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네이버가 13년 키운 라인, “이제 손 떼라”는 일본

 


일본, 라인 ‘완전자국화’ 노리나...전문가들 “정부, 적극 대응해야”

라인야후 ⓒ라인야후 홈페이지

네이버가 일본 정부로부터 일본의 국민메신저 '라인'에 대한 경영권 포기 압박을 받고 있다. 현재 라인은 현재 일본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과 통합돼 '라인야후'로 운영 중이다.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출자한 A홀딩스가 대주주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라인에서 일어난 해킹 사건을 빌미로,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가진 소프트뱅크에 네이버와 지분 조정을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요구대로 소프트뱅크가 네이버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사들이게 되면 '라인야후'는 완전한 일본 기업이 되는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한국이 개발한 '라인'을 손쉽게 '완전자국화'하려는 의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라인이 진출한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시장까지 단번에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소프트뱅크가 네이버와 지분 매각 협상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총무성은 지난 16일 라인야후에 대한 행정 지도를 통해 '자본관계를 포함한 네이버와의 관계 재검토'를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라인의 고객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네이버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당시 고객 정보 관리 업무를 위탁받은 네이버 클라우드의 전산망 해킹이 정보 유출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가 대주주인 동시에 위탁사인 네이버를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네이버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총무성은 이와 함께, '네이버와의 위탁관계 축소 혹은 종료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할 것', '네이버 네트워크와의 완전한 분리의 실현이 2년 이상(2026년 계획) 앞설 것' 등을 방지책으로 요구했다. 운영상에서도 네이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라는 요구다.

라인은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국민 메신저다. 지난해 10월 기준 일본 라인 사용자(MAU)는 9600만명 수준이다. 약 1억2200만명의 일본 인구 중 80%가 라인을 이용하는 셈이다.

라인은 2011년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NHN재팬에서 개발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지난 2019년 말 일본 소프트뱅크와 라인과 일본 1위 포털 야후재팬 모회사인 Z홀딩스 통합에 합의했다. 통합 방식은 일본에 상장된 라인의 주식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모두 사들인 뒤 상장폐지하고,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 대 50으로 출자한 'A홀딩스'를 설립해 Z홀딩스의 지분 약 65%를 소유, 라인은 구조 변경을 통해 Z홀딩스 산하에 두는 식이었다. 2021년 3월에 이 같은 복잡한 통합과정이 완료됐다. 2023년 10월에는 아예 라인, 야후재팬, Z홀딩스를 통합해 현재의 라인야후 체제를 만들었다.

통합 합의 당시 경영권은 소프트뱅크가, 기술·개발은 네이버가 담당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A홀딩스는 소프트뱅크 자회사로 편입됐다. 현재 라인야후 역시 소프트뱅크 자회사로 분류된다. 네이버와는 관계사 관계가 됐다. 실제로 A홀딩스의 지분관계를 보면 소프트뱅크 50%, 네이버 42.25%, 제이허브 7.75%의 구조다. 제이허브는 네이버 지분 100%의 일본 자회사다. 즉, 실제로는 소프트뱅크와 네이버가 절반씩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지만, 형식상으로는 소프트뱅크를 대주주로 세워 경영권을 보장해 준 셈이다. 다만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A홀딩스 공동 대표이사 회장을 맡는 등 기존 라인 경영진들이 라인 경영을 주도하는 안전장치를 뒀다.

라인야후 지분 구조 ⓒ라인야후 홈페이지

하지만 여기에 일본 총무성이 지분 관계 조정을 '요청'하면서 공동경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요청이지만,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이라는 점과 관료주의가 강한 일본 사회 분위기 상 라인야후 경영진에는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소프트뱅크도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지난 23일 교도통신은 소프트뱅크가 ‘A홀딩스’의 지분을 추가 확보하고자 네이버와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사 간 주식 거래가 이뤄지면 라인야후 경영권은 소프트뱅크 측으로 넘어가게 된다. 교도통신은 "소프트뱅크는 라인야후를 근본적으로 개혁시킬 수 있도록 일정 비율의 주식을 매입하고자 한다"면서 "다음달 9일 결산 발표일 이전에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신중호 라인야후 최고제품책임자(CPO) 겸 대표이사가 최근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일부를 포기한 것도 일본 정부의 압박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자국 회사와 협력하는 외국 기업의 경영권을 정부 차원에서 압박하는 행위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일본 내 일각에서 주장하던 라인의 '완전자국화'를 이번 기회에 실현하기 위한 시도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일본의 황색언론 중 하나인 '문춘' 등은 지속해서 네이버를 통한 라인의 보안에 의혹을 제기하며서 '완전 국내화'를 주장해 왔다.

이와 관련, 방효창 두원공과대 교수는 "글로벌 플랫폼을 다 미국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그나마도 일본은 메신저인 라인 하나만 안 뺏기고 있다"면서 "일본도 나름 자기들만의 메신저 플랫폼이 있는 건데 그게 한국 기업이 관련돼 있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디지털전환을 추진 중인 일본 정부로서도 디지털 인프라인 라인이 한국 기업의 영양 하에 있다는 것이 불만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방 교수는 "라인 같은 메신저를 일본이 독자적으로 키우려고 하면 국력도 어마어마하게 필요하고, 이용자 문화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라인 같은 새로운 걸 만들기 힘든 상황에서 지분이 50 대 50이니까 1%만 변해도 라인이 완전히 일본 기업이 되니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디지털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2027년까지 스타트업 시장에 10조엔(약 90조원)을 투자하는 등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먼저 디지털 전환을 이룬 한국에 비해 일본의 IT 개발 역량은 뒤쳐져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된 시각이다. 자금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디지털 격차를 따라잡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디지털 전환에서 메신저 플랫폼은 주요 디지털 인프라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일본 내각부와 연계한 행정민원 온라인 서비스를 진행하다 지난 2021년 라인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을 이유로 중단한 바 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네이버의 영향력을 줄이면 라인을 행정서비스에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만일 라인야후의 지분이 조정될 경우, 일본뿐 아니라 대만, 태국 등 라인이 진출한 아시아 시장을 뺏길 우려도 있다. 현재 라인의 글로벌 진출은 라인이 한국에 설립한 자회사 '라인플러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라인을 잃게 되면 한국산 메신저 플랫폼의 글로벌 진출 발판 자체를 일본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 교수는 "라인이 동남아도 활성화돼 있는데 이것도 함께 판단해야 한다"면서 "일본시장의 라인 하나만 놓치는 게 아니고 동남아도 한꺼번에 놓칠 수 있어서 네이버뿐 아니고 국가적으로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내 사업권 강제 매각에 나선 것과 유사해 보인다. 글로벌 플랫폼들에게 시장을 뺏긴 일본이 플랫폼 자국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한일 간 우방국임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틱톡 사례와 비교되는데 적어도 미국인 법을 의회에서 통과하고 하는 건데 일본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압력을 행사한다는 건 부당하다"면서 "법에 근거하지도 않고 외국 민간기업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건 부당하고 당연히 정부가 강력하게 항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 교수도 "일개 기업이 외국 정부를 대상으로 싸움을 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국내에서 조금 더 정부가 우려를 표명한다든지 뭔가 어필을 하는 등 대응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김백겸 기자 ” 응원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