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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6일 토요일

추미애와 부동산 개혁

 꾸준히 주창해온 지대개혁

민주당 부동산 정책 ‘우클릭’과 추미애 “촛불개혁 완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사람이 높은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21.06.23ⓒ정의철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3일, 대선에 출마했다. 그의 출마 선언문은 크게 네 단어로 요약된다. 평화, 불평등, 촛불 그리고 부동산이다.

추 전 장관은 양극화와 불평등·불공정이 구조화됐다고 봤다. 그 원인을 부동산이라고 진단했다. 토지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과 이를 독점하는 소수의 특권은 “과감하게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대개혁은 특권의 해체이며 극심한 양극화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추 전 장관은 전부터 같은 주장을 해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7년 9월, 그의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이 대표적이다. 39분에 달하는 긴 연설 시간 동안, 당시 추 전 장관은 해방 직후 이뤄진 1950년 농지개혁부터 시작해 19세기 사상가 헨리 조지와 진보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을 언급하며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핵심에는 ‘지대 추구’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대로 얻는 불로소득이 연간 300조원에 달하고, 인구의 1%가 개인 토지의 55.2%를, 인구의 10%가 97.6%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고삐 풀린 지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한국의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해법으로 세금 강화를 제시했다.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과세로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설 이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대 개혁을 강조했다.

“지대추구의 덫이 4차 산업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17년 9월 19일, 지역경제 활성화 토론회)

“헨리 조지가 지금 살아 있다면 토지 사용권을 인민에게 주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수도 있다”
(10월 9일, 기자간담회)

“지대추구의 모순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바꾸자는 국민 여론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의 끊임없는 치열한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
(11월 10일,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토론회 축사)

“토지에 있어선 모두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12월 14일, 러시아 방문중 특강)

“땅보다 땀이 보상받는 사회가 우리가 갈 방향이다”
(2018년 1월 16일, 신년기자회견)

조세개혁특위, 토지 공개념 개헌
무위로 끝난 지대개혁

추미애 전 장관의 주장은 보유세 강화로 이어지는 듯 보였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듬해인 2018년, 대통령 직속으로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부동산 보유세를 비롯한 조세정책 전반을 논의했다.

위원장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이었던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가 맡았다. 그는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두 배로 인상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참여연대 세법 개정방안’ 보고서의 산파 중 한명이었다. 보유세 강화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촛불혁명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청산, 부동산 개혁 요구도 컸다. 그해 4월 출범한 특위는 이런 열망을 담아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특위 권고안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보유세 중 재산세 강화안은 솜방망이었고, 종부세 역시 당시 여당이 추진하던 세율 강화 방안보다 낮았다. 금융권 분석에 따르면 당시 9억원이던 은마아파트 종부세 부담은 불과 2천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참여연대는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재정개혁특위’라고 촌평했다.

특위와 함께 논의된 것은 개헌이었다. 헌법에 담긴 토지 공개념을 강화해 보유세 인상의 근거를 탄탄히 하자는 취지였다. 토지 공개념이란 개인의 토지 소유권은 인정하지만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절한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정신이다.

헌법 122조는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만들어진 조항으로, 노태우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했다.

가구당 200평 이상 택지 소유자에게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택지소유상한법, 유휴토지 등의 소유자에 대해 3년 단위로 전국 평균 지가상승률의 150%를 넘은 수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초과이득세법, 택지개발 등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이익의 25%를 부담금으로 물리는 개발이익환수법이 바로 토지공개념 3법이었다.

이들 법안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차례차례 부정됐다. 헌법에 불합치(1994년, 토지초과이득세법)하거나 위헌(1999년, 택지소유상한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불합치나 위헌은 복잡한 법리를 따져 나온 결정이지만, 헌법 122조에 담긴 토지공개념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법조항이 애매모호해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전 장관 등 청와대와 여당은 헌법 조항 구체화에 나섰다. 보유세 강화 근거를 다지는 작업이었다. 기존 문구를 수정했다.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라는 문구를 넣어 토지 공개념을 구체화했다. 여기에 ‘법률로써 특별한 제한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해 기존 개념과 다른 보유세 부과 근거를 만들었다. 진일보한 개헌안이었지만, 야당의 표결 불참으로 결국 자동 폐기됐다.

결국, 추미애 전 장관이 주장했던 지대개혁은 실패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천장을 응시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다시 “촛불개혁 완수” 깃발 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부동산 정책 흐름을 고려하면 추 전 장관 인식은 돋보인다. 여당은 재보궐 선거 패배를 세금 부담에서 찾고, 종부세와 양도세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지난 5월 추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감세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내 집 가격은 오르기를 바라면서 세금은 적게 내겠다는 이중적인 심리에 영합하는 대증요법일 뿐”이라며 “인기 영합을 버리고 올바른 부동산 정책을 꾸준히 시행해야 주택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LH사태로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지시했을 때도 “헌법 속에 잠들어 있는 토지공개념에 다시 생명의 숨을 불어넣을 토지공개념 3법을 부활시키는 것이 부동산 적폐 청산의 궁극적 지향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추후 개헌을 통해서라도 ‘토지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법무부 장관 시절에는 ‘금부분리’를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부동산과 금융을 분리하자는 뜻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3명이 경제에서 땅의 역할과 가치를 분석한 책 ‘땅과 집값의 경제학’을 예로 들었다. 책의 핵심 중 하나는 토지의 금융화다. 주택담보대출이 이례적으로 확산하며 부와 소득, 생활 수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추 전 장관은 이 책을 추천하며 “21세기형 금부분리를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민주당 내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은 물론, 때로는 진보정당의 목소리보다 더 급진적이다. 대권에 도전하려는 현실 정치인이 전면에 내세우기엔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일각에선 추미애 장관의 독특한 스타일에서 비롯된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지금의 투기 광풍은 과연 현실적인가. 비상식적인 지대추구를 지금까지의 규제로 잠재울 수 있을까.

추 전 장관 인식에도 한계는 있다. 당 대표 시절 보유세 강화를 추진하며 “1주택자는 안심해도 좋다”고 누차 강조했다. 지대개혁을 추진하며 1주택은 제외하자는 모순은 민주당의 한계와 닮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타 정치인, 관료와 달라 보인다. 보유세 강화를 주택가격 조절 수단이 아닌 양극화·불평등 해소의 핵심으로 규정하는 그의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추미애 전 장관의 출마선언문에는 “촛불개혁 완수”가 다시 등장한다. 그는 “구조화된 불평등과 불공정을 깨지 못한다면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다시 촛불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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