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1년 7월 20일 화요일

범법자 풀어주는 게 국격이고 공정? 서럽고 서럽다

 [연속 기고-이재용 사면을 반대한다] 박근혜의 어제, 이재용의 오늘... 그들의 차이를 생각한다

21.07.21 07:10l최종 업데이트 21.07.21 07:10l
정재계를 중심으로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면'론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재용 사면에 반대하는 각계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이재용 사면과 가석방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짚어봅니다.[편집자말]
큰사진보기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병원 격리 됐던 박근혜씨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병원 격리 됐던 박근혜씨가 지난 2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박근혜는 '과거'다. 살아있는 권력도 아니며, 그가 오랫동안 누렸던 시대의 상징도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라져간 시대의 상징이 됐다. 폭풍과 같았던 박근혜와 최순실의 스캔들조차 오래된 과거다. 누군가에게는 '저 먼 어느 독재 국가에서 그랬단 말이지' 정도의, 남의 이야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고, 하룻밤 자고 나면 뉴스의 헤드라인이 바뀌는 시대다. 누군가 박근혜를 이야기하면, 태극기 집회가 떠오르거나 그 반대편이 떠오르는 낡은 과거다. 그런 의미에서 불행하게도 '촛불'조차 과거다.

파란만장했던 사건의 많은 주인공 중에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으나 과거가 되지 않은 이름도 있다. 이재용은 '현재'다. 삼성전자 부회장의 오늘은 박근혜의 과거와 떨어져 있다. 그들이 주고받은 청탁과 대가의 공생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 일들로 인해 박근혜와 최순실이 몇 년 형을 받았는지, 그 일들로 인해 권력이 바뀌었다는 것도 이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재용만 남았다. 그의 구속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만 중요해 보인다. 여론이 그것을 조성하고 있고 사면권을 가진, 가석방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여론에 주목하고 있다. 만들어지는 여론이 수상하기도 하지만, 여론이라는 것은 '없는 정서'를 바탕으로 하지는 않으니 정서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공하면 끝? '공정' 담론 이준석, 이재용 사면에는...   

대개 성공한 자의 과거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정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성공의 크기가 감히 측정 불가능한 누군가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마는 정서가 있는 것일까.

아마 성공이라는 것의 척도가 부와 권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 그들의 부와 권력을 부러워하며, 법과 규범은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잣대임을 인정하는 것이겠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고 노회찬 의원의 어록은 그래서 나왔겠지. 최근 어디가나 화두였던 '공정' 담론의 선두주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자칭 타칭 20대와 30대의 지지를 받았다는 이준석 제1야당 대표는 다음 대선은 "간단하게 트렌드를 읽는 사람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트렌드에는 분명 '공정'이 있어 보인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전당대회를 겪으면서 굉장히 놀랐던 것이 20·30세대의 지지가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라며 "20·30세대가 굉장히 정책적인 면에서 반응했다. 예로 청년할당제 폐지나 공정경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한 이준석 대표는 지난 1일 <뉴스핌> 인터뷰를 통해 이 부회장 사면은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만약 대통령께서 지금 사면을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상당한 곤란을 겪을 수 있다고 본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언급했다.

그때의 공정과 지금의 공정, 다른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재원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재원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역설적이게도 박근혜와 이재용을 구속한 촛불의 기본 정서 역시 '공정'이었다. 최순실 스캔들의 배경에는 정유라가 있었다. 정유라는 누구인가. 최순실의 딸이었고, 최순실은 대통령 뒤에서 위임받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 딸을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는 자였다. 삼성의 돈이 정유라의 말값으로 흘러 들어가고, 정유라의 성공을 위해 쓰였다. 

이전 정부에서도 부정부패는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어느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공식 직책을 가져 본 적도 없는 듣도 보도 못한 자에게 국가가 좌지우지된 것에 대한 분노였을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두각시처럼 놀아난 대통령과 국가기관뿐 아니라, 재벌들까지 썩은 부패의 몸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의 자괴감이었을까. 

많은 원인과 이유 중 두드러진 특징은 '특권과 반칙'에 대한 분노다. 특히 정유라 사건이 핵심적이다. 부정입학 등을 통해 드러난 사건 실체는 '돈도 실력'이고 '부모 잘 만난 것이 실력'이라는 정유라 자신의 말을 입증했다. 이것은 안간힘 쓰며 살아내는 국민 전체의 정서를 건드렸다. 절대다수 사람들이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이 됐다.

그래서 2016년 촛불항쟁을 '특권과 반칙'에 대한 '정의와 평등'의 싸움이라 정의했었다. JTBC가 보도한 태블릿PC가 기폭제가 되었지만, 좀 더 근본적인 곳에 원인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의 핵심도 그곳에 있었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는데, '공정'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다. 결국은 이재용 사면이라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다.

미래 위해 결단하라?
 
이제는 적폐청산의 시간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뤄내고, 코로나19 팬데믹과 민생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지난 4월 23일 <동아일보> 사설 '박근혜 이명박 이재용 사면… 문, 미래 위해 결단하라'는 제목의 글 중 일부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첨단 산업분야에서 불꽃 튀는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위기와 맞물려 각국은 각자도생의 힘겨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삼성전자 총수에 대한 사면을 국격(國格) 제고 차원을 넘어 사분오열된 정치와 사회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중요한 모멘텀으로 적극 검토해야 하는 이유"라고 썼다. 범법자를 풀어주자는 데에, 심지어 국격까지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법원은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고, 불구속 상태이던 이 부회장은 이날 영장이 발부돼 법정에서 구속됐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정유라나 이재용의 직업은 최순실의 딸이거나 이건희의 아들일 뿐이다. 국격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 이건희의 아들이기에, 삼성의 수장이기에,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이기에 풀어주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최순실은 왜 못 풀어주고 박근혜는 왜 못 풀어주나. 이재용의 벌은 죄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웠다. 그조차도 형기를 채우지 못해 안달이니, '박근혜들'의 말대로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지는 그것일 뿐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현재는 촛불의 현재가 아니다. 아직도 시퍼런 권력을 휘두르는 이재용이 촛불의 현재 모습이다. 이미 '촛불조차 과거가 된 것'이라 말하면서도 마음은 서걱거린다. 그 바다에서 얻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아직 나는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사람이 만들었던 감동의 순간들을 기록하기도 했고, 글보다 더 오래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면은 정치적인 행위다. 통치권자의 권한이다. 가석방도 그 범주에 있다. 정치는 국민들 정서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이재용이 바깥으로 나오길 바라는 정서는 작지 않다. 정작 그의 석방 자체보다 그것에 마음이 더 아프다. 

정유라의 특권은 용납할 수 없었는데, 이재용의 특권은 용인되는가. 할아버지가 부유했고 아버지가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대를 이은 아들은 용서받아도 되는가. 그래서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 후손들은 대대손손 죄가 있어도 처벌받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에서 살아도 되는가.

이재용의 오늘이 천공(天空)에 사는 이들을 위한 천국의 전주곡이 될 것을 우려한다. 아니, 전주곡이 아니라 이미 너무 오래 부른 세레나데일 수 있겠다. 그런 '헬조선'을 벗어나자고 촛불을 들었던 것인데….

고작 여기까지인가. 이것이 정말 '공정'이란 말인가. 서럽고 서럽다.

['이재용 사면을 반대한다' 연속기고]
① 대통령님, 우리가 탄핵한 건 '돈도 실력인 사회'였습니다
② 이재용 사면 대신 가석방? 그는 정말 뉘우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박진 활동가는 촛불집회 당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공동상황실장과 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