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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2일 토요일

한반도 핵전쟁 시나리오, 결국 북한이 이긴다?


[정욱식 칼럼] 핵 무장,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이유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익숙한 풍경이 몇 가지 있다. 북한의 숨통을 끊어 놓을 정도로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 제재를 가해야 한다거나, 북한의 핵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사드(종말단계 고고도 지역 미사일 방어체제, THAAD)를 조속히 배치해야 한다는 주문이 대표적이다.

북한이 '수소탄'이라고 주장한 4차 핵실험 이후에도 이러한 풍경은 어김없이, 아니 더 강경하게 재연되고 있다. 한-미-일은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마련하는 한편, 유엔 안보리에서도 '끝장 제재'를 추진 중이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쏘아 올리자, 한미 동맹은 사드 배치 논의를 공식적으로 착수했고, 박근혜 정보는 개성공단 폐쇄를 불사한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북핵 대처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론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여전히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정치인과 전문가 그리고 언론은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한국의 핵무장 능력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면서 결단만 내리면 수년 내 상당수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한국의 핵무장은 기술적으로도 그리 쉽지 않고, 정치·외교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안보적으로는 자해적이다. 왜 그런지 하나씩 따져보자. 
▲ 북한의 '수소탄' 시험 이후 남한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6일 북한이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를 통해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정부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리춘희 아나운서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AP=연합뉴스

한국의 핵무장 능력은? 

한국의 핵무장 능력이 새롭게 조명받은 시기는 2015년 4월이었다.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핵 전문가와 미국 관료 및 의회 전문가가 참석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발표한 내용이 국내 언론에 소개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퍼거슨은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5년 내 수십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목한 핵발전소(원전)는 월성에 있는 4개의 가압 중수로이다.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의 사용 후 연료에는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로보다 플루토늄의 농도가 높다. 이를 근거로 퍼거슨은 한국이 이들 4개 중수로에서 5년 내에 수십 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핵 전문가인 토머스 코크란과 매튜 매카시는 한국이 4개의 가압중수로에서 매년 416개의 핵폭탄 분량에 해당하는 플루토늄 2500킬로그램을 생산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은 국내 핵무장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서균렬 교수다. "2년 내에 최대 100개까지 생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한국의 핵발전소에 쌓인 사용 후 핵연료는 1만 톤에 육박"하고 "이 중 플루토늄이 수십 톤으로 핵폭탄 한 발 제작에 플루토늄 5킬로그램 정도가 필요하니 핵폭탄 대량 생산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의 주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레이저 우라늄 농축 기술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지에 이르고 있어 플루토늄이 없이도 단기간에 핵무장이 가능"하고, "우리는 강력 화약 TNT 고폭 실험을 통하여 핵폭발에 관한 공학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핵실험 없이 슈퍼 컴퓨터만으로도 핵탄두 설계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의 결론은 이렇게 이어진다. "국가가 결심하고 정치인들이 방패만 되어준다면 핵 개발은 연탄 찍기처럼 간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다. 우선 플루토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대규모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한국이 재처리와 관련한 연구 개발 기술을 일정 정도 축적했지만, 아직 상용화해본 경험은 없다. 또 북한 영변의 재처리 공장과 일본 도카이무라 재처리 공장의 연간 플루토늄 생산량이 20킬로그램 정도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연간 수백 킬로그램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재처리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기술적으로 타당하다.

레이저 농축 기술 역시 아직 상용화된 기술로 보기 어렵다. 일부 국가에서 레이저 농축으로 핵연료 생산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세는 원심 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이다. 핵심적인 이유는 레이저 농축 기술이 우라늄의 농축 속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많은 양을 생산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한마디로 원심 분리기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더구나 한국은 2000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지 않고 레이저를 쏴서 0.2그램의 고농축 우라늄을 실험용으로 추출했다가 미국과 IAEA에 발각된 적이 있다. 그 이후 한국의 레이저 농축 기술은 정체 상태에 있다는 게 이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의 전언이다.

한국이 핵실험 없이도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슈퍼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핵실험은 실제 핵실험을 통해 다량의 데이터를 확보한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핵실험 데이터를 보유한 미국조차도 핵무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제 핵실험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며, 포괄 핵실험 금지 조약(CTBT)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핵실험 경험도 일절 없고 데이터도 전혀 없는 한국이 과연 '실험 없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더구나 현대식 핵무기는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화가 필수적이고, 소형화는 실험을 통한 데이터 축적이 전제되어야 한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가난한 한국'이 목표인가? 

물론 한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고 총력을 기울이면 핵무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이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는 국제 핵 비확산 체제를 뚫고 핵 문턱에 넘어서려다간 '쪽박' 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독재국가인 북한과 달리 민주 국가인 한국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쉽게 말해 한국의 핵무장은 정치·외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먼저 국제적 현실부터 보자.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자 IAEA의 상시 감시를 받고 있다. 몰래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려면 북한처럼 NPT와 IAEA를 탈퇴해야 한다. 한국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한국의 유엔 안보리 회부는 불가피해진다. 'NPT를 탈퇴할 경우 안보리 차원에서 다룬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의 한국에 대한 제재는 한국의 핵무기 개발 수위 및 입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가장 먼저 취해질 조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라늄 금수 조치이다. 한국은 자체적으로 우라늄 광산이 없기 때문에, 비축해 놓은 핵연료가 떨어지면 '원전 제로'를 강요받을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전력 대란과 의료 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고집을 꺾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라크, 북한, 이란 등의 사례를 종합해보면, 국제사회의 수출 통제 품목은 핵과 미사일, 그리고 생화학 무기 등으로 전용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공산품을 포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85%에 이른다. 국제 금융 시장과 신용 평가사의 움직임에도 대단히 민감하다. 

한국에 대한 제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일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맹국인 미국과 준동맹으로 가고 있는 일본은 일방적인 제재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강도 높은 경제 제재로 한국의 핵무장 의지를 꺾으려고 할 것이다. 특히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한국에게 중국의 제재는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그 결과는 자명해진다.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핵클럽에 가입하기도 전에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커다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우라늄 금수 조치로 인해 농축 공장은 만들어도 곧 소용없게 된다.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재처리 공장을 짓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이 한국의 사용 후 연료의 형질 변경, 즉 재처리 시설 보유에 동의해줄 가능성도 극히 낮지만, 설사 미국이 동의해주더라도 문제가 따른다. 재처리 시설은 으뜸가는 위험 시설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과 환경 단체들의 반발을 야기해 입지 선정부터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다. 

재처리 시설을 만들어 가동하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피격 대상이 될 수 있고 피격시 그 자체가 엄청난 방사능 물질을 뿜어내는 핵폭탄이 될 위험이 크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질적인 핵무장을 위해서는 핵실험이 필요하다. 과연 좁은 영토에 5000만 명이 모여사는 대한민국에서 지하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실제 실험할 수 있을까?

핵무장은 안보적 자해 조치 
안보적으로도 치명상이 불가피해진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신의 다른 표현이다. 기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 포기와 미국 핵우산 제공의 교환과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면 한미 동맹의 파기까지 감수해야 한다. 

미국을 믿지 못하니까 핵무기를 갖겠다는 한국을 방치할 경우 미국의 세계 전략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초장에 한국의 기를 꺾어놓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핵무장을 고집하면 한미 동맹에 일대 파란은 불가피해진다. 과연 독자적인 핵무장이 한미 동맹과 맞바꿀 정도의 안보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 지난 1월 10일 한반도에 전개된 미국 전략 폭격기 B-52(왼쪽). ⓒAP=연합뉴스

또 한 가지. 한국이 핵무장 추진에 따른 모든 난관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북한과의 핵군비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우라늄 광산에서부터 재처리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놓고 있다. 또한 현재 20개 가까운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영변 핵시설만 가동해도 매년 7~8개의 핵무기를 추가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영토의 80% 가량이 산악 지형이고 수천 개의 지하시설도 갖고 있어 2차 공격 능력에 필수적인 핵무기의 은폐 및 분산 배치도 용이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자체적인 우라늄 광산이 없고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려면 3년 안팎은 족히 걸린다. 핵전쟁 시나리오에서도 남한이 훨씬 취약하다. 대도시와 거대 산업 시설뿐만 아니라 24기에 달하는 핵발전소와 사용 후 연료 중간 저장소 등이 핵무기로 피격당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아마겟돈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은 남북한이 '핵에 의한 공포의 시대'에 진입하면 우리에게 압도적인 공포의 불균형을 초래할 것임을 예고해준다. 

핵무기를 갖자?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동북아 6개국 가운데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핵 강대국이고 북한도 기술적으로는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일본도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잠재적 핵 강대국이다. '왜 우리만 안 되느냐?'는 반문은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자적인 핵무장은 기술적으로 그리 쉬운 것이 아니고, 정치·외교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안보적으로는 자해적 조치와 다르지 않다. 핵무장은 '헬조선'을 우려가 아닌 현실로 만드는 첩경인 셈이다. 

대안은 뭘까? 미국의 핵우산을 비롯한 강력하면서도 현명한 대북 억제력은 불가피하다. 이건 이미 있는 것이다. 두 가지가 추가되어야 한다. 하나는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다. 또 하나는 협상다운 협상을 해보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관계 정상화 등 근본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담판을 시도해야 한다. 이것도 익숙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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