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6년 1월 15일 금요일

소녀상 작가 “정부는 일제시대로 가고 싶은가 봐요”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16] 김서경 작가
 
▲ 김서경 작가 ⓒ 이영광 기자
“日, 할머니들 돌아가시면 묻힐 것 기대했는데 소녀상으로 활성, 두려움”
 - 오늘(13일) 수요집회가 열렸는데 어땠어요?
“오늘은 나눔의 집 할머님이랑 정대협 쉼터 할머님들이 다 오셔서 ‘할머님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다. 무효화시켜야만 한다. 피해자의 의견 없이 피해자와 합의 보지 않은 합의는 무효다’는 기자회견을 하셨죠. 할머님들께서는 분노하고 계십니다. 20년의 수요집회를 수포로 만드는 정부의 합의에 피를 토하시고 계십니다.” 
- 지난 연말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로 국민이 분노하는 상황 어떻게 보세요?
“정말 국민이 많이 분노하세요. 왜냐면 할머님들의 일제하에서 고통스러웠던 세월과 그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이 있었지만 수십 년 세월 속에 말을 못하셨잖아요. 그런데 91년도에 처음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증언을 시작으로 92년부터 할머님들이 수요집회를 처음 시작하셨고 24년이 됐죠.
20년이 되는 해에 1000회 수요집회로 소녀상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일본이 그걸 치워야지 100억을 준다는 건 사죄하는 방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사죄라면 그런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사죄를 하고 일본에도 세우겠다고 얘기를 해야 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 난 거예요. 그런 분노가 재단까지 만들게 했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용수, 김복동 할머니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정부의 범죄사실 인정, 번복할 수 없는 명확하고 공식적인 사죄, 사죄의 증거로서의 배상 등을 세계인과 함께 요구할 것이라 전했다. <사진제공=뉴시스>
- 소녀상이 일본 대사관 앞에 있어서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데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한다고 보세요?
“죄지은 사람은 소녀상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 엄청 불편하고 두려워서 소녀상을 치우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또 하나는 할머님들이 지금은 몇 분 안 계시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할머님들이 다 돌아가시면 일이 덮이고 수요집회가 계속되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했나봐요. 그런데 소녀상이 생기면서 앞으로 계속 더 알려지고 수요집회가 계속된다는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녀상 생긴 후 예술작품도 나오고 참여 많이 늘어”

- 소녀상이 생기기 전과 후가 다른가요?
“네 많이 달라요. 소녀상이 생기기 전에는 이 정도의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았어요. 근데 소녀상이 생기고 난 이후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예술적인 작품도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해 주고 소녀상을 통해서 할머님들이 아픔을 같이 느끼는 부분들 속에서 더 많은 사람이 수요집회에 나오고 있어요.” 
- 소녀상을 두고 일본 측은 한국이 소녀상 이전에 합의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부인하는데.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합의는 피해자를 빼놓고 그 부분은 서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무효화 될 수밖에 없어요. 문서화 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합의는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소녀상 부분은 뭔가 합의를 하지 않았을까 해요. 일본이 아무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할까 해요. 거기에 대해서 암묵적인 합의를 본 것 같은데 그 부분은 문서화 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죠.” 
-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대학생들이 오잖아요. 마음이 복잡할 것 같아요.
“요즘 계속 밤에 대학생 친구들이 밤을 새우고 있거든요. 역사의 진실 위해서 하는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뿌듯해요. 할머님들이 저 자리에 계시는 건 개인적인 사죄와 배상이 아니라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그리고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을 외치시며 저 자리에 계시거든요.” 
“소녀상 지키는 대학생들,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 날씨가 상당히 추운데 대학생들이 이렇게 하는 게 가슴 아파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제가 매일까지는 못 오지만 계속 와서 뭐 도와줄까 생각하는데 이것이 저희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분이 그런 마음을 주세요. 그래서 어묵국도 주시고 1월 1일 날 떡국도 주시고 따뜻한 음료나 간식 등 국민이 마음을 주세요.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국민도 함께 밤을 새우고 계십니다.” 
- 국민이 그렇게 하는 이유 뭐라고 보세요?
“그들이 이 자리에 와서 지키진 못하지만, 대학생 친구들이 그 부분을 해줘서 고마움으로 마음을 주시는 분이 있고 또 어린 친구들이 이렇게 밤을 새우는 게 안타깝잖아요. 그리고 어린 친구들에게 고마움도 있고요. 그래서 국민이 한마음으로 해주시는 것 같아요.” 
  
▲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인근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협상안 폐기 대학생 대책위원회 학생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소녀상을 지켜주세요’ 페이스북>
- 소녀상은 2011년 12월 수요집회 1000회를 계기로 제작되었잖아요.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어요?
“소녀상은 1000회 수요집회까지 할머님들이 의자에 앉아서 하셨어요. 그런데 할머님들이 그 일을 당하신 게 아니라 소녀가 나쁜 일을 당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이거는 소녀가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셨나요?
“아이디어를 어디 얻었다기보다는 위안부로 끌려갔을 당시가 소녀였잖아요. 그래서 그런 상징적인 조형물로 만들 때 어떻게 하면 할머님들께서 당했을 당시의 아픔과 고통, 분노 등과 할머님들의 20년의 수요집회를 알리려고 했어요. 그 할머님들께서 매주 수요일 눈이 오나 비바람이 치나 이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법적 배상 그리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여성과 아이의 인권을 위해 외치시고 있잖이요. 어떻게 하면 이 자리를 지나는 사람들, 이 소녀상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감동을 주고 공감할까라는 부분에서 소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제작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이걸 만들 때 무슨 생각을 많이 했냐면 많은 사람이 소녀가 되어 당시 할머니들이 아팠고 지금 할머니들이 이 거리에 계시는 마음들과 함께 해 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이 부분이 알려 주길 바라고 많은 사람이 같이 참여를 바라는 마음을 계속 담아서 작업했는데 소녀상이 세워지는 날부터 그 마음을 느끼셨는지 목소리를 해 주고 따스한 담요를 덮어 주고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 부분에 공감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암묵적으로 알다가 김학순 할머니 증언으로 제대로 알게 돼”
- 위안부는 언제 알았어요?
“1991년에 TV를 통해 알게 됐죠. 그리고 그 이전에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죠. 주변에서 ‘저 여자는 끌려갔다 왔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런 역사는 조금 알고 있었는데 제대로 안 건 91년에 김학순 할머님 증언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러다가 오랜 세월 생각을 못 하고 있었어요.
우연히 저희 남편 김운성 작가가 지나가면서 수요집회를 2011년 즈음 아직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정대협을 찾아가서 ‘우리가 미술 하는 사람인데 무엇을 함께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해서 시작된 거예요.
그때는 1000 수요집회를 기리기 위해서 평화비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런 디자인에 대한 논의와 이런 걸 통해서 얘기하다가 일본 정부가 그 조차도 못하게 계속 외압을 행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조형물을 만들자고 해서 합의를 봐서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안을 디자인하다가 제가 소녀상을 하면 어떻겠냐며 미니어처를 보여 주면서 얘기를 해서 그게 합의되어 소녀상을 만들게 됐어요.” 
  
▲ 11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부산겨레하나 회원이 소녀상 지키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산겨레하나는 매주 월~금요일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펼친다. <사진제공=뉴시스>
- 일본 정부는 사과했기 때문에 거론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의 반응을 하면 안 되죠. 본인이 오히려 소녀상을 일본에 갖다 놓겠다는 사과가 진정한 사과라고 생각해요. 소녀상을 철거하란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 소녀상은 그동안 우리 국민은 목도리를 둘러주거나 모자를 씌워 주는 등 애착을 보인 반면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소녀상 앞에 말뚝 테러 등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소녀상 앞에 말뚝 테러가 있었고 미국의 종이봉투를 씌워서 장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기리는 것이란 걸 알아서 많은 사람이 사랑을 해주고 있어요.
의인화시켜서 사람처럼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생일엔 케이크도 갖다 줘요. 그래서 정말이 소녀는 브론즈고 쇠일 뿐인데 거기에 사람들은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세요. 그래서 걱정을 안 해요. 일본인들이나 일본 정부가 하는 자극적인 행위들과 표현들은 소녀상이 생기면서 많은 예술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작품들을 많이 했어요. 글, 만화, 영화 등이 나와 예술적인 승화가 되는 부분에서 또 많이 거 알려주고 더 많이 확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이 주한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돈 받고 소녀상 팔아먹으면 일제시대 돌아가는 것”
- 작가님에게 소녀상은 무엇인가요?
“소녀상을 처음 하게 될 때 이제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과 함께 너무 죄송했고 이 소녀상을 통해서 많은 사람과 공감을 하고 싶었어요. 할머님은 그 자리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매주 수요일 앉아계실까란 생각을 했어요.
할머님들이 바라시는 건 평화와 여성, 아이들의 인권인데 그런 부분을 널리 알리고 그런 세상이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었어요. 잔잔한 감동을 주고 싶었고 공감을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했고 또 그런 부분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날부터 사랑을 받았고 받은 사랑들이 이렇게까지 수요 집회에 많은 사람이 오도록 해서 저에게는 ‘평생 이런 작업을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큰 작품이 돼 버렸죠.” 
- 정부는 이번 합의가 잘 된 것이고 이 합의를 파기하면 24년 전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데.
“그건 정부 착각인 것 같아요. 정부가 이 부분을 돈을 받고 소녀상을 팔아 먹으면 그것은 일제시대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24년 전이 아니라 그런 부분에서 이 부분은 더 철거되면 안되고 무효화 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정부는 일제하로 가고 싶은 가봐요.” 
- 또 정부는 할머님들 나이가 고령이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마음 편히 가실 수 있다고 하는데.
“말이 안되요. 물론 할머님들도 빨리 해결 되길 바라죠. 그러나 정상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다들 말씀 하세요. 본인들이 원한을 갖고 정부가 이렇게 한다면 그게 원한이 되신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요. 할머님들이 그래서 오늘도 거리에 나오셔서 계시는 거예요. 인정할 수 없어서 그것은 정부의 착각이죠.” 
-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려요.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소녀상을 알려 나갈 거고 소녀상을 알리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할 예정이에요. 문화예술인들과 함께할 예정이고 소녀상을 원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원하시는 분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의 보급도 할 예정이에요.” 
  
▲ 9일 오후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무효선언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소녀상을 지키자' 구호를 외치고 있는 앞으로 할머니상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해 주세요.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고요. 정말로 할머님들이 돌아가셔도 할머님들은 할머니들의 의지는 지금 이 부분이 해결돼서 우리 미래 아이들이 전쟁으로 인해 피해받지 않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세요. 그런 부분으로 할머님들이 이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그 뜻을 함께하는 저희로서는 뭐든지 계속해 나갈 거예요. 이렇게 소녀상의 울림만큼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앞으로 해 나갈 거예요.”

[관련기사]

이영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