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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일 금요일

노동자를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대통령

 

[김지학의 미리미리]

모두의 삶과 연결된 화물운송 노동자의 삶

화물운송 노동자의 과로, 과적, 과속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망사고는 매년 700건에 달한다. 매일 2건씩 일어나는 셈이다. 커다란 화물차들이 졸음운전 때문에 중앙선을 넘어 자기 앞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상상만 해보더라도 알 수 있겠지만, 화물운송 노동자의 과로는 그들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다.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낸다면 그들만 죽는 게 아니다.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과로는 도로 위의 흉기가 된다. 또한 현대사회의 경제시스템은 화물 운송의 의존도가 높아, 화물운송이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이 멈추게 된다. 화물운송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는 우리의 일상도 평온할 수 없다.

정부는 ‘고임금’이라지만, 철강화물 운송 노동자의 월급명세표를 재구성한 언론에 따르면 월평균 매출 1400만 원에 유류비가 700~770만 원, 통행료 200만 원, 지입료 보험료 70만 원, 차량 할부금 250~300만 원을 제하면, 60만 원에서 180만 원이 남는다. 더구나 유가나 타이어비 등이 계속 치솟는 상황이다. 한 달 내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해야 겨우 생활비를 벌 수 있는 화물노동자들은 ‘더 이상 화물노동자들의 죽음과 고통을 연료 삼아 화물차를 움직일 수 없다’며 일몰제 폐지와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살기 위하여 파업에 나섰지만, 정부는 이들을 ‘귀족노조. 강성노조’로 프레이밍하며 누가 했는지 수사를 통해 밝혀지지도 않은 ‘파업미참여 노동자 쇠구슬 사건’을 파업 노동자의 행위로 단정하며 폭력을 동반한 불법 파업으로 규정해버렸다. 그리고 정부는 무책임하게도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며 모두를 힘든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 정부는 그들을 지지하는 30%의 국민을 제외한 모든 국민을 적으로 돌릴 셈인가. 대통령을 검사처럼 하며, 노동자는 테러리스트로 취급되고 말았다.

▲ 11월24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열린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총파업 출정식에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이날 0시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 연합뉴스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이 나라

안전운임제란 화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최소운임을 보장해 종사자들의 과로, 과적, 과속을 예방하는 제도이다. 안전운임제는 2020년에 시작됐고 수출입 컨테이너 및 시멘트 품목에만 한정해서 시행되고 있다. 2022년 3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한 것(한시적 시행을 ‘일몰제’라고 함)을 지난 1차 파업 때 2022년 연말까지로 연장했다. 이번 2차 파업은 일몰제를 폐지하고 안전운임제를 지속하고 적용되는 범위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떠한가. 일하는데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요구를 대통령은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며 노동자를 테러리스트 취급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대화’하고 ‘협상’하자고 제안했으나 정부는 이미 이들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며 ‘여기서 물러나지 않고 불법파업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한다. 대화나 협상이 아니라 타협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계속해서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테러리스트와 타협 없다’는 말과 겹쳐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 뿐만 아니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불법 파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노총을 향해 “민폐노총”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은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파업을 사회적 재난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기가 막힌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이태원 참사를 이렇게 가볍게 입에 올린다.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지 않는 ‘민폐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이 정치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는 게 한국 사회의 재난이다.

현 정권의 사고방식에서 불법이 아닌 파업이 있겠는가 싶지만 용어정리부터 하자면 불법 파업은 ‘현행법상 정당성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한 파업’이다. 정당성 요건에는 △주체 △목적 △절차 △방법 4가지가 있는데 ①쟁의 주체가 노동조합이어야 하고 ②쟁의 목적이 근로조건 결정과 관련된 사항이어야 하고 ③찬반투표, 조정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며 ④쟁의 수단이 폭력, 파괴 등을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의 파업은 합법이며 이번 화물연대 파업도 명백히 합법적인 파업이다. 법이 권력자들을 비호하기 위해 존재할 때 우리는 그 법을 거스르는 불법적인 행동을 해서라도 그 법을 바꿔내야 한다. 노예제 폐지 운동도 여성 참정권 투쟁도 모두 불법이었다. 우리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어 차별, 착취, 폭력을 용인하고 유지하는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불법으로 여겨졌던 보편의 가치를 쟁취한 과정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번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은 그런 헌법과 노동법에서 보장하는 범위 내에 있는 합법적 행동이다.

너무나 기만적인 정치의 언어

한국의 고용구조는 철저하게 자본가에게 최대의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방식을 갖는 까닭에, 일정한 업무지시자와 근무장소가 존재하는 노동자도 ‘사장님’인 경우가 많다. 일터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의 책임을 회피하고, 매달 꼬박 최저임금을 보장한 급여를 챙기지 않아도 되고, 4대보험이나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사장님이 되었다. 화물운송 노동자들도 대부분 사장님이다. 그래서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파업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업을 위한 고용구조를 만든 국가는, 이제는 기업의 대변인까지 자처하는 모양새다. 오죽하면 한 시멘트 업계 임원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국가에 감사드린다’라는 말까지 전할까.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도 외면당한 채 철저한 사각지대로 밀어 넣어진 이 사장님들만 조용히 착취당하고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지켜보며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졌음을 느낀다. 인권이라는 것이 스스로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약자일수록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그 역할을 국가에게 위임한 것이 현대 사회의 구성원리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정부는 기업과 한 몸인 수준이다. 0

정부와 기업이 만든 이 고용구조에서 화물노동자들은 자기 차를 가지고 자기 사업을 하는 사장님이며, 특수고용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다. 매우 취약한 고용의 형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을 취약한 상황으로 밀어넣은 이 국가는 사장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했다. 사장님들이 일을 하지 않겠다는데 누가 누구에게 강제로 일을 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일까. 국가의 필요에 따라 언제는 노동자가 아니라면서, 또 언제는 노동자로 여기는 것인가? 노동기본권 조차 보장받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생존을 위한 노동을 멈추고 있는데 이 정부는 ‘일을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한다. 치가 떨리도록 기만적인 정치의 언어다. ‘21세기 긴급조치’이자 ‘계엄령’이라고 비난받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 11월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운송을 거부하고 있는 벌크시멘트수송차량(BCT) 운송사업자와 차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발동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 지금 괜찮은가?

끔찍한 현실은 비단 현재 모든 이슈의 중심에 있는 화물운송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 전반이 끔찍한 상황이다.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이유는 학업이다. 20대와 30대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취업할 수 있을까? 내 집 마련할 수 있을까?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엄청난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다. 사람답게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희망이 없다. 사람답게 존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왜 우리는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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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끔찍한 세상을 멈출 수 있을까. 여성들이 고용, 승진, 임금, 안전 등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차별 그리고 성폭력에 반대하며 다같이 아무 일도 안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임금노동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 육아노동을 포함한 모든 돌봄노동까지 모두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30대 청년들이 과로와 셀프착취를 기본으로 하는 취업, 노동, 주거 등에 반대하며 다같이 아무 일도 한하면 어떻게 될까? 전국의 일터에 20-30대가 단 한 명도 출근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년남성들이 이런 상황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누가 이런 끔찍한 세상을 멈출 수 있을까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처럼, 화물노동자들이 세상이 멈추고 있다. 공사현장에서는 이미 시멘트가 없어서 공사를 할 수 없고 곧 주유소에는 기름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하나둘씩 시작해서 사회 전체가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생존을 위해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의 책임이 아니라, 철저한 국가의 책임이다. 대화를 거부하고, 착취당하는 삶을 강요한 국가의 책임이다. 기업의 대변인 노릇만 자처한 국가의 책임이다.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와 자본가가 노력을 해야한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자본가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수출, GDP 지표가 아닌,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생존을 위해 나선 노동자들은 이미 이 정부가 자행할 폭력을 예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슬프다. 기업을 대신해 쌍용차 사태처럼 노동자들을 ‘사냥’할까 두렵고, 신자유주의 통치를 일삼던 예전의 정권이 그랬듯 엄청난 규모의 손해배상과 벌금을 요구할까 두렵다. 국가가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현실이 비통하다. 빠르게 퇴행하며 익숙한 국가이기를 포기한 국가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이는 국가시스템의 실패처럼 느껴진다. 위에서부터의 변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래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느리지만 정권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시민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교육의 힘을 믿는다. 다양성훈련을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점점 더 평등한 곳으로 변화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다양성훈련을 제공하는 활동을 부단히 하고 있다. 자신을 탐구하게 하고 타인과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고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길 바란다. 이를 통해 끔찍한 이 세상을 멈출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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