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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6일 수요일

이승만과 박정희가 통탄할 ‘건국절’ 논란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올바른 역사’ 3가지 키워드
이진우  | 등록:2017-08-17 09:36:22 | 최종:2017-08-17 09:44:1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올바른 역사’에는 3가지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건국기념일 제정’,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그리고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입니다. 이를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1)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선포한 것이 1948년이므로 1919년이 아닌 1948년이 건국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하고,
(2)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공로는 오직 이승만에게만 있고, 사회주의 및 남북합작을 주장했던 ‘종북성향’ 인물들은 도리어 건국의 적(敵)으로 기록되어야 하고,
(3) 5.16혁명으로 ‘제2의 건국’을 이룩한 박정희 집권기간은 자유와 인권의 탄압이 아닌 산업화와 민족문화 창달로 대한민국의 부흥과 발전을 이룩한 시기로 기록되어야 한다.
이른바 건국기념일-이승만-박정희 3종 셋트입니다.
역사라는 것이 어느 쪽으로 서술이 되건 그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역사왜곡이 될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모두가 수용하고 인정하는 ‘올바른 역사’라는 것은 현실에 있어서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 되었건 최소한 역사적 팩트에 기반하여 가급적 그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과연 이들의 관점과 스토리텔링이 논리적․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건국기념일 제정에 대해 보겠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본래 헌법 전문이라는 것이 건국이념과 헌법의 정체성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것은 역사적 기록의 차원을 뛰어넘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총의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승만이 초대 국회의장으로서 제정을 주도한 제헌헌법에 ‘1919년 건국’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혹시나 후세가 이를 오독할까봐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이라는 표현까지 등장시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승만은 집권하면서 곧바로 모든 문서에 ‘건국 30년’이라는 것을 명시하도록 지시합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왜 ‘건국 원년’이 아닌 ‘건국 30년’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이승만의 독립운동 경력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며, 둘째, 북한 김일성 정권과의 확실한 차별화 및 유일한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이게 도대체 뭔 말이냐구요?
이승만의 독립운동은 1896년 독립협회 결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립협회 및 이와 맥을 같이하는 협성회와 만민공동회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열성적 활동으로 인해 사형 및 종신형 선고까지 받고 5년 넘게 투옥됩니다.
그 후에는 언론계․종교계․교육계로 그 활동범위를 넓혀가며 독립운동과 국민계몽운동에 열정을 쏟게 됩니다. 그 공로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게 됩니다.
비록 그 후 얼마 가지 않아 임정 핵심요원들과의 갈등 및 독선으로 불신임을 당해 사임하지만, 그 후에도 이승만은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백악관 및 의회 지도자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이승만의 독특한 이력 및 인간관계 덕택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 및 미군의 참전이 가능해졌던 것이죠.
따라서 1948년을 건국기념일로 제정하게 되면 1919년 이후 줄곧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갖고 다녔던 이승만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전혀 근거가 없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사칭하고 다닌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승만 자신은 자신만이 독립협회-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져 내려오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확보한 인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는데, 1948년을 건국기념일로 제정하는 순간 이승만은 한반도의 유일한 건국지도자의 지위로부터 남한만의 건국지도자로 그 위상이 현저하게 격하됩니다.
김일성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에서 김일성과 대립각을 이루는 비슷한 비중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니 이승만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통탄할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이승만에 대한 모독이죠.
이승만의 기준에서 보자면, 굳이 역사교과서를 바꾸지 않더라도, 이미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제대로 부각시키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건국의 아버지’로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좌우 진영 모두를 살펴보더라도 이만큼 스펙타클한 독립운동의 궤적을 갖고 있는 인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실질적인 좌우합작으로 출범했고, 좌우합작 속에서도 이승만은 건국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모두 가진 인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자신도 그것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건국’과 ‘재건’을 모두 자신이 주도했다고 생각하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보수 세력은 이승만의 활동 중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구한말 및 임정을 중심으로 한 활동 및 이력들을 사실상 역사책에서 배제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셈이죠.
박정희와 관련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박정희가 주도하여 개정한 ‘제3공화국 헌법’의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4.19의거’라는 표현과 ‘새로운 민주공화국 건설’이라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 박정희의 역사적 정통성은 5.16 뿐 아니라 4.19와도 맥이 닿아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4.19의거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4.19의거는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국민과 의회가 새롭게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것이죠. 바로 그 민주공화국을 박정희가 자신의 정통성에 뿌리로 규정한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4.19의거로 시작되어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던 민주공화국의 꿈을 자신이 5.16혁명으로 완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면 내각을 좌파 내각으로 매도하고, 4.19의거를 일으킨 정치인과 대학생들을 종북좌파로 규정하고 있는 보수 세력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박정희가 제3공화국 헌법을 통해 전면에 내세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딸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을 과연 알고는 있을까요? 만약에 박정희에게 “아버지는 이승만을 계승했습니까? 아니면 장면을 계승했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박정희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장면 내각을 계승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도 대단히 격노하면서 말이죠.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전혀 계승한 바가 없습니다. 도리어 제3공화국 치하에서 그가 시행했던 상당수의 정책들은 장면 정부가 기획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죠. ‘한강의 기적’의 출발점이 되었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그 기획과 로드맵은 장면 내각이 만든 것이었죠. 그것을 박정희가 완성한 것이구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정희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비록 변절하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확고한 진보주의자였던 자신을, 부정부패와 전근대적 리더십의 상징이면서 지독할 정도의 보수노선을 추구했던 이승만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일 겁니다.
이건 박정희가 정말 땅을 치면서 통탄할 일이죠. 이승만의 그림자와 숨결을 지우고 싶어서 집무실도 경무대가 아닌 청와대로 하고, 대대적인 부정부패 척결 작업도 했고, 이승만 정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유주의와 인권․평화의 가치를 헌법에 담아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는데… (적어도 유신헌법 이전까지는)
바로 이 부분이 보수 세력의 역사와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무지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이승만과 박정희 모두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8.15 해방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이승만과 박정희 모두를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4.19의거를 역사책에서 지우고 5.16쿠데타의 정당성만을 내세우는 것은 박정희를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4.19의거를 완성한 사람이 자신인데, 4.19는 빼고 5.16만을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계승자인 박정희는 없어지고 독재자인 박정희만 역사책에 남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P.S. 투철한 우파였던 이승만은 좌익운동 전력을 가진 박정희를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권기간 중 박정희에게 사형이 언도됐지요.)
반대로 진보주의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 반부정부패 정서가 누구보다 강한 박정희는 이승만을 결코 용납할 수 없지요. (그래서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은 박정희 집권기간 중 살아서는 귀국하지 못하고 죽어서야 비로소 고국 땅을 밟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모두 부귀영화를 누린 세력이 마치 물과 기름과도 같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하나의 코드로 연결하려다보니 많은 무리수가 발생하는 거지요.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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