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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남북관계, ‘원칙의 승리’아닌 ‘원칙의 합의’로

남북관계, ‘원칙의 승리’아닌 ‘원칙의 합의’로
<2015 송년특집 ②> 남·북관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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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2  00: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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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이자 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은 연초부터 국내외적으로 많은 기대가 모아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측과 북측은 신년 초 정상회담 운운하며 호기롭게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남북대화 한번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오 히려 8월초 비무장지대 지뢰폭발사건으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가 급상승하자 남측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하는 이른바 ‘2+2회담’을 성사시켜 8.25합의를 극적으로 이뤘습니다. 그러나 12월 11-12일 열린 남북 당국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은커녕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결렬됐습니다.
북. 미관계도 별 것이 없었습니다. 연초부터 양측은 북한의 공식적인 대미 대화 제안과 미국 측의 거절 등, 대화 제의를 둘러싼 진실 공방으로 하세월하다, 결국 하반기 들어 북한 측의 평화협정 회담 제의와 미국 측의 비핵화 합의 이행 요구로 평행선만 긋다 한해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올 해 특기할 만한 것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북해 북한과 중국이 관계회복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 점입니다. 이어 양측 관계개선의 움직임으로 12월 북한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이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공연을 앞뒀으나 돌연 공연단이 철수를 하게 된 사건이 일어나 양측 관계가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습니다. 
통일뉴스는 <2015년 송년특집>으로 ①북.미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의 대외관계 ④북한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8월 달력을 찢어버리고 싶다.”
2015년 8월 남북대화 통로가 꽉 막힌 상태에서 통일부는 극도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광복 70년의 정점을 찍는 8.15를 전후해서는 당국자들이 차라리 8월 달력을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며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몰론 박근혜 정부 들어 최대의 성과라고 일컬어지는 8.25합의가 나오기 전까지의 상황이다.
8월 달력이 찢겨나가기 전에 남북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발생한 일촉즉발의 군사적 충돌 위기를 맞아 무박 4일 43시간 연속 접촉으로 남북 고위급 접촉을 열어 8월 25일 새벽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냈다.
8.25합의, 긴장완화와 관계개선의 흐름 만들어
   
▲ 남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한 2+2회담에서 8.25합의가 나와 남북관계는 극적 계기를 맞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남측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한 2+2회담은 정상회담을 제외하고는 대표단의 급도 가장 높은 것이었다.
8.25합의를 통해 남북은 당면해서는 무력충돌로 치닫던 남·북간 긴장을 완화시키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다양한 민간교류, 그리고 12월 남북당국회담으로 이어지는 관계 개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
8.25합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 들어 최고치인 50%에 육박했으며, 이에 탄력을 받은 것인지 ‘원칙론의 승리’라는 평가가 정부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마저 경계하던 군 일각에서는 북이 장거리미사일발사와 핵실험 등의 전략적 도발 위협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른 바 10월 위기설을 노골적으로 흘렸다.
국방부는 합의문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대 지도자를 제거하겠다는 ‘참수작전’이라는 전략적 개념을 무분별하게 흘리는 등 남북합의 이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청와대와 통일부에서는 과속은 금물이라며 속도조절론이 슬슬 흘러나왔다.
훈풍이 불던 남북관계에는 다시 살얼음이 끼고 긴장의 도수도 비례해서 높아갔다. 그 와중에도 8.25합의 이행을 위한 이산가족 상봉,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 등 분야별 과제들은 하나둘씩 진행이 되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는 9월 7일부터 실무접촉을 시작해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됐으며, 10월 중순부터 개성과 서울에서 만월대 출토유물에 대한 전시회가 열리고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는 남북 노동 3단체가 주최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결승전 경기가 평양에서 열렸다.
금강산에서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회의와 7대 종단 수장이 참여한 남북종교인모임 등 남북 공동행사가 10월, 11월에 잇따라 개최되는 등 남북교류 협력 횟수와 방북인원이 상반기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8.25합의 1항에 명시한 당국회담은 난산을 거듭했다. 남측에서 3차례나 실무접촉 제의를 했으나 지난 11월 20일 북측이 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11월 26일 갖자고 제안하고 남측이 동의함으로써 간신히 해를 넘기지 않고 진행될 수 있었다.
남북당국회담 결렬로 급격히 소진된 8.25합의 동력
   
▲ 6.15, 8.15 공동행사가 무산된 뒤 8.25합의에 따라 올해 최대 규모의 민간교류로 기록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10월 29일 평양에서 열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남북 당국은 실무접촉을 통해 12월 11일 개성공단에서 제1차 남북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회담 대표단은 차관급을 수석대표로 하며, 회담의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문제'로 하기로 했다.
막상 얼굴을 맞댄 12월 11~12일의 제1차 남북당국회담은 1박2일의 회담이 무색하게도 회의시간은 총 6차례, 3시간 남짓에 불과했고 다음 회담 일자도 정하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회담을 마친 후 남측 수석대표인 황부기 통일부 차관은 “북한은 먼저 금강산 관광 재개를 합의문에 먼저 넣자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서 실질적인 협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북측에 회담 결렬의 책임을 돌렸다.
북측은 며칠 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의 악랄한 동족대결정책과 계획적인 음모책동으로 하여 이번 북남당국회담은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북남관계의 전도는 더욱 암담해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8.25합의의 주역인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최근 관훈토론회에 나와 내년 남북관계 구상에 대해 밝히면서 “기존에 해왔던 신뢰프로세스에 입각해서 차근차근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기본 목표”라고 재확인했다.
그는 “남북대화가 제도화 돼서 큰 문제가 있을 때 당연히 만나고 주기적으로 만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는 틀을 만들 필요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내년에는 남북대화의 제도적 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8.25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회담의 성격을 갖는 남북당국회담이 맥없이 결렬되고 그에 따라 8.25합의 자체의 효력과 동력이 급격히 소진되는 상황에서 다소 엉뚱하다고 느껴질 만큼 지나치게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남측의 관심사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었으며, 북측은 금강산관광재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건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언론에 나온 내용이었다. 누구나 짐작하고 알만한 일을 당국만 모를 리는 없다. 결국 문제를 풀기 위한 성의 있는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금강산관광과 이산가족문제는 서로 성격이 다른 사안으로 이를 연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원칙’이라고 표현했다. 또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협상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그렇지만 상대와 마주 앉은 이상 회담에서는 필요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목표이자 원칙이기도 하다.
회담결렬의 원인은 정부가 주장하는 ‘원칙’보다는 회담이 열리기 3일 전인 12월 8일 미국 행정부가 8일 북한 전략 로켓군을 비롯한 단체 4곳과 개인 6명을 대북 제재 목록에 추가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이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유연성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화의 계기를 잡기도 쉽지 않지만 무언가 될 만하면 미국의 개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함으로써 관계개선의 능선을 좀처럼 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실질적 대화위해 ‘전제조건’도 ‘분위기 조성’도 필요
연초의 남북 분위기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1월 1일 신년사에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광복 70년을 맞는 남북관계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기대감을 키웠다.
또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회담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해 ‘최고위급 회담’과 함께 ‘고위급 접촉’, ‘부문별 회담’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가 발표된 당일 오후 “우리 정부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간 대화가 개최되길 기대한다”고 화답해 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께름칙한 대목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소니픽처스에 대한 해킹 사건을 빌미로 북한 정찰총국과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조선단군무역회사 등 단체 3곳과 관련 인사 10명을 제재 대상으로 공식 지정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미국의 이 같은 결정은 모처럼 조성된 남북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그리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월 7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발표, 일부 탈북자 단체들의 삐라살포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롯한 3개항에 대한 남측 당국의 책임있는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등 금새 훈풍에 매서운 기운이 서렸다.
특히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탈북자 단체들의 전단살포는 두고 두고 말썽거리였다. 통일부가 대통령에게 신년업무보고를 하는 1월 19일 밤에도 이들은 경기도 파주, 문산 쪽에서 비밀리에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북측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의 관영 매체를 통해 "반공화국 삐라살포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북남관계개선을 바라는가 바라지 않는가 하는 것을 가르는 시금석"이라며 반발했지만 정부는 대북 전단살포가 ‘헌법상 기본권에 속하는 표현의 자유 영역’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렇게 새해 벽두에 확 피어올랐던 기대는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급랭하고 말았으며 대통령이 제안한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도 그대로 묻혀버렸다.
남측은 북에 대해 ‘전제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무조건 대화의 장에 나와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내세웠지만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이거나 선언적인 대북제안에 그치거나 북한 문제를 국내 정치위기 돌파를 위해 이용하려 드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실질적인 대화를 위해서라면 상대가 원하는 전제조건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하고, 분위기가 필요하다면 연출을 해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신뢰프로세스를 운영하려할 때 상대에 대한 신뢰를 높여나가는 과정은 상호적이어야 하며, 그것이 일방적일 때는 신뢰가 아니라 불신과 불만이 쌓일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 분단 극복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했지만, 8.25합의 이전까지 남북간 대화와 교류는 사실상 전무했고, 6.15, 8.15 계기 남북 공동행사도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8.25합의로 불씨를 살린 남북관계가 다시 비틀거리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말까지 계속되고 있다.
   
▲ 2015년 남북관계 주요 일지 [정리-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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