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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악순환'의 늪에 빠지다


<2015 송년특집 ①> 북.미관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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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18  21: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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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이자 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은 연초부터 국내외적으로 많은 기대가 모아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측과 북측은 신년 초 정상회담 운운하며 호기롭게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남북대화 한번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8월초 비무장지대 지뢰폭발사건으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가 급상승하자 남측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하는 이른바 ‘2+2회담’을 성사시켜 8.25합의를 극적으로 이뤘습니다. 그러나 12월 11-12일 열린 남북 당국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은커녕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결렬됐습니다.
북.미관계도 별 것이 없었습니다. 연초부터 양측은 북한의 공식적인 대미 대화 제안과 미국 측의 거절 등, 대화 제의를 둘러싼 진실 공방으로 하세월하다, 결국 하반기 들어 북한 측의 평화협정 회담 제의와 미국 측의 비핵화 합의 이행 요구로 평행선만 긋다 한해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특기할 만한 것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북해 북한과 중국이 관계회복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 점입니다. 이어 양측 관계개선의 움직임으로 12월 북한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이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공연을 앞뒀으나 돌연 공연단이 철수를 하게 된 사건이 일어나 양측 관계가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습니다. 
통일뉴스는 <2015년 송년특집>으로 ①북.미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의 대외관계 ④북한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저명한 영국 추리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제목이다. 크리스티 식으로 표현하면, 올해 북.미관계는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다' 수준일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북.미관계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휙휙 변화하는 현재 국제적 환경에서 제자리걸음은 곧 뒷걸음질이나 마찬가지다. 북.미관계의 퇴보는 북한과 한.중.일을 포함한 주변국 간 관계에도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나아가, 세력전이기에 들어간 동북아 지역 전체에 질곡이 되고 있다.    
북한 : 1월초 '군사연습 중단' 제안부터 10월 '평화협정 체결' 제안까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앞으로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주변관계구도가 어떻게 바뀌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혁명적 원칙과 자주적 대에 기초하여 나라의 존엄과 이익을 첫자리에 놓고 대외관계를 다각적으로, 주동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대외정책 기조를 밝혔다.
미국에 대해서는 "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한 미국의 극단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하여 조선반도에서는 긴장 격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전쟁위험은 더욱 커졌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의 자위적인 핵억제력을 파괴하고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기도가 실현될 수 없게 되자 비렬한 '인권'소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올해 북.미관계의 주요 현안이 '전쟁위험 제거'와 '인권 소동'이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월 10일자 보도를 통해, "미국 정부에 조선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중대조치"를 전날 미국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올해 한반도와 주변에서 연합군사연습을 임시중지하면, 북한도 핵실험을 임시중지할 수 있다'며 미국에 직접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1월 10일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통상적인 군사연습과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부적절하게 연계한 북한의 성명은 암묵적 협박(implicit threat)"이라며, 즉각 거부했다.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와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북한의 제안을 협상의 기회로 활용하지 않는 오바마 행정부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미국의 태도와 관련, 외교소식통은 군사연습-핵실험 연계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강한 거부감, 북한의 대화 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 등을 이유로 들었다. 성김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측에 물밑 대화를 제의했는 데, 북한측 6자회담 단장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성김을 만나는 대신 1월 중순 싱가포르로 가서 스티븐 보즈워스 등 민간 전문가들과 만났다는 것이다. 성김과 김계관.리용호 사이의 엇갈림은 이후에도 반복된다. 이 과정을 거쳐, 북한은 미국의 '탐색적 대화' 제안을 대북 제재 공조 강화를 위한 명분쌓기라는 판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9월 들어 북.미 뉴욕채널의 미국측 담당인 국무부 6자회담 특사가 공석이 됐다. 시드니 사일러 전 특사가 파견기간이 끝나 원래 소속인 국가정보국(DNI)로 복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북한측이 상대해오던 대미 창구가 사실상 닫힌 것이다. 현재까지도, 후임자는 임명되지 않았다.          
9월 21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측근인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총회 참석차 출국했다. 이틀 뒤,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 등의 유엔북한인권결의안 채택 추진을 비난했다. 리 외무상은 '유엔인권결의' 채택 저지 활동의 일환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났으며, 방북 초청 의사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외무상은 10월 1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이 여론 매체를 통해서만 그 누구의 도발에 대해 운운하지 말고 실제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데 동의해 나선다면 공화국 정부는 조선반도에서 전쟁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건설적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공식 제안했다. 9월 하순, '위성' 발사를 막기 위해서라면 성김 특별대표가 방북할 수도 있다던 미국은 10월 9일 류윈산 방북으로 한 고비를 넘기자, '비핵화 초점 흐리기'라며 북한의 제안을 거부했다.
11월 19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미국 등이 제안한 '북한인권결의'를 표결 처리했다. 12월 8일에는 미국이 북한 전략로켓군 사령부 등을 추가 제재했다. 10일에는 12월 의장국인 미국의 요구에 따라 안보리가 '북한 상황'을 다루는 특별회의를 개최했다. 17일에는 유엔총회가 '북인권결의'를 공식 채택했다.
지난 17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은 우리의 공명정대한 제안에 성실히 응할대신 이미 '실패한 전략'으로 낙인된 대조선적대시정책을 행동으로 더욱 구체화하는 것으로 대답해나서고 있다"면서 "최근 미국의 대조선'제재'책동이 더욱 무분별해지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표현"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미국이 이런 식으로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에 계속 매달린다면 미국이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상할 수 없는 결과만이 차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름 기대 속에 시작했다가 성과 없이 마무리된 올해 대미관계에 대한 북한측의 결산인 셈이다.
미국 : 1월 '정찰총국 제재'부터 12월 '전략로켓군 제재'까지  
성김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 10월 20일(이하 현지시간) 상원 외교위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대북 접근법을 구성하는 네 축은 △억지, △압박, △외교, △인권이다.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6자회담 내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의 공조를 유지하면서 북한을 '압박'하되, 비핵화 '대화'의 문은 열어둔다는 것이다. 2015년 내내 미국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는 책임을 중국에 떠넘긴 채, 대북 압박에 골몰했다. 양자.다자 제재와 외교적 고립 등이 망라됐다. 지난해 본격화했던 '인권' 공세도 이어갔다. 미국측의 '탐색적 대화' 제의가 '대화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난 회피용이라는 평가를 받은 배경이다.
미국은 새해 둘째날(1.2)부터 북한에 포문을 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난해 11월 발생한 '소니픽쳐스 해킹사건'에 대한 대응이라며, 새로운 행정명령(13687호)에 서명했다. 재무부는 정찰총국을 비롯한 북 단체 4곳과 개인 10명을 제재목록에 추가로 올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2일 <유튜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인터넷이 이 나라(북한)에 침투할 것이고 결국 이런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권고'하는 '북한인권결의안' 추진이 맞물리면서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가 '김정은 정권 교체'로 바뀌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5월 '모스크바 전승절 행사'와 9월 '베이징 전승절 행사'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불참하면서, 10월 '노동당 창건 70돌' 즈음해 '위성' 발사 우려가 커졌다. 미국의 당면 목표도 '전략적 도발(위성발사.핵실험 등 지칭)' 억지에 모아졌다. 10월 9일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이 방북하면서 '도발' 우려는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11월 들어서는 다시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고 나섰다. 11월 11일 애덤 주빈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 지명자는 서울에서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북한의 '전략적 도발'이 아닌 단.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 통상적인 안보리 결의 위반행위도 제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틀 뒤,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은 김석철 주미얀마 북한대사 등 개인 4명과 단체 1곳을 추가 제재했다. 지난 5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대응으로 이해됐다. 다만, 과거 미국이 '전략적 도발'이 있을 때 제재조치를 취해왔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으로부터 "비참한 실패(abject failure)"라고 혹평당한 이후, 대북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의 강박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12월 8일 오바마 행정부는 '조선인민군 전략로켓군 사령부'를 비롯한 북한 단체 4곳과 개인 6명을 추가 제재했다. 1년 전 단.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문제삼았다는 점,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12.11)과 모란봉악단 등의 친선공연(12.12~14)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 등이 맞물려 미국의 의도에 의구심이 제기됐다. 한국과 중국에 '대북 제재공조를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됐다. 이 분석은 안보리 12월 의장국인 미국의 서맨서 파워 유엔대사가 북한상황을 다루는 특별회의를 10일에 갖자고 통보하면서 더욱 설득력을 갖추게 됐다.
의도성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의 제재 조치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지난 12일 오후 남북 차관급 회담은 다음 일정도 잡지 못한채 결렬됐다. 북.중 친선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모란봉악단은 공연 3시간을 남기고 전격 귀국했다. 미국의 제재에 대응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수소탄 발언'이 엉뚱하게 개성과 베이징을 덮친 셈이다. 워싱턴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깨어지기 쉬운 남북관계와 북중관계에 폭풍을 불러왔다고나 할까.  
전략적 불신, 그리고 악순환
2012년 3월 미국의 저명한 중국 전문가인 케네스 리버설과 중국의 저명한 미국전문가인 왕지스(王緝思)는 '미-중 전략적 불신에 대하여'라는 공동보고서에서 "장기적 의도에 대한 상호 불신을 의미하는 '전략적 불신'이 미.중관계의 핵심 우려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또 "불신은 그 자체로도 소모적이지만 그러한 태도와 행동이 더 큰 불신을 야기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지적은 미.중관계만이 아니라 올해 북.미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은 북한의 평화협정체결 제안을 '비핵화 초점 흐리기'라고 의심하고, 북한은 미국의 탐색적 대화 제안을 '제재공조 알리바이 만들기'라고 의심하는 식이다. 불신이 더 큰 불신을 낳는 악순환인 셈이다.
'악순환'에 빠진 북.미관계는 지역 내 국가들 간의 관계, 특히 북한과 한.중.일 사이의 관계 개선 동력까지 갉아먹고 있다.
대북 관계 개선 수요가 거의 없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 일본은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은 지정학적 고려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 수요가 있다. 보수 색채가 짙은 한.일 정부가 올해 내내 북한과 꾸준히 접촉한 배경이다. 지난해 말 '비핵화-관계개선' 병행론으로 선회한 중국은 지난 10월 류윈산 상무위원의 방북으로 북한과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북한과 한.중.일 간의 관계는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핵문제 진전 없이 대규모 지원이나 경제협력에 반대하는 미국, 즉 좋지 않은 북.미관계가 블랙홀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비핵화 진전 없이는 남북 간에는 이산 상봉 등 낮은 수준의 교류 외에 할 게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본 소식통은 "납치문제가 풀려도 핵문제에서 진전이 없는 한 일본이 북한에 줄 게 없다"고 말했다. 한.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운신 폭이 넓은 중국도 핵문제에서 진전 없이 중앙정부가 참여하는 대규모 북.중경협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뜻, 북한의 '태도 변화(굴복)' 외에 다른 출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굴복'보다는 한.미의 정권 교체를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 어느 한 행위자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과감히 밀고나가서 그 관계를 지렛대로 하여 핵문제 해결의 계기를 마련하는 주동적 움직임을 취하지 않는 한, '남북(북.일, 북.중)관계개선-비핵화 선순환 모델'이 작동할 수 없는 구조이다. 미국과 일본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중국과의 세력 경쟁에 북한문제를 활용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중국은 '평화협정-비핵화 대화'를 병행하자는 입장이나, 관철 의지는 없어 보인다. 북한이 무력 충돌과 같은 사고를 치지만 않는다면, 현상유지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행위자는 한국뿐인데, 지난 3년의 행적에서 보듯 박근혜 정부에게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년 한반도 정세도 어두워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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