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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1일 일요일

힘겹게 지핀 대화의 불씨, 잇따르는 악재들


<2014 송년특집 ①> 북미관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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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22  14: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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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북미관계를 상징하는 사건 두 개를 꼽으라면,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NDI) 국장의 전격 방북과 '소니 영화사 해킹사건'일 것이다. 전자가 천신만고 끝에 살려낸 북미대화의 불씨라면, 후자는 북미 사이의 뿌리깊은 대결 관성에서 비롯된 악재라고 할 수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강력한 자위적 힘으로 자주권과 평화를 수호하고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며,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 협조관계를 확대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자위적 힘'을 바탕으로 '외교 다변화'를 추구한 올해 북한의 대외정책 방향을 시사한 셈이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고수했다. 과거 '제재-대화' 투트랙 접근법이라 부르던 미 당국자들이 올해 상반기부터는 군사와 경제, 외교 세 축을 활용하는 대응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올해 10월까지는 군사 축이 두드러졌다. 2월초 B-52 전략폭격기 파견에 이어 키리졸브/독수리연습(2.24~4.30),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8.18~28),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까지.
북한도 전략군을 앞세워 10월까지 지속적으로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북한은 2월 하순에서 3월말까지 해안포와 방사포 500여발, 신형 방사포 12발, FROG 로켓 70여발, 스커드-C 단거리 미사일 2발, 노동 계열 탄도 미사일 2발 등을 발사했다. 8월부터 10월까지는 KN-02 등을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발사체'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기간 외교 축은 군사 축을 뒷받침하는 수준에서 작동됐다. 북한은 3월 14일 국방위원회 성명으로 제재와 봉쇄, 군사적 위협, 인권 소동을 비롯한 '대북적대시정책 철회'를 미국에 요구했다. 8월 1일 리동일 유엔 주재 차석대사는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안보리에서 다뤄줄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대북 봉쇄망 (나아가 대 중국 포위환)을 유지, 강화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했다. 3월 25일 헤이그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서로 얼굴을 보려하지 않는 한.일 정상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또, 공동 군사연습과 미사일방어(MD)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화는 3국의 구체적 조치를 기대했다. 한.미 당국자들은 짬이 날 때마다 북한의 '병진노선'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북한의 미국인 석방과 클래퍼 방북
군사적 대치가 극점으로 치닫던 '을지프리덤가디언' 기간 중, 미 당국자들이 비밀리에 방북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올해 북미관계의 명백한 전환점은 10월로 보인다. 10월 22일 북한은 억류 중이던 미국인 제프리 파울을 전격 석방했다. 11월 8일에는 우여곡절 끝에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 매튜 밀러와 케네스 배를 데리고 나왔다.
북한은 9월부터 국면 전환을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9월 6일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가 유럽순방에 나서고, 이어 리수용 외무상이 북한 외무상으로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직후에는 러시아를 방문했다. 10월 중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직후, 북한은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했다. 11월 17~24일까지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김 제1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핵협상과 대미외교를 관장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동행했다.
미국 내에서도 군사적 대응을 전면에 내세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운용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같은 대화파 외에 비확산전문가인 아인혼 전 국무부 대북.대이란제재조정관까지 가세했다. 아인혼 전 조정관은 7월 5일자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를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과거 대북정책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고 지난 5년간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과 탐색적 대화를 갖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북한을 제외한 5자 사이의 공조에도 균열이 생겼다. 동맹인 한국은 이산가족 상봉,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미국 내적으로도 대화 수요가 생겼다. 미국은 '억류자 문제가 대화의 걸림돌'이라고 거듭 밝혔다. 이는 '북한이 억류자를 석방하면 북미대화에 응하겠다'는 공약으로 받아들여졌다.
북한은 유엔총회 3위원회(11.18)와 본회의(12.18)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된 데 대해 반발하면서 구체적인 대응조치를 자제하며 이후 상황을 주시했다. 미국 측 성김 신임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4~12일까지 한중일을 순방하며 북미 직접대화 의지를 피력했다.
반발짝 접근한 북.미, 그리고 쟁점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화통신>은 17일자 기획기사를 통해, 최룡해 비서의 러시아 방문이 대화 재개의 희망을 되살렸다며 "공은 워싱턴 쪽으로 넘어갔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향해 '유연성'과 '정치적 용기'를 주문했다.
다니엘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6일(현지시각)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대화(talk)'와 '협상(negotiation)'을 구분하면서, "협상은 관심사가 탁자에 오르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반발 물러나 '조건 없는 북미대화'와 '성과를 내는 6자회담'으로 정리한 것이다.
북.미가 두 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의제와 관련, 북한은 '9.19공동성명에 기초'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적대시정책 철회를 전면에 내걸었던 데서 반발 물러선 것이다. 북.미 모두 '전제조건 없는 북미대화 개최'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다만, 6자회담 재개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사전조치의 수준과 재개 프로세스를 둘러싸고 입장차가 큰 까닭이다. 그리고리 로그비노프 러시아 북핵특사는 17일자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길고 끈기있는 작업"을 강조했다.
사전조치의 수준과 관련, 러셀 차관보는 16일 '동결'을 거론했다. 다만, 영변 핵활동 및 핵.미사일 실험을 동결하는 2012년 '2.29합의' 수준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재개 논의 과정에 한국의 참여도 요청했다. 재개 프로세스는 사전조치의 수준과 연동돼 있다.
돌출하는 악재들
북미대화를 포함한 6자회담 재개로 향하는 길에는 두 가지 당면 악재가 돌출돼 있다. 지난 18일 유엔총회 본회의를 통과한 '북한인권결의'와 '소니 영화사 해킹 사건'이다.
북한 외무성은 20일자 성명을 통해 '유엔 북한인권결의'를 전면 배격하면서 "조미 사이의 자주권 존중과 평화공존을 공약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을 비롯한 모든 합의를 빈종이장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조치를 보아가며, 9.19공동성명 무효화를 선언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소니 영화사 해킹에 관여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문제'와 관련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는 2008년 10월 6자회담 진전에 따른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 문제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면 핵협상은 시작도 하기 전에 파탄이 날 가능성이 높다.
향후 북.미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에 따라 2015년 북미관계, 그리고 한반도 정세가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선순환으로 풀려나갈 수도 있는 교차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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