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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30일 목요일

서울과 멕시코시티를 가른 진보에의 믿음...지금 서울은 괜찮을까?

 [좋은 도시를 위하여] 멕시코시티

외국어와의 인연은 1978년 고등학교 재학 시절 맞은 여름방학을 일본에서 홈스테이하며 시작됐다. 당시는 일본어 몇 마디를 배운 게 고작이다. 본격적으로 외국어 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그해 가을 학교에서 들었던 스페인어 수업이다. 그 뒤로 졸업할 때까지 스페인어를 계속 공부했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일본어와 동시에 공부를 했다. 2학년 때부터는 일본어에 집중하면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는 점차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스페인어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즐겁다.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한 첫 외국어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경험이기도 했다. 멕시코에서 오신 중년 여성 선생님은 밝은 성격으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문법 중심 수업이긴 했지만 지루한 설명보다 연습에 비중을 두셨고, 수업 속도도 빨랐다. 스페인어 성적은 늘 좋았다. 그 덕분에 고3 과정을 마친 뒤 장학금을 받아 여름방학에 스페인어권 도시에서 홈스테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 도시 중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더 있긴 했지만, 스페인어 선생님의 영향으로 멕시코의 멕시코시티로 정했다.


▲1980년 멕시코시티 시내 모습. ⓒ로버트 파우저

처음 두 달 동안 머문 멕시코시티에서 스페인어 실력도 부쩍 늘었지만 내게는 도시 자체가 여러모로 흥미진진했다. 일 년 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다시 이 도시를 찾아 한 달을 보내기도 했을 정도다. 벌써 40여 년 전 이야기다.


 

그때 그 도시는 어땠을까.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도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따지고 보면 멕시코시티만을 향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도시, 나아가 개발도상국의 도시화를 생각해볼 계기이기도 하다.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는 2020년 현재 약 92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변까지 포함하면 약 2,180만 명, 광역으로 넓히면 3,080만 명에 달하는데 이 숫자는 멕시코 전체 인구의 약 25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도시의 출발은 아즈텍 문명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약 1325년으로 추정한다. 이후 1519년 스페인군의 침략을 받아 1521년 아즈텍 문명이 항복한 뒤에는 누에바에스파냐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누에바에스파냐는 스페인 식민지의 행정 수도이자 약 300여 년 동안 스페인 제국의 주요 도시로 발달했다. 그 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이곳은 독립국 멕시코의 수도이자 중심 도시로 기능해왔다. 


 

▲멕시코시티 도심 광장. 1980년 촬영. ⓒ로버트 파우저

돌이켜보면 아즈텍 문명, 스페인 제국, 독립국으로 변화해온 오랜 역사에서 멕시코시티는 언제나 이 나라의 중심 공간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수도였다. 테노치티틀란 시절 이곳은 호수 안에 자리 잡은 섬이었다. 육지와의 연결은 다리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땅을 지배한 스페인 제국은 이 섬에 스페인식의 도시를 건설했다. 테노치티틀란 시절부터 있던 광장은 사용하되, 원래 있던 주변 건물은 철거하고 대신 지배자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성당과 관공서 건물을 지어 올렸다.


호수 안의 섬이었던 도시와 육지를 연결하는 여러 개의 다리마다 그 입구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스페인 제국 통치자들은 처음에는 그 마을들을 자국 식으로 전환하더니, 도시가 점점 커지자 호수를 매립한 뒤 도로를 건설했다. 호수를 매립한 곳은 아무래도 지반이 약해 지진이 올 때마다 이 지역 피해는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었다. 다리 입구마다 자리 잡았던 작은 마을들은 멕시코시티의 주변 동네로 흡수되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80년 여름 내가 만난 멕시코시티는 한창 경제급성장을 이루고 있었고, 이로 인해 인구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홈스테이하던 집의 위치 자체가 도시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멕시코시티는 점점 폭발하는 인구를 흡수하기 위해 오래된 주택가 인근에 1957년 계획 위성 도시 시우다드 사텔리테(Ciudad Satélite)를 개발했는데, 내가 머문 집은 여기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 주로 중산층이 사는 또 다른 위성 도시 주택가에 있었다.


▲필자가 1980년 홈스테이한 동네. ⓒ로버트 파우저

그 당시 이 도시의 중산층들에게 자동차는 필수품이 아니었다. 때문에 동네마다 다양한 가게는 물론 슈퍼마켓도 많았다. 대부분의 주부들이 거의 매일 장을 봤고, 멕시코 주식인 토르티야를 파는 가게 앞은 언제나 줄 서는 주부들로 북적였다.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야 했다. 인구 폭발의 시대였기 때문에 버스는 늘 만원이었고, 지하철도 다르지 않았으며 도로마다 교통 체증이 매우 심했다. 한 번 시내를 다녀올 때마다 고역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처럼 이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동네 안에서 가급적 모든 것을 해결했다. 그래서인지 당시 이 지역은 어쩐지 독립된 마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인구 수, 교통난, 공해 등 여러 개발도상국이 안고 있던 대부분의 문제가 1980년대 멕시코시티에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인구 증가세는 점점 꺾여갔다. 게다가 1994년 1월 멕시코가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면서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시티 이외 지역에서 공업 도시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멕시코시티가 아닌 다른 도시 인구 수가 급증세를 보였다.


 

그러나 국가도 도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90년대 이후 마약 거래가 증가하고 이로 인한 폭력과 범죄가 만연하면서 국제적으로 멕시코의 이미지는 빠른 속도로 나빠졌다. 이런 나라의 수도에 누구라도 관심을 기울일 리가 없다.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국제적으로 오버 투어리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지만, 이는 선진국의 몇몇 도시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 멕시코시티는 이런 논의에서도 거론되지 못했다. 풍부한 역사와 비교적 최근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 문화 전반에 걸친 노력 덕분에 예전에 비해 부정적인 느낌은 조금 줄어들고는 있으나, 여전히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미지는 멕시코시티에 대한 호감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1980년대 내가 머문 도시는 또 있다. 바로 서울이다. 두 도시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이런 변화가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지점이 늘 관찰 대상이었다. 두 도시 모두 1960년대부터 진행된 공업화에 따라 인구수가 급증했고, 폭발적인 급증세로 인한 주택난, 교통난, 공해 같은 문제가 심각했다. 


 

▲1980년 멕시코시티 지하철을 탑승하는 시민들의 모습. ⓒ로버트 파우저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두 도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이 멕시코보다 한결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루고, 이를 유지한 것도 중요한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시민들의 교육에 힘을 쓰는 등 사회적 발전에 노력한 한국과 달리 멕시코는 범죄, 부패, 빈부 격차 같은 불안한 사회 문제에 발목이 잡혀 한국보다 훨씬 뒤처지고 말았다. 이러한 차이는 멕시코시티와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에도 다양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오늘날 서울은 IT와 케이팝 등을 통해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도시로 관심을 받고 있지만, 멕시코시티는 여전히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이런 이미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멕시코시티에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가볼 기회가 아주 없던 건 아니었는데, 그때마다 1980년대 막연히 느꼈던 불안함 때문에 알게 모르게 피하곤 했다. 2018년 스페인어 실력을 다시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도 멕시코시티가 아니는 마드리드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 도시를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포기해야 할까. 1980년대 처음에는 두 달, 그 다음에는 한 달여 동안 멕시코시티에 머물던 시절 내가 이 도시에 흥미를 느낀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선주민의 역사와 문화를 포용하면서도 새롭게 유입된 문화와의 혼합된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추구하는 멕시코시티는 어쩌면 세계적으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민족과 인종 갈등을 극복할 길을 열어 줄지도 모른다.


 

실제로 멕시코시티는 여러 면에서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진보적 도시다. 낙태와 동성 결혼을 다른 주보다 일찍 허용했다. 오늘날 멕시코시티 시장 클라우디아 샤인바움(Claudia Sheinbaum)은 이민자의 후손이면서 여성이자 유대인으로서는 최초로 그 자리에 올랐다. 에너지공학박사 출신답게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으니 그가 펼쳐 보일 시정이 어떨지 관심이 간다. 멕시코시티에서 활약하는 이민자의 후손은 클라우디아 샤인바움만이 아니다. 각 분야마다 편견과 차이로부터 벗어난 이들이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혼합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멕시코시티에 오랫동안 형성된, 다양한 문화와 다른 생각에 대한 관대하고 열린 태도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비해 한창 주목 받는 서울은 어떨까. 점점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은 서울을 향해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의 질문에 대한 서울의 답이 궁금하다.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 중앙도서관. 1980년. ⓒ로버트 파우저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9301244505835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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