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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3일 금요일

미국의 외교안보 사령탑, 존 볼턴은 누구인가

트럼프, 닉슨과 레이건의 길 따라가길
[기고] 미국의 외교안보 사령탑, 존 볼턴은 누구인가


존 볼턴. 우리에게도 낯익은 인물이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 당시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었고,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지냈다. 당시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과 함께 부시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네오콘의 핵심이었다. 

네오콘의 생각은 미국의 힘으로 세계평화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쟁이나 정권교체(regime change)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요 대상은 그들이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불렀던 이란, 이라크, 그리고 북한이었다. 

그런 볼턴이 돌아왔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큰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는 상원 인준이 필요 없는데, 인준에 약한 볼턴에게 있어서는 다행인 셈이다. 그는 2005년 8월 유엔대사에 임명됐을 당시에도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히자 의회가 여름 휴회에 들어간 틈에 임명됐다. 

미국 헌법은 의회가 휴회하고 있은 때에는 대통령이 상원 인준 없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를 '휴회 중 임명'(recess appointment)이라고 한다. 당시 민주당은 볼턴의 강경한 대외정책 입장과 신뢰도를 문제삼아 임명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볼턴은 13년 전보다 훨씬 중요하고 권한이 많은 직책을 인준절차 없이 맡게 됐다. 

그런데 볼턴의 중책 임명이 우리에게도 중차대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그가 지금의 2차 북핵 위기와 직접 관련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차 북핵 위기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은 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 국무부 통아태 차관보의 방북이다. 방북 첫날 켈리는 북한 외무성 부상 김계관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켈리는 'HEU(High-enriched Uranium. 고농축 우라늄)을 개발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집중 추궁했다. 김계관은 부인했다. 다음날에는 외무성 제1부상 강석주를 만나 비슷하게 다그쳤다. 강석주는 '고농축 우라늄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답했다.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켈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미국 국무부 안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논쟁이 벌어졌다. 2004년 미국 현지 취재 당시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원(Center for International Policy) 연구위원으로부터 이후 진행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해리슨은 <워싱턴포스트>에서의 오랜 취재경력을 통한 네트워크로 관련 정보를 취합해 놓고 있었다. 당시 KBS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필자에게 그는 국무부 내 강온파 논쟁이 10일 이상 계속됐고 그 와중에 관련 정보가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유출됐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이를 크게 보도했고, 이후 각 언론이 받으면서 북한의 HEU 보유는 북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당시 정보를 유출한 측은 국무부 내 강경파였고, 그 핵심은 군축담당 차관 볼턴이었다. 온건파는 'HEU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을 크게 문제삼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맞서 강경파는 '강석주의 얘기는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진행되면서 강경파는 국무부가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신문에 정보를 유출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깨는 길로 가고, 북한은 핵을 본격 개발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북핵 위기가 다시 시작됐다. 

▲ 지난달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컨퍼런스(CPAC)에서 연설하고 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 ⓒAP=연합뉴스

해리슨은 당시 이런 얘기도 전해줬다. 자신이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외교관으로부터 들었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미국외교관들을 통해서도 확인했는데, 당시 북한이 켈리에게 중대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그 제안은 미국이 대화만 시작하면, 북한이 갖고 있던 사용후 핵연료봉을 즉각 국외로 반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북한입장에서는 큰 양보였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 이전에 5메가와트 원자로를 가동해 확보한 사용후 핵연료봉 8010개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즉각 밖으로 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과 미국은 이면합의로 핵연료봉을 제3국으로 반출하기로 했다. 경수로 2개 가운데 첫 번째 것의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시작하면 핵연료봉을 제3국으로 운반하기로 한 것이다. 2002년 10월 당시 핵심부품이 인도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북한은 북미대화 시작을 위해 핵연료봉 반출을 제의한 것이다.  

국무부 온건파는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면서 북한과 대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강경파는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싫어했다. 북한을 계속 압박해 핵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는 강온파가 대립하고 있다. 크게 보면 국무부는 온건파가 많고, 백악관과 국방부, CIA에는 강경파가 많다. 세밀하게 들어가면 부처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그 내부에서도 강온대립이 존재한다.  

북핵문제의 해결방안을 놓고,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강온파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공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도를 가지고 달려들면 얼마든지 이용 가능한 것이 북한정보다. 어차피 확인되기 어려운 것이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흘려도 되는 것이다.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재진입 기술까지 완성했다', '북한이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체제)를 뚫을 수 있는 신무기를 개발 중이다' 등등의 미국발 대형기사가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에 관계없이 이런 기사는 북한을 다시 악마로 만들고, 국제사회는 그 악마에게 일제히 창을 겨누게 될 것이다.  

2002년 10월 당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될 때였다. 북일 간에도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관계 개선의 무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남북관계, 북일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이 현상유지(status quo) 세력이 되어 가면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은 떨어져 간다. 지금은 남쪽 진보 정부의 냉전해체 의지와 북쪽 김정은 정권의 인민생활개선 의지가 공유지역을 찾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볼턴의 강경 대북인식이 어떤 수를 두고 나올지 우려스럽다. 미국의 언론들도 그의 국가안보보좌관 임명을 두고 강경파(hard-liner, hawk)가 대북정책을 주도하게 됐다며 염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온건파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물러나고 새로운 국무장관에 CIA국장 마이크 폼페이오가 지명된 이후 볼턴까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등용돼 이들이 어떤 합작품을 내놓을지 염려가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공화당 행정부가 '빅 딜'을 잘 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희망을 걸어 보아야 하겠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개혁개방으로 나오게 했고, 닉슨이 마오쩌둥과 정상회담을 통해 데탕트 시대를 열지 않았던가. 트럼프도 볼턴, 폼페이오를 이끌고 성큼 그 대열에 올라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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