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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2일 수요일

[인터뷰] 조선소→건설사 관리직→건설노동자, 그가 말하는 ‘건설노조’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④] 30대 청년 건설노동자 제치성 씨 “건설노조는 제게 하나뿐인 희망”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① [인터뷰]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비정상적 건설업계 놔두고 노조만 때려잡나”
② 타워크레인 월례비, 원인은 건설사에 있는데 노조만 때리는 정부
③ 건설현장 고용문제 외면한 정부, 대신 나선 노조에 이제 와서 “조폭”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청년 건설노동자 제치성 씨가 18일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2.18 ⓒ민중의소리

30대 건설노동자 제치성 씨(34)의 바람은 소박했다. 안전하게 일하고, 월급이 밀리지 않고,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일터. 조선소 하청노동자로, 건설사 관리직으로 일하면서 겪은 '아픈 경험'들 때문이었다.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던 제 씨의 삶은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만나면서 달라졌다. 올해로 5년 차 건설노동자인 그는 건설노조를 "하나밖에 없는 희망"이라고 얘기했다.

저임금에 임금체불까지 있었던 조선소 하청노동자 생활,
'기회'인 줄 알았던 건설사 관리직도 절망적이었다


제 씨는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23살의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컴퓨터 공학도였던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로 일했다. 용접 가스에 중독돼 응급실에 실려 가고, 밀폐된 곳에서 작업하다 기절하기도 했다. 훈계라는 이름으로 온갖 폭언과 폭행도 시달렸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그가 받은 월급은 200만원 남짓. 설상가상 조선업 불황기가 시작되자 이 적은 임금마저 받지 못한 달이 늘어났다.

"같이 일하던 형님들도 '3개월이 넘어가면 회사가 망했다고 봐야 한다, 접어라'고 하더라고요. 고민이 많았었죠. 다른 조선소에 경력직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아버지가 하시던 옷 수선 가게를 물려받을지. 당시에 부산이나 경남에도 일할 곳이 없었거든요. 주변에 300만원을 버는 친구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어요. 그러다 군대 선임이 '나랑 건물 지을 생각 없냐, 아버지가 소장이니까 일 배우기 쉬울 거다'라고 제안해서 바로 정리하고 올라간 거죠."

제 씨가 새롭게 일하게 된 곳은 경기도에 위치한 한 전문건설업체 회사였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설계 도면을 그리고, 건설노동자들의 근태를 관리·감독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건설노동자 한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평균 데이터를 뽑고 평균 작업량에 미치지 못하는 건설노동자를 채근했다.

제 씨가 처음부터 노조에 우호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제 씨가 회사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관리하는 시공팀이 어떻게든 공사를 빨리 마쳐야 한다. 제 씨는 현장에서 주로 건설노조 조합원들로만 구성된 일명 '노조팀'을 담당했다. 노조팀이 집회라도 열 때면 '일 좀 하자'고 멱살 잡고 싸우는 게 제 씨의 역할이었다.

"건설사에서 일할 때는 노조가 집회하고 있으면 욕도 하고 심하게 대했죠. 저는 회사에서 어떻게든 자리 잡아야 했던 때였거든요. 나중에 들어보니, 노조팀이 저를 부르던 별명이 '미친개'였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악랄하게 일을 시키고, 집착적으로 괴롭히는 관리자가 없었다고. 지금은 부끄러운 흑역사죠."

당시만 해도 제 씨는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과장'이라는 직책에 오르면 넉넉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 자리는 제 씨가 건설노동자를 쥐어짜고, 회사는 제 씨를 쥐어짜야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제 씨의 희망이 산산조각이 난 순간이었다.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는데 갑작스러운 하혈로 수술을 해야 했어요. 회사에 급하게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하자 '네가 꼭 가야 하냐. 일은 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거였어요. 어쩔 수 없이 짐을 싸고 '회사를 그만두고 가겠다'고 하고 나왔죠.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제시간에 도착을 못 해 수술 날짜도 미뤄졌어요. 이후 다시 출근했는데 '네가 그러니까 아이가 잘못됐다'면서 듣기 힘든 말을 계속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제 씨는 '과장'이라는 자리만 바라보면서 참았다. 마음속으로 "조금만 버텨보자"를 수없이 되뇌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도 노조팀을 관리하던 중이었는데, 회사는 '왜 작업자들을 제대로 컨트롤 못 하냐', '물량이 왜 빨리 안 나오냐'고 다그치더라고요. 당시 노조팀장님은 제가 회사 문제로 힘들 때마다 제 하소연을 다 들어주셨던 분이셨어요. 사석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했던 분이었고요. 그런 분에게 차마 그렇게 하기가…. 명절에 고향으로 내려가 회사를 관둬야 할지 고민할 때 노조팀장님이 제가 걱정되셨는지 '명절 잘 쇠고, 올라오면 술 한잔하자'고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그때 마음을 잡았죠. '저 노조 들어갈게요. 팀 한자리만 알려주세요. 바닥부터 일하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바로 건설노조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관리직에서 현장 노동자로 전환해 일하는 건 쉽지만은 않았다. 형틀목수로 처음 건설현장에 발 들인 제 씨는 "내가 목수 망치질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동료 건설노동자들의 응원과 도움 덕분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제 씨는 고마워했다. 그는 어느덧 한 팀을 운영하는 '팀장'을 맡을 정도로 건설기능인으로 성장했다.

열풍기 쟁취하고, 쉼터·화장실 개선까지
위험하고 불합리한 건설현장 바꾼 건설노조


비계공인 건설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 자료사진. ⓒ건설노동자 제치성 씨 제공

제 씨는 '비계공'이다. 비계란 높은 곳에서 공사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이다. 건설현장을 보면 쇠 파이프를 가로세로로 연결해 건물 외벽을 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구조물을 설치하는 게 비계공이 하는 일이다. 건설현장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로 꼽힌다. 힘이 필요한 일이 많아 여러 공정 중 청년 건설노동자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형틀목수였던 제 씨가 비계공으로 공정을 바꾼 이유는 위험하고 불합리한 공정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비계공이 모인 '시스템팀'은 대부분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일반팀'으로 구성돼 있어, 사측의 부당한 작업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게 제 씨의 설명이다. 

제 씨는 한 예로, 실제 일반 비계공들이 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에는 한 노동자가 본인 키의 4배가 넘는 쇠 파이프를 연결해 들고 휘청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현장 용어로는 '지주 꽂기'라고 불리는 작업이다. 사람 키만한 기둥 4개를 높이 연결해 이동하는 모습은 한눈에 봐도 아슬아슬해 보였다.

"17지주(1m 70cm 쇠기둥)라고 불리는 걸 4단, 5단씩 이어서 들고 중심 잡으려 비틀거리면서 일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헤드라고 불리는 고정장치가 떨어질 때도 많아요. 운 좋으면 쇄골 골절로 끝나고요, 최악의 경우는 팔을 못 쓰게 됩니다. 이런 사례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위험하게 일해야 할까. 공사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한 건설사의 압박 때문이었다.

"이렇게 일하면 위험하단 걸 모두 알고 있죠. 그런데 건설사는 '며칠 안에 끝내라'는 식으로 통보하니까, 노조가 아닌 일반팀은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오히려 건설사가 '기한을 맞추면 내가 단가를 올려주겠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한 층에 4세대가 있는 아파트 한 동을 기준으로 보면, 이 구조물을 설치하기까지 보통 4~5일 정도 걸려요. 그런데 일반팀에게 이틀 만에 끝내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노조팀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2단까지만 연결해서 하자고 요구합니다."

제 씨는 건설노조가 건설현장의 문화를 많이 개선해오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번 겨울에 벌어진 일이었다. 체감온도 영하 21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가 찾아온 날, 손이 오므라들지 않을 정도로 추웠지만 현장에는 난로 하나 없었다. 노조팀이 "이 추운 날 다 죽으라는 것이냐, 열풍기라도 달라"고 요구하자, 사측은 '이미 현장에 다 지급했다'며 회피하기만 했다. 사측이 지급했다는 열풍기는 건설노동자 몫이 아닌 콘크리트 양생을 위한 열풍기뿐이었다.

노조팀의 거듭된 요구에도 사측의 무시는 계속됐다. 결국 건설노조 경기지부의 노동안전위원들이 건설사와 협상하면서 열풍기를 하나씩 확보하기 시작했다. 비조합원으로 구성된 일반팀 건설노동자들도 "노조팀 덕분에 우리가 일할 수 있게 됐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쉼터나 화장실 문제도 이렇게 하나씩 개선해가고 있다. 건설현장이 개설되면 쉼터나 화장실 문제가 자주 불거진다. 열악한 시설도 문제지만 개수도 터무니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노조팀이 나서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해달라'며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실제 개선까지 이끌어낸다.

이런 사례는 '건설노조'라는 이름으로 뭉치고, 싸워서 만든 변화였다. 특히 제 씨는 단체협약을 통해 보장받게 된 '유급휴일 보장'에 대해선 "혁명 같은 변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반 회사원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명절이나 민방위·예비군 소집일도 유급휴일이 적용된다는 사실이요. 그런데 저한테는 혁명과도 같았어요. 여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돈을 못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건설노조가 단협을 통해 만들어 준 거죠. 물론 하루 일당도 저에겐 큰돈이지만, 무엇보다 의미 있던 건 '다른 사람들처럼 기본적인 존중을 받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일터서 쫓겨나는 건설노동자들,
"건설사들만 날개 달았다…윤 대통령, 생각 좀 깊게 하고 말하길"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청년 건설노동자 제치성 씨가 18일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2.18 ⓒ민중의소리

최근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선봉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윤 대통령은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건설노조를 악마화했다. 지난 21일에는 "노조의 기득권은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행위"라며 노조와 청년세대를 대립 구도로 몰아갔다.

제 씨 역시 자신의 또래들이 건설현장에서 더 많이 일할 수 있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그는 청년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을 기피하는 이유는 윤 대통령이 말하는 노조 기득권이 아니라 건설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열악한 근로조건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현장에서 이를 개선해가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건설노조 조합원들이었다.

"보통 대학생들이 방학 때 인력사무소를 통해 건설현장에서 일하기도 해요. 제가 한 번씩 물어봐요.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고.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임금 수준이나 일만 보면 할 만한데,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거예요. 그런 환경을 개선하는 게 건설노조가 현장에서 실제 하는 일이죠."

이전까지 청년 건설노동자들은 신용카드를 만들거나 전세자금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은행사들이 일용직인 건설노동자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탓이다. 이에 건설노조 청년 조합원들은 2019년 '청춘버스'를 운영하고, 건설근로자공제회를 찾아가 해결 방안을 촉구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건설노동자 공제 사업과 고용복지 사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이다.

정부는 그제야 움직였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퇴직공제금 적립내역서'를 건설노동자의 '소득 증빙서류'로 인정해 대출 이용에 제한이 없도록 은행과 협의한 것이다. 그러자 바로 다음 해인 2020년부터 건설노동자도 은행에서 원활하게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제 씨는 이 일을 노조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꼽았다.

최근 현장에서 청년 건설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건 다름 아닌 정부다. 제 씨는 건설노조에 대한 정부 탄압이 시작되자 건설사들은 이전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건설노조 조합원 채용을 거부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제 씨는 지난 18일 서울역에서 열린 청년 건설노동자 집회에 참석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한다"는 피켓 문구를 적었다. 

"정부 탄압이 건설노조에만 집중돼 있으니까 건설사들은 날개를 단 격이에요. 요즘에는 노조와 교섭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요. 보통 겨울에는 건설현장이 많이 쉬다 보니까 노조팀 중 많으면 10개 팀 정도가 (일이 없어서) 쉬고 다른 팀에 지원 나가는 식으로 버텨왔는데, 이번에는 형틀팀 기준으로 30팀이 놀고 있어요. 노조팀을 안 쓰고,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상황이 더 심해진 거죠."

제 씨는 '노조가 청년들의 희망을 빼앗아 간다'는 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윤 대통령에게 청년은 누구냐고.

"건설노조는 이제 저에게 희망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희망. 건설현장의 불법 하도급과 불안전한 환경 모두 노동조합이 바꾸고 있어요. 지금까지 방치했던 건 정부였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 건설노조가 귀족 노조라고요? 청년 희망을 뺏어간다고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저도 청년입니다. 생각 좀 깊게 하고 말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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