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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8일 일요일

[단상644] 2014년을 보내면서

[새록새록 단상 644] 독자들의 격려와 편달을 부탁드리며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4/12/28 [23:4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중국시민 첫 기사 - 2005년 5월 첫 기사를 보내온지 10년째 접어드는 동안 1176건의 기사를 보내주신 중국시민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자주민보 편집국

연말총화를 하다가 새삼스레 놀랐다. 금년에 《자주민보》에 보낸 글이 근 200편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197편을 보냈는데, 3편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발표되지 못해, 실지로 발표한 글은 지금까지 194편이다. 평균 이틀에 1편 이상 쓴 꼴이다. 예전의 기록이 2012년의 총 159편이었으니 훨씬 초월했다.

기록돌파의 제일가는 원인은 금년에 반도에서 그리고 반도를 둘러싸고 희한한 사건들이 많이 생겨났다는데 있다. 돌이켜보니 분개하여 쓴 글이 적지 않았다. “분노는 시인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시인이 아니지만 거듭 솟구치는 분노가 글들을 낳았다. 물론 분노와 상관없는 글들도 적지 않으나, 어느 글이나 필자의 열렬한 감정이 녹아들었다. 어찌 보면 글이란 성숙되는 태아와 비슷하여 어느 순간에 이르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써낸 뒤에 호평을 받느냐, 악평을 부르느냐, 반향이 전혀 없느냐는 구별이 있다.

《자주민보》에 투고경력이 어느덧 10년차에 이르렀다. 따져보면 현재 고정필진들 가운데서, 필자보다 먼저 글을 쓴 이는 이창기 기자 한 사람뿐이다. 무슨 일이든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명년 5월에 가야 만 10년이 되지만)세월을 견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신체건강이 여러 차례 변화를 일으켰고, 혈육을 잃는 아픔도 겪었으나, 꾸준히 글을 보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다. 특히 2009년 말에 시작한 [통일문화 만들어가며]를 주일마다 발표되도록 견지해온 건(필자 외의 변수 때문에 발표되지 못한 주일이 좀 있다만) 끈기가 없다는 말을 듣곤 하던 필자로서는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169편의 글을 발표하는 동안, 반생 먹지 못했던 괴상한 욕들을 몰밀어 먹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칭찬도 받았으며, 숱한 이들의 질문에 답을 주었고, 자의 또는 타의로 변론도 벌렸다. 간접적인 변론을 벌였던 어떤 사람들이 필자를 “북한 공작원”으로 모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필자를 “탈북여성을 중국한족들에게 팔아먹는 자”라고 단정했다.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왜선지 증거를 공개하지 않아 은근히 유감스럽다만, 필자는 공작원도 인신매매범도 아닌 중국의 평범한 조선족 공민이다.

거듭 밝혔다시피 반도의 남북 소통이 원활하고 남에서 북 관련 정보들을 곧잘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는다면, 해외에 사는 필자가 끼어들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남과 북의 통로가 꽉 막히고 별의별 외곡과 날조가 성행하는 판이라, 필자가 조선(북한)에서는 이러이런 일들이 있었다, 어떤 인물, 어떤 사건을 이러이렇게 묘사한다, 이러이러한 일들을 주목해야 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어떤 일을 어떻게 본다 등등 방식으로 글들을 쓸 필요가 있다. 필자는 자신이 전하는 정보나 주장, 그리고 필자의 견해가 완전히 정확하다고 주장한 적 없다. 단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사건을 이런 각도로 보면 결론이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계발에 중점을 주었다.

이런 식 글들은 대체로 형평성이 잡혔다는 평가를 듣지만, 어떤 이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불쾌함을 드러냈고 또 어떤 이들은 형평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아무튼 필자로서는 최대한 《자주민보》와 편집자들을 배려하고, 최대한 폭넓게 깊이 있게 소재를 다루려고 노력해왔고, 이후에도 이런 풍격은 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금년에 질문을 유난히 많이 받았고, 답변을 위해 엄청난 자료를 찾아보았으며 준비해둔 글들도 적지 않은데, 연말에 《자주민보》폐간소식을 접하니 어딘가 허전하다. 변론과 비판의 무기로 남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무슨 감투를 씌워서 언권을 박탈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법이다. 정당해산, 언론사폐간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현상들은 거꾸로 “중국시민”이라는 필명을 가진 집필자의 존재가치를 증명한다고 본다.

《자주민보》사가 상고했다지만, 현재 한국의 우경화 분위기에서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편집진은 다른 이름으로 창간하는 가능성을 검토한다고 한다. 10년 째 《자주민보》와 인연을 맺어오면서, 생활의 일부분으로 간주되던 《자주민보》라는 이름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편집진이 새 언론을 창간한다면, 언론사의 성격과 특징은 변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2005년에 《자주민보》기사에 독자댓글을 달다가 글을 써보라는 편집자의 제의를 받고, “저도 《자주민보》에서 한 목소리 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명년에 어떤 이름으로 변하든지, 필자는 한 목소리 정도가 아니라 큰 목소리를 내려고 준비한다. 독자 여러분의 격려와 편달을 부탁드린다. [2014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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