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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대통령 하야’는 어른이 아니라 ‘고등학생’ 때문이었다.

“그 촛불 다시 한 번 켜지는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임병도 | 2016-11-11 09:05:21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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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8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5일 촛불집회 사전 집회에서 화제가 됐던 사진 한 장을 슬라이드로 보여줍니다.
김 의원은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우리 법무부 장관은 지금 나라가 이 꼴이 돼가고 있는데도 이 사진 봤습니까?”라며 “문제죠?”라고 단정을 짓습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중고생의.. 어떤 집회에 참여하는 것에 있어서 물론 표현의 자유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 아직 의견이 성숙되지 않은..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답변하자 “생각을 해보세요. 무슨 표현의 자유가 나옵니까?”라며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말을 이어갑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혁명 정권이잖아요. 무슨 혁명 하겠다는 거에요. 공산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두 가지 말고 또 뭐가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김 의원은 당시 촛불집회에 나온 중고생들의 표현까지 문제 삼으며 “저 배후에는 종북주의 교사가 있지 않겠습니까?”라며 김현웅 법무장관에게 “이적단체성 조사를 하십시오”라고 강요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혁명이 아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대로 혁명이 ‘공산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이 두 가지 이외는 없다고 한다면, ‘프랑스 대혁명’,이나 ‘러시아 혁명’,’동유럽 혁명’,’신해혁명’ 등도 모두 혁명이 아닌 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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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 당시 마리 앙투와네트의 처형 모습을 그린 그림. ⓒ프랑스역사박물관

우리가 흔히 ‘혁명’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프랑스 대혁명’이 혁명이 아니라는 김진태 의원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조차 공부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프랑스 대혁명을 모를 수 있는지 참 신기합니다.
혁명을 ‘공산주의,사회주의 혁명’이외에 없다고 생각하는 김진태 의원은 2015년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5.16을 혁명이라고 말도 못하냐”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20여 년간의 검사 생활 중 절반가량을 공안수사를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김진태 의원의 눈으로 보면 시민은 물론이고 중고등학생이 거리에 나서는 모든 행위 자체가 ‘종북’입니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장본인 중의 하나인 새누리당 의원이 중고생들의 집회를 ‘종북’으로 색깔론을 입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 4.19혁명의 시작이 됐던 대구 2.28 학생 의거’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중고생의 집회를 가리켜 ‘아직 성숙되지 않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4.19혁명’을 이끌어낸 것은 중고등학생이 시작한 ‘2.28 대구 학생 의거’입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과 부패에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당은 이런 국민의 열망에도 장기 집권을 노리고 부통령에 이기붕이 당선되도록 정치 공작을 펼쳤습니다. 이승만이 죽었을 때 부통령이 권력을 승계하도록 규정된 헌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기붕은 야당인 민주당 장면 부통령에게 뒤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요일인 2월 28일 장면 부통령 후보의 대구 수성천변 유세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면 후보의 유세에 몰릴 것이 두려운 이승만 정권은 학생들이 장면 후보 유세장에 오지 않도록 꼼수를 부립니다.
‘대구 지역 고등학생 일요일 등교계획’
▷ 경북고: 학기말 시험
▷ 대구고: 토끼사냥
▷ 경북사대부고:임시 수업
▷ 대구상고:졸업생 송별회
▷ 대구여고:무용 발표회
이승만 정권은 고등학생들에게 ‘시험’.’토끼사냥’,’임시수업’,’무용발표회’ 등 억지 명분으로 일요일 강제 등교 지시를 내립니다. 2월25일 밤부터 경북고,대구고,경북사대부고의 학도호국단 간부 학생들은 비밀 회합을 갖고, 일요일 등교 지시에 대한 항의 시위를 약속합니다.
2월 28일 12시 50분에 모인 800여 명의 경북고 학생들은 결의문을 낭독하고 대구 시내로 향했습니다. 대구고생 800여 명과 경북여고생 100여 명도 참여했습니다. 이때 경북사대부고생들은 시위 참가를 눈치챈 교사들이 학생들을 강당에 감금하는 바람에 늦게 시위에 합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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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시위에 나선 대구 학생들. 경찰은 학생들을 구타하며 연행했다. ⓒ1960년 3월1일자 동아일보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감에 의한 호소인 것이다”라며 대구지역 학생들은 ‘학원 자유화’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교사와 경찰들은 정문을 막았지만, 학생들은 담을 넘어 거리로 나섰습니다. 경찰들은 사복 경찰까지 동원해 거리에서 학생들을 보이는 데로 연행했습니다.
대구 학생들의 시위는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300여 명이 연행되면서 강제 해산됩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대구 학생들은 29일에도 시위를 계속하면서 ‘학원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2.28 대구 학생 시위를 계기로 전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공명선거 실시’와 ‘부정선거 배격’ 등 민주주의 근간인 투표에 대한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결국 4.19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스무 살에 정치에 참여한다고 알 수 있을까요? 미성년자인 저희도 국민입니다.’

지난 11월 5일 거리에서 만난 학생들은 어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민주주의 의식을 가졌습니다.

고등학생 박성우 군은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 ‘정말 하지 말라는 짓 다하고, 일은 벌여 놓고 나중에 나 몰라라 하는 그런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김지은 중학생은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들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분들도 있는데, 제 생각에는 갑자기 스무살 에 정치에 참여하면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요. 백지 상태에서 갑자기 정치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저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를 처음부터 해서 천천히 준비해 나가는 게 바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저희도 한국에 살고 있는 거잖아요. 저희는 미성년자라 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일은 저희라도 나서서 스스로 해야 한다고 봤어요” (봉명중학교 김지은 학생)
김지은 학생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말뿐이었습니다. 정치를 몰랐던 학생들이 스무 살만 되면 제대로 투표를 하고 정치를 알 수 있을까요? 미성년자라도 국민이며, 오히려 자신들의 삶과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에 동참해야 맞습니다.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생들이 거리에 나온 모습을 보면서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라며 “학생들을 거리에 나오게 해서 미안하지만, 세상이 바뀌는 건 정말 이런 세대들이 움직일 때 바뀌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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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학생들 ⓒ다큐창작소 ‘나는 거리에 섭니다.’

“그 촛불 다시 한 번 켜지는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대구 경북고 학생 결의문 중에서)
‘2·28대구학생민주운동’은 광야를 태우는 한 알의 불씨가 되어 들불처럼 번져갔고, ‘3·15마산의거’, ‘4·19혁명’, ‘4·26 이승만 대통령 하야’로 이어져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이 나라 최초의 민권 민주주의 혁명인 4월 혁명을 완수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2.28민주운동 중에서)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누가 가장 잘 낼 수 있겠습니까? ‘2.28 대구 학생의거’ 에서 보여줬듯이 고등학생들입니다. 거리에 학생들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성년자인 그들도 국민입니다.
11월 12일 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만나면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라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촛불을 다시 켜는 날,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게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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