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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7일 화요일

외래어 남발하는 공공기관, 이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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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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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2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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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8.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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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회 '제주 도시·교통 문제 연구회', 28일 정체모를 토론회 개최

▲ 제주도의회가 26일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
▲ 제주도의회가 26일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

제주도의원들의 연구단체 중 한 곳인 '제주 도시·교통 문제 연구회'가 오는 28일 희안한 명칭의 토론회를 개최한다.

토론회 명칭은 '일천백거리(1100로)의 에스플러네이드 조성연구 중간보고회 및 토론회'다.

일단 '에스플러네이드'에 관한 토론회라는 점만 유추해 볼 수 있을 뿐, 토론회 명칭만 보면 이게 대체 무슨 내용으로 연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이 '에스플러네이드'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없다는 데 있다. 외래어 사전에도 없다. 이에 '다음(Daum)' 검색창을 통해 찾아봤더니 싱가포르에 있는 건축물을 가리켰다. 그 외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에스플러네이드'가 이 건축물을 가리키는 건 아닐 것 같아, 영문 표기인 esplanade로 검색해봤더니 '산책로, 빈 터'를 뜻하는 영단어였다.

이번엔 '네이버(Naver)'에서 검색해보니 '성채와 시가지간의 평탄한 빈 터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론 산책길이 되는 평탄한 장소를 말한다'고 지식백과에 기재돼 있는 걸 확인했다. 토목용어사전에 등록돼 있는 단어인 것을 보면 건축용어인 셈이다.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도시 빈 공터에 조성된 산책로'라는 의미다. 굳이 우리말로 옮겨 적자면 '도심 산책로' 쯤 될 것 같다. 심지어 esplanade라는 단어의 정식 발음은 '에스플러네이드'가 아니라 '에스플러나드'다. 외래어 사전에도 없지만 만일 외래어로 쓴다고 할 경우, 이 표기법도 틀린 셈이다. 그저 단순히 건축학계에서 쓰이는 말이다 싶어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인도 잘 알지 못하는 건축용어(모든 건축인들도 이 용어를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를 보란듯이 토론회 명칭에 사용한 것을 보면 뭔가 특별해 보이긴 하다. 허나, 어떤 내용인지 유추할 수 없는 이런 명칭으로 토론회를 연다는 건 '뭔가 있어보이고 싶은' 것을 은연 중에 나타낸 것일 뿐, 행사 주최자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배척할 수밖에 없다.

헌데 그 행사 주최자는 다름아닌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에서 버젓이 외래어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들이미는 토론회라니. 아는 사람들만 모이라는건가 싶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에스플러네이드'라는 용어도 낯선데, 1100로를 '일천백거리'라고 부르는 것도 해괴하다. 제주도민 누구도 1100로를 '일천백거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대체 이 단어는 어디서 온건지도 의아스럽다.

이날(28일) 제주도의회에서 배포한 자료를 보면, 연구회는 이번 토론회를 가리켜 "제주시 노형오거리 '교통개선 입체화 건설 사업'과 연계된 도시공간구조의 남북측(노형오거리~한라수목원)에 대한 보행자 중심의 거리체계 조성에 대한 계획이 필요해 일천백거리 주변 소규모 녹지공간과의 연계 강화를 통한 지역민의 생활편의성 증대 및 노형동 도심가로의 경관적 요소 조성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중간보고회 겸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보도자료 설명대로라면 노형오거리에서 한라수목원 방면으로 이어진 1100로 중 녹지공간을 '에스플러네이드'로 조성하겠다는 것을 연구한 것이고, 이에 대한 중간보고회 겸 토론회를 갖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강상수 의원(국민의힘, 정방·중앙·천지·서홍동)은 "1100로와 노형오거리를 연계해 보행자 중심거리를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도내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데에 조금이라도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낯선 용어 사용에 대한 의견을 묻고자 해당 보도자료를 배포한 환경도시위원회 전문위원실에 전화했으나, 담당자가 연차를 냈다며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없다고 답했다.

토론회는 홍건축 홍광택 대표가 '일천백거리의 에스플러네이드 조성연구' 중간보고를 발표한 후, 박정근 전 도시계획위원장이 '사람·제주 & 에스플러네이드'라는 주제 발표로 진행된다. 이후 홍인숙 의원(연구회 부대표)이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한다. 토론자엔 제주대학교 이성호 교수, 한라대학교 양수현 교수, (주)인트랜 조항웅 대표, 제주특별자치도 모지원 경관디자인팀장이 참석한다.

결국 이런 형태의 토론회는 그 단어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만 모이는 자리가 될 뿐, 이게 과연 도민을 위한 '토론회'가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얼마든지 '도심 산책로'라는 한국어로 쓸 수 있는 단어다.

스스로를 '하나의 공공기관'으로 칭하는 도의원들이 개최한다는 토론회 명칭에 굳이 이런 사전에도 없는 외래어(외국어)를 사용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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