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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3일 화요일

“네가 살고자 한다면, 이것을 들어라”

제휴칼럼  | 등록:2016-12-14 11:26:54 | 최종:2016-12-14 11:28:51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2월 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박유미 씨, 유경근 씨, 한만삼 신부에게 청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픈 2017년 (유경근)
- 기득권을 탄핵하라! (한만삼 신부)
- “네가 살고자 한다면 이것을 들어라” (박유미)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픈 2017년
[시사비평 - 유경근]
결국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모두가 바랐지만 어느 누구도 장담치 못했던 일이었다. 내 가슴은 뜨거웠지만 ‘우리’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함께 확인했다.
세월호가족들에게 박근혜 탄핵의 의미는 남다르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을 가져도 될 듯하다. 설마 했던 대통령 탄핵을 국민의 힘으로 해내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참사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을 탄핵하는 게 마땅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족들에게 2016년은 참으로 모진 한 해였다. 특조위는 정부여당의 집요한 방해에 시달리다 결국 강제해산당했고, 여름이면 할 수 있다던 세월호 인양은 결국 내년으로 미루어졌다. 세월호에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위한 철근이 실렸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청해진해운의 지시로 집요하게 선내대기 방송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국정원과 청해진해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침몰 직후 승객구조를 위한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특조위 강제해산과 세월호인양 실패로 인해 세월호참사의 진실도, 아홉 분 미수습자도 여전히 수심 40미터 맹골수로에 수장된 채 한 해가 지났다.
세월호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들을 알리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외치는 것뿐이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분노의 눈물, 통한의 눈물, 서러운 눈물들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걸까 점점 몸도 마음도 주저앉았지만 그저 엄마아빠라는 이유로 겨우겨우 버틸 수 있었다.
▲12월 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자리에서 지켜보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미지 출처 = YTN뉴스 동영상 갈무리)
엄마아빠들이 안쓰러워서 아이들이 힘을 좀 썼던 걸까,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던 청와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특조위 강제해산의 직접적인 이유였던 소위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이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처음부터 미수습자 수습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드러났다. 세월호인양은 정부의 주장대로 미수습자 수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인양을 하지 않기 위한 인양, 진실을 묻어버리기 위한 인양이었음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변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세월호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들을 이간질, 폄훼, 모욕하면서 진실을 은폐한 범인인 것은 진작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세월호가족들은 설마 했던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 낸 국민의 힘이 세월호참사의 진실도 밝혀낼 것이라고 믿는다. 진상규명 하려면 3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지만 탄핵을 이루어 낸 국민의 힘을 보면서 그렇게 오래 안 걸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2017년에는 국민의 힘으로 분노의 눈물, 통한의 눈물, 서러운 눈물이 아니라 참사의 진상을 밝혀내고 아이들 앞에서 마음 놓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마음이 설렌다.
세월호가족들은 미안함에 속으로 삼켜야만 했던 눈물을 2017년 정유년에는 아이들 분골함을 끌어안고 뜨겁게 쏟아 낼 수 있으리라는 설레임으로 또 다시 진실을 향해 힘차게 행진해 나아갈 것이다. 과연 올까 싶었던 그날이 2017년 중에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경근(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단원고 2-3 유예은 아빠
전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협의회 대변인
현 (사)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기득권을 탄핵하라!
[시사비평 - 한만삼]
기득권을 탄핵하라!
어느 누구도 너에게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마르 11,14)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 바빌론이!
자기의 난잡한 불륜의 술을 모든 민족들에게 마시게 한 바빌론이!”(묵시 14,8)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에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었던 세월호 참사에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쇠사슬로 온몸을 묶었던 밀양 할머니들의 절규에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 굴뚝과 전광판에 올랐던 노동자들의 외침에도, 어처구니없었던 사드 배치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콘크리트 지지율, 박근혜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할 것 같았던 시대의 지지율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쳤다. 백남기 어르신을 부검하겠다며 달려들던 경찰들을 시민들이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며 온몸으로 막아서고 ‘의혹’일 뿐이라며 강변하던 최순실의 권력농단의 증거가 한순간에 전 국민에게 밝혀지자 그동안 참아왔던 국민들의 분노는 활화산처럼, 핵폭탄처럼 폭발했다. 시민들의 함성은 촛불 구름의 천둥처럼 울렸고, 퇴진의 촛불 파도는 쓰나미처럼 광화문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12월 9일, 자신은 선의만 있을 뿐 최순실의 잘못을 몰랐을 뿐이라는 기가 막힌 변명으로 퇴진을 거부한 그녀에게 분노한 국민들로부터 포위당한 국회는 박근혜의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그러나 ‘실망과 분노의 감정’만으로 박근혜를 탄핵하고 한 사람을 잘못 뽑았을 뿐이니 그 사람만 바꾸면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세상이 저절로 올 수 있을까?
탄핵 정국에 우리가 명확히 보아야 할 것은 박근혜는 ‘나쁜 열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쁜 열매 하나를 따버렸다고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그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일 뿐이다. 박근혜는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였고, 기득권 보수부패 언론이 최태민과 박정희의 악행을 호도하는 막강한 지원을 받았으며, 영애 시절부터 나쁜 방법으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았었다. 우리는 이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태 7,18)는 진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시민을 수탈하는 거대한 ‘약탈집단’이 되어 버린 정부와 대기업의 농단, 부패 기득권 세력들이 ‘개, 돼지들’로 여기는 하층민들의 간접세로 자신의 배를 채우며 간첩을 때려잡는 공안 통치로 나라를 지배했던 ‘기득권 동맹’에 균열이 감으로써 그 추한 작태가 드러났는데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스러움이 이 시대 지도자들의 얼굴이던가? 국민들이 꺼내 든 촛불은 탄핵이라는 깨어난 양심의 ‘도끼’였다. 그 도끼로 썩어버린 까치밥을 떨어뜨리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쁜 나무의 허리를 자르고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과오는 정화될 수 없는 썩은 물이요, 나라를 갈라지게 만드는 바오밥 나무뿌리였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모습. (이미지 출처 = 새누리당 홈페이지)
조선시대는 기득권 층인 소수의 양반을 위해 모든 백성이 불평등의 차별과 보람 없는 과도한 노동을 인내하며 그들을 떠받들며 살아야 하는 ‘사회 구조’였다. 부의 근원인 토지를 소유한 기득권을 위해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천한 백성은 결코 ‘존엄한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봉건적 불평등 구조를 개혁하려 하거나,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거나, 부정부패를 척결하라고 소리 높이는 백성은 잔인한 보복을 당하거나 심지어 일본 군대의 총칼에 학살당했다. 정조 사후(1800)의 19세기를 독재 정치인 세도정치로 일관한 노론 기득권은 자신들의 ‘농단 정치’의 수호를 위해 근대적 개혁과 개화를 꿈꾸는 진보세력을 '위정척사'(衛正斥邪)의 프레임으로 학살했다. 해방과 평등의 가치를 꿈꾸고 실천한 천주교 신자들을 매국의 명분으로 짓밟고 침공해 오는 서양의 약탈 제국주의에 결사항쟁으로 맞서라며 등을 떠밀고는, 자신들은 일제로부터 은사금과 작위를 얻기 위해 국가의 외교권과 주권마저 팔아버렸다. 기득권들의 배신에 치를 떨어야 했던 비운의 백성들은 자신의 아들딸들을 천황폐하를 위한 위안부와 징병에 빼앗기고 제국의 전쟁을 위한 노동자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제 촛불을 들고 깨어난 이 세대는 새롭게 일어섰다.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 맺는 비극의 역사를 탄핵하자. 비열했던 기득권의 치부인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술책에 단호히 맞서고 저항하자! 미군정에 협력한 반민족 세력의 나쁜 뿌리에서 돋아난 나무에서 군부독재의 나쁜 열매를 끊임없이 맺자 열매만 제거하면 좋은 나무가 될 줄 알았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4.19 혁명이 그랬고, 6월 민주화항쟁이 그러했다. 뿌리와 나무를 치지 못했던 미완의 혁명은 ‘구조의 악’을 그대로 둔 채 대통령 한 사람만 바꾸고 개혁을 마무리함으로써 또 다시 기득권으로부터 배신당했다.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위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새누리당과 그들의 음모에 협력한 모든 기득권 세력을 함께 탄핵하는 ‘혁명’이 되어야 한다. 그때까지 촛불은 꺼져서도 안 되고 꺼질 수도 없다. 정의의 하느님께서는 사악한 바빌론을 쓰러뜨렸듯이 악인들의 길을 멸망으로 이끄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께서 물대포에 쓰러지고 결국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셨지만, 이 땅에 참된 밀알이 되고 불씨가 되어 시민들의 양심을 되살리셨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기득권을 꾸짖는 분노에 찬 하느님의 음성을 양심을 통해 들어야 한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형제 임마누엘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기 4,10)
한만삼 신부(하느님의 요한)수원교구 광교1동 성당 주임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수원교구 대표
사제단 교육위원회 위원장
수원가톨릭대학교 사회교리 출강


“네가 살고자 한다면, 이것을 들어라”
[시사비평 - 박유미]
“네가 살고자 한다면, 이것을 들어라.”
12세기, 당대 최고의 절대권력이라 할 바바롯사, 프리드리히 1세 황제에게 보낸 베네딕도 수녀원장 힐데가르트의 경고편지 구절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정의의) 칼이 너를 꿰뚫어 버리리라!”로 마무리된다.
“오 왕이여. 조심스럽게 잘 살피시오. 모든 나라들이 그들 죄악의 암흑으로 정의를 지우고 있는 많은 이들의 덩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강도와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 주님의 길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오 그대 왕이여, 왕으로서 칭송이 자자한 명성을 지니셨으니, 자비의 왕홀로 타성에 젖어 게으르고 부산하고 거친 생활습관들을 몰아내십시오. 잘 살펴보십시오. 최고의 심판자가 그대를 바라보실 때 고발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대의 왕직을 잘못 이해하고 얼굴 붉히지 않도록 잘 살피십시오. 공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런 것들을 멀리하십시오.”
첫 만남 이후 몇 년에 걸쳐 정치, 목적 의식이 분명하고 전략적인 그의 정치를 살펴보며 당시 칭송이 자자했던 그에게 칭찬과 함께 충고를 보냈지만 고쳐지지 않은 때문이다.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 회칙 선포에 이어서, 신앙의 완성으로 이끄는 구체적인 실천인 자비의 영적, 육체적 활동을 새로이 발견하도록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희년’을 마무리하는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에 걸맞는 행동을 이어서 펼쳐 가야 한다는 교황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그때에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의혹에 연결해서 소위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결국, 올 것이 온 것이지만…… 점입가경! 밝혀질수록 상상을 넘어서는 내용들이 펼쳐졌다. 하나가 밝혀지면 그에 맞춰서 해명하고 담화를 하면서 덮으려 하는 것이 오히려 거짓을 드러내 보이게 되고, 분노의 촛불이 확산되며 퇴진,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함성으로, 국정농단과 연결된 비리구조 개혁, 새누리당 해체와 재벌 구속수사 요구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덮으려 하면 할수록 드러나는 형국이다. ‘이게 나라냐?”로 압축되듯이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시작해서 정윤회 사건, 해외순방에서의 추문사건 대응과 결정과정에서 보여 준 감추기, 세월호참사 대응, 지진 대응, 폭우폭서 대응과 같은 안이하고 무능한 국민안전 대응,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국가 폭력에 의한 농민의 죽음에도 책임자 처벌도 대응정책도 없었던 이유 등 그동안 쌓여 왔던 의문의 배경이 뚜렷해졌다.
▲박근혜 퇴진 집회에 시민들이 광화문과 시청 광장을 가득 채웠다. ⓒ왕기리 기자
필요한 때마다 안보를 내세우지만 정작 국민안전을 챙길 시스템이 작동도 할 수 없었던 정부. 그리고 국정농단에 이어진 비리사건들로 보여지듯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결정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의 살림보다 재벌과 몇몇 소수인의 부를 위한 정책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국정책임자들, 위안부 합의, ‘한일 정보협약’ 체결,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 등에서 보여지듯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을 스스로 방기하는 외교, 국방정책들… 교육시설 주변에 공기업이 대형 화상경마 도박장을 세우고,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 주는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고 특권을 행사하는 교육행정, 환경과 지역주민의 삶을 파괴하는 케이블카 설치, 핵발전소 건설, 송전탑 건설… 돈과 권력을 위한 밀실협약과 같은 규제철폐… 심지어 대통령 본인의 안전과 관련된 청와대 경호시스템까지도 절차를 거쳐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던 나라. 대통령의 임무와 책임이 필요한 때에는 부모를 총탄에 잃은 불우한 삶과 여성임을 내세우고 인간적인 공감과 연민이 필요한 때에는 국가의 안보를 내세우는 궤변 논리가 국민들에게 상식적으로 통하리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통치하는 나라. 70퍼센트 이상의 국민이 즉각 퇴진을 요구해도 시간과 돈과 건강, 국민의 희생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목적을 채우려 하는 지배집단을 본다. 탄핵은 시작일 뿐,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이루도록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은 아직도 험한 듯하다.
이 시간들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들을 생각하고 '자비의 특별희년'의 의미를 더더욱 떠올리게 되는 것은 법적 규제나 엄격함에 앞서, 세상에 믿을 교리를 선포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는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 그것을 “세상 안에서, 구체적인 만남들 안에서 실천”하는 것, 바로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공감하고 연대하는 자비의 실천이라는 것을 이렇게나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다양한 삶의 방식과 정체성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거나 의견을 듣는 절차가 없이(보조성) 돈과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구조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에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자비의 실천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 시간들에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중세의 힐데가르트 성녀도 자비의 활동으로서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용기 있는 충고를 이렇게 보여 주었다. “타성에 젖어 게으르고, 부산하고 거친 생활을 몰아내십시오!”
답답한 상황들에 ‘평화로운’에 족쇄가 채워진 촛불’을 불평하는 분들도 있지만, 자비의 희년을 마치면서도 “공간보다 시간이 우선”한다는 것을 또 한번 강조하신 교황님의 말씀처럼, 여기저기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의견들이 나타나는 난장과 같은 광장의 모습처럼, 같은 방향을 향해도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나누고 설득하고 합의하는 절차를 확립해 간다면, 그리고 우리 각자가, 우리 교회가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결정해 가도록 늘 깨어 있다면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증거하게 되리라 믿고 희망한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제휴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13일 자 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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