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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8일 수요일

먼바다 섬에는 머리 좋은 새가 산다

먼바다 섬에는 머리 좋은 새가 산다

조홍섭 2018. 08. 08
조회수 1086 추천수 0
뉴칼레도니아까마귀 등 본토 친척보다 두뇌 훨씬 커
변화무쌍한 섬 환경 유연한 적응 위해 큰 두뇌 선택받아

Jon Sullivan_Kea_JonSullivan-1.jpg» 뉴질랜드 남섬에 사는 잉꼬의 일종인 케아. 두뇌가 크기로 유명하다. 존 설리반 제공.

이솝우화에 나오는 영리한 까마귀는 목이 긴 물병에 반쯤 담긴 물을 마시기 위해 잔돌을 병 속에 집어넣는다. 그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뉴칼레도니아까마귀는 수위를 높여 물을 마시는 방법을 안다. 하와이까마귀는 나뭇가지를 도구로 써 나무구멍 속 먹이를 꺼내 먹는다. 갈라파고스딱따구리핀치도 딱따구리의 긴 혀가 없지만 대신 선인장 가시를 도구로 이용해 나무 틈에 박힌 먹이를 사냥한다. 배우지 않은 어린 새도 이런 기술을 터득한 것으로 보아 종 전체의 능력으로 보인다.

위에 든 영리한 새 3종의 공통점은 모두 대양섬에 산다는 사실이다. 먼바다 섬에 살면 동물의 머리가 좋아질까. 그렇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crow.jpg» 이솝우화의 까마귀(왼쪽)과 뉴칼레도니아까마귀.

대양섬은 화산폭발로 바다 한가운데서 생긴 섬이다. 육지와 한 번도 연결되지 않고 고립돼 있기 때문에 찰스 다윈 이래 진화를 연구하는 ‘자연 실험실’로 주목받았다. 외부에서 유입된 소수의 생물이 한정되고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진화는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 그 쪽으로 진행되지 않는다(인간은 진화의 종착점이 아니다). 그러나 섬에서는 일정한 방향성이 보인다. 대양섬에서 척추동물은 자원 상태에 따라 피그미매머드처럼 왜소화하거나 코모도왕도마뱀처럼 거대화한다. 새들은 비행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새들의 머리가 좋아지는 경향이 새 가설로 추가됐다.

1280px-Camarhynchus_.jpg» 독일 다름슈타트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갈라파고스딱따구리핀치의 모형.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페란 사욜 스페인 진화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대양섬 조류 110종을 포함해 1931종 1만1500여 점의 새 표본을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대양섬 새들은 본토에 사는 친척 종들보다 두뇌가 현저하게 큰 경향을 보였다”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그 원인으로 변화가 심한 섬의 환경과 섬 동물의 느린 생활사를 꼽았다. 대양섬은 밖으로 이주해 나갈 여지가 없다. 극심한 가뭄 같은 환경변화가 일어나면 유연하게 적응하는 종만 살아남는다. 연구자들은 환경변화의 역경을 이기기 위해서는 행동의 유연성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큰 두뇌가 선택받았을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딱따구리핀치는 나뭇잎에 붙어있는 벌레를 먹다가 가뭄으로 벌레가 나무 틈으로 숨어들자 새로운 사냥법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때 대뇌피질의 면적이 큰, 다시 말해 두뇌의 크기가 큰 핀치일수록 선인장 가시를 도구로 쓰는 정교한 진화를 이룰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Jon Sullivan_Tomtit_JonSullivan-1.jpg» 뉴질랜드 남섬의 톰티트 암컷. 이 종의 이름은 ‘머리가 크다’는 뜻이다. 존 설리번 제공.

연구자들은 또 천적이 없거나 적은 대양섬에서의 느린 생활사도 두뇌 확대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았다. 수명이 길수록 큰 두뇌 발달에 유리하다. 큰 두뇌는 발달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명이 긴 동물일수록 새로운 행동을 탐구해 개발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섬에 온 뒤 두뇌가 커졌는지 아니면 두뇌가 큰 새가 섬으로 왔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계통유전학 분석을 통해 섬에 온 종의 조상과 오지 않은 종의 조상 사이에 상대적인 뇌 크기에 차이가 없음을 들어, 섬에 온 뒤 두뇌가 커지는 진화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erran Sayol et al, Predictable evolution towards larger brains in birds colonizing oceanic islands, Nature Communications (2018) 9:2820, DOI: 10.1038/s41467-018-05280-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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