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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추경으로 양극화 해소’ 윤 정부의 급선회, 진정성 의심받는 이유

 


기재부·여당 반발로 ‘용두사미’…전문가들 “본예산 확대하고 감세 철회 병행해야”

윤석열 대통령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뉴시스

임기 반환점을 돌며 후반기에 접어든 윤 대통령이 재정 정책 방향의 급선회를 시사했다. 양극화 해소를 전면에 내걸었다. 대통령실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언급하며,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책 전환은 시작과 함께 용두사미로 끝나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가 반발하자 대통령실이 추경 의사를 물렀다. 애초 정책 전환은 지지율을 의식한 쇼에 불과했다는 시각이 많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추경이 아니라 본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감세 조치를 철회해 지속적인 세수 확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25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임기 전반기에는 민간 주도 시장 경제 활성화와 규제 완화에 집중했다면, 후반기에는 양극화 타개에 힘을 기울여 국민 전체가 성장 엔진으로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같은 날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에 “국민통합도 양극화가 타개돼야 이뤄질 수 있다”며 “양극화의 기본적,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진단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 의지를 공표한 건 지난 11일이다. 그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임기 후반기에는 소득·교육 불균형 등 양극화를 타개하기 위한 전향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대통령실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건전 재정을 강조하던 것에서 확장 재정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정부가 내수 부진과 경제 성장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초 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발언이 22일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대통령실도 보도자료를 내고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경제 관료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기재부가 설명자료를 통해 “내년 추경 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것이다. 여당도 대통령실에 등을 돌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금은 예산안이 확정되기 직전의 단계”라면서 “이 시점에서 추경을 논의하는 건 혼란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입장문을 내 “내년 본예산 심의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추경 가능성을 거론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당정은 내년 초 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결국 대통령실은 “필요한 경우 재정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일반론적 언급이었다”며 상황을 무마했다. 건전 재정이라는 철칙 아래 재정 지출을 억제해 온 기재부를 꺾지 못하고 대통령실이 물러선 모양새다.

대통령실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거론한 것 자체는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전향적인 변화다. 그간 윤석열 정부는 전통적인 기재부 시각에 동조하며 긴축 재정을 고수해 왔다. 올해 예산안은 전년 동기 대비 총지출 증가율이 역대 최저인 2.8%로 편성됐다. 물가상승률 3.6%보다 낮은 수치다. 내년 예산안 증가율은 3.2%다. 고령화 추세에 따라 증가하는 의무 지출을 제외하고 정부 의지가 반영된 재량 지출은 증가율이 0.8%에 그친다. 올해 대폭 삭감했던 연구개발(R&D) 예산을 일부 복원하고 예비비를 증액했다. 이밖에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반영한 사업 예산 증가는 거의 없는, 사실상 동결 예산이다.

확장 재정에 대한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주요 지표가 고꾸라지고,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2%로 낮췄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전망치를 동일한 수준으로 하향했다. 내수 둔화세가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내수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1.9% 쪼그라들었다. 10분기 연속 감소로, 1995년 통계 집계 이래 최장기간이다. 수출도 녹록하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수출은 전 분기 대비 0.4% 감소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심화할 경우 한국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2024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보편적 관세(10∼20%)가 현실화하면, 한국 대미 수출이 8.4∼14.0%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내년 초 추경을 하면 재정으로 양극화 심화와 경기 둔화 추세를 일정 부분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약자 복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실제 예산 배정에 있어서는 강조하는 수준에 못 미쳤다”면서 “경기 대응적으로 재정을 운영하지 못한 맞닥뜨린 위기 국면에서 이제라도 추경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2024.05.17. ⓒ대통령실 제공
“추경 아닌 본예산 확대가 우선…감세 철회하고 세수 확충해야”

‘재정의 적극적 역할로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재정 정책 기조가 말뿐인 수사 아니냐는 시각도 많다. 대통령실이 제시한 추경이라는 수단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이 아니라 본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 추경은 코로나19처럼 일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 규모가 제한적”이라고 짚었다. 역대 추경 규모를 보면 10조원 안팎이다. 20조원 이상인 사례는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19 지원 대책 차원에서 이뤄진 2020년 3차 추경(35조 1천억원), 2021년 2차 추경(34조 9천억원), 윤석열 정부 첫 추경인 2022년 2차 추경(62조원)이 전부다.

우 교수는 “양극화는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며 “양극화 해소를 위해 추경을 한다는 건 항암 치료를 하지 않고 영양제를 주입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사업 예산을 본예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 MB 정부 때 광우병 사태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민생을 살리겠다고 얘기했는데, 그걸 흉내 내는 것 같다”며 “실효적인 대책 없이 홍보만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제기됐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다가 봉창 때리는 식으로 대통령께서 양극화 해소를 자주 언급하신다”며 “본예산에 양극화 예산을 편성하면 되는 것을 굳이 추경을 언급하는 뜻은 또 립서비스 아닐까”라고 적었다. 같은 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실은 여야의 양극화 사업을 예산심의 과정에서 수용하겠다고 하는데 정작 일선의 정부 당국자는 증액을 반대하고 있다”면서 “도대체 이 정부의 정책 기조가 무엇인지 모를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수반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재정을 확대하려면 대기업·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세수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연이은 감세로 재정 여력을 갉아먹는 실정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2년 세법개정안에 따른 향후 5년간의 감세 효과를 73조 7천억원으로 추정했다. 나라살림연구소 분석 결과,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된 감세 조치로 차기 정부에 전가되는 감세 효과는 100조원에 이른다. 내년 세법개정안에 담긴 상속세율 인하 조치로 줄어드는 세수는 5년간 18조 6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2년간 발생한 세수 결손만 86조원에 달한다. 올해 국세 수입은 예산 대비 29조 6천억원 모자랄 전망이고, 지난해에도 56조 4천억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감세-세수 감소-긴축 예산-서민 지원 축소-양극화 심화’의 악순환인 것이다.

강병구 교수는 “확장 재정 정책을 취하면서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세제의 재분배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추진해 왔던 부자 감세 기조를 철회하고 공평과세 체계로 전환해 세수를 확충하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서 재정적자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MF도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세수 확충 필요성을 강조했다. 라훌 아난드 한국 미션 담당은 지난 20일 한국 경제성장률을 하향한 연례협의 결과 발표 당시 “한국은 재정 기조와 관련해 부채가 지속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선진국 대비 국가 부채 수준이 낮다고 본다”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령화라든지 기후변화와 같은 사안 때문에 향후 재정적으로 여러 가지 필요가 더 늘어날 수 있고, 사회안전망 확보와 관련된 사회적 지출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도 짚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재정적 여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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