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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4일 화요일

고성 산불 20년, 참나무숲으로 재탄생


김정수 2015. 04. 15
조회수 109 추천수 0
그을린 소나무 흔적 안고 신갈나무 등 참나무 숲으로
단일종 인공 조림지보다 자연복원지 숲 회복 빨라

fire1.jpg» 고성 산불 발생 20년째인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 산불 자연복원지 모습. 산불 발생 이전 전체 면적의 70~80%를 차지하던 소나무 숲이 대부분 사라지고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류가 중심이 된 활엽수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봄철만 되면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나 숲속 동·식물은 물론 토양에까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남긴다. 1996년 4월23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의 한 군부대 사격장에서 시작된 ‘고성 산불’은 이런 산불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한테 최악의 산불로 기억된다.

사흘간 고성군 1개 읍 2개 면 16개 마을을 휩쓴 이 산불은 산림 3762㏊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피해 면적은 당시까지 공식 집계된 산불 가운데 최대였고, 4년 뒤 강원도 강릉·동해·삼척·고성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른바 ‘동해안 산불’에 이어 역대 둘째로 기록되고 있다.

00004713_R_0.JPG» 고성 산불이 난 이듬해인 1997년 4월 피해지는 그대로이지만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고성 산불의 광범위한 피해는 산불 피해지 복구 방법으로 통상적인 인공조림 외에 자연복원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죽왕면 구성리와 인정리의 불탄 국유림 두 곳에 30㏊와 70㏊ 규모의 자연복원지를 설정해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기를 기다리는 국립산림과학원의 실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산불 발생 10년째인 2005년 4월 초 처음 찾았을 때 고성 산불 자연복원지는 온 산이 시뻘건 불덩이가 됐던 산불 참화의 상흔을 미처 지우지 못한 채였다.

01091942_R_0.JPG»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 산불 자연복원지의 2005년 4월초 모습. 산불이 꺼지고 10년이 지났지만 곳곳에 불탄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고, 토양이 그대로 노출된 곳이 많아 황량한 느낌이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불에 탄 나무 그루터기 주변에서 움싹으로 올라온 참나무류 교목 주변과 진달래, 싸리류 등의 관목이 자리를 잡아가는 능선과 구릉 주변 곳곳에 숯으로 변한 나뭇가지들이 흩어져 있었고, 산불에 휩싸여 죽었지만 미처 쓰러지지 않은 나무들이 고사목처럼 드문드문 서 있었다.

비교적 토양이 비옥하고 수분이 많은 계곡부 주변엔 불에 타버린 줄기를 에워싸고 6~8m 높이까지 자란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등도 제법 있었지만, 황량한 느낌을 가려주진 못했다.

그때로부터 다시 10년이 흘러 산불 발생 20년째가 된 9일 다시 찾은 죽왕면 구성리 자연복원지는 밑동이 검게 그을린 채 서 있는 소나무들이 아니었다면 산불이 났던 곳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 있었다.

fire2.jpg»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 산불 자연복원지의 한 소나무 밑동에 19년 전 산불에 그을린 상흔이 남아 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상층은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 활엽수가 우점종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싸리류와 진달래, 국수나무 등 관목 사이에 가슴높이지름이 30㎝ 가까운 소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숲의 모습은 산불 피해를 입지 않은 강원도 동해안의 여느 숲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움싹에서 올라온 신갈나무들은 평균 10m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땅을 덮은 낙엽 위로 샛노란 꽃잎의 노랑제비꽃이 피어나 봄을 알리고 있었다.
 
구성리 자연복원지에 남아 있는 가슴높이지름 30㎝ 가까운 나무들은 1996년 산불을 버텨낸 나무들이다. 이들이 산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현장을 안내한 김정환 산림과학원 산림수토보전과 연구사는 “구성리 자연복원지가 산불 발생 당시 활엽수와 소나무가 혼재한 혼합림이어서 산불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 산림과학원이 몇년 전 20여년간 축적한 산불 통계 자료를 분석해보니 단일종으로 구성된 소나무 숲은 다양한 나무로 이뤄진 혼합림에 비해 산불 연소 시간이 길어 산불 피해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성 산불 이듬해 산불 잔존목을 모두 제거하고 소나무와 자작나무 등 단일종 묘목을 심은 인공조림지도 10년 전과 비교하면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fire4.jpg» 인정리 자연복원지(오른쪽)과 소나무 조림지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진=김정수 기자

인정리 자연복원지와 임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인공조림지의 소나무들은 평균 5~6m 이상의 높이에 가슴높이지름 10㎝ 안팎으로 튼실하게 자랐고, 2005년 평균 높이 3.6m에 불과하던 송지호 주변의 자작나무들도 10년 사이에 키가 두 배가량 훌쩍 자라 고성군이 산책로까지 조성해 놓았다.

하지만 산불 피해목에서 빠르게 성장한 참나무류 맹아림이 중심이 된 자연복원지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빈약한 느낌이었다.

fire3.jpg» 고성군 죽왕면 송지호 주변 산불 피해 지역에 산불 발생 이듬해 조성한 자작나무 인공조림지. 심을 당시 어른 새끼손가락만하던 어린 나무들이 가슴 높이 지름 8㎝ 안팎까지 자라나 제법 숲을 이루고 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권진오 산림과학원 산림수토보전과 연구관은 “심한 산불이 지나간 지역의 토양은 강한 열기에 토양 입자 사이의 연결구조가 모두 끊어져 마치 세라믹 가루처럼 변하고, 이에 따라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양분과 물을 전달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산림수토보전과의 산불 피해 지역 모니터링 결과 2014년까지 산불 피해지에 조림한 소나무의 키가 산불 피해를 받지 않은 정상 임지에 조림한 소나무의 41~71.9% 수준에 불과한 것은 산불에 의한 토양 훼손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양한 산불 피해 가운데 가장 느리게 진행되는 토양 회복 속도는 해당 지역의 지형과 강우량 등 여러 변수에 좌우된다. 다만 다른 조건이 같은 상황에서는 피해목을 모두 제거하고 단일종을 심은 인공조림지보다는 자연에 맡겨둔 자연복원지에서 토양 회복이 더 빠르게 나타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fire5.jpg» 산불이 난 구성리에 되살아난 신갈나무 숲. 자연복원지의 토양회복이 조림지보다 빠르다. 사진=김정수 기자

고성과 동해안 산불 피해지 복원 문제를 연구해온 정연숙 강원대 교수(생명과학과)는 “산불지역에서 토양 회복을 위해 제일 좋은 것은 초기에는 그냥 둬서 환경에 맞는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라며 “인공조림을 하더라도 7년 정도는 토양이 안정화되기를 기다렸다가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고성/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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