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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4일 금요일

수능 한국사 문제가 쉽다면, 그건 박근혜 정부 탓이다

 한국사 필수과목으로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반발 일자 ‘쉽게 출제’ 방침 세워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12-04 19:07:42
수정 2020-12-04 19: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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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한국사 영역의 20번 문제 난이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중학생도 안 틀릴” 정도로 너무 쉬운 문제라고 황당해하면서 출제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정책 홍보’라는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20번 문제와 같이 한국사 문제가 쉽고 단순하게 출제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는 쉽게 출제한다’라는 교육 방침을 정한 뒤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입시 부담감이 커진다’는 등의 반발 속에서도, 역사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기어코 밀어붙였던 것이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정체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역사를 이용하려는 모습을 정권 내내 보인 바 있다.

다만 박근혜 정부는 비판 여론에 떠밀리자 한국사를 수능 필수로 지정하는 대신, 시험을 쉽게 내서 부담감을 덜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는 2017학년도 수능에 처음 적용됐다.

당시 교육부는 한국사 예시문항을 공개하면서 “한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학교 수업을 성실히 들으면 해결할 수 있는 평이한 수준으로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육부는 학교수업을 통해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절대평가를 도입했다. 이번에 새삼 논란이 된 한국사 시험 역시 절대평가였다.

10가지 문항 유형도 정했는데,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 알기 ▲역사에서 중요한 용어나 개념 이해하기 ▲역사적 사건의 흐름 파악하기 ▲역사적 상황 인식하기 ▲역사적 시대 상황 비교하기 ▲역사 탐구에 적합한 방법을 찾아 탐구 활동 수행하기 ▲역사 자료에 담긴 핵심 내용 분석하기 ▲자료 분석을 통해 역사적 사실 추론하기 ▲역사 자료를 토대로 개연성 있는 상황 상상하기 ▲역사 속에 나타난 주장이나 행위의 적절성 판단하기 등이다.

지난 2일 치러진 수능의 한국사 시험 문제를 보면 이 유형에서 벗어난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난이도 역시 논란이 된 20번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에 대해 심용환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4일 페이스북 글에서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수능 필수를 진행하되, 시험을 쉽게 내서 부담감을 덜겠다’는 기묘한 선택을 한다. 정말 정치적인 선택”이라며 “애초에 ‘암기를 강화해서라도 역사 지식을 높이겠다’는 발상이었는데, ‘쉽게 내겠다’는 말은 이에 역행하는 전략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덕분에 한국사 교육은 극단적으로 기괴해졌다”며 “수능 필수이긴 하지만 아무도 공부하지 않는 과목, 중학교 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정도 보면 만사 오케이인 상황이 조성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 소장은 “20번 문제의 보기를 보시라. 당백전, 도병마사, 노비안검법, 대마도 정벌이 정확히 언제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통일정책과 무관한 것은 누구나 안다”며 “20문제가 모두 이런 식으로 꾸려졌으니 얼마나 허상의 역사교육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현실을 만들었던 것은 박근혜 정권이니 조선일보나 국민의힘이 할 말은 아닌 듯하고, 이런 현실을 고치지 못한 것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니 그들 또한 누굴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라며 “결론은 허상의 역사교육, 너덜너덜대는 엉터리 암기 교육만이 교육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라고 성토했다.

국민의힘이 4일 오후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수능 한국사 20번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4일 오후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수능 한국사 20번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국민의힘 페이스북

이런 사실도 모르는지, 국민의힘은 이번 한국사 시험 문제를 두고 문재인 정부를 근거 없이 비난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공식 페이스북에 논란의 한국사 20번 문제를 올리면서 “시험인가? 세뇌인가?”라고 비꼬았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수능까지 개입했다는 보수진영 일각의 주장에 동조한 것이다.

앞서 조선일보는 20번 문제의 지문으로 제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을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로 왜곡하며 수능 문제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홍보했다는 식의 주장을 담았다가,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 빗발치자 뒤늦게 내용을 수정한 바 있다.

한국사 20번은 어떤 연설 내용을 담은 지문을 읽고 해당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을 택하는 문제였다. 제시된 연설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92년 1월 새해 기자회견 담화문이다.

지문으로 제시된 담화문에는 “지난해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 대결과 단절의 시대를 끝내고”라는 부분이 있어, 수험생들은 어렵지 않게 노태우 정부 당시 연설로 추론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객관식 보기 중, 현대사와 관련된 내용이 노태우 정부 때 채택한 ‘남북 기본 합의서’ 밖에 없어 비교적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지난 3일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20번 문제 관련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라며 “이 문제는 ‘다음 연설이 행해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을 물으며 문재인 대통령 연설의 일부를 소개했다”고 왜곡해 보도했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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