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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한반도 최초의 주권적 시민이 태어났다"


[김상준-유종일 대담 ①] "3.1운동, 4.19혁명 넘는 세계사적 사건"
임경구 기자 곽재훈 기자
2016.12.16 01:55:56
'박근혜'로 인격화된,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과 그 권력을 떠받친 적폐 구조가 농성 중인 청와대를 매주 촛불이 에워쌌다. 탄핵이라는 제도화된 단두대에 시민들이 제 손으로 권력자의 목을 올렸으니 혁명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다.

표면은 평화로우나, 촛불 시민들은 기실 어떤 제도도 감당 못할 불덩어리다. 청와대를 태우고 국회를 태운 불덩이가 이제 헌법재판소를 절단낼 기세다.

세월호 때 그랬듯이, 이제 그만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박근혜를 버리고 '제2의 박근혜'를 도모하는 기득권의 교언이다. 두 번은 통할 것 같지 않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이 불덩이가 소멸할까? 탄핵 이후, 광장의 촛불이 일상의 촛불 '직접민주주의'로 진화하도록 통로를 여는 이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주체는 시민이 될 것이다"라고. 

2003년부터 '시민의회'를 연구한 이론가 김상준 경희대 교수와 12일 출범한 '시민주권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대담을 2회로 나누어 싣는다.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이 대담을 진행했다. 
▲ 좌측부터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유종일 교수, 김상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정희 귀신' 묻고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할 계기" 

"세계사적 사건이다"(유종일), "4.19보다 대단하다"(김상준)고 입을 모았다.

김상준 교수는 "국가 권력의 핵심인 주권 문제를 가지고 대중이 집중적으로 움직였다는 게 놀라웠다. 이런 '주권적 대중', '주권적 국민'의 의지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특별했다"고 평가했다. 

유 교수도 "'우리가 주인이다'라는 주권자로서 승리를 경험한 것이다. 처음으로 주권적 시민이 한반도에 태어났다"고 평가했다. 

헌법재판소가 이런 촛불 민의를 뒤집어 엎는 판단을 하진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헌재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탄핵 이후의 개혁 운동으로 초점을 이동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표출된 국민적 주권 의지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이냐에 초점을 둬야한다"고 했다.

유 교수는 "'박정희 귀신'마저 깊이 땅속에 묻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계기가 왔다"며 "주도적 역할을 할 주체는 촛불 혁명 과정에서 탄생한 시민, 주권적 국민"이라고 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정치권은 개헌 문제로 갑론을박 중이다. 정치세력의 이합집산과 연결돼 정략으로 빠질 우려가 크다. 

두 교수 모두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주장의 강도는 "헌법도 안 바꾸는 혁명이 있냐"고 말한 유 교수가 더 강했다.  

유 교수는 "시민들 주도로 이뤄지고 정치권이 그에 따르겠다고 하는 개헌이 돼야 한다"며 "정치권에서 먼저 정략적으로 하는 것은 불순하고,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현실적으로 정치권이 개헌론에 손을 떼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며 "정치공학적 개헌은 실현되기 어렵고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개헌 실현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 "그런 문제를 넘기 위한 장치가 시민의회다. 초당파적으로 모여 아젠다 세팅이 되면 그걸 시민의회에 부치자"고 제안했다. 

두 교수 모두 직접민주주의의 틀거리에서 개헌을 논의하고, 정치권은 이를 수용하는 경로를 제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개헌을 비롯한 사회 개혁의 내용은 무엇이며 이를 직접민주주의의 형태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은 2부에서. 다음은 대담 1부 전문.

"촛불의 핵심은 국민의 주권적 의지" 

프레시안 : 탄핵이 가결된 직후인 지난 10일에 광화문에 있었다. 감상적일지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훗날 3.1 운동보다 위대한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더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있다. 4.19 이후 5.16 군사 쿠데타가 있었고, 1987년 6.10 항쟁 이후 대선 패배가 있었다. 그런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지만 '박근혜 체제'는 지속되고 있다. 황교안 총리나, 새누리당 친박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사드 도입, 국정 교과서 등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 재벌 등 '1%' 역시 회개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수가 기득권이나 권력기구를 꼭 붙잡고 농성을 하는 국면이다. 이런 탄핵안 가결 이후의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탄핵에 대한 전망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유종일 교수ⓒ프레시안(최형락)

유종일 : '3.1 운동보다 위대한 역사적 성취'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양파 껍질처럼 까도 까도 '이렇게까지?', '이런 것까지?' 하는 것이 계속 드러났다. 온 국민이 느낀 참담함과 자괴감은 '어떻게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항하는 청와대와 주저하는 국회를 이겨내고 우리 손으로 이룬 것이 있다. 수백만이 모였는데도 너무나 평화롭게 축제 분위기가 유지되고, 안전사고 하나 없이 해냈다는 이 놀라운 시민의 힘은 세계적인 사건이다. 그 속에서 국민들은 자부심도 느끼고 상처받은 마음도 위로받았다.  

박인규 이사장이 '기득권의 농성 체제'라는 말을 했는데, 생존을 위한 발악이다. 친일·수구·기득권 세력의 특권적 동맹 체제가 생존을 위해 발악하고 있고, 우리가 주권을 위임해서 '우리를 대신해 국정을 잘 이끌어 달라'고 한 국회는 권한도 원천적으로 제한돼 있고 이런 제한 때문에 효과적으로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압도적인 증거가 언론·검찰을 통해 이미 제시됐고, 국민 여론이나 국회 표결에서도 압도적 결론이 났음에도 헌재가 '기득권의 생존 투쟁'에 동조해서 심의를 지연시키거나 다른 의견을 밝힐 가능성이 상식적으로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결코 여기서 촛불을 놓은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매주 집회 나가자'는 게 아니라, 여러 형태로 전개해야 한다.

제가 그 중 하나로 하려고 구상하는 게 '시민 법정'이다. 네티즌들 정보력이 대단하지 않나. 청문회 출석 거부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소재 파악에도 거의 근접했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형태로 촛불의 압력이 계속돼야 한다.  

▲ 김상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상준 : 탄핵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될 것 같다. 지금 이상한 짓 하면 헌재가 날아간다. 저도 '4.19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10월 26일 1차 촛불집회부터 7차까지 총 750~800만 명이 참여했는데, 이렇게 거대한 대중이 정연하고 평화롭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특징은 대중의 관심이 정확하게 헌법의 핵심 문제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어떤 나라여야 하고, 어떤 대통령이어야 하고, 어떤 국회여야 한다'는 등 한 마디로 '나라 꼴이 어때야 하나'라는 문제에 정확히 집중해 있다.  

다른 나라 혁명사나 1987년 경험에서도, 보통 대중운동이나 대중집회에 참여하는 군중은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배가 고프다' 같은 즉자적인 부분이 컸지. 그런데 이번에는 국가 권력의 핵심 문제, 주권 문제를 가지고 대중이 집중적으로 움직였다는 게 놀라웠다. 이런 '주권적 대중', '주권적 국민'의 의지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부분에 계속 집중해 가는 것이 탄핵 민심, 촛불 민의를 이어가는 핵심일 것이라고 본다. 현재도 대통령은 '농성'을 하고 있고, 황교안 대행 체제가 어떤 트릭을 쓸지 모른다. 하지만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는 국민적 주권 의지가 표출됐다는 것이고, 그 의지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이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유종일  우리는 '우리가 주인이다'라는 주권자로서 승리를 경험한 것이다. 처음으로 주권적 시민이 한반도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헌재가 비상식적 결정을 하기는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촛불 민심이 탄핵을 주장할 때 정치권과 국회는 여러 이유를 대며 미적거리기만 했다. '탄핵 역풍'에 대한 우려도 있었고, 적당히 협상을 통해 편하게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탄핵을 부담스러워했다.

저는 처음부터 당연히 탄핵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부결될 가능성도 솔직히 우려하지 않았다. 탄핵은 분명히 될 것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87년 '넥타이 부대'나 그 이전의 학생운동 중심의 운동처럼 특정 집단이 중심이 된 것도 아니고, 남녀노소·세대·학벌 등 모든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가 주권자인데 어떻게 이 나라가 이 모양이냐'라는 데에 공감이 이뤄진 것이다. 이렇게 압도적 여론이 있다면 부결은 안 될 것이라고 본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서로 공유했던 결의와 감동과 승리의 경험이 가지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 힘을 무시하고서는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새누리당에서 '최순실에게 공천 받았다'고 지목된 사람조차 탄핵에 찬성한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제는 헌재를 압박하는 데 집중하고 다른 얘기는 하지 말자'는 주장이 있다. 그건 과하다.

프레시안 :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위원을 맡아야 하는데 좀 미적거리는 것처럼 보이고, CNN에 나온 영국 외교관이 '탄핵 인용은 안 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불안하다는 반응이 있다. 이른바 기득권 세력이 장난을 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김상준 : 저도 2차, 3차 집회부터 '주권적 국민이 출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때부터는 국회에서 탄핵 가결이 될 거냐 안 될 거냐에 대해 '어찌 돼도 문제없다'는 생각이었다. 헌재가 인용하거나 기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약 탄핵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면 국회가 날아갔을 거다. '주권적 국민'이 국회의 존재를 의문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기각하면 국민은 헌재를 의문시할 것이다. 헌재가 헌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지 의심할 것이고 그러면 헌재가 날아간다. 이 상황을 떠받치는 힘이 대단히 특별하기 때문에, 이 힘이 미는 대로 계속 밀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프레시안 : 촛불 민심의 위대한 승리를 말하기 전에, 지난 30년 동안 나라를 이끌어 온 엘리트들, 정계나 법조계, 언론계를 막론하고 이들이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성도 있다. 사실 변화의 기운은 2010년 지방선거 때 김상곤 교육감 당선이나 이듬해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때부터 느껴졌다. 이런 신호가 있었음에도 제도권 정치는 이를 제대로 받아 안지 못했다. 이번에도 제도권 엘리트들은 변화를 이끄는 데 아무 것도 못했다. 민심이 끄는 대로 갔다.  

유종일 : 반성이 일부 나올 것이다. 언론도 일부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 지상파 방송사들에서 뒤늦게 노조 파업, 사장 교체 등의 말이 나오지만 사실 그 동안은 전반적으로 다 부역한 것 아닌가. 이화여대 교수들이 한 일을 생각해 보자. 사실 교수 사회가 이렇게 저렇게 다 알 수 있었는데도 그냥 넘긴 것이고, 나중에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자체 정화할 힘이 없었다. 또 가습기살균제 사태 때 드러난 옥시 용역 보고서 조작 등 엘리트들의 타락, 프로페셔널리즘의 부재 때문에 권력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야당도 믿음을 주지 못했고, 유능하지 못했고, 불순했다. 그래서 야당은 확실한 대안이 되지 못했고, 그래서 비극이 연장됐다. 수구·친일·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대변자는 새누리당인데, 그 전신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박정희다. 반공주의, 즉 종북 프레임과 지역주의라는 두 가지를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해온 정치세력이다. 이들은 더 이상 우리나라 역사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게 다수 국민들의 생각이 돼서 이들의 존재 자체에 위기가 됐지만, 이게 처음이 아니다.  

사실 이미 차떼기 사건 때 한나라당은 존립 근거가 무너진 당인데 그걸 살려낸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미 없어져야 할 당을 박근혜 대통령이 '천막 당사' 하면서 살렸다. 지금 보니 최순실이 '가업'을 이어받아 살린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지금은 드디어 '박정희 귀신'마저 깊이 땅속에 묻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계기가 왔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도적 역할을 할 주체는 촛불 혁명 과정에서 탄생한 시민, 주권적 국민이지, 야당에 그 역할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김상준 : 탄핵이 헌재에서 어떻게 될까, 이른바 엘리트들이 어떻게 할까 이런 문제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이런 문제들도 새로 일어선 국민들의 주권적 의지라는 큰 힘 앞에 대면해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한 20대 박사과정 학생의 '헬 조선 담론'의 기원에 대한 논문을 읽었다. '헬 조선' 얘기는 크게 두 가지다. 정치적으로 반공주의, 지역주의가 판친다는 측면이 하나다. 또 하나는 경제적·생활적으로는 일부를 기득권화시키고 나머지를 '기득권 이념'에 흡수·포섭해내는 것이다. 정규직은 소수이고, 비정규직은 시키는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식이다. 문제는 이 비율이 2:8에서 1:9로 점점 악화되고 있다. 지금은 이런 시스템 전반에 대해 묻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프레시안 : '박근혜 끌어내리자' 여기까진 별 문제 없이 대부분의 동의가 된 상황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런 면에서 지금 과제는 민심이 제도정치권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가다. 지금 정치권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이니 개헌을 해야 한다'고 한다.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시민권·지방분권 강화'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있고, 유 교수가 준비 중인 시민주권회의나 김 교수가 주장해온 시민의회 등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는 흐름도 있다.  

일단 개헌 얘기부터 해 보자. 개헌이 새 체제를 만드는 데 유용한가? 유용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은가? 

유종일 : 개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헌을 싫어하는 야당 의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같은 얘기를 했다. 헌법도 안 바꾸는 혁명이 있나?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런 기막힌 정경유착, 국기문란 사태가 이렇게 폭넓게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도 헌법이 잘못돼서 그런 거다. 국회가 조금만 더 힘이 있었어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들에게 측근, 비선 등의 문제가 있었다. 정권 전반기는 여당이 시녀 노릇을 하고, 후반기에는 미래 권력으로 이동하면서 장기 레임덕이 발생했다. 그게 다 구조의 문제인데 '내가 대통령 되면 민주주의 된다'는 것은 대단히 비과학적인 태도다.  

그럼에도 저는 '지금 개헌 하자'는 얘기는 안 한다. 왜냐, 개헌이 정략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정치적 위기가 다가온 순간 개헌 얘기를 꺼냈고, 박근혜 체제의 한 축이었던 새누리당이 생존을 위해 개헌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뭔가 도모하려 하고 있다. 각종 권력 욕심 있는 사람들도 개헌을 활용하려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불순한 개헌 논의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복잡한 양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주도하는 개헌 논의는 반대한다. 구체제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섰고, 앞으로도 구체제를 청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은 주권자로 태어난 시민이다. 개헌 논의가 시민들 주도로 이뤄지고, 정치권이 그에 따르겠다고 하는 개헌이 돼야 한다. 정치권에서 먼저 정략적으로 하는 것은 불순하고,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시기적으로 대선 전에 하느냐, 대선 후에 하느냐, 이런 문제가 있다. 사실 대선 후에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과거에도 그랬다. 자기가 절대적 권력을 가졌는데 그런 약속을 왜 지키나. 실제로 아무도 안 지켰다. 그래서 시기 문제가 아니라 '주체가 누구냐'가 문제다. 시기는 우리가 정할 수 없다. 개헌이 국민적 과정이 됐을 때 정치권이 따른다는 선언이 나와야 한다.

프레시안 : 대선 후에는 어렵다면, 아무튼 시기는 대선 전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인가?

유종일 : 우리가 시기를 정할 수 없다는 말을 설명하자면, 헌재가 판단을 빨리 내려서 내년 3월에 대선을 한다면 그때까지 개헌을 하는 건 안 될 거다. 반면에 개헌 논의가 신속히 진행되고 헌재의 판단은 그보다 더 늦어진다면 대선 전에 할 수도 있다. 시기 문제가 본질은 아니라는 거다.  

김상준 : 개헌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에 저도 동의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손 떼라'는 요구를 할 수는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 개헌특위 설치가 합의됐고, 어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연 행사에 민주당·국민의당 의원들이 많이 오고 새누리당 비박계 인사들까지 왔다. 그렇게 개헌 관련 움직임이 있는데 '하지 말라'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건 대응이 안 된다.  

개헌 움직임에 대해 가장 거부감을 갖는 것은 문재인 전 대표 등 민주당 내 주류 그룹이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논의는 불순하다. 대선 후에 하자'고 하고 있다. 반대로 개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쪽에서는 계속 절충적·중도적 얘기를 한다. 그들의 목적은 정말로 개헌을 대선 전에 해서 새 헌법으로 대선을 치르자는 게 본심은 아니라고 본다. 현실적으로 문재인 등 민주당 주류만 반대해도 개헌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개헌하겠다고 하는 것은, 개헌론을 제기하면서 수세에 몰린 사람들이 대선 과정에서 지지를 높여갈 목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개헌을 실제로 추진할 유일한 주체는 '주권적 국민'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주권재민의 원칙을 구현하는 것이다. '주권적 국민'의 의지가 구현되는 경로가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른바 '제3지대'라는 것은 정치인들 중심의 정치공학적 움직임이다.  

국민의 의지를 중심에 둔 개헌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주장은 제도정치권 밖에서 제기된다. 민회, 시민평의회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것이 맞물리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대선 논의든 박근혜 체재 잔재 척결이든, 그것이 개헌으로 이어지는 시기보다는 국민의 의지를 형상화하는 경로가 중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그 경로로 '시민의회'가 역할을 할 수 있나? 

김상준 : 시민의회로 가는 중간 단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다.

첫째, 다음 대선을 바라보는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초당파적으로 개혁을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지금 모든 정당이 비슷한 얘기를 한다. 안철수 의원은 "국가 좀먹는 암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했고, 문재인 전 대표는 "사회개혁 기구를 만들자"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야권 대선 후보들이 자기 선거운동 하는 듯한 태도는 빨리 탈피했으면 한다. 지지자뿐 아니라 모든 정당, 전체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열어 놓고 '국민의 뜻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자고 하는 것인지 의견을 모아 보자', '이것은 당장 내가 이번 대선을 위해 하는 일 이상의 일이다', '나는 대선에서도 여기서 모아진 뜻에 따라 하겠다', '모든 후보가 같이 하자', 이런 경로로 진행돼야 한다. 이렇게 현재 국민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제도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아젠다 세팅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게 첫째다.

둘째, 어느 정도 논의가 진행되면 경제민주화, 정치 개혁 등 주요한 사안을 4~5개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단계에서도 문제가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선거법 하나만 해도 많은 문제가 제기됐다. 지역별로 분할시키고, 사표(死票) 많고, 등가성 원리 안 맞고 등등. 이런 면에서 우수한 선거제도도 많이 제안돼 왔다. 그런데 국회 안에서 선거법 하나라도 고칠 수 있었나? 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이 단독 과반수를 확보했을 때도 이 선거법 하나를 못 고쳤다.  그 법으로 국회의원 된 사람들이 그 법을 고친다는 게 어렵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지 않나.  

제가 시민의회를 얘기해 온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이 그것이다. 중요한 헌법 차원의 변경 사항을 공정하게 합의된 의견을 도출하고, 이를 관철시킬 가능성이 현재 우리나라 국회 시스템에서는 대단히 낮다. 따라서 정치공학적 개헌은 실현되기 어렵고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개헌 실현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안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문제를 넘기 위한 장치가 시민의회다. 초당파적으로 모여 아젠다 세팅이 되면 그걸 시민의회에 부치자는 것이다. 현재 '사회 대개혁'이 필요하고, 그를 위한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대선 주자도 거부하기 힘든 제안일 것이다. 

(대담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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