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2년 12월 10일 토요일

분노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협의회 결성 “윤 대통령 사과하라”

 


“정부가 유가족 연락처 주지 않아” 난관 헤치고 모인 97명 희생자 유가족들


10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홀 달개비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선언 기자회견에서 유가족이 발언하고 있다. 2022.12.10. ⓒ뉴시스

눈물이 잠시도 마를 새가 없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어렵게 한 자리에 모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온전한 추모, 철저하고 분명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희생자 유가족들이 협의회를 처음으로 결성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10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창립을 선포했다. 희생자 97명의 유가족 170명이 협의회에 참여했다. 기자회견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유가족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앞서 2시간 동안 회의를 한 끝에 대표단을 선출하고 활동 목적과 사업 계획을 결정했다. 대표는 고 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종철 씨가 맡았다.

 “국가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유가족이 직접 모여 협의회를 만든 이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40일이 넘은 시점에 유가족들이 협의회를 공식적으로 발족하기에 이른 건,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날 유가족들이 “국가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울분을 터뜨린 이유다.

유가족 협의회 이정민 부대표는 “저희가 왜 협의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유가족들 모아놓고 (윤석열 대통령이) 책임자로서 진정 어린 사과 한마디만 했으면 이렇게까진 안 갔을 것이다. 그런데 외면하지 않았나”라며 “이 죽음이 당연한 죽임인가”라고 성토했다.

이에 유가족들이 협의회를 통해 가장 먼저 요구해나갈 것은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다. “유가족 협의회 대표를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다”고 말문을 연 이종철 대표는 첫 번째 사업계획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에 피해자의 참여 보장 ▲성역 없는 엄격한 책임 규명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인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요구하는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선언 기자회견 중 오열하고 있다. 2022.12.10 ⓒ뉴스1

이 대표는 “같은 희생자 유가족들의 연락처를 확보하려고 여기저기 미친듯이 돌아다녔다”며 “서울시와 행정안전부, 정부여당에 ‘연락처 좀 달라’고 매일매일 사정하다시피 말씀드렸다. 하지만 지금도 연락처를 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가족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서 서로 대화하고, 울고, 껴안고 해야만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라, 약을 먹으라, 상담을 받으라’고만 했다”며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성토했다.

이 대표는 유가족과 협의도 없이 정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응하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해체하고 이후에도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께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저희도 당신의 아들딸들이다. 저희 유가족들이 다 죽어야만,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만 당신이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느냐. 그게 아니라면 저희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라”고 촉구했다.

정부여당에 강한 분노 표출한 유가족들

대표단 뿐만 아니라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다른 유가족들도 모두 울분을 더이상 감추지 않고 터뜨리는 모습이었다. 난생 처음 방송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잇따라 마이크를 잡으며 자식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장내에선 통곡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유가족들의 분노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향했다.

특히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유가족 협의회를 두고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거나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적은 것을 두고 비판이 터져나왔다.

이정민 부대표는 “세월호 유가족과 같은 길을 가지 말라고? 왜 벌써부터 이렇게 갈라치기를 하고, 국민들한테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냐. 이게 정부가 할 일이고 책임있는 여당 책임자가 할 일이냐”라고 비판했다. 이어 “참사로 자식을,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쟁을 하겠냐. 저희들은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도 싫다”며 “처음부터 저희의 요구사항을 들어줬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안 해주고선 정쟁하니 안 하니 그런 얘기를 하느냐.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질타했다.

오히려 유가족들은 이날 “끝까지 유가족의 뜻을 받들어 돕겠다”는 시민대책위원회 측 연대 발언에 감사를 표하며 “도와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고 이지한 씨의 어머니 조미은 씨는 “이태원 참사 전에는 현모양처, 부드러운 말투, 나서지 않던 엄마였다면, 이태원 참사 후엔 물러서지 않고, 거친 말투에 앞에 나서는 엄마가 됐다”며 “유가족들과 함께 이 일이 투명하게 끝날 때까지 투사가 될 것을 맹세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우리들은 오늘 이 순간까지만 참으려고 한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떠난 아들을 향해 “부디 제발 안전하게 잘 가렴. 꼭 안전한 나라에서 환생하렴. 이게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란다”라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서 올라왔다는 고 김지연 씨의 어머니도 정부여당을 향해 “다같이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제발 유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달라. 내 자식들이 길거리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참혹한 고통을 당했다면 과연 가만히 손 놓고 계실 거냐. 아마 자식들이 절대 그렇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라며 “제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지 말고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렇지 않으면 4년 뒤에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심판당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고인을 향해 “너무나 갑작스럽게 길거리를 지나가다 그 비좁은 길에서 숨조차 못 쉬고 떠나서 얼마나 큰 한이 맺히고 눈도 못 감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너무 힘들다”라며 “158명의 꽃다운 청춘이 헛되지 않게 엄마아빠가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끝까지 노력할게”라고 말했다.

‘경철이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유가족은 “윤석열 대통령님, 애들한테 사과하세요. 진심으로 사과하시라고요. 우리 경철이가 억울하지 않게, 기분 좋게 마음 놓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부탁입니다”라고 울부짖었다.

유가족들 사이에선 “학살의 현장이었다”, “살인자를 처벌하라”, “이상민을 파면하라”는 외침이 중간중간 터져나오기도 했다. “사랑한다 딸아, 보고 싶다 딸아”라고 목놓아 외치는 유가족도 있었다. 한 유가족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기도 했다. “생존자들은 용기를 내어 그날을 증언해달라”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2.10 ⓒ뉴스1


16일 이태원역 앞에서 시민추모제 연다

향후 유가족 협의회가 주관할 첫 공식 일정은 시민추모제다. 희생자가 사망한 지 49일이 되는 오는 16일 오후 6시 이태원역 앞에서 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는 주제로 시민추모제를 연다.

이정민 부대표는 “아직도 이태원 골목 그곳에서 우리 희생자들은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영혼이 거기 계속 맴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길에서 서서 압사당한 것도 억울한데 추모도 받지 못한다면 이를 용납하겠는가”라며 “저희가 조금이라도 그 아이들의 억울함을 덜어주기 위해서 추모제를 진행하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추모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유가족들은 협의회 창립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일상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길을 가다가 예기치 못한 위험을 맞닥뜨리고 허망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며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는 유가족들의 소통공간 마련과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기억해 줄 추모공간의 설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촉구하며, 유가족 협의회 구성에 불순한 의도로 그 활동을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에게 덧씌워지는 말도 안 되는 오명에 분노하며, 이후 행해지는 모든 2차 가해에 대해 조금의 선처 없이 적극적으로 대처해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에 책임이 따를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참사의 희생을 기억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어떠한 책 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 깊이 새기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이 땅에 발 생하지 않도록 우리 유가족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며 행동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최지현 기자 ” 응원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