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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정세현 “북, 핵 내려놓을 수 있어…폼보다 실리 따질 것”


등록 :2017-08-20 10:06수정 :2017-08-20 10:26


[토요판] 인터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미-북 대화 9월쯤 시작될 듯
핵-군사훈련 ‘쌍중단’ 불가피”
“북한 핵 포기 쉽지 않으나
미와 수교·보상되면 가능”

“‘비핵화 대신 동결’ 봉합 가능성도
진보-보수 떠나 강하게 반대해야”
“미군 철수는 평화협정 조건 아냐
‘핵우산 포기’ 안 되게 신중해야”
정세현 정 통일부 장관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미국과 북한과의 대화가 9월부터는 시작될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및 수교와 함께 보상이 확실히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내려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세현 정 통일부 장관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미국과 북한과의 대화가 9월부터는 시작될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및 수교와 함께 보상이 확실히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내려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말폭탄으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켰던 미국과 북한의 태도가 한풀 꺾였습니다. 미국 쪽에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연일 강조하고 있으며, 북한도 미국 태도를 지켜본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 핵 문제는 워낙 오래된데다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될지, 협상이 되면 과연 성과가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론과 현장 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지난 17일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정세현(72)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은 현실적이면서도 담대했다. 그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해 “결국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미 군사훈련은 중단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북한이 10~20개 정도의 핵은 내놓을 수 있다”며 “그것이 가능하게끔 미국이 협상 뒤에 딴소리하지 않도록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대신에 핵 동결이라는 카드로 봉합할 가능성을 염려했다.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긴장이 고조돼가던 미국과 북한 사이의 군사적 대결 국면이 다소 진정된 것 같다.
“그렇다. 북한의 김정은이 며칠 전 미국 행태를 지켜보겠다고 하면서 사태가 일단 누그러졌는데 이는 미국이 먼저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쯤부터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거듭 얘기하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거들었다. 또 미 합참의장도 방한하는 비행기에서 전쟁 이외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과거 1차, 2차 핵 위기 때도 돌이켜보면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맞서 미국이 방향을 틀어서 대화로 나갔다. 미국이 그렇게 방향을 틀도록 만든 촉진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다녀온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로, 또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에 ‘전쟁은 절대 안 된다, (군사적으로) 치려면 우리와 반드시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촉매 역할을 했다고 본다.”
“최선희 방미설은 북-미 물밑 접촉 방증”
-미국과 북한이 핵 문제를 놓고 대화를 한다면 언제쯤이 될까?
“8월 군사훈련 중에는 피차 체면이 있어 못 하고, 9월로 넘어가면 좀더 심도있는 대화라든지 (북-미 간의) 1.0 대화가 제3국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지난해 가을부터 미국 싱크탱크 주도로 새 정부가 들어설 경우에 대비해서 미-북 간에 1.5트랙의 대화가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쿠알라룸푸르, 11월에는 제네바, 올 5월 초에는 오슬로에서 양쪽이 만났다. 그때마다 북한은 최선희 미국국장 등 당국자가 나왔다. 이번에도 최선희 국장의 미국 방문설이 나왔는데 그 정도면 뉴욕에 나가 있는 북한 대표와 미국 대표 사이에 물밑 대화 내지는 접촉이 계속돼왔다고 봐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이나 미사일 기술의 발전을 완성시키고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재개할 가능성은 없을까?
“북한이 확실한 핵 보유국이 되려고 협상에 나오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한다면 미국이 가만히 있겠나. 그 경우 미국이 이건 정말 큰일이다, 말로는 안 되겠고 지금보다 더 큰 제재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군사적인 공격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 위험한 짓을 북한이 할까에 대해선 의문이다.”
-미국은 대화 조건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중단을 할 것을 요구하지만,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주장하고 있는데. “1년 전, 2년 전 얘기여서 지금도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북한은 2015년 초와 2016년 초 두번에 걸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할 테니 한국과 미국은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걸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쌍중단’이라고 표현하면서 쌍중단으로 시작으로 해서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한 제의에 대해 당시 박근혜 정부가 ‘노’(No)라고 거절하면서 쌍중단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쪽으로 가리라 본다. 지난 5월 문정인 교수가 미국 가서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를 중단하는 대신 한국과 미국이 연합훈련 규모를 축소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문 교수 얘기를 들어보면 미국에서는 일부 극보수적인 곳을 빼고는 모두 쌍중단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하더라. 6자회담을 출범시키기 위해서 한 해만이라도 훈련을 중단해보자고 미국한테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북한은 2006년 10월9일 핵실험(1차)을 시작으로 그동안 모두 5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지난해에는 1월과 9월 두번이나 실시했다. 미사일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해도 벌써 6번의 시험 발사를 강행했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지난달 4일 쏜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정상 각도로 쏠 경우 미국의 알래스카나 하와이뿐 아니라 본토의 서부지역까지 날아간다.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은 실패했다는 게 미국과 일본 등의 판단이긴 하지만, 이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대해서는 “우리 북핵정책의 출발점은 북핵 보유를 불용하는 것인데 당장 눈앞의 균형을 위해서 전술핵을 가져다 놓으면 북핵 불용을 요구할 수가 없게 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대해서는 “우리 북핵정책의 출발점은 북핵 보유를 불용하는 것인데 당장 눈앞의 균형을 위해서 전술핵을 가져다 놓으면 북핵 불용을 요구할 수가 없게 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핵 멱살 잡히면 미국에게 원망 돌아갈 것”
-대화의 최종 목표는 비핵화이지만, 그동안 북한의 핵 능력이 더 강화됐기 때문에 비핵화 달성이 매우 어려워진 것 같다.
“지난해 5월에 열렸던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핵 보유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핵 전파 방지, 핵 확산 금지는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는 확산 금지는 협조할 용의는 있지만, 기왕에 확보한 핵무기는 내놓지 않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5월만 해도 북한이 핵실험을 네번밖에 안 했을 때다. 그 뒤에 한번 더 해서 모두 다섯번 핵실험을 했다. 선행 핵 보유국을 보면 다섯번 정도 실험하면 소형화와 경량화에 도달했다. 그러기에 북한이 핵을 쉽게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게 일단 상식이다.
그러나 북핵 협상사를 되돌아보면 북한이 핵 카드를 가지고 처음부터 받아내려고 했던 것이 미국과의 수교였다. 다른 말로 하면 평화협정이다. 북한은 미국이 수교를 해준다, 또 경제 지원을 해준다는 말에 현혹돼서 비핵화를 약속했는데 매번 그게 안 지켜지니까 미국을 믿을 수 없다고 해서 핵 문제가 이렇게 악화된 거다.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주고 수교로 가면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앞으로 쌍중단으로 시작해서 쌍궤병행으로 갈 때는 ‘돈이 좀 들더라도 확실히 핵 문제를 해결하자, 중간에 테크니컬한 문제를 제기해서 북한이 회담장 밖으로 나가는 그런 짓을 하지 말자’고 미국에 확실하게 얘기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할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이 그것만 확실하게 보장해주면 북한이 열개, 스무개 정도의 핵무기는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경계 대상이 된 채 핵 보유국이라고 폼 잡는 것이 더 좋다는 쪽으로 가진 않을 거다. 필요하면 우리도 돈을 많이 낼 각오를 해야 한다. 평화를 가지고 오는데 돈 안 쓰면 안 된다.”
-아직은 미국 본토가 직접 타격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어려운 비핵화보다는 현재 상태에서 동결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이 그렇게 갈 수도 있다. 평화협정 해주고 계속 핵을 없애려고 하는데 (북한의 반대로) 안 되니깐 그건 놔두자, 대신 확실하게 전파 방지, 즉 핵 비확산의 장치를 튼튼하게 해놓을 테니까 그 점은 걱정말라 식으로 미국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우리 국민들이 동의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핵 멱살을 잡힌 상태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북한을 욕하는 게 아니라 미국을 비난하게 돼 있다. 이건 진보와 보수를 떠난 문제다. 5천만 국민 전체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식으로 나오면 미국이 감당을 못 할 거다.”
정 이사장은 1977년 국토통일원(통일부의 전신) 시절 4급인 공산권연구원으로 특채돼 북한과 중국 문제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외교 및 북한 전문가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으면서 남북대화에서 능력을 발휘했으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연속으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민간 싱크탱크이자 평화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인 ‘한반도평화포럼’이 2009년 발족할 때부터 공동대표로 활동했으며, 올 6월부터는 이사장을 맡고 있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카드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며칠 전 <워싱턴 포스트> 칼럼도 미-북 평화협정에 들어가면 주한미군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썼더라.
“주한미군은 처음에는 북한의 재남침을 막기 위한 억지력이었지만, 냉전이 끝나고 새 질서가 짜이는 과정에서는 동북아 지역의 안정자로 역할이 바뀌었다. 그건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 때부터 북한도 인정했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 주한미군 철수라는 얘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는데, 아직 공식적으로 세게 나온 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한테 확인해서 평화협정의 조건이 미군 철수라고 한다면 이 프로세스를 시작할 수 없다고 확실하게 얘기해야 한다. 비핵화 개념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를 얘기하는데, 중국하고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에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을 접으라는 뜻이 들어 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알고 쓰는 건지는 모르지만,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도 한반도 비핵화란 용어가 있어서 좀 걱정된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 핵우산을 접으면 안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한-미 동맹 내지는 한국 사람들의 안보의식에서는 중국을 위협하지 않는 정도의 핵우산은 필요하다. 협상 중간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미리 확인해서 로드맵을 짜야 한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반미’를 주제로 한 선전화들을 내놓았다고 1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반미’를 주제로 한 선전화들을 내놓았다고 1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중국, 10월 당대회 이후 ‘사드’ 유연해질 듯”
-북한 핵무기 체계가 아직 완성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에서는 벌써 충분한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미군 전술핵무기를 다시 배치하자는 얘기도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전술핵 재배치를 하면 북한의 핵 보유를 우리가 기정사실화하는 게 된다. 대한민국 북핵정책의 출발점은 북핵 보유를 불용하는 것인데 당장 눈앞의 균형을 위해서 전술핵을 가져다 놓으면 북핵 불용을 요구할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우리 정부가 전술핵 배치해달라고 하면 미국이 ‘아이고, 정말로 생각 잘했다’면서 바로 해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협상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는데 미-북 간 핵 협상이 깨지는 경우는 어떤가?
“전술핵무기는 가져다 놓아도 미군기지 안에 들어가 있고 미군이 쓰는 거지 우리가 맘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든든한 심리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마음대로 운용할 수 없는 거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 물론 그렇더라도 북한의 핵 고도화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된다면 가져다 놓아야 한다. 그런데 전술핵무기를 가져다 놓으면 북한은 전략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핵실험을 더 하고 개수를 늘릴 거다. 그러니 그건 대책이 못 된다.”
-박근혜 정부 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과 관계가 악화됐는데, 문재인 정부도 임시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사드를 추가 배치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대통령 입에서 그걸 갖다 놓으라고 했는데 되돌리기는 어렵다. 다만, 오는 10월 중국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 체제의 5년 연장이 결정되고 나면 중국이 좀더 유연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타협점이 생기고, 한-중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우리 정부의 회담 제의에 북한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북한이 묵묵부답으로 있지만, 공식적으로 거부는 안 했다. 미-북 간에 접촉이나 대화가 시작되면 남북관계도 풀릴 수 있는 틈이 생길 거다.”
정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베를린 구상과 관련해, “5년짜리 정책인데 북한이 미사일 한번 쐈다고 해서 걷어치우라고 하면 그것은 여름 한철만 울고 가는 매미가 되라는 것과 같다”며 야당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또 외교안보팀에 전략가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며 “전략가가 없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방어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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