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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4일 월요일

이 재미있는 지옥에서 사는 재미가 어떤교


등록 :2020-05-05 09:15수정 :2020-05-05 09:25


“형제들이 적어도 셋은 되어야 해.” 생전에 아버지는 늘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둘이 싸울 때 가운데서 말리고 화해시킬 또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아버지는 지론대로 나와 여동생, 남동생 셋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세 형제가 서로 존중하며 잘 지내라는 당신 뜻과는 달리 ‘잘난’ 맏이의 압도적인 독재로 다른 두 동생은 언감생심 형에게 달려들 생각을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나도 가끔 아쉬울 때가 있어서 막내에게 여동생과의 중재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총선이 끝났습니다. 의원정수 총 300석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 미래통합당이 103석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정의당, 무소속등 겨우 17석뿐이어서, 둘이 싸울 때 가운데서 말리고 타협안을 낼만한 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덩치 큰 두 당이 죽어라 싸우면 국민들도 둘로 갈려 죽자사자 싸우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됩니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후보자 투표만을 기준으로 보면 전체 유권자의 50퍼센트가 민주당을, 40퍼센트가 통합당을, 10퍼센트가 정의당을 지지했습니다. 이런 유권자들 뜻을 제대로 국정에 반영하려면 민주당이 150석, 통합당이 120석, 정의당이 30석쯤 가져갔어야 합니다. 그리되었더라면 아버지 말씀마따나 삼형제가 잘 지냈으려나? 그런데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도로 수도권에서 통합당을 지지한 표들이나 영남지역 민주당 표들은 모두 죽은 표가 된 거죠. 그래서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도가 민주주의의 핵심인데도 이를 죽어라 반대만 한 정당은 제 발등 제가 찍은 겁니다.

엊그제 도봉산을 오르는데 코로나 덕에 대기가 맑아 하늘은 그지없이 푸르고, 드문드문 하얀 흰 구름 흘러가고, 건너편 능선이며 계곡을 가득 덮은 연두빛 나뭇잎 물결이 바람 따라 흔들리며 군무를 추더군요. 하늘, 산, 구름, 연두빛 물결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나’. 그 순간 그저 모두가 한 몸이었더랬습니다.

절 초입 돌기둥에 새긴 글귀 그대로였습니다. “천지동근(天地同根), 만물일체(萬物一體)”라. 하늘과 땅이 한 뿌리에서 났고 만물이 한 덩이라. 불교 화엄사상인데 ‘우리 모두 하느님 내신 한 형제’라는 예수님 가르침과 똑같지요.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한 뿌리이긴 하겠으나, 이 세상에 제각각 다른 몸으로 나오면서 얼굴도, 생각도, 성격도 다 달라지니 여기서부터 ‘재밌는 지옥’이 시작되는 거지요. 요즘 마당에 한창 노란 꽃대가 올라오는 보리뺑이들을 두고 노모와 나는 전쟁을 벌입니다. 노모는 잡초들이 너무 기승이라고 꽃대를 댕강댕강 자르고 나는 왜 보기 좋은데 그냥 좀 놔 두시라 다툽니다. 제일 가까운 모자지간이 이럴진댄 ‘수구보수’ 와 ‘진보좌빨’들이 서로 벌이는 전투의 처참함이야 말해 무삼하겠나요. 오늘 아침 서초동 법원 앞을 지나는데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더군요. “나 민주당 안 찍었다. 경제 망치면 너 네들이 책임져라” 저 소리없는 아우성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얼마나 속상하면 저럴까’ 그 속내는 이해가 갔습니다. 정말 이 세상은 얼마나 재밌는 지옥인가요.

우리 모두 한 뿌리 한 몸이라 가르치는, 으뜸(宗) 가르침(敎)이라는 종교도 그랬지요. 깨침이 단박에 오는 것인지, 아니면 꾸준히 수행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지를 두고 최고 선사(禪師)인 당나라 혜능스님부터 우리 성철스님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우리 마음 본바탕은 본래 여러 분별에 휘둘리지 않고 청정한 데 이걸 알아보는 게 깨침입니다. 그런데 분별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을 깨달아 아는 방법을 둘러싸고 다시 깨쳤느니, 못 깨쳤느니 분별하며 목숨 걸고 싸운 겁니다. 단박에 깨침을 주장했던 혜능은 꾸준한 수행을 주창한 신수스님 제자들로부터 죽임을 당할까 보아 한 밤중에 나룻배 타고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혜능을 내세워 성철스님은 우리나라 선(禪)의 시조격인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돈오점수를 가르쳤다며 힐난하고 그 책을 일체 못 보게 했더군요.

기독교는 불교보다 몇 갑절 더했지요. 2천년 역사에 교리 다툼이나 전쟁으로 죽고 감옥 간 사람들이 도대체 그 얼마던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한 형제입니다. 하지만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이 ‘제각각’들의 ‘이익’과 ‘생각’을 합리적으로 잘 조정해 내는 게 바로 정치입니다. 그리고 이 제각각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흑백 딱 둘로 나누어 우리 편인지 아닌지만을 기준으로 우리 편의 ‘이익’과 ‘생각’을 독점하려는 사람들은 좀 거창한 표현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아왔습니다.

부디 이번 선거에서 배가 부른 맏이는 아량을 베풀어서 동생들 말도 좀 들어주고 틀린 소리해도 잘 도닥이며 감싸 안고 갈지어다.

<공동선 2020. 5. 6월호>에도 실린 공동선 발행인 김형태 변호사의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well/well_friend/943646.html#csidx15167d7c7f7a1e7b2c2de4ae25ae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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