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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6일 목요일

잔인한 4월, 다시 길 위에 선 세월호 유가족들


추모제 후 늦게까지 경찰과 대치.. 시행령 폐기 및 인양촉구 농성 돌입
강주희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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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7  07:39:06
수정 2015.04.17  08: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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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서울 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 추모제’ 참석자들이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이 부상을 입거나 경찰에 연행됐다.
집회를 마친 4.16 가족협의회 소속 유가족 300여 명과 시민 6만5000명(경찰 추산 1만 명)은 이날 오후 9시 17분 희생자 조문을 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행진 선두에는 노란 점퍼를 입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섰다. 참가자들은 하얀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행진은 시작한 지 10여분도 되지 않아 경찰의 저지에 막혔다. 경찰은 이날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해 청계광장, 서울시의회, 동화면세점 인근에 경찰버스 50여대로 차벽을 세웠다. 투명 방어벽도 등장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평화행진 보장하라”, “폭력 경찰 물러나라”고 외치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평화행진을 ‘불법행위’로 규정, 자진해산을 명령했다.

  
▲ ©go발뉴스(강주희)
# 16일 오후 9시 30분 청계광장
“우리가 이 나라 주인이야! 왜 막아요”, “폭력경찰 비켜”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 짙은 검은색 방어벽이 세워졌다. 방어벽 위에는 경찰 20여 명이 집회 참가자들을 채증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불법집회를 중단하지 않으면 채증을 하겠다”는 서울 종로서장의 경고방송이 흘러 나왔다.
성난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이 세운 차벽을 밀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차벽에 가로 막혀 더 이상 행진이 불가능해지자 유가족과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했다. 하얀 국화꽃을 든 시민들의 행진은 청계광장에서 삼일교 부근까지 이어졌다. 넥타이를 맨 시민들도 행진에 가세했다. 이날 동원된 경찰 인력은 1만 여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 ©go발뉴스(강주희)
# 16일 오후 9시 50분 종로 1·2가
경찰과 참가자들의 거친 몸싸움이 청계천 곳곳에서 벌어졌다. 경찰은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청계천 다리들을 봉쇄하며 방패벽을 쌓았다.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무엇이 두려워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11일 유가족들의 청와대 행진 당시 경찰이 발사했던 캡사이신 최루액은 이날 다시 등장했다. 경찰의 무차별 캡사이신 발포에 참가자들은 노란 우산을 펼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틈을 타 일부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YMCA연합회 앞에 세워진 경찰버스 위에 올랐다.
경찰 버스에 오른 남상순씨(단원고 고 남수빈양의 아버지)는 “자식을 너무도 허망하게 보내버렸다”며 울분을 토했다. 남씨의 발언에 시민들은 “힘내세요”,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이날 종로 1가와 2가에 있던 유가족과 시민들은 17일 새벽까지 경찰과 대치했다.

  
▲ ©go발뉴스(강주희)
# 16일 오후 11시 3호선 안국역
“저기도 막혔어요. 오늘 집에 못 가요.”
4월 16일이 한 시간 남은 오후 11시. 인사동과 3호선 안국역 길목에도 경찰 차벽이 빽빽이 세워졌다. 광화문으로의 진입이 여의치 않자 참가자들이 인사동쪽으로 몰리자 경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방패를 든 경찰들은 “막아, 막아”라 외치며 도로 위를 바쁘게 뛰어다녔다.
경찰은 청와대로 이어지는 북촌 방향 진입로를 차단되고, 조계사 앞 도로에 버스와 기동대 등을 배치했다. 퇴근하는 시민들의 항의가 쏟아졌지만 경찰은 “안전상 문제로 이동 할 수 없다”며 일관했다. 취재진도 통과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간 광화문에서는 일부 유가족과 천주교 신부들이 철야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들은 경찰에게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며 팔짱을 끼고 경찰과 대치했다. 그러나 경찰은 “해산하지 않으면 검거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7차례 내보냈다.

  
▲ ©go발뉴스(강주희)
# 17일 오전 0시 광화문
경찰과 참가자들의 대치는 결국 자정을 넘겼다. 경찰을 사이에 두고 세종대왕 동상 뒤편과 경복궁 인근에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양의 어머니 임선미씨는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추모제 행사에 와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음에도 대통령은 유가족이 없는 팽목항을 찾았다. 안전을 보장해주면 안산을 찾겠다고 했다. 이게 자신의 죄를 아는 거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제주대 재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남학생은 “국민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은 1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세월호 실종자 9명을 모두 가족 품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 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발걸음도 계속 이어졌다. 오전 0시 30분 조문객 줄은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세종대왕 동상까지 길게 뻗었다. 방송인 김제동씨도 이날 분향소를 찾아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 ©go발뉴스(강주희)
# 17일 오전 3시 경복궁 앞
한편, 경복궁 앞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밤샘 농성이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1년 전 그 날처럼 담요 한장을 두르고 차가운 아스팔트에 몸을 기댔다. 열 발자국 떨어진 곳에는 경찰들 서 있었다. 경찰버스는 줄어들었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인의 장막에 겹겹히 둘러 쌓여 있었다.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얇은 담요를 무릎에 두른 채 앉아서 설잠을 청했다. 전명선 위원장은 살을 에는 바람에도 길바닥 위에 몸을 누웠다. 가족들은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에 대한 정부의 확답을 받을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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