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 수용, 국정 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시민행진’
-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 발행 2024-11-17 00:27:43
- 수정 2024-11-17 00:30:01
정적에게 악재가 터지면, 반대편엔 호재다. 상대가 유력 대선 주자라면 반사이익은 더 크고 넓다. 일반적으론 그렇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니, 국민의힘에겐 호재일까. 타오르던 윤석열 퇴진 목소리는 주춤해질까.
정반대 효과도 있다. 위기가 닥칠수록, 지지자들은 더 견고하게 뭉친다. 16일 ‘김건희 특검 수용, 국정 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시민행진’이 그랬다. 참석자들 모두가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거나, 민주당 당원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의 표적 탄압, 사법부의 석연치 않은 판결에는 모두 극렬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의 유죄 판결은 정부·여당에 명분을 주는 대신, 집에 있던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낸 듯 했다.
집회 대열 끄트머리는 경복궁역에 닿아있었다. 정당이나 단체 깃발이 하나도 없는 곳, 우산 든 시민이 듬성듬성 서 있는 그곳에서 손을 꼭 붙잡은 결혼 1개월 차 신혼부부를 만났다. 남편은 대형병원 내과에서 근무하다 사직한 전공의 정모(41)씨였다. 촛불집회에 처음 나온 참이었다. 정씨는 “검찰의 정적 제거용 집요한 수사, 그걸 가려내지 못한 사법부가 답답해서 나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육성이 나왔는데도 공천개입이 아니라고 딴소리한다”며 “누가 누구를 심판하고 판결하나”라고 비판했다. 정씨는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고 “국민들에겐 죄송하다”고 말했다.
‘58년 개띠’ 편영배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덕적도에 산다. 이재명 대표 판결 뉴스를 보고 어제 오후 4시 막배를 타고 육지로 나왔다. 3시부터 있었던 이날 집회에 줄줄이 참석한 참이었다. 편씨는 “대통령은 윤석열이를 뽑았는데, 왜 김건희가 대통령 노릇을 하냐고. 숨 쉬는 거 말고는 죄다 거짓말이고…아주 피곤해 죽겄네”라며 혀를 찼다.
야당 대표들의 발언수위는 또 한번 높아져 있었다.
‘바이든’인가 ‘날리면’인가.
김건희가 받은 명품백은 국가기록물인가 뇌물인가
“김영선 해주라”고 한 윤석열의 말은 덕담인가 공천개입인가.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경복궁 월대 앞에 울려 퍼졌다. 월대는 경복궁의 정문 격인 광화문 앞에 설치된 석조 무대다. 왕실 행사나 과거시험,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전하는 상소나 상언이 펼쳐졌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성과 임금이 직접 소통하던 곳이랄까. 1866년 만들어졌으나 일제가 전차가 다니는 철길을 만들며 사라졌다가 지난해 복원됐다.
수백년이 지난 이날도, 월대는 최고 권력과 소통하는 광장 역할을 했다. 주변엔 여러개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고, 중앙 무대엔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현수막이 걸렸다. 촛불을 든 수만의 시민들은 용혜인 대표 질문에 “바이든이다. 당연히 뇌물이지. 100% 공천개입”이라는 야유와 함성을 올렸다.
용 대표는 “국민은 모두 진실을 알고 있는데, 용산만 다른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고 했고 “집권 후 윤석열 대통령은 단 한번도 국민 앞에 진실하지 않았다.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상식을 이야기하는 국민들에게 호통을 치고 언론을 고소했다”고 지적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파면이란 두 글자를 꺼내 들었다. 조국 대표는 “윤석열은 오로지 자신의 범죄 혐의를 감추는 데 권력을 쓰고 있다. 또한 자신의 배우자 김건희 범죄 혐의를 감추기 위해서 권력을 쓰고 있다”며 “이제 국민 모두는 알게 되었다. 국민이 뽑은 적이 없는 대통령 배우자가 국정에 개입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알고 보니 권력서열 1위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석열 김건희 공동정권은 검찰 독재정권은 대한민국을 망쳐놨다. 이제 윤석열을 파면하고 김건희를 수사하자. 그리고 정치검찰은 해체하자. 석 달도 너무 길다”고 강조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이태원 참사를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으로 의심하고 먹고살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 건설노동자들을 건폭 공갈협박범으로 낙인찍고 순직해병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사건 은폐를 지시하고, 하루빨리 끝내야 할 이역만리 전쟁에 우리 젊은이를 내몰겠다고 하다”며 “국민에 안전·행복·존엄 그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런 자가 국가원수로 외교를 하고 행정부 수반으로 민생을 책임지고 국군통수권자로서 안보를 지휘하는 나라에 어떻게 2년 반을 더 살 수 있단 말인가. 못 살겠다. 더는 살지 않겠다. 윤석열을 저 권좌에서 끌어내리자. 윤석열 탄핵의 겨울을 함께 맞이하자”고 강조했다.
이날 촛불집회 무대에는 해병대 예비역 대위, 역사 교수, 숨진 쿠팡 배송기사의 아버지, KBS PD 등이 무대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망쳐놓은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하나씩 드러났다.
방혜림 해병대 예비역 대위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성근 사단장을 위해 자리보전해 주고 특검법도 번번이 거부해 주고 덕분에 그는 월급 받아 가며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씨는 “11월 21일 다음 주 목요일 1시반, 국방부 법원에서 박정훈 대령의 결심 공판이 예정돼 있다”며 “박정훈 대령에게 무죄가 선고되면,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그 측근들이 대국민 쇼를 벌였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씨는 “천년만년 거부한다고 해서 진실이 숨겨지지 않는다. 반격의 신호탄이 될 수 있도록, 박정훈 수사단장에 무죄가 선고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보태자”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교수는 “강제동원 역사를 지운 일본의 사도광산 등재에 찬성해 주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최종 승소한 일본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은 묵살했다. 그사이 독도 해상에는 일본 자위대가 욱일기 휘날리며 군사훈련을 하고 서울에선 일본 왕의 생일잔치가 열리고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조선은 안에서부터 썩었고 그래서 당했다’던 자가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이고 ‘외교적 파장을 고려해 강제 동원이란 표현을 쓸 수 없다’고 강변하는 자는 현재 주일대사이며 ‘과거사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말한 사람이 대통령실 외교 실세”라며 “도저히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 부정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현재 국민 청원 진행 중이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부경대학교 이승민 학생이 무대에 올랐다. 경찰은 지난 12일, 2백여명의 병력을 부경대 학내로 투입해 ‘윤석열 대통령 퇴진 투표’ 운동을 진행하던 학생 10여명을 전격 연행했다. 군사독재 시절 공안정국에서나 보던 사건이 2024년 대낮에 벌어졌다. 당시 연행됐던 이승민 학생은 “학교 안에서 윤석열 퇴진을 외친 것이 무자비하게 끌려가야 하는 일이었냐”고 되물었다. 그는 “집에 가기 위해 문을 열어달라는 대학생들을 퇴거불응 현행범으로 잡아간 경찰의 불법 체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고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쿠팡 로켓배송 사망 노동자 정슬기씨 아버지 정금석씨는 “41세 건강하던 아들은 아내와 어린 네 자녀를 남겨두고 갑자기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 쿠팡에선 최근 4년간 무려 20여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쿠팡은 사고가 나면 재빠르게 수습해 현재 나타난 유족이 단 세 명뿐”이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쿠팡의 무도한 행태가 묵인되고 있고, 우리 아들이 숨진 이후에도 4명이 더 사망했다. 이 일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어디에 있나.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되물었다. 정씨는 “이번 국회 회기가 끝나기 전에, 쿠팡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한 청문회가 꼭 열려야 한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조혜진 KBS 시사다큐 PD는 “낙하산 사장은 친일반민족행위자기념사업회 이사를 지낸 자를 역사 프로에 MC로 만들려 했고, PD가 저항하면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세월호 10주기 다큐도 더라이브도 없앴다. 설명을 요구하면 거부했고 지적하면 프로그램을 없앴다”고 지적했다.
조 PD는 “지금 KBS는 국민이 보시는 앞에서 대통령에게 아부한 자의 사장 임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 기자와 피디들은 국민의 방송을 일신의 영달에 이용한 자와 싸우겠다. 이 싸움이 헛되지 않도록 근본적 법제화를 위한 경주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건희 특검 수용, 국정 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시민행진’은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1시간 30분 넘게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난 후 안국역을 지나 을지로까지 행진하고 8시경 해산했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경찰과 참가자 사이의 마찰은 없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등 시민단체는 20여명의 변호사, 활동가로 구성된 인권감시단을 운영하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시민행진을 주최한 ‘거부권거부 전국비상행동’은 돌아오는 다음 주 주말(23일·토)에도 대규모 촛불집회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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