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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5일 수요일

[사설] 세월호 참사 1년, 우리는 무엇을 했나

등록 :2015-04-15 18:58수정 :2015-04-16 01:11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단원고 희생자 박예슬양의 아버지 박종범(49)씨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세월호 사고 해역을 찾아 진도 들녘에서 꺾어 온 꽃다발을 움켜쥔 채 1년 전과 달라진 것 없는 바다를 보며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다.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진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꽃이 지네. 사월의 한가운데, 흰 꽃은 눈물처럼, 붉은 꽃은 선혈처럼, 투명한 꽃은 아이들의 영혼처럼.
생의 꽃을 피워내던 17살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또 다른 탑승객들 304명을 눈이 시리도록 환한 이 계절에 망자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가슴 시린 아픔이다. 1년 전 오늘 세월호 선체가 가쁜 숨을 넘길 때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의 시퍼런 파도는 이 땅 모든 이들의 눈물이었다. 마지막 순간 망막을 할퀴던 구상돌기는 차라리 잊고 싶은 광경이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많았다. 304명의 이름들, 그들이 남겨두고 간 가족들의 고통, 그 고통을 낳은 인과관계의 사슬,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부조리와 비극과 위로를 함께 짊어지고 나눠야 할 한 나라 이웃이라는 사실. 그러나 지난 1년은 고통은 고통대로 내팽개쳐지고, 인과의 사슬은 풀어헤쳐지며,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단순하기 그지없는 질문조차 미궁에 빠져버린 절망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세월호 이후의 1년은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몹쓸 시간과 꼭 닮았다. 2014년 4월16일 아침 8시48분 선체가 기울기 시작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시스템은 기울기 시작했다. 8시52분 최덕하군이 처음으로 구난신고를 한 것처럼, 국가의 불안한 좌초를 경고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하지만 9시44분 선장과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한 것처럼, 국가 공동체를 부축해야 할 이들은 무거운 책임을 조타실에 버려둔 채 제 안위만 좇기 바빴다. 선체가 해수면 아래로 완전히 내려앉은 그날 오후 1시가 바로 오늘 이 순간이다. 국가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침몰한 1년이었고, 거대한 진실도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1년이었다. ‘대통령의 7시간’ 따위는 짓밟힌 진실의 일부분일 뿐이다.
꽃잎이 밟히네. 바람에 쓸리는 꽃잎. 추억 가득한 교정에서, 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엄마의 앙가슴에서.
그렇게 침몰하고 무너진 건 국가 정체성과 시스템만이 아니었다. 진실을 덮고 책임을 모면하고 잇속을 지키려는 집권세력의 계산속에 세월호의 비극은 정략으로 덧칠됐다. 유족들을 편가르기하고, “시체 장사”니 “세금 도둑”이니 하는 차마 못할 말들이 쏟아졌다. 단식하는 유족들 앞에서 ‘폭식 농성’을 하는 비인간의 풍경이 벌어졌다.
맹자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마음의 한 자락이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불인인지심)이라고 했다.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하게 여기는 그 마음이라고 했다. 하물며 꿈으로 한껏 부푼 수학여행 길에 수장된 250명의 어린 생명을 지켜보고도 저런 망언과 망동이 자행된 것은 이 사회를 떠받치는 인륜의 최소한마저 침몰하고 말았다는 증거다.
이웃이 죽어간 것을 한껏 슬퍼하지도 못하게 만든 집권세력은 한술 더 떠 법이라는 신성한 도구를 장난감처럼 주무르며 유족들의 가슴을 또 짓밟았다. 진상규명 기구에 수사·기소권을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를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속임수 논리로 걷어차면서 특별법 제정을 6개월이나 끌더니, 그로부터 다시 다섯달이 흐른 뒤 특별조사위원회의 권한과 규모를 대폭 줄이고 조사 대상인 공무원들이 되레 조사를 주도하도록 하는 특별법 시행령안이란 걸 던졌다. 그러고는 누구도 재촉하지 않은 배·보상금 액수 발표를 앞세웠다.
그 모멸의 1년 동안 산 자와 죽은 자를 괴롭힌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정부 발표만 받아쓰며 ‘전원 구조’ 오보로 첫 보도를 장식한 언론은 그 사명인 진실의 발견에는 눈감은 채 혐오와 망각을 부추겨왔다. 배·보상금만 부각시켜 유족들을 모독한 보도가 그 1년의 결말이다.
심신이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유족들은 그나마 성한 신체였던 머리카락마저 잘라 떨군 채 자식의 첫 기일을 맞았다. 특별조사위원회는 365일이 지나도록 출범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늘도 우는 이 비통의 날에 꽃잎 뿌려진 길을 밟아 중남미 순방을 떠난다.
꽃은 또 피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므로,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참사의 근원은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한 탐욕의 적폐였기에 국가를 개조하고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은 아이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라를 책임지는 자들이라면 진실규명은 회피하고 싶을지언정 이것만은 제대로 밀어붙였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1년은 고양 종합터미널과 장성 요양병원과 의정부 아파트가 불타고 판교 지하철 환풍구가 사람을 집어삼키고 어선 오룡호가 러시아 바다에서 침몰하고 신안 가거도에서 해경 헬기가 곤두박질치는 또 다른 참사의 연속이었다. 어느 한구석 더 안전해진 곳이 없고, 사람보다 이윤과 효율을 섬기는 비정한 논리는 여전히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굳건히 장악하고 있다.
진상규명 약속뿐 아니라 안전사회의 다짐마저 진정성이 없었던 탓이다. 결국 그 둘은 하나였던 것이다. 진실을 대면할 용기와 책임감이 없으면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 실천해갈 근력도 생길 수 없다. 세월호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하는 이유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덮고 슬픔을 능욕하는 짐승의 언어와 몸짓을 거둬들이고, 허비해버린 1년의 몫까지 더해 1년 전 그 순간 우리 모두의 가슴을 메웠던 다짐을 그대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러면 세월호 희생자들이 기울어가는 배에서 모두 탈출해 나오는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살아나 부모의 환한 가슴에 안길 것이다. 세월호의 안부를 묻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도 그들의 부활을 축복할 것이다. 최저임금으로 계산된 평생의 월급을 미리 받은 아이들은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탐욕의 지배에 맞서 일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이 나라가 되살아나는 길이기도 하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말하지 말자. 우리는 싱싱한 꽃망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본질로 간직한 고귀한 존재, 인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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