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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일 화요일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가 추락한 뒤 한동안 방치된 이유

 화물노동자 고 심장선 씨 아들 “왜 아버지를 방치했나”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12-01 22:30:35
수정 2020-12-02 08: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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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노동자 심장선 씨 응급구조 시간대별 정리
화물노동자 심장선 씨 응급구조 시간대별 정리ⓒ공공운수노조 제공  

지난달 28일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석탄재를 화물차에 싣다가 추락해 숨진 화물노동자 심장선(52) 씨가 추락한 이후 한동안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끄러워 추락할 위험이 있는 차량 위 구조물에서 혼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뒤 방치된 것이다. 현장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도 없었고, 안전관리자도 없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유족은 사고 현장 CCTV를 통해 확인한 응급구조 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1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화물연대본부와 유족에 따르면, 사고 발생 당일 화물노동자 심장선(52) 씨가 작업 중 추락한 뒤 발견되기까지 약 5분의 시간이 걸렸다. 신고가 접수되고 발전소 내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10여분이 더 소요됐다. 심폐소생술과 출혈부위 지혈 등의 응급처치도 그만큼 늦어졌다.

심장선 씨의 아들은 “사고가 일어난 뒤 골든타임에 관리감독관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관내 119에서는 현장 출동까지 15분이 걸렸다”라며, 왜 아버지를 이렇게 방치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 화물노동자 고 심장선씨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아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심씨는 지난 28일 3.5m 높이의 트럭 상부에서 석탄회를 싣는 작업을 한 뒤 내려오다 떨어져 숨졌다. 2020.12.01
1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 화물노동자 고 심장선씨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아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심씨는 지난 28일 3.5m 높이의 트럭 상부에서 석탄회를 싣는 작업을 한 뒤 내려오다 떨어져 숨졌다. 2020.12.01ⓒ김철수 기자
석탄재가 나오는 모습
석탄재가 나오는 모습ⓒ공공운수노조 제공

심 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언제든 추락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 관계자, 유족 등과 함께 현장을 둘러본 노조 관계자는 석탄재가 나오는 관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먼지 때문에 차량 위 구조물은 굉장히 미끄럽다. 노동자가 중심을 잃게 되면 낙상사고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구조였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에는 “(석잔재) 출하 버튼을 누른 후 35t에 상부에 올라가 넘치는지 지켜봐 달라”는 공지가 적혀 있었다. 트럭 탱크에 석탄재가 약 35t가량 채워지면, 석탄재가 넘치기 전에 올라가서 상차를 정지시키라는 안내다.

공지문에 2인 1조 등의 규정은 적혀 있지 않았다. ‘안전벨트(안전고리)’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라는 안내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구조물 위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작업을 하다 보면 오히려 ‘안전벨트와 구조물을 연결하는 줄’에 걸려서 넘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2인 1조 등의 규정 없이, 안전장구 착용만 안내하며 위험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흥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남동발전은 “추후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연료환경설비 적정운영인력 산정 용역(2019.11. KMAC) 결과, 2인 1조 구성이 필요한 작업은 컨베이어벨트 운전원과 밀폐공간(옥내저탄장)으로 한정됐다. (심 씨가 일하던) 현장은 작업 여건 등을 감안했을 때 2인 1조 작업장이 아니었다”라고 주장했다. 용역연구에서 2인 1조 작업장이라고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2인 1조로 운영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해당 작업장은 2인 1조로 일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한국남동발전 측 주장에, 화물연대는 기자회견에서 “그렇다면 홀로 일하다 방치되어도 된다는 말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어, 화물연대는 올해 9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스크루 상차 작업을 수행하던 화물노동자의 사망사고 등을 언급하며 “(용역 연구는) 태안화력 故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연료환경설비운전의 상주 하청업체에 대한 인력충원 문제만 다루었고, 석탄재 반출 및 중량물 운반 등 화물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 화물노동자 고 심장선씨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아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심씨는 지난 28일 3.5m 높이의 트럭 상부에서 석탄회를 싣는 작업을 한 뒤 내려오다 떨어져 숨졌다. 2020.12.01
1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 화물노동자 고 심장선씨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아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심씨는 지난 28일 3.5m 높이의 트럭 상부에서 석탄회를 싣는 작업을 한 뒤 내려오다 떨어져 숨졌다. 2020.12.01ⓒ김철수 기자

또 화물연대는 석탄재 상차를 위한 작업이 심 씨의 계약상 본래 업무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전에는 발전소에 상하차 작업을 담당하던 노동자가 있었는데, 발전소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해당 작업을 화물노동자에게 전가하다 보니, 계약상 업무도 아닌 상하차 작업을 화물노동자들이 떠맡게 됐다는 것이다.

화물연대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지침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해 승인받은 건을 예로 들었다.

화물노동자는 사실상 회사와 종속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온 대표적인 특수고용직이다. 이런 이유로 화물노동자는 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까지 떠맡아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떠맡은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면 산업재해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일을 방지하고자 지난해 6월 28일 ‘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수행 중 발생한 화물자동차 운전자 사고 처리 요령’을 발표했다. 화물노동자가 계약과 다른 업무를 수행하다가 산재를 겪더라도 재해 발생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로 간주해 산재보상을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화물연대는 이 지침을 근거로 올해 5월 27일 근로복지공단에 화물노동자들의 산재사고 사례를 집단 신청했고, 일부 사건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2019년 7월 석회석 가루 적재 작업을 하던 화물노동자가 탱크 폭발로 한쪽 눈을 잃은 사고였다.

화물연대는 이 같은 사례를 소개하며 “결과적으로 산재는 승인됐고, 이는 화물을 적재하는 작업이 화물노동자의 업무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화물의 상하차 업무를 위해 수반되는 작업은 화물노동자가 수행해야 할 업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화물연대와 유족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남동발전 측에 ▲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원청의 사과, 유가족 보상 ▲ 화물노동자 상하차 작업 전가 금지 ▲ 상하차 작업 설비 개선 등을 촉구했다. 또 정부와 국회에 ▲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적용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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