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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세월호 대변인 유경근씨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유가족이고 예은아빠입니다" [리멤버 0416-①] 세월호 대변인 유경근씨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14.10.15 22:03l최종 업데이트 14.10.15 22:03l이희훈(leeheehoon)유성애(findhope) 대한민국은 6개월째 '4월16일'에 멈춰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이제 거리에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발생 6개월을 맞아, 유가족과 실종자가족,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편집자말] "예은이가 쓰던 책상, 배(세월호)에서 나온 물건들, 하나도 안 버리고 집에 그대로 뒀어요. 아이 방에는... 지금까지 딱 두 번 들어갔는데 5월쯤 장례식 끝나고, 혹시 침대에 머리카락 한 올 있을까 싶어 가봤어요. '(예은이를 화장하기) 전에 머리카락이라도 한 움큼 잘라놓을 걸, 그거라도 갖고 있다 쓰다듬으면 그것도 예은이 만지는 건데…' 그런 후회를 하면서 (예은이) 방에 갔는데, 아무리 이불을 들추고 해도 한 올도 없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던 유경근(45)씨의 목소리가 잠긴 것은 딱 두 번이었다. 지난 4월 23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로 돌아온 딸 유예은(18)양과,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들에 관해 언급할 때였다.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됐고, 눈물도 잔뜩 고였다. 그러나 그 눈물은 100여 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끝내 흘러내리지 않았다. 지난 13일 오후,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 미술관에서 유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어렵사리 성사됐다. "죽어서 딸 곁으로 갔을 때 떳떳하게 보고 싶다"는 이유로 참사 초기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대변인을 자임했던 유씨는, 9월 말부터 지금껏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그는 "그간 정치인들이 유가족을 이용해도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왔는데, 언론이 마치 유족들을 정치인 대하듯 하는 게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족 연루 폭행 사건 언론보도 보면서 "언론 기피증 생기기도..."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오는 16일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됐다. 유씨는 유가족들의 상황에 대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각오는 변함없지만, 날짜가 길어지면서 심리적·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 잠시 자체적으로 치유와 회복을 하며 숨을 고르는 단계이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한 유족 아버지는 최근 병원에서 말기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이지만 소중한 딸을 잃은 아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대변인이라는 역할 탓에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유씨는 최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한동안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진심으로 죄송하다, 유족이 연루된 폭행사건 후 자중하자는 뜻도 있었고 이후 언론 보도 및 방향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아 일종의 기피증이 생기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충고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저를 예은아빠가 아닌 프로정치인처럼 대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며 "저나 위원장 모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다,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공인' 취급 받을 일은 평생 없었을 평범한 서민들"이라 썼다. 또 "제가 아무런 계산 없이 하는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에 무슨 큰 의미나 복선이 있는 듯 해석하고, 심지어는 그걸 강요하는 듯 보이는 언론이 너무나 어색하고 두렵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15일 현재 국회 본청 앞(96일째)과 광화문 광장(94일째), 청와대 앞(55일째)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한편 매일 대학 학생회·지역 단체 등에 직접 찾아가 국민간담회를 열고 있다. 유씨는 "앞으로는 아이들이 있는 안산 분향소를 중심으로 국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며 "저희도 지치지 않을 테니, 부디 국민들도 끝까지 지치지 말아주시라"고 부탁했다. 15일은 예은이의 18번째 생일날이다. 유씨는 딸의 봉안함이 안치된 평택 서호추모공원으로 가기 앞서 이날 오전 1시께 딸에게 쓴 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아빠 딸로 태어나 17년 동안 자랑스러운 딸로 살아줘서, 영원히 예은이 아빠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 또 아직도 4월 16일이라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더니 매일 쓰러져서, 안산으로 이사 와서… 모든 게 미안하다"고 썼다(관련기사: "그간 내 딸로 살아줘서 고마워"). 다음은 유경근씨의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말기암 판정 등 한계 다다른 유족들... 안 지칠 테니, 국민들도 힘내 달라"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 지난 9월 30일 여야의 3차 합의안이 나왔지만, 유족들이 주장해온 것과 거리가 있다. "언론들은 '거부'와 '찬성', '조건부 수용' 중 분명한 걸 원하는데 사실 애매하다. 한편으론 앞서 두 번 거부를 한 상태라 국민들과 유가족 내부로부터 받는 부담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끌려가듯 결정할 수는 없잖나. 현재 공식적이고 정확한 입장은 3차 합의안에 대한 '거부'가 맞다. 그러나 백지부터 하자는 게 아니라, 향후 재논의하기로 한 '특검후보 추천에 대한 유가족 참여'를 애초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약속했던 대로 합의문에 담으란 거다." - 지난 6일 대검찰청이 발표한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수사결과와 10일 감사원이 내놓은 최종 감사결과에 대한 평가는? "검찰 결과에는 해경 차장이 최고 처벌 대상으로 돼 있던데, 제가 봤을 땐 그 윗선인 청와대나 해경청장은 빼놓고 한 거다. 수사를 한 후 '혐의가 있다', '없다'도 아니고 아예 배제를 하고 시작한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사전에 범위를 정해놓고 한 '꼬리 자르기 식'이 아닌가. (입건된) 사람 숫자만 몇 백 명이라고 했을 뿐 해경청장도 아닌 해경차장까지만 딱 해 놨으니 성역 없이 수사했다고 보기 어렵다(※실제로 감사원·검찰 발표에는 '청와대'에 관한 언급이 없음-기자 주). 저는 그래서 더욱 진상조사위와 특검의 필요성이 부각됐다고 본다." -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연루 사건으로 여론의 온도가 달라진 것 같다. 최근 유가족이 직접 '찾아가는 국민간담회' 등을 하고 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지금까지 해온 간담회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다. 하루에도 10건 이상 신청이 들어와서 전부 소화하기가 벅찰 정도다. 주로 세월호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신청하고 있는데, 지역이나 구성원에 따라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학 간담회라고 해도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온 '수업시간'에 초청받아 가면 더 민감한 질문들이 나온다. 그래도 우리는 덜 우호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들과 만나 유족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노력 중이다." - 지난달 말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이 안산 분향소에서 영정을 뺐다. 유 대변인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 두 유가족 대책위가 갈라진 상황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건에 대해 한 번도 제 입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 사실관계가 어쨌건 내용이 자극적이라, 자칫 대리기사 건과 마찬가지로 저희가 말하려고 했던 본질과 어긋나서 보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가 당시 착각해서 얘기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고, 여기에 일반인 희생자 유족에 대한 비하나 폄훼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반응은 피해자 가족끼리 힘을 합쳐야 하는데 아쉽다는 정도였다." - 참사 후 6개월이 흘렀다. 안산분향소 조문객이 하루 300명 정도로 감소한 상황이다. "사실 (잊히는 건) 물리적으로 당연한 일 아니겠나. 우리에게 6개월은 길지 않았지만 다른 분들에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저희가 불가피한 상황 탓에 서울에 자주 가면서 여기(안산분향소)를 많이 비웠다. 그러나 앞으로는 분향소 중심으로, 안산시민·국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활동을 고민 중이고, 이번 주말 유가족들 간의 워크숍을 거친 후 곧 그런 내용을 알릴 계획이다. 유족들은 6개월이 다 돼가면서 심리적·육체적으로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 지금까진 '이 상황에 무슨 병원이냐'면서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요즘 병원 가는 횟수가 늘었다. 특히 '아빠'들은 집안에서 가장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버티다 보니 요즘 부쩍 우울해해서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별법 논란이 너무 길어지면서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것 같아 고민이다. 우리 아빠들 중에는 참사 이후에 없던 병이 생겨서 얼마 전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분도 있다. 참사 전에 그런 징조가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전혀 없다가, 최근에 몸이 좀 이상해서 가봤더니 말기 암이었던 거다. 저희가 보기엔 뻔하다. 암이라는 게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았을 때에는 굉장히 빠르게 증식하니까. 한 달 남았다고는 하는데…." "딸 사진이 너무 생생해서, 눈물이 나 보질 못 한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 유족들끼리 함께 지내면서 친척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하던데. "친척보다 가까워진 게 아니고, 그냥 유가족 밖에 없다. 내 동생들이나 조카, 이모들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얘기지만, 제게 '괜찮냐'고 신경써주고 물어봐주는 게 너무 힘이 든다. 특히 우리 집은 명절이나 아이들 생일 때 가족모임을 자주 하는 편인데, 그게 너무나 부담이 되더라. 그렇다 보니 잘 안 보게 되고 더 미안해지고…. 결국 이런 얘길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유가족들과 제일 가까워졌다. (세월호 참사로 형제·자매를 잃은) 아이들도 쉽지 않다. 엄마아빠가 이 일 때문에 항상 매달려있고 고생하고 우는 걸 보니까, 언론을 통해 어떤 상황인지를 아니까, 아이들이 대부분 이 일에 대해서 아예 언급을 꺼린다. 문제는 그렇게 속으로 참고 곪다보니 병이 생긴다는 거다. 그리곤 엄마들이 어쩌다 집에 와 음식을 해주면, '맛있다'면서 두 세 그릇씩 먹으니 엄마들 속이 얼마나 뒤집어지겠나. 또 요리를 해도 먹어줄 자식이 없는 엄마들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십대 형제·자매들이 '우리가 동생들을 챙기겠다'면서 팔을 걷고 나섰다. 지금까진 개인적으로 연락되는 사람끼리만 아이들 공부 시켜주고, 대신 돌봐주고 그랬는데 앞으로는 체계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다. 그렇게라도 서로 위로한다니, 우리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 최근 페이스북 등에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유가족이고 예은아빠'라는 글을 올렸다. 그간 언론 보도에 대한 억울함도 피력했는데. "그 글을 쓴 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재원 부대표가 분향소에 왔을 때였다. 그런데 당시 제게 기자들이 던지는 모든 질문이 같았다. '유가족과 여당 간에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했는데, 그 뒤에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냐'면서 전제를 깔고 있는 거다. 결국 제가 굉장히 폭발했다. 상갓집에서 오는 사람 막는 거 봤는가. 이유는 딱 하나다. 흘리는 눈물이 진짜건 아니건 우리 애를 위해 조문 왔다는 데 왜 막겠나. 오신 손님을 배웅하는 건 당연한 예의 아닌가. 그걸 두고 '위원장이 바뀌더니 뒤에 뭔가 있다'면서 아니라고 해도 믿지를 않기에, 그 글을 쓰게 됐다. 어쨌건 우리에겐 특별법을 만들어줄 사람들이다. 거기에 충실하게 했을 뿐인데 정치인들과 똑같이 취급하고 바라보는 게 기분이 나빴다. 사실 우리도 국회의원 만나면 '특권' 얘기 나오겠다 싶어 위축이 되곤 한다. 그래도 진상규명을 해야 되니 어쩔 수 없이 상처를 겪어내는 거다." - 15일은 예은이 생일인데, 예은이가 제일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 "예은이가 쓰던 책상, 배(세월호)에서 나온 물건, 하나도 안 치우고 집에 그대로 다 두고 있다. 아이 방이 2층인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애 엄마는 늘 예은이 방에서 자는데, 저는 지금까지 딱 두 번 가봤다. 못 가겠더라. 한번은 장례식 끝나고, 혹시 아이 침대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있을까 싶어 갔다. '(예은이를 화장하기) 전에 머리카락이라도 한 움큼 잘라놓을 걸, 갖고 있다가 쓰다듬으면 그것도 예은이 만지는 건데…', 그런 후회를 하면서 (예은이) 방에 갔는데, 아무리 들춰봐도 한 올도 없더라. (유골함이 안치된) 추모공원도 삼우제 때 한 번 가보고 못 가봤다. 그땐 '최소한 특별법이라도 만든 뒤 갈게, 진상규명 준비 해 놓고 갈게' 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그리고 보통 우리 엄마아빠들이 휴대폰 배경화면을 아이 사진으로 해 두는데, 저는 아이 사진으로 해놓으니 도저히 못 보겠더라. 애들 사진…보고 싶은데 보면 안 된다. 보면… 어… (눈물을 애써 참으며) 그냥 울게 된다. 초기에 제가 '예은이 없는 상황을 이겨낼 자신은 없고, 적응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 아이가 너무 생생히 떠오르니까. 전에는 그냥 사진 한 장이었던 것이, 지금은 그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표정을 했는지가 다 기억 나니까 미치겠는 거다. 사진을 보면 그 속에서 애가 살아 움직여서… 도저히 못 보겠다." -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는 10명의 실종자들이, 진도체육관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남아있다. 유가족들이 종종 진도체육관을 찾는다고 하던데. "(한숨) 하…. 저도 가능한 한 한 주에 한 번씩은 내려가려고 하는데, 사실 유족들이 진도에 가는 게 쉽지 않다. 너무 힘들다. 그 분들 앞에만 서면 죄스럽거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정말 필요한 건 아이들을 찾아오는 건데 그걸 저희는 못 하니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분들이 그 분들이다. 그런데 특별법을 만들자면서 '인양'을 얘기한다? 이건 위선이다." - 사실상 장기전으로 접어드는 상황인데. "유족들 각오는 변함없지만 주변 여건이나 심리·육체적인 한계를 부정할 수가 없다. 저희는 그간 경험에 비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최소 2~3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자체적인 치유와 회복 등 지금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가장 힘든 건, 유가족들이 가는 이 길이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잘하는 건지 매번 불안하다는 거다. 결국 '약속'이다. 참사 후 정치인, 대통령,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약속했지 않나. 지키기 위해 하는 게 약속인데 지금 그런 사람이 없다. 최선을 다하고서도 못 지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심지어 약속을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애초부터 안 지킬 걸 예상한 '사기'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당시에 내가 어떤 약속을 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뭘 했는지 이제 되돌아봐야 한다." -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유족들은 늘 내일 더 나아지길 바라며 잠들지만 매일이 어제와 같다. 11월 1일이 (참사 후) 200일이라던데 저희에겐 200번째 4월 16일 뿐이니까. 그 동안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세 번째 계절이 왔는데, 여기까지 온 건 절대적으로 국민들의 힘이었다. 스스로 돌아볼 때 유가족들이 부족한 점도 있고, 잘한 점도 있지만, 국민들께는 수백 번 절을 드려도 부족함이 없다. 많은 분께서 저희에게 '지치지 말고 버텨 달라'고 말하시는데,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부디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세월호 같은 해상참사가 짧게는 10년, 20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지 않나. 지금 그대로 가면 단순 계산해도 20년 후 참사가 또 재발된다. 그 땐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 손자들이 (희생의) 주인공이 되는데 그건 막아야지. 이번에 그걸 저희가 너무 뼈저리게 알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다. 함께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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