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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삶이 두렵거든 인도로 가라

삶이 두렵거든 인도로 가라

조현 2015. 10. 19
조회수 252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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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최남단 케냐쿠마리에서 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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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국부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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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자식들 먹고사니즘 걱정이 많다. 걱정은 열악한 고용 생태계만이 아니다. 더 문제는 자식들이 헝그리정신이나 절박함이 없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그들대로 고민이 깊다. 온실에서 공부만 강요당했는데, 나와 보니 정글이다. 그래서 막막하고 불안하고 두렵다고한다.

 해병대에 간 조카가 19일 제대했다. 몸은 물 찬 제비처럼 가벼운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무거워 보인다. 그 나이 또래의 불안과 두려움은 길을 찾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는 증거다. 그래서 대학 복학 전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해외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조카에게 권유한 게 홀로 인도 장기여행이다.

 요즘 인도는 가장 뜨는 나라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등 주요 기업 수장들에다가 실리콘밸리 창업자 3분의 1이 인도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도행을 권하는 건 그 때문이 아니다. 인도에서 그런 두뇌들보다 거스름돈 하나도 제대로 계산 못하는 구멍가게 주인들을 더 쉽게 만난다.

 20세기 최고의 대중음악가인 비틀스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젊은 날 영적 탐구를 위해 인도로 떠났듯 꼭 그런 순례를 하라는 것도 아니다. 선진국을 다 두고 인도행을 권하는 것은 인도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여서다. 인도는 예측 불가능한 곳이다. 어디나 인파와 거지와 소와 돼지와 개가 어우러진 무질서와 혼돈의 나라다.

 10여년 전 1년간 신문사를 쉴 때 내가 간 곳도 인도였다. 인도에 간다고 하자 주위에선 “도 닦으러 가냐”며, 현실도피쯤으로 여겼지만, 나를 ‘관념의 세계’에서 ‘현실’로 옮겨준 곳이 인도였다. 1980년대 대학 시절만 해도 해외여행을 엄두도 못 내던 때라 내게도 40에 떠난 인도행이 여행다운 첫 여행이었다. 한국에서 온 얼뜨기 기자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땅에서 홀로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말만 하면 주위에서 척척 가르쳐주고 챙겨주는 ‘가상 세계’에서 벗어나 드디어 내 한몸 감당하기가 힘든 ‘실상의 세계’에 들어갔다. 거기서 드디어 요즘 세계가 인도인들에게 주목하는 ‘주가드’(Jugaad)가 안에서 깨어나는 걸 느꼈다. 힌두어에서 나온 주가드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여행 중에 가장 많이 만난 이들이 유대인들이었는데, 이슬라엘 군대를 마친 청년들이 인도를 여행하며 생존 본능을 깨우는 게 인상적이었다. 주변머리 없는 나도 3등칸 기차에 끼어 50여시간을 달릴 때는 1층 침대 아주머니의 큰 엉덩이를 넉살 좋게 비집고 들어가 몇시간씩 수다를 떨며 앉아 있기도 했다. 오지에서 차편을 구하지 못했을 때는 티코 같은 경차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벼랑길을 도는 23명 중 한명이 되기도 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버려야 할 물건들을 주고 한 끼를 잘 얻어먹기도 했다.

 그때 무식하게도 한국에서부터 환전한 여행비용 전액을 전대로 만들어 배에 차고 다녔는데, 인도 터줏대감들은 온갖 사기꾼들 얘기와 함께 “당신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리고 전대만 차지하면 오지에선 평생 끼니 걱정 않고 살겠다”고 겁을 줬다. 초보 여행자를 쫄게 하기에 충분한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았다. 릭샤꾼에게 몇백원, 몇천원짜리 사기야 다반사로 당하지만 신세계를 경험하려면 백번쯤은 당해도 좋을 것들이었다.

 인도 최남단 카니아쿠마리의 아슈람에 가니 모디 인도 총리가 멘토로 꼽은 힌두개혁가 비베카난다(1863~1902)의 글귀가 쓰여 있었다. ‘두려움은 나약함의 상징이자 사악함이다’라는 것이었다. 두려움을 포근하게 안아 녹여주기보다는 험한 인도양으로 내모는 것 같아 가혹하게만 여겨졌다.

 하지만 종이호랑이도 바라만 보고 있노라면 더욱더 두려워진다. 다가가 만져보아야 종이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배도 항구에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지만 폭풍우 치는 바다가 무서워 묶어만 둔다면 더 이상 배가 아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 인도로 가라. 그 아수라조차 얼마나 살 만하고, 얼마나 해야 할 일로 가득한지 신세계가 펼쳐진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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