 작은 소도시 출신이라서 그런지 서울 살이와 해외 살이가 몸에 맞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중고등학교 입시지옥 6년의 경험이 흙에 대한 동경을 키웠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늘 학교 마치면 친구들과 개울과 논과 밭, 산을 뛰어다니며 놀았거든요. 그 원초적 기억에 이끌려 농사를 짓게 되었지요. 

유기농업 또는 생명농업을 선택한 건 산업문명, 도시문명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이 되었구요. 대학시절부터 애독한 녹색평론과 관련 책들을 통해 농사를 짓게 되면 화학농법이 아닌 유기농, 생태농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죠. 지난 9년 참깨꽃과 들깨꽃 구분도 못하던 도시내기가 유기농 농사꾼으로 인정받기까지 말 못한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지만 초보 농사꾼 딱지는 겨우 뗀 것 같아요."

- 지난 10년을 되돌아 본다면요? 
"지난 10년, 시골에서 농사짓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정말 비참한 순간도 많았어요. 농사짓기의 힘겨움이야 내가 선택한 일이니 후회가 없지만요.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겪고 보니 처음에는 한숨이, 나중에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인구절벽이라고 하지요. 농촌마을이 인구소멸로 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경북 의성이 가장 심하다지만 제가 사는 마을도 그래요.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없어 조만간 소멸이 눈앞에 보이니 정말 절망스러워요. 

아무리 제가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우리 마을만 해도 10년 내에 소멸될 것 같아요. 제 아들 한결이가 10년째 마을에서 막내예요. 한결이 이후로는 태어난 아이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시골에 왜 아이 울음이 멎고 농사짓는 젊은이가 없으며 살 날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만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농사지어 먹고 살 수 없으니까요. 유구한 개방농정과 농사천시의 결과가 농촌 소멸입니다.

이런 사정이니 농사만 열심히 지을 수가 어디 있나요? 백남기 농민을 경찰이 살인물대포로 쏘아 죽인 것은 곧 그렇지 않아도 늙어 죽어가는 우리 농민 모두를 쏘아 죽인 것이라고 전 생각했어요. '아무 쓸모없는 농민들을 다 죽여라!' 이거 아니겠어요? 도시에서야 명예퇴직을 눈앞에 둔 중년의 나이이지만 시골에서는 청년 축에도 못 끼는 40대 중반 피끓는 농민이 그 꼴을 어찌 그냥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2015년 겨울부터 아스팔트 농사, 농민운동가의 길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내가 백남기다, 내가 전봉준이다 하는 심경으로요."

-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심경을 묻고자 합니다. 탄핵 소식을 어디서 접했는지, 그리고 탄핵 소식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요?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당일 국회 앞에 있었습니다. 전 전봉준투쟁단의 한 사람으로 전날인 8일부터 2차 상경투쟁에 참가하고 있었지요. 국회 앞까지 경찰의 봉쇄를 뚫고 또 뚫으며 이효신 전봉준투쟁단 서군대장이 운전한 대장트랙터와 함께 여의도 KBS 별관 앞까지 왔어요. 천신만고 끝에 국회 코앞까지 왔는데, 대장트랙터가 포위되고 집회장으로 갔지요. 그렇게 힘들게 탄핵 가결의 순간을 맞이했으니 그 심경이야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전 그날 오후 4시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234명의 찬성으로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발표를 하는 순간 눈물이 터졌습니다. 집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고 노래 부르는데 전 조용히 서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단지 전봉준투쟁단 상경 투쟁의 힘겨움과 감격 때문에 눈물이 난 건 아니에요. 

백남기 농민 살인물대포 국가폭력사건이 터진 후 지난 1년여 무슨 정신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지난해 겨울 3개월 가까이 난생 처음 서울대병원 앞에서 천막노숙 생활도 하고, 온갖 집회에 뛰어 다녔었어요. 백남기 농민 부검정국 때는 농번기에 농사일도 작파하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살았잖아요. 게다가 겨울 들어서는 트랙터 끌고 전봉준투쟁단까지 하니까 한 해가 훌쩍 지난 겁니다.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주욱 흘러가면서 정신이 좀 멍하더라구요."

- 탄핵 소식을 들었을 때, 혹시 백남기 농민이 생각나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백남기 농민 빈소 상황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전 백남기 농민께서 317일 만에 숨을 거두시던 9월 25일부터 부검정국 전 과정 중 가장 긴장도가 높았던 10월 1일까지 첫 8일과 마지막 4일을 장례식장에서 보냈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중에 마지막 날인 10월 25일 상황이 특히 떠오르는군요. 오전에 종로경찰서장이 경찰 천여 명을 이끌고 장례식장에 왔지요. 백남기 농민께서 위독하시던 9월 24일 밤 첫 시도 후 마지막 부검영장 집행 시도였는데요. 이미 기가 꺽일 대로 꺽인 경찰들에 맞서 농민과 노동자, 빈민, 시민지킴이 등이 시종일관 승리의 신념에 차서 농성하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극적인 경험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소리 치고 그날 밤 자정 조건부 영장발부 시한이 만료되자 썰물처럼 빠진 백남기 농민 빈소 앞에서 맥이 풀려, 대자로 누워 깊은 잠이 들었답니다. 장례식장에 있는 동안 잠을 거의 못잤었거든요. 그만큼 대치과정에서 긴장도가 높았어요.

다른 분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탄핵 가결 집회장에 서서 백남기 농민께서 정말 큰일을 하셨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두려움없이 물대포와 맞서고 쓰러지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농민들을 일깨우고, 시민들을 일깨워서 오늘 이 순간을 맞이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4.19 김주열 열사, 87년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희생도 고귀하지만요. 백남기 농민의 희생에는 무엇가 특별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20대에 박정희 반독재민주화 학생운동으로 시작해서 칠순잔치를 하루 앞두고 국가폭력으로 생을 마치신 백남기 농민. 그는 우리 농민들을 전봉준투쟁단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역사 농사꾼'으로 이끄는 참 농사꾼이기도 했습니다."

"백남기 농민, 역사의 물줄기 바로잡은 '참 농사꾼'"
 단양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유문철 씨는 흙이 좋아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적어도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단양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유문철 씨는 흙이 좋아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적어도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지유석

- 만약이라는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고 백남기 농민의 부검을 막아낼 수 있었으리라고 보는지요?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국정농단이 드러나고 난 뒤 공권력이 부검영장 강제집행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낀 것 같아서입니다. "세월호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가운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는 가사가 있지요? 전 부검정국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JTBC 뉴스룸>을 통해 최순실이 국정농단을 했다는 보도가 백남기 농민 부검정국 마지막 날인 10월 24일, 25일 이틀간 연속 나오면서 탄핵정국에 들어섰어요. 피상적으로 볼 때, JTBC 보도가 없었으면 경찰이 결국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탈취해 부검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당시에 경찰이 정말 밀려들면 영안실에서 마지막까지 고인의 시신을 지키다 죽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농민을 살인물대포로 쏘아 죽인 것만도 천인공노할 일인데, 지난 1년 동안 백남기 농민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패악질과 잔혹함의 결정판이 시신탈취와 강제부검이라고 전 보았습니다. 

부검정국 한 달 동안 박근혜 정권의 민낯이 날마다 드러났습니다. 언론도 이를 보도했고요. 주치의 백선하의 '병사' 사인 진단을 비롯해 백남기 농민께서 살인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날 수술을 강행한 의심스런 정황 등이 드러났습니다. 전 JTBC의 최순실 보도가 아니더라도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더 두면 이 정권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장례식장을 지킨 천여 명이 넘는 백남기 농민 시민지킴이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장례식장으로 산더미같은 후원물품을 보낸 시민들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고요. 

그런 마음들이 모여 SBS에서 10월 22일 <그것이 알고싶다 –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편 제작과 방영이 가능했겠지요. 그날 방송을 장례식장에서 유가족과 문정현 신부님, 그리고 백남기 농민과 30년 동안 농민운동을 한 백종덕, 최강은 형님들과 보았어요. 지켜보는 내내 모두 한숨과 눈물이 났지만 방송이 끝나자 함성과 환호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 떠나가라 울려 퍼졌지요. 이런 장례식장 풍경은 전무후무할 거예요. 우리가 목마르게 기다려왔던 진실보도가 공중파에서 마침내 호소력있게 나오자 모두들 저도 모르게 환호한 겁니다. 엄숙해야 하는 장례식장에서 말입니다. 

전 이 방송이 나가고 여론의 반응을 보며 경찰이 아무리 박근혜의 명령이 득달같아도 부검영장 집행은 못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미 여론이 백남기 농민 편에 확실히 서 있었던 상황에서, JTBC 보도가 화룡점정처럼 부검정국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궁금한 건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시점을 왜 10월 24일로 잡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10월 26일에 해도 되잖아요? 부검정국의 긴장도가 가장 높던 시점에 JTBC 보도가 나온 건 백남기 농민 부검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제 짐작이에요. 언젠가는 후일담으로라도 밝혀지겠지요."

- 박 대통령이 탄핵이 되었지만, 공권력이 농민을 대하는 태도는 탄핵 이전과 달라진 바 없어 보입니다. 농민투쟁단과 함께 상경 투쟁을 벌이다 경찰이 저지하는 바람에 노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느낀 공권력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부검정국이 끝난 직후인 11월 5일과 6일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백남기 투쟁을 이끌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아래 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아래 전여농)에서 백남기 정신을 살리고 박근혜 퇴진과 새나라 건설을 위해 전봉준투쟁단을 꾸렸습니다. 15일엔 전남 해남과 경남 진주에서 출발한 전봉준투쟁단이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전국 주요시군을 거쳐 26일 2차 민중총궐기 범민족대회에 맞춰 트랙터를 몰고 광화문광장에 입성할 계획이었습니다. 

동군인 저는 충북 전봉준투쟁단과 제가 농사짓고 사는 단양군에서 출정식을 가지고 상경투쟁을 했었지요. 그런데 출발 열흘 만에 서울에 입성하자마자 양재 IC 앞 고속도록 위에서 서초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폭력적으로 트랙터와 트럭을 막고 농민들을 강제연행했습니다. 

당시에 정말 피눈물이 났습니다. 농민들을 개돼지 취급하며 두드려 패며 끌고 가고, 트럭을 마구 강제견인 하는 겁니다. 대열 맨 앞에 있다가 경찰의 저지를 뚫고 트럭 운전을 하려던 저를 경찰 십여 명이 강제로 끌어 내렸고, 제 트럭을 견인해갔습니다. 저와 함께 있던 제천시농민회 농민들을 비롯해 36대가 견인되었습니다. 몸싸움도 많이 일어났어요. 나이드신 농민 한 분은 경찰이 밀쳐서 뒤로 넘어져 실신을 하셨고요. 김영호 전봉준투쟁단 총대장이 이 과정에서 경찰 채증카메라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린 사진은 널리 알려졌지요. 이날의 참상을 정확히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입니다. 

전 당시에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경찰폭력 때문에 상처가 악화되었습니다. 경찰 포위로 고속도로에 갇힌 농민들은 영하의 추위에 밤새 아스팔트에서 이를 악물고 견뎠어요. 그나마 <미디어몽구>를 비롯한 독립미디어들이 소셜 미디어로 소식을 전했어요. 저도 페이스북으로 한 시간 간격으로 현장 상황을 전하기도 했지요. 소식을 듵은 시민들이 온갖 구호물품과 음식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와 위로와 격려를 해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전봉준투쟁단 농기계 상경 시위는 법원에서도 허가했고 열흘이 넘도록 전국에서 각 지방경찰서의 인도를 받으며 상경을 했어요. 제가 사는 단양에서도 단양경찰서가 패트롤카로 행진경로를 안내해 주었거든요. 그런데 안성과 양재에서 경찰들이 난리를 피운 겁니다. 결국 대치 끝에 트랙터와 트럭을 고속도로에 모두 두고 농민들은 몸만 광화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날도 춥고 눈도 많이 내렸는데 광화문광장에 촛불시민들이 가득 했지요. 시민들은 농기계 다 뺏기고 몸만 온 농민들을 함성과 응원으로 격려해 주었어요. 

1차 트랙터와 농기계 상경이 이렇게 좌절되고 나서 12월 9일 박근혜 탄핵안 국회 표결일에 맞춰 2차 상경을 하게 되었어요. 2차 상경의 목표는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국회 앞 입성이었습니다. 1차 상경 때 많은 시민들께서 전봉준투쟁단의 사투를 보며 기름값, 타이어값 하라고 후원금을 많이 보내 주셨어요. 그래서 1차 상경 때보다 더 많은 트랙터들이 전국에서 모여 들었지요. 1차 상경 때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저희는 동학농민군의 후예이기에 군사작전 하듯이 트랙터와 농기계 상경작전을 수행했어요. 

평택에서 출발한 대장트랙터를 비롯한 7대의 트랙터와 트럭시위대가 1박 2일에 걸쳐 수원을 거쳐 서울로 진출했고요. 전 대장트랙터 사수대로 수원과 서울에서 경찰들과 여러 차례 몸싸움을 벌이며 국회 앞까지 대장트랙터와 함께 했습니다. 몸싸움은 1차 상경 때 보다 더 거칠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패배와 달리 이번에는 경찰의 봉쇄를 매번 뚫으면서 전진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차 상경 때처럼 서울 입성 직후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이 경찰과 몸싸움 과정에서 뇌진탕을 입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두 번에 걸친 트랙터 상경투쟁을 하며 갖은 고생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농민들의 의지가 횃불처럼 타올라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되는 기쁜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호 총대장이 트랙터 위에 올라 전봉준투쟁단 깃발을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노숙투쟁의 힘겨움이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구요."

"농민이어서 자랑스럽다... 백남기 추모공간 부재는 아쉬워" 
 단양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유문철 씨는 흙이 좋아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적어도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단양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유문철 씨는 흙이 좋아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적어도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지유석

- 백남기 농민이 거리로 나온 건 정부의 쌀값 정책 실패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실, 현장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농사 잘못하면 빚만 남는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정부 정책이 근본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방농정입니다. 풀어 말하면 수입농산물 때문이고요. 고 백남기 농민은 우리나라 농촌의 몰락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경제개발계획이란 미명 아래 농촌의 희생을 전제로 박정희가 수출 지향 공업우선 정책을 펼친 것이 농촌몰락의 핵심 원인입니다. 박정희는 농촌을 살리겠다며 새마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저임금구조를 위한 저곡가정책 때문에 농촌에서 농사지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농민들이 대규모로 농토를 떠나 도시에서 노동자, 자영업자, 도시빈민이 된 것이죠. 

박정희는 그나마 쌀 자급률은 100%가 넘게 유지를 했지만 보리, 밀, 콩, 잡곡 등은 모두 수입농산물에 내주었습니다. 이후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 수입개방 물결,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신자유주의, 이명박-박근혜 신유신 정권을 거치며 이른바 개방농정이 가속화 되어왔습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에는 WT0 의무수입물량과 밥쌀 수입 때문에 쌀값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아서 농민들은 쌀농사 지어서는 생산비도 못 건집니다. 

농업을 천시하는 개방농정은 독재정권이나 민주정권이나 매한가지였던 것이 지난 세월 일관된 사실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11월 추가적인 쌀값과 농산물가격 폭락을 불러올 한미FTA 비준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홍덕표 농민과 전용철 농민이 경찰의 방패에 머리를 찍혀 숨졌습니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개방농정을 계속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에서 백남기 농민이 쌀값 폭락을 불러온 밥쌀 수입을 중단하고, 박근혜의 대선공약인 쌀값 21만 원 공약을 이행하라는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살인물대포에 맞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역시 개방농정 때문입니다.

왜 농민들이 많은 농산물 중에서 유독 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줄 아시나요? 쌀은 우리의 주곡입니다. 논은 전체 경지면적의 60%이고, 쌀 재배 농가는 전체 농가의 75%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농업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쌀은 뿌리이자 줄기입니다. 다른 농산물은 가지와 잎과 열매입니다. 쌀이 망하면 다른 농산물들도 다 망합니다. 이미 논을 비닐하우스나 특용 밭작물, 과수로 전환하면서 타작물 생산과잉으로 연쇄 가격 폭락이 일어난 지가 오래입니다. 그 많은 논에 무엇을 심으란 말입니까? 심는 족족 가격이 폭락하는 걸요.

그리고 수출, 무역에 대한 환상이 우리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팽배합니다. 식량주권을 농민들이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듣는 도시인들이 많습니다. 수출 없이는 나라가 망하는 줄 압니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들이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자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저도 도시 출신에다가 대학 때 국제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자유무역 예찬의 이론적 근거인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니, 헥셔-오린의 법칙이니, WTO 조문이니 하는 것들을 달달 외웠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수출역군으로 비행기 타고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국제무역의 현장을 몸으로 겪으면서 전 반성을 했습니다. 

특히 반성의 결정적 계기는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제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걸 본 순간입니다. 미국 첫 출장날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파란 하늘 아래로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걸 보고 벼락같은 충격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자작극으로 보든, 테러로 보든 상관없이 전 9.11을 문명사적 일대 사건으로 봅니다. 주류경제학에서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노동과 자본의 비교우위론이란 허구입니다. 비교우위론은 결국 강대국의 논리에 불과합니다. 학문으로 위장된 제국주의 교리이지요. 비교우위론에 근거한 자유무역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미국과 한국의 소농, 미국의 한국의 노동자 모두 희생당하고 두 나라의 자본만 이득을 얻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석유가 고갈되어 가고 있고 기후 변화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석유에 의존한 기계화농업, 화학농업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을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주요 농산물 수출국가에 흉작이 들면 세계 곡물시세가 천정부지로 뛰는 건 지금 일상적인 현상입니다. 조금 더 심한 상황이면 아예 수출을 금지하는 상황까지 옵니다. 

석유종말과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자본-노동의 비교우위가 적용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럴 때 자동차와 유조선, 스마트폰 줄테니 쌀과 밀, 콩, 옥수수 달라고 하면 그 나라들이 선뜻 내어 줄까요? 바로 이런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식량주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는 쌀이 있고요. 그러니 지금 국가 정책적으로 개방농정이 아니라 식량자급의 관점에서 자립농정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지요."

- 촛불 집회에 나가보면 이른바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벌, 검찰,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말들은 많은데, 농민들의 목소리는 정작 들리지 않는 것 같다. 혹시 이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서운함을 느끼긴요. 촛불 시민들은 백남기 농민 부검정국 직후인 10월 29일 1차 박근혜퇴진 촛불집회에서 주최측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3만 5천 명이 청계광장에 모였습니다. 이후 11월 5일 백남기 농민 광화문광장 영결식 후에 열린 촛불집회에는 20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날 보성으로 가는 장례 버스 안에서 광화문광장 촛불이 20만이 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농민들은 장례행렬의 숙연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환호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우리 농민들의 1년에 걸친 치열한 투쟁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촛불민심이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12일 '2016 민중총궐기' 날 드디어 백 만이 넘는 촛불이 대폭발했고, 지난주까지 14차에 걸친 누적촛불이 천백 만을 넘는 대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촛불집회를 이끌고 있는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2개 항목의 적폐청산 요구를 내걸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백남기 농민 특검 실시입니다. 촛불이 농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긴급한 농업의제가 많이 있지만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곧 농업, 농촌, 농민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12개의 적폐청산 요구에 백남기 농민 특검 실시가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봉준투쟁단 역시 12개의 폐정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농민들은 백남기 농민의 정신과 구한말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농업, 농민의 이익만을 보고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의 모든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투쟁의 맨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 농민들은 김영호 전농 의장의 말마따나 지금 땅농사, 아스팔트 농사, 선거 농사를 뛰어넘어 세상을 갈아엎는 역사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서운한 것이 아니라 적폐 청산 역사농사의 전위에 서 있기에 자랑스러워하고 있지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백남기 농민을 위한 추모공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촛불혁명이 완수되는 그날까지 백남기 농민의 삶과 죽음을 되새겼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백남기 농민은 가장 낮은 곳에서 한평생 민주화 운동, 통일운동, 농민운동을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독재권력에 맞서 산화하신 분이잖아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을 담아서 우리가 좀 더 예우하고 기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2말 3초, 즉 이달 말이나 3월 초에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물론 최근엔 탄핵이 기각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높지만 말입니다. 만약 탄핵이 인용된다면 대선을 치르고, 새 정권이 들어서게 되는데요, 지금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후보 중에 농민들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해줄 후보는 누구라고 보는지요? 
"박근혜는 촛불민심과 국회 탄핵 가결을 존중해서 퇴진하는 것이 마땅했으나 우리가 그동안 지켜보았듯이 끊임없는 거짓말과 꼼수를 부리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12월에 탄핵인용을 해야 마땅했으나, 우려한 대로 2월에도 탄핵인용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정당들은 탄핵인용을 기정사실로 보고 조기대선 경쟁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여론조사상으로는 정당지지율이 1위이고, 문재인-이재명-안희정 후보가 대선 후보 경쟁 중입니다. 현재 이변이 없는 한 더민주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지요. 전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반대하고,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호의적인 편입니다. 

문 전 대표와 안 지사는 참여정부 때 한미FTA를 주도하며 반농민, 살농정책을 주도한 전력이 있는데요. 백남기 농민이 살인물대포에 피격된 후인 2015년 11월 30일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 후보는 새누리당과 한중FTA 국회비준 표결처리를 해버렸습니다. 농민들에게 사과 한 마디 없었지요. 문 전 대표가 백남기 농민이 누워 있던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방문한 이후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백남기대책위 농민 대표들이 국회 앞 마당에서 한중FTA 비준 반대를 외치며 절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향한다지요? 이는 결국 앞서 제가 비판한 바 있는 지금까지 농촌을 희생시킨 수출중심 공업국가체제을 이어가겠다는 뜻이지요.  

안 지사도 쌀값 폭락 문제를 생산 과잉 문제로 보고 쌀 생산을 줄이고 대체작물을 심자는 대안을 제시해 충남 농민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사드배치 찬성 발언에서 보듯이 식량주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미관계에서도 편향된 시각을 보이고 있어서 농민의 입장에서는 기대할 바가 없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농민기본소득, 밥쌀 수입 중단, 식량주권 옹호, 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 등 주요 농업공약이 농민운동단체의 요구와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다른 대선후보들과 달리 백남기 특검법 도입에도 열의를 보이고 있지요. 이 성남시장이 여타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지난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찾아 백남기 농민 병문안을 마치고, 농성장에 들러 오랜 시간 농성 농민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단지 이재명 성남시장이 백남기 농민의 중앙대 법대 후배였기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세월호 농성장이나 소녀상 농성장에서도 늘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실천을 했으니까요. 문 전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안 지사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더군요. 안희정씨는 백남기 농민 병문안을 왔었다는 소식을 들을 적이 없고,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중환자실만 들렀다가 농성장은 외면하더라구요. 참 씁쓸한 기억입니다. 문 전 대표의 경우는 심지어 백남기 농민을 위문하고는 국회에 가서 한중FTA 국회비준을 주도하기까지 했으니 특히 싫어합니다. 여기까지는 개인적 입장이었구요."

- 농민 운동가 입장에서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솔직히 농민 운동가로서 더민주 대통령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아요. 전농은 지난 1월20일 대의원총회를 열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진보정당 건설 방침을 정했습니다. 저도 적극 찬성했구요. 사실 오랜 절망이자 꿈이기도 합니다만 농민 300만, 노동자 2천 만, 자영업자 560만, 대학생 300만이 뭉쳐서 진보정당을 세우고 진보정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요. 제가 호의적으로 보는 이재명 시장이 최초의 소년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고 합니다. 노동자 출신이나 지금은 아닌 사람이 아니라, 노동자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를 저는 꿈꿉니다. 존재와 의식의 괴리라고 하지요. 농민·노동자가 엘리트 정당인 민주당 후보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 현실이 전 우스꽝스럽습니다. 

한 가지 조기대선 시나리오와 관련해 덧붙이자면요. 지금은 각 정당들이 대선게임에 빠져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박근혜 퇴진 투쟁을 1년 넘도록 해온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은 박근혜 탄핵 또는 퇴진이 선결과제입니다. 탄핵 일정이 점점 뒤로 밀리고 탄핵 기각 루머가 돌고 있습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퇴임하는 3월 13일까지도 최종 결정이 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지금의 상황을 1980년 민주화의 봄과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살해되고 나서 김대중과 김영삼 두 야당 지도자가 대선 게임에 빠져 있다가 전두환 군부에게 역풍을 맞았던 그 시기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군부 쿠데타까지는 아니더라도 탄핵 기각 역풍이라는 비극이 맞지 않도록 박근혜 탄핵에 모든 정치세력이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 끝으로 박근혜 퇴진 이후 어떤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퇴진 탄핵안이 가결되고 저를 포함한 전봉준투쟁단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자 이제 시작이다. 헌 세상 갈아엎고 새 세상 일구자.'

백남기 농민의 세 자녀의 이름을 민주화, 도라지, 백두산이라고 지었습니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백두산에 올라 도라지 타령을 부르리라'라고 풀이합니다. 백남기 농민은 평생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농사운동을 했습니다. 민주화된 세상, 남북이 통일되어 평화로운 세상, 농사와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을 꿈꾼 것이죠. 전봉준투쟁단을 이끄는 전농은 자주, 민주, 통일, 평등, 평화의 세상을 꿈꿉니다. 

전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어요. 생명입니다. 전 농사를 짓고 나서야 생명의 가치를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지구라는 작은 생명 공동체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요. 생명은 서로 다투는 것 같지만 대개 서로 공생해요. 그런데 인간만은 서로를 해쳐요. 무지와 탐욕, 이기심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명체이면서도 그걸 망각하고 살아요. 도시에 살며 계절도 모르고 시간도 모르고 삽니다. 생명의 감수성을 잃어버렸어요. 그 극단이 바로 박근혜입니다. 박근혜를 보면 반생명의 화신 같습니다. 그를 따르는 부역자들도 마찬가지지요.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생명의 가지를 아는 사회는 반드시 사랑과 평화, 평등, 공생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런 사회는 도시 중심 사회가 아니라 농사 중심의 사회이기도 합니다. 생명이 죽어버린 도시 산업문명을 떠받치던 석유도 곧 고갈됩니다. 도시 산업문명의 종말을 깨닫고 좀 더 생명 친화적인 삶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실천하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합니다. 단지 박근혜와 부역자들 몰아낸다고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생명 중심의 삶의 전환이 본질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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