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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종이폭탄' 그 이름 대북전단


[친절한 통일씨] 대북전단으로 본 남북관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10.26 21:42:04 트위터 페이스북 삐라. 순화해서 전단이라고 부른다. 2007년 경찰이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 규칙을 폐지해 없어졌지만 누구나 한 번쯤 북한에서 뿌린 전단을 발견해 경찰서에 신고하면 학용품을 받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심리전의 하나인 전단살포는 한국전쟁은 물론 휴전 이후에도 남북이 서로 살포하면서 자극해왔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자 국가차원의 전단은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최근 일부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남북관계가 어수선하다. 지난 25일 한 보수단체가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려 하자 지역주민이 들고 일어나 반대했다. 앞서 지난 10일 연천 지역에서는 대북전단으로 총탄이 오가는 위기상황까지 갔다. 종이에 불과한 전단이 무엇이기에 전쟁 일촉즉발 상황까지 만들어 내는가. 전단이 어떤 의미이고 대북전단을 막을 방법은 없는가. 전단의 의미와 역사 그리고 활용 전단을 우리는 '삐라'라고 부른다. '삐라'는 영어 'bil'에서 유래된 말로 일본어로 '비라'라고 발음, 우리에게는 '삐라'가 더 익숙하다. 하지만 정확한 영어식 표현은 'leaflet'이고, '전단'으로 순화해 부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삐라'를 '전단, 혹은 전단의 북한말'로 정의한다. 합동참모본부가 발행한 '합동.연합작전 군사용어사전'에는 '심리전의 한 수단으로 항공기나 기타 수단에 의해서 적지에 살포하는 삐라'라고 설명한다. 여기서는 '삐라'라는 잘못된 일본어 표기가 아닌 우리말로 순화된 '전단'으로 통칭하고자 한다. ▲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을 상대로 뿌려진 유엔군의 전단. [자료출처-'한국전쟁기 맥아더사령부의 삐라 선전정책'(이상호, 2011)] 독일 언론학자 베르너 파울슈티히는 전단을 두고 "다양한 텍스트와 구성양식을 매우 상이한 이용 방식 및 기능으로 묶어주는 매체"라고 성격을 규정, △간결함, △구체성, △감각적인 명료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체화, △상호대조, △빠른 생산성, △저렴한 가격, △임시적 성격, △호소적인 구조, △저장 기능, △통제 불가능성 등의 특징을 지녔다고 분석했다. 즉, 전단은 장문의 글이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단번에 자극해 국민적 동요를 불러오게 하기 위해 매우 간단히, 그리고 자극적이고 호소력 짙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 그래서 시각적 효과를 위해 그림과 사진을 활용, 이를 두고 전쟁미술로 분류하기도 한다. 전단은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대체로 일반전단, 화폐전단, 안전보장증형 전단, 벽보 및 포스터형, 연 전단, 수기형 전단, 플랜카드와 에드벌룬, 신문.잡지.포스터.패러디형 전단 등으로 나눈다. 내용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는데, '호소형 전단'은 읽는 이에게 호소하는 형식의 그림과 문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읽는 즉시 내용을 즉각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주로 활용한다. '뉴스형 전단'은 객관적 시각에서 사실만을 전달하는 내용을 담아, 마치 신문을 읽는 기분을 준다. '전술형 전단'은 주로 전쟁 당시 군인을 선동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작되는데 '안전보장증형 전단'이 이에 해당된다. ▲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살포한 전단. [자료출처-koreanwar-educator.org(좌), 위키피디아(우)] 전단은 대체적으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규격으로 제작되는데, 한국전쟁 당시에는 10x8cm 크기에서 A4용지(26.5x19cm)까지 6종류의 크기로 제작됐다. 최근 살포되는 대북전단도 이와 비슷한 크기이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물에 젖지 않는 얇은 폴리비닐로 만들기도 한다. 전단살포 방법도 다양하다. △비행기에 탑재해 투하하는 지폭탄(종이폭탄), △헬기나 수송기로 전단뭉치를 공중에서 살포하는 방법, △대포에 전단을 넣어 살포하는 지폭탄, △풍선 등 기구에 매달아 부력을 이용한 방법, △연이나 하천 및 해류를 이용하는 방법, △차량이나 직접 인편을 통한 방법, △인터넷 등 사이버상에서 살포하는 방법 등이 있다. 전단은 총력전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2차 세계대전부터 전쟁도구로 쓰였다. '전쟁 당사자가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전쟁에 임한다'는 의미의 총력전은 독일 참모차장인 에리히 루덴도르프가 처음 전쟁개념으로 도입했다. ▲ 전쟁이 끝난 뒤 남북은 각각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했다. 사진은 북한이 살포했던 대남전단.[자료사진-통일뉴스] 총력전의 개념에는 심리전도 포함되는데, 심리전은 '대상 청중의 문화심리적 성격과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이용하여 주로 정부나 정치적 운동과 같은 후원조직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전략과 전술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즉, 심리전이 도입된 2차 대전부터 전후방이라는 전선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적국의 민간인들에게 전쟁에 관한 선전전을 전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단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에도 다양한 내용의 전단이 뿌려져 전단은 심리전의 상징이 됐다. 전단은 2차 대전에 처음 등장했을까?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던 16세기 당시 독일 지역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예수와 교황의 발에 입을 맞추는 왕들의 모습이 나란히 그려진 그림이 뿌려졌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전단이다. 한국전쟁, 전단을 통한 심리전 한반도에 전단이 등장한 것은 1945년 해방에 즈음해서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단이 대대적으로 뿌려졌다. 미 육군 극동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1947년 미 육군의 심리전부대 해체에도 불구하고 극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에 심리전과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부서에서 1950년 6월 28일 비행기로 전단을 처음 살포했다. 이후 1951년 8월 심리전과는 작전참모부에 배속되면서 심리전부로 확대, 미8군 심리전부, 제1방송, 전단부대를 지원.감독했다. 이와 별도로 1950년 미군은 육군 전술정보파견대를 파견, 11월 4일 제1확성기.전단중대로 명칭이 변경됐다. 그리고 1955년 2월 21일 해체될 때까지 전술심리전 작전을 담당했다. ▲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6월 28일 유엔군이 투하한 첫 전단. 유엔군은 이날 약 1천2백만 장의 전단을 뿌렸다. [자료출처-'한국전쟁기 맥아더사령부의 삐라 선전정책'(이상호, 2011)] 전쟁발발 직후 미 극동사령부 심리전과는 6월 28일 약 1천2백만 장의 전단을 살포, 1950년 6월부터 5개월 간 뿌린 전단 살포양의 1/10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처음에는 남한 군인의 항전을 격려하고, 남한 주민에게 유엔과 우방국이 한국을 돕는다는 내용이었지만 7월 17일부터 북한군을 대상으로 전단을 살포했다. 미군은 1953년 휴전까지 B-29폭격기를 이용, 약 25억 장 이상의 전단을 살포했다. 북한군은 어떠했을까. 당시 김일성 수상은 "우리의 정의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널리 선전해야 하며 모든 것을 미제와 이승만 역도를 격멸 소탕하는데 바치도록 인민들을 고무 격려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북한군은 전단제작의 주체가 매우 다양했는데, 조선인민군, 조선인민군 전선사업부 문화훈련국,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조선인민군 총사령부 등이 맡았다. 중국은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부가 일임했다. 주로 공산주의 체제선전, 정치선전, 유엔군 및 한국군 전의 상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북은 각각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전단살포의 양상은 변화됐다. 군이 담당하던 전단살포는 민간이 주도하는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특히, 대북전단의 경우 일부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가 중심이 됐다. 탈북자 단체들이 왜 전단을 살포할까. 이들이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은 2003년을 기점으로 한다는 게 중론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4년 남북 장성급 회담을 통해 전단살포 행위가 금지되자,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는 "정부가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을 기점으로 탈북자의 수가 급증, 나름대로 체계를 갖춘 조직을 만들자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할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보수단체와 연합전선을 구축, 대북전단 살포 횟수와 분량이 급증했다. ▲ 2008년 12월 통일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부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자 단체는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기독북한인연합'(대표 이민복), '탈북인단체총연합'(대표 한창권) 등이고,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대표 최우원) 등 보수단체들도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대북전단을 살포하던 초기에는 고무풍선을 이용했다. 풍선제작 기술 부족으로 당시에는 어린이 장난감용으로 사용되던 고무풍선에 헬륨가스를 넣어 몇 장의 전단만을 달아 날려 보냈다. 하지만 2005년 12m의 대형 비닐에 수소가스를 넣는 화학식 대형 풍선을 개발, 수 만장의 전단을 달아 보낼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타임조절 방식을 도입, 설정방식에 따라 단.중.장거리로 나누고 풍속 10m/s인 경우 4시간 정도면 평양에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제갈량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전단은 접경지역 일대에 뿌려지기도 해 대북전단살포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 보수단체들이 살포한 대북전단의 내용. [자료사진-통일뉴스] 대북전단 살포비용은 공공연한 비밀로 부쳐져 있다. 초기 고무풍선의 경우 1개 당 고무풍선 130원, 헬륨가스 8백 원으로 알려졌다. 현재 방식의 풍선은 수소가스 1만 8천원, 비닐 4천 원, 타이머 2천 원 등 약 13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풍선 개당 5백여 만원으로 책정하기도 한다. 이런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가. 초기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이 지원했지만 현재 지원을 끊은 상태이다. 그리고 국정원도 지원했지만,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국무총리실과 안전행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단체에 2012년부터 민간경상보조사업 명목으로 3년간 4억여 원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국무총리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대북전단 지원처가 어디든 일단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단체들은 현재 개인 후원자가 교회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지역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이유가 후원금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이들이 뿌리는 전단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주로 군인을 상대로 하는 전술형, 안전보장증형이 아니라 주민을 대상으로 한 뉴스형, 호소형이 대부분이다. 남한의 경제체제 선전, 북한 정권 부당성 등이 주를 이룬다. 그림보다는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자극적인 모습으로 희화하는 사진 등을 담고 있지만, 가독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 지난 25일 보수단체인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이 살포하려 했던 대북전단. [자료사진-통일뉴스] 대북전단 살포, 막을 방법 없나 북한은 대북전단을 두고 반공화국 모략행위로 규정,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10월 초에는 연천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대북전단은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단살포는 남북간 오랜 골릿거리 중 하나였다. 이에 남북은 상호 간 전단살포 금지 합의를 여러 차례 해왔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하면서 '상호 중상, 비방 금지'에 대해 합의했다. 이후 1991년 1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합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한다"면서 전단 등을 포함한 도구를 이용한 상호 간의 비방 중상 금지를 명시했다. 하지만 공식적이고 실질적인 합의는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이뤄졌다. 당시 남북은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 전단 등을 통한 모든 선전활동을 중지했다. ▲ 2012년 10월 정부는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한 사례가 있지만 현재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근거가 없다고 강조한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러나 이는 당국간 전단살포에 국한된 내용이다. 즉, 탈북자 단체 등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두고 정부는 대응방안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다. 정부는 남북간 전단 등 상호 비방 중상 금지 합의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자제요청만 할 뿐이다. 물론 이들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법적으로 제재하기 위해 고심을 한 흔적은 있다. 2008년 범정부 대책회의를 열고 수소가스를 활용한다는 점에 착안,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을 검토했지만 마땅한 근거조항을 찾지 못했다. 당시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전단 살포는 남북 합의 이행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법적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2009년 통일부는 이들 단체가 북한 화폐를 풍선에 담아 보낸다는 점에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검찰은 내사종결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항공법 위반 지적도 있었지만 풍선은 초경량 비행장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국토교통부의 해석으로 법적 제재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은 대북전단 살포가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라며 쓰레기 투척행위로 규정, 경범죄로 이들 단체를 고발해 주목된다. ▲ 북한이 지난 2012년에 살포한 대남전단. [자료사진-통일뉴스] 군은 어떠한 반응일까? 일단 군 당국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 군부의 항의에 대응만 해왔을 뿐이다. 심지어 2010년 11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을 계기로 김포, 철원, 연천, 북송 등 4곳에서 약 40만 장의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이에 북한도 대남전단 살포를 재개, 지난 3년간 경기도 파주, 강원 강릉 등 일대에서 약 3만여 장의 전단을 수거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 지난 25일 파주 임진각에서 보수단체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이 대북전단을 살포하려 하자 파주 지역주민들이 강력 저지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현재 한반도는 가히 전단이라는 종이폭탄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종이전쟁은 국가가 아닌 탈북자 단체 등 민간이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법적 제재 불가능 입장이다. 지난 25일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낸 건 지역 주민들이었다. 결국, 종이전쟁을 막는 것은 평범한 국민의 몫인가. 대북전단으로 총탄이 오간 상황에 이르렀지만 국가는 여전히 팔짱 끼고 불구경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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