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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대통령의 7시간을 말하지 마라: 가토 전 지국장 무죄 뒷 이야기

1. 형사 고발에서 무죄까지 

2014년 8월 3일, 가토 전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이하 가토)은 산케이 신문 인터넷 판에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번역문 링크)'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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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5일, 자유청년연합 등 한국 보수단체는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가토를 형사 고발했다. 이틀 후인 8월 7일, 법무부는 그에게 출국정지, 또 다시 이틀 후인 8월 9일, 검찰이 소환 통보했다.

2014년 10월 8일, 한국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적용, 가토를 불구속 기소했다. 비슷한 내용으로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링크)' 이라는 조선일보 칼럼을 쓴 최보식 선임기자는 기소하지 않았다.

2015 년 10월 19일, 한국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가토 타츠야에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이유는 "소문의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전파성이 큰 인터넷에 보도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 씨 등 피해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소문의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아직 자신이 참고했다는 조선일보 칼럼 외에는 소문을 사실이라 믿을 만한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등이다.

2015년 12월 17일인 어제, 서울중앙지법 형사 30부(부장 이동근)는 “박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은 맞지만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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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가토 씨는 지난 4월, 출금금지 조치가 해제된 후, 한일 양국을 다섯 차례 오갔다. 그리고 어제, 판결문을 읽는 동안 앉는 것도 허락되지 않아 3시간 가량 피고인 석에 서 벌을 받는 아이마냥 선고를 들은 후, 무죄를 받았다.


2. 국경없는기자회 그리고 그의 후배 

약 한달 전인 11월 말, 가토 씨를 만나러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을 방문하기 위해 찾아온 국경없는 기자회 소속 세가와 마키코 씨와 만났다. 당 시 가토씨는 한국 언론인과는 접촉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와 만난 세가와씨를 접점으로 인터뷰, 녹취록, 재판 자료를 전해 받아 기사를 작성할 계획이었다. 허나 재판에 되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어 세가와 씨와 협의해 기사는 쓰지 않기로 했고 인터뷰 자료만 보관하고 있었다.

세가와 씨는 산케이 신문 전 기자로 가토 전 지국장의 후배다. 산케이에 2005년 입사해 2008년 8월까지 근무했다. 현재는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문제의 진실을 알리기 1년에 130번 이상 후쿠시마를 방문한 탓에 가끔 후유증에 시달린다당시 가토는 경시청, 사회부 담당의 열정적인 사회파 기자로 북한 납치문제, 국제 스파이 문제 등에 임했다. 가토 씨는 세가와 씨에게 “진수(진귀한 짐승)”라는 별명을 붙인 선배이기도 하다.


3. 가토라는 사람 혹은 기자에 대하여  

다음은 국경없는기자회 세가와 마키코 씨와의 인터뷰 일부다. 한달 전, 그녀가 한국에서 가토 씨와 산케이 신문 사람들을 만난 직후 다시 접촉했었다. 세가와 씨로 부터 가토 씨와 산케이 신문 사람들은 유죄를 확정 짓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문득 가토 개인에 대해 궁금해 졌다.  

'세'가 세가와 마키코, '돌'이 죽지않는돌고래, 본인이다.

돌: 한국에선 산케이 신문의 이미지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데 실제 들어가면 분위기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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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 신문 오사카 본사>


세 : 심하달까, 잠을 재우지 않더라구요. 그야말로 잔혹. 지옥에 왔달까. 상사가 '너희들은 이제부터 지옥에 떨어진거야'라고 했어요. 뭐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유가 없달까, 엄청나게 힘들었지요. 마에바시 지국에서 근무할 땐 철야근무는 기본이었어요.

보통은 여자 혼자 회사에서 자면 안되잖아요? 도둑이 들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상사가 방망이라도 들고 자라고, 금속 야구 방망이를 주는 거예요. 도둑이 나타나면 그걸로 때리라고.(웃음)

돌 : 가토 씨가 쓴 '대통령의 7시간' 문제로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대해 일본에서의 평판이나 평가는 어떤가요? 가토 지국장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요.

세 : 가토씨의 기사, 읽어보셨어요?

돌 : 물론입니다. 

세 : 기사로서는 엉망이다, 라고 모두들 그러더라구요.

돌 : 기사로서는 확실히 좋게 평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 : 그렇지만 사실로서는 7시간에 대한 의문은 모두가 가질 법한 일이죠. 유족들도 답을 원하고 있구요. 세월호 유족들도 그 7시간에 대한 해명을 밝히길 바라고 있죠. 기사로서 질이 안 좋다 해도 예의 '7시간'에 의문을 던지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죠.

동: 개인적으로 아는 가토 씨는 어떻습니까.

세 : 가토 씨는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이예요. 제가 국경없는 기자회 소속이기도 해서 자주 만났거든요. 조언도 구하고. 다만 이번 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나빠졌어요. 실제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안타까운 일이죠. 한국인 자체는 상관없고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니까요. 물론 산케이 사람들은 (맨날 철야해)냄새나서 결혼도 못하는 이미지(웃음)지만.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아직 결혼 안했다.(웃음)

돌 : 아 갑자기.(웃음)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이라면 어떤 이미지로 받아 들여야 합니까. 출세 코스로 생각되는데.

세 : 몹시 유능했어요. 보통 이 다음으론 워싱턴 지국에 간 다음 편집장이 되는 코스라고 할까, 아주 출세할 법한 사람이었어요. 가토씨와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출세할 타입이에요. 서 울 지국장이라면 대단한 명예죠. 출세코스예요. 미국 쪽 지국장 정도 까진 아닌가? 여튼 몹시 유능한 타입. 근데 가토씨는 그다지 영어를 잘 하지도 못하고, 특파원타입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랫마을의 마음씨 좋은 아저씨같기도 해요.

돌 : 일본 기자들이 보는 가토 씨는 어떻습니까.

세 : 대화를 나눠보면 알거라 생각합니다만, 조사보도 부분에선 천하일품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사회부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기사를 싣거나 납치피해자나 공작원을 취재하고. 팔레스타인까지 날아가서 조사하고. 특히 스파이에 대해 엄청 해박하기도 하구요. 엔터테이너로서도 뛰어나고 잘 생기기도 했고. 뭐랄까 이것저것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4. 검찰의 이상한 자료와 한국인에게 미움받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돌: 괜찮습니다. 다 말씀해 주세요.(웃음)

세: 가토씨 본인과 산케이 신문 외신부로 부터 "재판에서 질 테니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17일의 판결에 대비해 성명서를 준비 해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산케이 신문의 모든 사람은 가토가 지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요. 검찰은 가토 씨에 대해 약 800매의 증빙 서류를 제출했는데 그 중 2장에는 "과거의 범죄 경력에 관한 목록"으로 A4 용지 2장에 약 20개에 걸친 범죄 기록이 적혀 있었는데 내용이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여성의 치마 속에 숨겨진 카메라를 넣고, 도촬하고 있었다.", "마약을 복용하여 인천 공항에 구속됐다"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범죄 기록들이 진열되어 있어요. 가토 씨의 것이 아니죠. 변호사를 통해 다시 확인했는데 이러한 범죄 목록은 가토 씨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으로 판명되었고 무엇 때문에 검찰이 이런 목록을 제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올 해 6월 중순 경엔 일본의 한국 대사관 대사들이 도쿄 · 오오테마치 산케이 신문 본사까지 방문해 "이번 기소 미안했다" 라며 산케이의 비위를 맞추려 했어요. 가토 씨는 '이제 와서 사과해서 어쩌란 말인가' 라며 어처구니 없어 했고. 

돌: 이와 관련된 자료와 녹취록은 다 들고 계신 건가요? 

세: 물론입니다. 서류는 비디오까지 찍었고 녹음도 있습니다. 

돌 : 세가와 씨 본인 입장과 생각을 들을 수 있을까요.  

세 : 음. (한국인들에게 미움 받을지 모르지만)저는 그 분의 재판을 응원하는 입장입니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일본 특파원으로써 지금까지 적지 않은 다양한 언론인의 명예 훼손을 구출 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산케이의 예는 특이했습니다. 명예 훼손를 받은 기자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국내, 그리고 해외 언론에 기자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는 부정의를 호소합니다. 그러한 것을 도와주는 것이 나의 일입니다. 가토 씨의 케이스는 가토 자신이 아니라 산케이 측근이 파워 게임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국경없는 기자회]의 특파원으로써 의심이 간다고 할까, 의문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 또한 일본의 외국 특파원 협회로써도 지난해 12월경까지는 "해외 미디어를 위한 기자 회견”을 개최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가토 씨는 한국에서 구속되어 있었고, 일본에서의 기자 회견은 어려웠기 때문에, 영상 기자 회견이라도 좋을 것이라는 제안도 일본 특파원 협회에서 나왔었습니다. 일본 특파원 협회 측에서 또 한번 산케이에 문의했지만 가토 씨의 기자 회견이 거부되었습니다. 올해 1월 설연휴에 당시의 일본 특파원 협회 부회장 마이클 펜을 데려가 '국경없는 기자회'로 산케이 본사를 방문, 편집 국장 등과 기자 회견을 협상하려고 외출했습니다. 산케이 총무 부장과 외신 부 관계자와 면담해 기자 회견을 호소했지만 재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습니다.

" 이런 건 당당히 세계에 알려야한다! 당신은 정말 언론인 출신인가!" 라고, 분노해서 산케이 총무 부장에게 소리쳤습니다. 산케이는 진심으로 가토 씨를 도울 생각이 있는 걸까, 진심으로 고민했습니다. 산케이 신문 사장 앞으로도 "기자 회견을 해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만, 그 어떤 대답도 없습니다. 그 후, "국경없는 기자회" 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가토 씨를 격려해주고 싶었습니다만, 보도 자료를 작성하는 것 외에 핵심적인 것을 못해 답답 했습니다.

그 로부터 몇 달 후, 올해 4월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산케이 신문에서 나에게 판사 제출 용의 ‘자유 보도에 관한 이번 명예 기소 재판 의견서'를 '국경없는 기자회'에 제출 해 달라고 의뢰가 왔습니다. 국제 여론에 호소하는 방법과 특파원 협회 등에서 기자 회견을 통한 방법 등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이렇게 내부적으로 해결하고 싶어하지?"라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토 씨에게는 아이도 있고 가족에게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의견서를 작성했습니다. 내가 쓴 것이 아니라, '국경없는 기자회'의 아시아, 태평양 데스크 상사에 의뢰 해 작성했습니다.

기 자 회견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산케이 내부 사람에게 들었습니다만, "이전 가토가 모 후지 TV 계열의 라디오 인터뷰에 응했지만,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불필요한 일까지 줄줄 이야기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제가 걸린 상황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명했습니다.

" 국경없는 기자회" 상사는 "이런 바보같은 명예 훼손 재판 따위는 의미가 없다. 법정에 나갈 필요가 없다. 달아나라"고 가토 에게 충고했습니다.(웃음). 가토 씨는 "나는 일본인 이니까, 마지막까지 법정에 선다"고 유죄를 각오로 재판에 임하고 있습니다.

가토 씨 본인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멋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5. 그리고 무죄

지난 10월, 세가와 마키코 씨가 한국 현지 반응을 일본에 기사로 전하고 싶다고 해 이번 재판을 어떻게 보고 있냐 물어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 케이신문의 이미지는 한국 국내에서는 확실히 좋지 않다. 이번 기사도 소문 정도의 레벨로 그다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이 법의 힘을 이용해서까지 가토씨를 몰아붙여 기소한 일은, 이 문제에 있어 좌파, 중도,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라는 의미 외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보수 측 언론기관도 언제까지고 대통령 편에 서있을지에 대한 보장이 없다.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내는 행위가 아닌가.(기사 링크)

이 생각엔 변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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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검찰은 한국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외국 언론인을 기소한 첫 사례를 남겼다. 재판부는 그 외국 언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첫 사례를 남겼다.

조 선일보에 기사를 쓴 선임기자는 기소되지 않았고 가토 전 지국장은 기소되었다. 산케이 신문 기사를 최초로 국내에 소개한 조갑제 씨는 문제 없고 해당 기사를 번역한 뉴스프로 기자는 압수수색 당했다. 검찰은 수 많은 외국 언론, 특히 미국 언론이 쓴 많은 기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나 산케이에 대해선 그러했다. 왜 그랬는지 의문을 던지면 ‘가토는 만만했다’, '산케이는 만만했다' 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은 여전히 진실을 알 수 없다. 

산케이 신문 전 서울 지국장, 가토씨의 무죄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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