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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5일 토요일

“‘선거일정 차질’ 보수언론 공격에도 ‘필버’ 버틸 가치 있었다”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35]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지난달 23일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명 ‘국민감시법’(테러방지법)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의 첫 주자로 나설 때만해도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토론자가 바뀔 때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어쩌면 난생처음 접했을지도 모를- ‘필리버스터’를 지켜보며 열광했다.
온라인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선 필리버스터가 연일 화제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토론자들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정치에 무관심 했던 이들이 필리버스터를 지켜보며 정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제1야당인 더민주는 필리버스터 중단을 결정했다. 일부 야당 지지자들과 네티즌들은 실망했다. 국회 내에서는 필리버스터 중단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난 2일, 4번째 무제한 토론자로 나선 정의당 박원석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박원석 정의당 의원 <사진제공=박원석 의원실>
“필리버스터, 시작은 국회의원이 했지만 온 국민이 지켜봐”
- 더민주의 필리버스터 중단,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선거구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와서 선거지연의 책임을 야당에 덤터기 씌우려는 여당과 보수언론의 공세가 올 게 뻔한 상황에 3월 10일까지 막더라도 곧바로 임시국회 소집되면 표결하게 돼 있어서 필리버스터 중단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테러방지법이 가진 문제점이 국민의 자유의 인권의 본질적인 속성까지 침해하는 심각한 악법이고, 이대로 통과되면 사생활의 자유 인권의 치명적 위험이 될지 의원들이 낱낱이 폭로해서 국민들이 많이 알게 됐습니다. 또 국회라는 공간이 여야가 굉장히 단순화된 진영논리로 싸움만 하는 공간인 줄 알았는데 의원들이 굉장히 진정성 있게 누구는 정치적, 누구는 법률적, 누구는 역사적, 또 누구는 관점에서 국민들께 소상히 밝히는 걸 보고 정치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국민들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시작은 국회의원이 했지만 온 국민이 지켜보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선거일정에 차질이 있고, 보수언론이 공격하겠지만, 충분히 버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야당의 언론대응이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문제입니다. 제1야당이 위축됐습니다. 조중동 종편에서 하면 위축돼서 끌려갑니다.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은 여당 때문에 선거일정이 차질을 빚는 것입니다. 원래 선거법은 작년 11월에 통과됐어야 합니다. 이번 테러방지법도 그렇고, 노동법, 북한인권법 등 다른 법률과 연계시킨 것은 여당입니다. 필리버스터를 중간에 정회하고 선거법을 통과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당의 욕심 때문에 선거일정에 차질을 빚는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얘기하고 전달되도록 하는 적극적 자세를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 선거법이 연기되면 일차적인 책임은 여당에 있는데 야당이 오히려 역풍을 우려했습니다.
“저도 그게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원래 이런 건 치킨게임이고 벼랑 끝 승부입니다. 야당이 승부도 안 해보고 먼저 뛰어내린 것입니다. 필리버스터 마무리가 이렇게 되면서 얻었던 점수 다 까먹는 것입니다. 야당의 야당답지 않은 모습에 실망하다가 ‘이제야말로 야당답다’, ‘국회가 일 좀 하는 것 같다’, ‘지지해 줄 만하다’고 생각했다가 일순간에 식어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필리버스터가 3월 10일까지 못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제1야당 지도부만의 의견을 모두에게 통보하는 방식으로 한 것은 잘못입니다.
  
▲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무제한 토론을 하던 중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박 의원에게 의제와 관련 없는 발언이라고 주장하며 항의하고 있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왼쪽 앞)가 이석현 국회부의장에게 제지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4번째 주자로 9시간 넘게 필리버스터를 했는데, 처음부터 목표는 아니었을 것 같아요.
“김광진 의원이 너무 잘해주셔서, 법안 문제점만 얘기하면 할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문제의 핵심은 국정원이라고 봤습니다. 국정원의 어두운 역사를 최대한 전달하고, 국정원을 견제할 장치가 부재한 이 법이 왜 문제인지 설득하기로 하고 관련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시간 할지 목표가 없었습니다. 체력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한계가 될 때까지 하고 시간에 집착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여당과 보수언론의 ‘기록 깨기’ 비아냥…그걸 깨고 싶었다”
- 정의당이 소수 정당이기도 하고, 언론 노출도도 비교적 적기 때문에 당을 국민에게 알리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앞에 은수미 의원이 10시간 18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워서 그 이상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력도 있었는데 저는 거기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어요. 보수언론이나 여당에서 기록 깨기라는 비아냥이 있어서 거기에 말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은수미 의원이 10시간 넘게 할 때 기다리면서 부담스러웠습니다. 저 다음에 의원들에게 연쇄적으로 부담 주는 방식으로 전개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경쟁해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많은 분이 ‘은수미 의원이 기록 세웠으니 박원석이 깨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록을 깨지 않음으로써, 유치한 시간 경쟁으로 가는 것을 내가 깨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다른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어떻게 보셨나요?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저도 고민했는데 여러 가지 자료를 보고, 시민사회·전문가 의견을 갖고 갔는데 점점 갈수록 집단지성이 축적돼 갈수록 의원들의 발언 순서나 논리가 불필요한 것은 빠지고 정연해졌습니다. 저도 하고 나서 제 자료를 다른 의원들에게 다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보니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그게 시민들에게는 각인됐습니다. 한 번 들을 때는 각인이 안 되다가 두 번 세 번 들으니 이제 시민들이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 서기호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마치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불출마 결심은 그 전에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안이 나와서 그 자리에서 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니 하기로 했던 필리버스터를 하고 불출마 선언을 한 것입니다. 저는 이해합니다. 서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법사위에서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나 지역 정치를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일반 주민들 만나야 하고 온갖 이해관계 얽힌 요구들도 받아야 합니다. 그게 본인의 소신과 성격에 안 맞아서 갈등이 커진 것 같습니다. 그걸 견디지 못해서 불출마 선언을 한 것입니다. 서 의원만큼 경쟁력 있는 분을 찾기 어려워서 당으로서는 매우 아쉽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고뇌와 갈등 끝에 내린 결정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朴대통령 책상 열 번 쳐?…국민은 가슴과 머리를 칠 지경”
- 박근혜 대통령이 책상을 치면서까지 필리버스터를 비판했는데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라면서요.
“저는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국회법에 있는 절차를 법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데 책상을 치는 것은 법치하고 입법부를 존중하기보다 내 말 안 들었다고 짜증내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냐고요? 전세계에 있습니다. 무식해도 몰라서 무식하면 이해하겠는데 막무가내로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자신이 책상 열 번 치면 국민들이 쫄아야 하나요? 국민들은 가슴과 머리를 칠 지경입니다.”
“4.13총선서 野 다수당 되면 테러방지법 폐지‧개정 나서야”
- 앞으로 테러방지법안은 어떻게 됩니까?
“이제 계속 싸워야 합니다. 국정원의 권력, 기능을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와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테러방지법을 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문제점은 국정원이 개인의 사생활을 무제한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개인을 탈탈 털 수 있는 법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법이 통과된 뒤에는 우리 사회 전체가, 그리고 20대 국회가 국정원이 공작정치, 국민감시 기관이 안 되도록 만드는 국정원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폐지·개정에 나서야 합니다.”
-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장기집권 체제로 갈 거라는 견해도 있는데요.
“우려스럽습니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다 테러용의자로 모는 거죠, 과거에는 국가보안법으로 용공조작을 했다면 테러방지법은 더 쉽습니다. 한 손에는 국보법, 다른 손에는 테러방지법을 들고 온 국민을 감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입니다. 빅브라더 국정원이 감시하는 사회 말입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과거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정권의 그런 기관이었습니다.”
  
▲ 박원석 정의당 의원 <사진제공=박원석 의원실>
“선거구획정, 거대정당 간 또 다른 이름의 나눠먹기‧담합”
- 선거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선거구가 확정됐습니다.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습니다. 선거구 획정은 어떻게 보십니까.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이번 선거구 획정의 배경이 됐던 게 헌재의 위헌판결, 표의 등가성을 실현하라는 게 배경이었습니다. 그런 애초의 배경과 취지는 사라지고 거대정당 간에 또 다른 이름의 나눠 먹기, 담합이 이뤄졌습니다.
새누리당은 40% 넘는 표를 받아 50% 넘는 의석으로 100%의 권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40% 표를 받았으면 40% 의석을 받고, 40% 권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과반 이상이면 100%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과반 독재’, 그런 면에서 이번 선거제도 거대양당에 막혀서 국민의 정당한 주권, 국민주권이 훼손된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저희 같은 소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게 됩니다. 왜 매번 판검사, 교수, 변호사 출신들만 국회의원 돼야 합니까? 농민, 청년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은 양당체제에서 그것도 엘리트들 위주의 과두정치가 우리 정치체제의 속성으로 점점 더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정치발전, 한 사회 민주주의의 발전의 측면에서 매우 부정적입니다. 한 사람의 표의 가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제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20대 국회에는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의석수 늘리고 세비 인하…최저임금과 세비 연동하자는 것”
- 심상정 대표는 국회의원 세비 인하를 주장했습니다. ‘차라리 그 돈을 주고 더 잘하게 해야지 세비 인하만하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세비 인하를 주장한 게 아니라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의원 정수를 360석까지 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증가되는 예산은 세비를 줄여서 숫자가 60명 늘지만, 예산은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석수를 늘리려는 방편으로 세비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세비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정의당이 최저임금과 세비를 연동하자고 했습니다. 특권으로 지탄받는 의원 세비에 최저임금을 연계시키면 최저임금을 끌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야권연대 제안은 새누리당 어부지리 우려한 것”
- 출마하는 수원 영통 지역 주민의 반응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저를 잘 몰랐습니다. 제가 수원 출신이긴 하지만 인지도도 낮고 지역활동을 안 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작년 9월부터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있고, 특히 이번 필리버스터를 계기로 많은 분이 격려해 주십니다. 주민들 걱정은 현직 의원이 민주당 의원이고 저도 의원이니까 야당 의원들이 잘 풀지 않으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가 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심상정 대표가 지난번 야권연대를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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