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2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온 겨레가 통일열기로 들끓었던 시기에 세상에 태어난 [통일뉴스]가 창간 20주년을 맞은데 대해서 진심으로 축하한다. 뜻깊은 이날에 즈음해서 글을 쓸만한 남, 북, 해외 인사들도 많겠는데 나에게 ‘해외에서 본 통일뉴스’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니 참으로 영광이다.

그런데 이날을 기념해서 내가 글를 쓴다면 ‘통일뉴스와 더불어 20년’이라는 제목으로 쓰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이 느껴진다. 그만큼 나 자신과 통일뉴스와의 관계가 깊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 주오(中央)대학에서 열린 ‘10.4선언 발표 1주년 기념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는 강민화 당시 평통협 홍보국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일본 도쿄 주오(中央)대학에서 열린 ‘10.4선언 발표 1주년 기념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는 강민화 당시 평통협 홍보국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 계기는 2003년 7월에 진행된 당시 통일뉴스 상임고문 김남식 선생(고인)의 일본에서의 강연 출연이었다. 강연은 가는 곳마다 호평이었다. 선생은 6.15공동선언의 당위성을 비롯해서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해서 소박하고 알기쉽게 말씀하시다가 도중에 개성관광이 화제에 올랐을 때 “나는 황진이를 사모합니다”라고 청중들을 웃기기도 하셨다.

그런데 참으로 아쉽게도 이때 기자가 동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툴게나마 내가 기사를 쓰고 그것이 통일뉴스에 실리게 되었다. 아마도 재일동포가 남녘의 언론과 이렇게 공동작업을 한 것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드문 일이 아니었을까.

이 공동작업을 계기로 훗날에 통일뉴스 기자들과의 만남이 실현되었으며, 그것이 일본 각지에서의 동포들과의 만남과 조선학교에 대한 방문취재, 그리고 내가 속한 조국평화통일협회(평통협=재일조선인평화통일협회라고도 한다)가 주최한 토론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들에 대한 취재 등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전부터 통일뉴스는 재일동포들 속에서 널리 알려지고 애독되고 있었다. 그러나 동포사회에 대한 취재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재일동포 문제를 다루는 기사의 내용도 깊어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통일뉴스 기자들이 일본에 올 때마다 그들을 안내하고 나름대로 편의를 제공한다고 했지만 마음뿐이지 그들이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통일뉴스가 재일동포 사회에 접근하는데 내가 다소나마 기여할 수 있었다면 참으로 다행스럽다.

키워드는 ‘민족’

이렇게 깊어간 나와 통일뉴스의 관계인데 그 키워드는 바로 ‘민족’이었다.

고 김남식 통일뉴스 상임고문이 6.15 3주년을 맞아 일본 도쿄에서 통일강연회를 가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고 김남식 통일뉴스 상임고문이 6.15 3주년을 맞아 일본 도쿄에서 통일강연회를 가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06년 일본 도쿄에서 고 김남식 선생의 유지에 따라 『21세기 우리민족 이야기』의 일본어판이 출간돼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06년 일본 도쿄에서 고 김남식 선생의 유지에 따라 『21세기 우리민족 이야기』의 일본어판이 출간돼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 번은 김 선생으로부터 <통일뉴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남녘에서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자 인터넷언론을 해보고 싶다고 찾아온 젊은이들에게 선생은 어용언론이 되지 않게 “당당하게 고생하자, 그러되 옳은 일을 하자”고 해서 통일뉴스가 출발을 하게 되었다, 활동방향은 특정한 단체나 이념에 기울어지지 않게 나가자고 했는데 그러자면 민족·민족자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이 남녘에는 “민족이 밥 먹여 주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통일은 결국 민족문제가 아닌가, 통일을 지향하는 데서 단체나 계급의 이익에 집착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라고 해왔다고 말씀하신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나와 통일뉴스 기자들과의 관계 역시 사상과 이념, 거주지역의 차이를 초월해서 조국통일이라는 지향을 공유하면서 동포애적으로 깊어갔었다.

그러한 민족적 연계의 결과물의 하나가 바로 일본에서 출판된 김 선생의 저서 『21세기 우리민족 이야기』의 일본어판이었다. 이 책은 원래 통일뉴스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그후 선생은 자기 저서를 일본에서 번역출판하기를 희망하셨다. 그런데 그가 2005년 1월에 일본에서 천만뜻밖에 세상을 떠나고 이 말은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다.

책의 일문판은 이 유언에 따리 재일동포 유지들과 남녘의 여러 인사들을 편찬위원으로 해서 저자의 1주기에 출판되었다. 때문에 이 책은 말 그대로 ‘민족적 집체작’인 셈이다.

아낌없이 내놓은 ‘보물’

나와 통일뉴스의 연계를 실물로 보여주는 것은 그것 뿐 만이 아니다.

『인간 문익환』 집필로 인연을 맺은 고 박용길 여사와 2002년 10월 서울에서 만난 필자.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인간 문익환』 집필로 인연을 맺은 고 박용길 여사와 2002년 10월 서울에서 만난 필자.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나에게는 통일운동을 하는 과정에 마련된 귀중한 ‘보물’이 있다. 그것은 일본에서 출판된 나의 첫 저서 『인간 문익환』(일본어)의 인연으로 서로 알게 된 늦봄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여사(장로)와 내가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여사가 나에게 보내준 문 목사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의 한 구절을 자필로 옮겨 쓴 액자이다.

나는 이 ‘보물’을 세상에 공개하지도 않고 여러 해 동안 소중히 보관해왔는데 2019년에 그것을 통일뉴스에 아낌없이 제공했다.

나는 저서 『인간 문익환』도 그렇고 자신의 ‘보물’을 세상에 공개할 바에야 문 목사와 박 여사에 대한 인물소개로 그칠 것이 아니라,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을 비롯해서 두 분이 단행했던 방북에 관한 이야기, 또한 거기에 반영된 북녘동포들의 통일의지, 민족대단결 사상에 대해서 남녘동포들은 물론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알리고 싶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의 ‘보물’을 통일뉴스에서 널리 소개해준데 대해서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와 통일뉴스의 인연에는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

고 김남식 선생과의 인연은 통일뉴스 임원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2009년 4월 통일뉴스 이계환 대표(오른쪽)와 ‘북한의 민족 문제 및 민족주의 문제’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고 김남식 선생과의 인연은 통일뉴스 임원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2009년 4월 통일뉴스 이계환 대표(오른쪽)와 ‘북한의 민족 문제 및 민족주의 문제’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내가 김남식 선생에게 앞으로도 더 많은 동포들을 만나보시고 좋은 강연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을 때였다. 선생은 “아니 나 같은 늙은이가 언제까지나 쥐고 앉아있어서는 안 된다, 창발성이 없어진다”고 굳이 사양하시는 것이었다. 그러시고는 내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통일뉴스의 임원들이 대학을 나와서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던 젊은이들인데 오히려 그들과 많이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서 서로 알게 된 우리이지만 어느새 20년 세월이 흐르고 나 자신도 이제 칠순을 넘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공동작업을 하고 취재현장에 함께 가기도 했던 통일뉴스의 기자들도 ‘젊은이’라고 불리울 시기가 지나고 어떤 사람은 환갑을 넘었다. 그런데 민족의 간절한 염원이자 지상의 과제인 조국통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너희들이 어른이 될 때면 조국통일이 다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던 내가 그때 부모님보다 더 나이를 먹게 되고 때로는 ‘내가 통일을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개개인의 육체에는 한계가 있지만 민족은 결코 사리지지 않는다.

창간 20년을 맞으면서 통일뉴스가 들었던 ‘민족과 함께 한 20년, 통일로 함께 갈 20년’의 슬로건이 그래서 몹시 인상에 남았다.

일본 도쿄에서 재일동포들이 대지진의 아픔을 딛고 “현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제로 2011년 5월 16일 6.15공동선언 발표 11주년을 기념하는 통일토론회를 개최했다. 맨 오른쪽이 필자.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일본 도쿄에서 재일동포들이 대지진의 아픔을 딛고 “현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제로 2011년 5월 16일 6.15공동선언 발표 11주년을 기념하는 통일토론회를 개최했다. 맨 오른쪽이 필자.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20년 동안에 반통일세력에 의해서 한때 6.15시대의 흐름이 막혀버렸지만 그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가 4.27판문점선언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으로 계승되어 나왔다. 그러나 통일의 노정은 여전히 간고하고 복잡하다.

민족의 최대 염원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통일뉴스가 반드시 창간 시의 초심을 관철할 것과 그 과정에 자기 활동에서 보다 큰 전진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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