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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실패한 간척사업, 무너진 ‘천연 모래밭 비행장’

실패한 간척사업, 무너진 ‘천연 모래밭 비행장’

김정수 2016. 12. 19
조회수 74 추천수 0
위기의 백령도 사곶 사빈
 
한국전쟁 이후 군용기도 착륙하던
백령도 2㎞ 길이 단단한 모래사장
인근 간척사업 뒤 물러지고 썩어가
 
간척해 만든 땅은 황무지로 방치되고
농업용수 공급용 담수호도 무용지물
‘역간척’에 사곶사빈의 미래 있다

b1.jpg» 천연기념물인 백령도 사곶사빈(오른쪽)과 간척으로 조성된 담수호인 백령호(왼쪽). 갯벌로 되돌려야 사빈이 살아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재청이 세계에 두곳밖에 없다며 199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백령도 사곶사빈 천연비행장이 인근 간척사업의 영향으로 점차 펄 갯벌로 바뀌고 있다. 미래세대는 이 독특한 자연유산에 발을 디뎌볼 수 있을까?  

‘사상누각’(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듯 모래밭은 단단함이나 견고함과는 정반대인 곳이다. 남한 최북단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동남쪽 해안에 평균 200m 폭으로 2㎞가량 펼쳐진 ‘사곶사빈’은 이런 상식을 깨뜨린다. 

b7.jpg» 백령도 사곶사빈에 착륙한 비행기. 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옹진군

‘사곶 천연비행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모래 해변은 실제로 한국전쟁 이후 군용 비행기 활주로로 쓰이기도 했다. 두껍게 쌓여 있는 미세한 석영질 모래층이 무거운 비행기가 내려앉아도 꺼지지 않을 만큼 치밀하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사곶사빈이 “이탈리아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 두곳밖에 없는 특이 지형·지질”이라고 설명한다. 1997년 12월 사곶사빈 전역과 사빈 경계로부터 1㎞ 앞바다까지 모두 천연기념물(제391호)로 지정한 이유다. 사빈을 잘 보전하기 위해 사빈을 직접 훼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빈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주변 지역의 개발행위까지 제한하는 두터운 보호막을 씌운 것이다.
 
호미로 비행장 곳곳 파봤더니…

b6.jpg» 모래 채취와 사곶해빈의 약화를 보여주는 트랙터 바퀴 자국.

천연기념물 지정 20년째인 지난달 말 백령도 사곶사빈을 찾았을 때 처음 만난 것은 모랫바닥에 깊게 팬 자동차와 트랙터 바퀴 자국이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광장처럼 평평한 해변 위로 화물트럭이 오가는 모습은 어느 곳에서는 구경하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수송기가 내려앉아도 꺼지지 않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용기포 쪽 사빈에는 사람들의 발자국도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의 답압에도 쑥쑥 들어갈 정도로 바닥이 물러졌다는 얘기다.
 
b9.jpg» 천연기념물이지만 주민은 트랙터를 몰고와 거리낌 없이 모래를 퍼내간다. 관리가 얼마나 부실한지 알 수 있다.

사빈 동쪽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사빈 안으로 트랙터를 몰고 들어와 모래를 퍼 나르는 주민도 만날 수 있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훼손을 하면서도 주변에서 사람이 지켜보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주민의 태도가 문화재청과 옹진군의 사곶사빈 천연기념물 관리와 보호 실태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준비해 간 호미로 사빈 이곳저곳에서 바닥을 파보았다. 위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 10㎝ 남짓 파고 들어가자 위쪽의 모래층과 확연히 구분되는 검은색 펄층이 나타났다. 1~2㎝만 모래를 걷어내도 펄층이 나타나는 곳도 있었다. 퍼 올려 코를 대자 비릿한 악취가 확 끼쳐왔다.
 
b5.jpg» 사곶해빈을 조금만 파도 악취를 풍기는 시커먼 펄이 나온다.

갯벌 전문가인 녹색습지교육원 백용해 원장은 “사곶사빈이 점차 물러지는 것은 퇴적물의 구성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간척사업으로 사곶사빈 쪽 바닷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가볍고 고운 실트질 입자와 유기물 입자가 점점 많이 가라앉아, 모래 갯벌이 서서히 펄 갯벌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 원장은 “사빈 바닥에 검은 층이 보이고 악취가 나는 것은 유기물이 많이 쌓인 층에서 부패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중기 인하대 해양학과 명예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최 교수는 “사곶사빈의 모래는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있는 모래 풀등에서 공급되는데, 간척사업 이후 모래 풀등에서 이동해 오는 모래는 줄어드는 대신 가벼운 펄 입자가 더 많이 가라앉아 쌓이고 있다”며 “사곶사빈 동쪽 용기포항 개발 영향도 있지만, 간척사업이 사곶사빈으로 흐르는 바닷물 흐름을 전반적으로 약화시키면서 시작된 변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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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jpg» 백령도 진촌지구 간척지와 사곶해빈 지도.

전문가들이 사곶사빈 변화의 핵심 원인으로 꼽는 ‘간척사업’은 사곶사빈 남서쪽 끝단에서 시작돼 섬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갯벌 입구를 길이 820m의 방조제로 막아 매립한 것을 말한다. 1991년 당시 농어촌진흥공사가 논을 조성해 농민들에게 불하하기로 하고 시작한 이 간척사업이 2006년 완공되면서 80여만평의 농지와 39만평의 담수호인 백령호가 생겨났다.
 
이 간척에 의한 사곶사빈의 변화는 간척사업이 마무리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1997년 7월 초 백령도와 대청도 일대를 조사한 환경부 생태계 조사단은 결과 보고서에서 “사곶해수욕장은 세립질의 규사로 이루어져 물이 잘 빠지고 단단하여 천연비행장으로 이용하여왔으나, 최근 진촌리 앞 갯벌을 간척하기 위하여 방조제를 쌓은 후 실트질의 입자가 유입되기 시작하여 그 특성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사단은 그런 변화의 동인으로 ‘간척에 의한 해류 변화’를 지목했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사곶사빈에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런 변화를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10월 문화재연구소를 통해 실시한 사곶사빈 정기 조사보고서는 사곶사빈 천연기념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이런 변화에 대한 언급 없이 “문화재 관리 상태는 양호한 편”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먼바다 섬에는 드물게 나타나는 갯벌을 없애고, 세계에 두곳밖에 없다는 바닷가 사빈 천연비행장까지 망가뜨려가며 진행한 간척사업은 사실상 실패했다. 농업용수용 담수호로 조성하려 한 백령호는 바닷물이 계속 스며들어 농업용수로 쓸 수 없는 상태이고, 간척지를 논으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불하하기로 한 약속도 절반은 공중으로 날아갔다. 

b2.jpg» 비옥한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솔개공구 간척지. 준공 10년이 지났지만 황무지로 방치돼 있다.

농어촌공사는 백령호 북서쪽의 북포공구 40여만평만 논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불하했을 뿐 북동쪽의 솔개공구 40여만평은 논으로 활용할 수 없는 상태로 2011년 옹진군에 소유권을 넘겼다. 지난달 말 둘러본 솔개공구 간척지는 간척사업 준공 10년이 넘었는데도, 도로변 가까운 곳에만 밀보리가 심어져 있는 등 일부 경작 흔적이 있을 뿐 대부분 황무지로 방치된 상태였다.
 
옹진군청 농업기술센터 강철구 팀장은 “솔개공구에 물을 대기 위해 조성한 백령호의 염분 농도가 높아 농업용수로 쓸 수 없어 솔개공구는 140필지 가운데 14필지만 답(논)이고 나머지는 전(밭)과 잡종지로 등기돼 있다. 밭에서도 소금기가 올라와 농민들이 경작하기 어려워, 현재 센터가 31헥타르(9만3천평)에서만 국화, 튤립, 메밀 등 경관 작물을 비롯한 다양한 작물을 시험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로는 천연기념물 가치 상실”
 
북한 땅 장산곶이 건너다보이고 서울보다 평양이 더 가까운 접경지 섬 주민들은 호미와 바구니만 들고 가면 까막조개와 칠게 등 다양한 수산물을 걷어올 수 있던 황금 갯벌을 뒤덮은 황무지,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물로 출렁이는 백령호를 바라보면서 “나라에서 한 일을 왈가왈부하기 그렇다”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23일 사곶사빈 뒤편 진촌리에서 만난 농민 손정범(66)씨는 “간척사업 하기 전에 백령도에 있던 논만으로도 여기 사람들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는데, 간척사업으로 아까운 갯벌만 없어지고 무용지물인 땅만 남았다. 갯벌로 그대로 놔뒀으면 오히려 더 관광지도 되고 좋았을 것인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진촌리 이장 변신석(63)씨는 “백령호의 위쪽 병목처럼 돼 있는 부분을 다시 막아 위쪽만 담수호로 남겨놓고 아래쪽은 터서 밀물 썰물이 드나들게 하는 것이 관광자원으로도 더 가치가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주민들 의견이 그렇게 일부분만이라도 옛날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b4.jpg» 망가져가는 사곶사빈을 살리기 위해서는 백령호의 역간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주민들의 의견은 사곶사빈을 보전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제윤 섬연구소장은 “썩은 백령호와 사곶해변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제방을 트고 다시 바닷물이 들어오게 하는 역간척이 유력한 대안이다. 역간척을 통해 갯벌을 복원하고 갯벌에서 주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양식업 등을 추진하거나 생태 교육장으로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간척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중기 명예교수는 “이대로 가면 사곶사빈은 결국 천연기념물로서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며 “백령호를 막았던 부분을 개방하는 것이 망가지는 사곶사빈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령도/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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