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대한 새연재를 시작합니다.
이 연재는 상반기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과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 공동으로 진행된 <한국경제 구조진단>(예속과 불평등을 중심으로)보고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독자들에게 보다 알기 쉽게 재구성하여 전달하고자 합니다.
연재방식은 <전환기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 예속의 덫 불평등의 함정>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주요 주제별로 동시병행하여 연재합니다.

 

● 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
● 금융팽창과 금융종속
● 외국계 기업의 국부유출
● 재벌 경제의 대외의존성
● 한국경제의 대안 모색

서론

한국은 고도성장으로 무역 규모가 세계 9위인 경제대국이 되었고, 1인당 GDP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1960년대 가발과 신발을 수출했던 나라가 이제는 초대형 선박, 전기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을 수출하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국하고, 한국 대기업들은 중국, 미국, 동남아, 동유럽 등에 진출하여 현지공장을 짓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잘 뚫린 고속도로, 시간당 300km를 달릴 수 있는 KTX, 화려한 고층건물들은 한국의 경제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양적성장의 이면에는 부문 간 양극화와 계층 간 불평등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대학졸업자와 비졸업자’ 간의 임금격차는 두 배에 가깝다. 2,000만 노동자 중 대기업 소속은 16.9%에 불과하며 중소기업 소속이 83.1%이다. 전체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297만 원이나 중위임금은 220만 원에 불과하고, 산업재해로 한 해 2,000명 이상이 사망한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양산한 300만 명이 넘는 특수고용종사자와 플랫폼노동자들은 노동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데 사회보험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조건에서 건당 수수료를 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자영업자는 작년에만 7만 5천 명이 감소하여 553만 명인데, 1인 자영업 비중이 86%로 영세업체가 대부분이다. 공공사회복지는 GDP 대비 11.1%로 OECD 평균 20.1%의 절반에 불과한 가운데, 연평균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600시간이나 많고, 노인빈곤율(43.4%)은 OECD 1위이며, 출산율(0.84명)은 세계 꼴찌다. 개발 정보와 금융 대출에 접근할 수 있는 계층이 부동산을 독식하여, 다수 국민들은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며 고통받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겠다며 역대 정권들이 선거 때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공약하지만, 집권 초반에 생색만 내고 의미 있는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약육강식의 시장 논리를 넘어 약자를 보호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글로벌 수탈체계인 신자유주의는 국가 주권을 박탈하고 시장(투자자와 기업)에 무한한 권능을 부여하므로, 국가 간 그리고 국내 계층 간에 불평등이 더욱 심화된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자주화를 추진해야 한다. 경제주권이 있어야 초국적 자본의 약탈 경제와 재벌경제의 불공정거래와 지배소유구조 등을 혁신하여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다.

한국경제를 좌우하는 외국인투자자와 재벌은 규제완화, 세금감면, 환율정책, 노동시장 유연화, 정부지원금 등 사회적 특혜로 성장하였지만,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성장의 과실만 독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0년 결산 배당으로 외국인 주주들에게 7조 7천억 원을 지급하였고, 세계적으로 31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국내 고용은 1/3에 불과하다. 텍사스 반도체 공장에 이어, 19조 원을 투자하여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지을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주인은 58%의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들인가?, 총수일가와 계열사 지분으로 경영권을 확보한 이재용 회장인가?, 아니면 10.7% 지분을 투자한 국민연금의 납세자인 국민인가?, 고배당과 시세차익 그리고 기술사용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삼성전자는 누구에게 가장 많은 돈을 벌어주고 있을까?

IMF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분업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한국경제는, 미국계의 금융자본과 ICT 기업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먼저 구글코리아, 애플코리아,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 페이스북코리아,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한국씨티은행,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신한금융지주회사, JB금융지주, 코스트코코리아, 홈플러스, 이베이코리아, 에프알엘코리아(유니클로), 쿠팡,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한국맥도날드,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등 15,000여 개의 외국인투자기업들은 한국경제에서 매출액의 12%, 수출액의 19.4%, 고용인원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포트폴리오 위주의 외국인투자자들은 증권시장에서 주식 788조 원, 채권 151조 원을 보유하여.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36%를 차지하고 있고 다수의 시중은행까지 장악하고 있다. 또한 외국자본 등을 유치하여 자산운용 규모가 420조 원이 넘는 사모펀드들은, 기업사냥꾼이 되어 M&A 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러한 경제종속 구조에서 ‘시중은행과 대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들이 가져가는 배당금’, ‘외국인의 주식시장 평가이익과 사모펀드 등의 투기적 인수합병으로 인한 국부유출’, ‘8천억 원을 지원받고도 이전가격 조작으로 만년적자인 한국지엠’,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미국계 ICT 기업들의 조세회피’, ‘미국에 매년 지적재산권으로 약 5조 원을 순지출하는 기술무역수지’ 등으로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

또한 ‘외환보유고 유지비용으로 수십 조 원의 손실’, ‘미국 무기수입과 미군주둔 지원금, 군사기지 공짜 사용’, ‘공공부문의 시장화·민영화로 인한 보편적 서비스의 약화’ 등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축소되고 국민들에게 주어질 복지 혜택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 신자유주의 중심국가인 미국도 자국민을 위해서는 공무원 수를 2,800만 명(취업인구의 16.4%)이나 고용하고 있으나, 한국의 공무원 수는 260만 명(취업자의 9.5%)에 불과하다. 미국은 코로나 시기 경기부양책으로 현재까지 1인당 총 3,200달러를 지원하고, 실업수당 인상, 중저소득 가구 임대료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경기부양안(1인당 기준)은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IMF 신탁통치로 한국의 경제주권이 시장(외국자본과 재벌)으로 넘어간 이후, 공공성이 훼손되고 부문 및 계층 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근린궁핍화정책인 무역전쟁과 초국적자본의 약탈경제가 노골화되는 가운데, 한국경제는 탈세계화·고령화·디지털경제에서 출로가 없는 상황이다. 
첫째,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침체와 보호무역으로, 대외의존형 한국경제는 수출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경제성장률도 2%대로 떨어졌다. 
둘째, 세계분업구조에서 제조업 중위기술과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한국의 산업은 디지털경제로 재편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구글, 애플 등 ICT기업의 플랫폼 독점이 강화되고, 중국의 자립화로 중간재 수출이 어려워지며, 미국과 일본에 대한 소재·부품·장비와 소프트웨어의 의존성은 지속되고 있다. 
셋째,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전환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여 민간소비의 활력이 저하되고 있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소비 부족과 재정 악화(복지 증가)를 가져오며 청년 인구의 감소는 노동력과 세수를 줄여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에 빠지기 쉽다. 
넷째, 코로나 이후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사슬 체계가 약화되고 탈세계화가 추진되면서 농업, 에너지, 기간산업, 소재·부품·장비 등의 자립화가 중요해져 대외의존형 경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다섯째, 한국은 달러체제 세계경제에 편입되어 환율 불안 등 주기적인 경제위기에 노출되어 있으나, 대외의존형 경제로는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위와 같은 현상은 종속적 한국경제가 낳은 필연적 산물이다. 
외국자본과 재벌의 성장은, 국민경제와 유리된 ‘나홀로 성장’에 불과했다. 이들이 성장할수록 오히려 경제종속이 심화 되고 약탈적 금융과 글로벌 공급사슬로 부가가치가 빠져나가므로 양극화가 확대된다. 경제주권이 없는 나라는, 수출과 GDP가 아무리 올라가도, 자기나라 민중의 처지가 개선되지 않으며 특권 계층과 외국자본의 이익에 복무할 뿐이다. 
탈세계화 시대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식량과 에너지를 자립하고 금융·통신 등 기간산업을 국영화하며 의료, 돌봄, 주거, 교육 등 공공부문을 확장시켜 보편적 서비스와 질 좋은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재벌과 외국자본의 이익을 우선하며 기술, 자본, 시장이 종속된 경제는 호황 시기에는 성장할 수 있지만, 세계경제 변동에 의해서 언제든지 침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