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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4일 일요일

쓰레기를 사랑한 야생동물의 비극

쓰레기를 사랑한 야생동물의 비극

조홍섭 2016. 08. 15
조회수 709 추천수 0
유럽 황새, 아프리카 월동지 대신 쓰레기매립지 머물러…위생매립지화 땐 타격 불가피
터키 불곰도 매립지 때문에 연례 이동 중지 늘어, 제3세계 매립지는 야생동물 천국

1_University of East Anglia2.jpg» 음식물 쓰레기를 먹기 위해 포르투갈의 한 매립지에 몰려든 새들. 갈매기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있는 황새들이 보인다. 이스트앵글리아대
 
1930년대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서울의 난지도(지금의 노을공원, 하늘공원, 월드컵 공원 일대)는 커다란 섬이었다. 큰비가 오면 물에 잠겼다. 그러나 물이 빠지면 비옥한 모래땅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땅콩 등 농작물을 지었다. 

강 건너 여의도도 비슷했다. 대규모 이농행렬이 서울로 향했다. 급속한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대느라 서울 변두리에 수많은 무허가 마을이 생겼다. 서울에서 가까운 난지도는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쓰였다. 수많은 청소차가 가정에서 거둔 쓰레기를 싣고 와 이곳에 부렸다. 모든 생활쓰레기와 일부 산업쓰레기가 아무런 사후처리 없이 버려졌다. 

2_1930년대 서울 지도.jpg» 1930년대 서울(경성) 지도. 한강의 모습이 현재와 많이 다르다. 여의도와 함께 난지도는 커다란 사주였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지금의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에서는 쓰레기를 차에서 내리자마자 흙으로 덮고 부패가스는 따로 회수하고 탈취제를 뿌려 쓰레기를 묻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진다. 난지도 매립지는 비위생적이었지만 그곳의 쓰레기는 수많은 생명에게 유용한 자원이었다. 갈매기 같은 새들과 파리 등 곤충뿐 아니라 도시에서 밀려난 빈민들의 마지막 삶터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쓰레기 속에서 플라스틱과 금속 등 돈이 될 만한 것을 찾았고. 동물들은 먹이를 찾았다.

2007년 파키스탄 제2의 도시 라호르를 방문했다. 이 나라의 비위생 쓰레기 매립지의 실태를 조사해 한국처럼 위생 매립지로 바꾸려는 우리나라 연구자들과 동행했다. 인더스강 지류인 리비강을 찾았다. 강변은 놀랍게도 쓰레기로 이뤄져 있었다. 아프간에서 쏟아져 들어온 난민들이 곳곳에 천막촌을 이루고 있었다. 

3.jpg» 파키스탄 제2의 도시 라호르의 강변에 자리잡은 쓰레기 야적장. 맹금류를 비롯한 각종 야생동물과 물소 등이 먹이를 찾는 곳이다. 조홍섭 기자

이들의 생계수단은 쓰레기에서 종이와 플라스틱 등을 재활용하는 것이었다. 도시 외곽을 무단 점유해 쓰레기를 파먹고 사는 이런 무허가 촌락 주민은 전체 도시인구의 25~30%에 이르렀다. 

매립지에 가보았다. 1970년대 우리나라 난지도와 비슷했다. 쓰레기가 타는 매캐한 냄새를 헤치고 새 쓰레기를 부리는 강변으로 향했다. 강변 사유지에 쓰레기 매립을 허용해 땅을 돋운 뒤 가격을 올리는 것은 토지 소유자들에게 인기 있는 재테크였다. 

새로 쓰레기가 부려지자 가장 먼저 달려드는 것은 동물이었다. 백로 떼가 쓰레기를 뒤졌고 하늘에선 죽은 동물을 노리는 맹금류가 떼 지어 빙빙 돌았다. 육상동물로 가장 많은 건 소였다. 주민에게 쓰레기장은 소의 먹이터이기도 했다. 

4.jpg» 1970년대 난지도를 떠올리게 하는 라호르시의 쓰레기 매립장. 빈민가 어린이들이 쓰레기에서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있다. 조홍섭 기자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쓰레기장을 뒤지며 돈이 될 물건들을 찾았다. 쓰레기 매립장의 이런 모습은 제3세계 대도시에 흔하다. 대도시 주변 빈민들은 쓰레기를 삶의 수단으로 삼고 있고 수많은 야생동물도 이곳에 기대어 살아간다. 쓰레기가 도착하자마자 ‘매정하게’ 묻어버리지 않는 한.

음식 찌꺼기를 비롯해 다양한 유기물이 들어있는 생활쓰레기는 야생동물을 불러들인다. 갈매기나 까치, 까마귀 등 잘 알려진 청소동물만이 아니다. 쓰레기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야생동물에게 영향을 끼친다. 유럽에 사는 황새인 홍부리황새에 관해 최근 이뤄진 일련의 연구는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5_University of East Anglia3.jpg» 유럽에 서식하는 홍부리황새. 아프리카에서 월동하지만 최근 이동 대신 쓰레기매립지 인근에 정착하는 개체수가 늘고 있다. 이스트앵글리아대

유럽에서 황새는 마을마다 가장 높은 종탑 등에 등지를 틀고 살아가는 매우 친근한 동물이다. 특히 황새가 아기를 가져다둔다고 믿어 사랑을 받는다. 가을에 어디론가 사라진 뒤 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황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실, 홍부리황새는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난다. 지중해와 사하라 사막을 넘어 멀리는 남아프리카까지 날아간다. 그런데 홍부리황새의 이런 오랜 계절 이동 행동이 흔들리고 있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손쉽게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먹이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유럽의 홍부리황새 가운데 아프리카로 월동여행을 떠나지 않고 번식지에 주저앉아 상주하는 집단이 늘어났다. 특히 포르트갈, 스페인 등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포르투갈에는 1995년 홍부리황새가 1187마리 분포했다. 그 수가 2008년엔 1만20마리로 10배 가까이 불었고 2014년에 1만4000마리에 이르렀다. 

이 황새가 지브롤터를 건너 아프리카로 먼 여행을 떠나지 않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쓰레기매립장의 유기물 찌꺼기였다. 음식점이나 가정에서 버린 닭의 머리와 내장 등 부산물 같은 음식 쓰레기는 영양가 풍부하고 연중 규칙적으로 공급되는 양질의 먹이 구실을 했다. 

5_University of East Anglia.jpg» 쓰레기 매립지에 몰려든 황새. 유럽연합의 지침으로 하역 즉시 복토가 이뤄지면 이들은 다시 먼 월동 이동에 나설 수 있을까. 이스트앵글리아대

지난 3월 과학저널 <이동 생태학>(Movement Ecology)에 실린 나탈리 길버트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조류학자 등의 논문은 쓰레기 매립장이 유럽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대형 조류의 행동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잘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황새 48마리에 가속센서를 포함한 위성 추적장치를 부착해 조사했다. 놀랍게도 쓰레기 매립지는 황새에게 번식기뿐 아니라 비번식기에도 매우 중요한 먹이터였다. 오히려 번식기에는 새끼에게 작은 먹이를 먹이기 위해 비번식기보다 자연 먹이를 더 먹였다. 자연의 먹이가 부족한 비번식기 동안 황새는 매립지에 더욱 매달렸다. 

월동 황새의 80%가 매립지 주변에 모여 살았다. 매립지는 연중 먹이의 70%를 제공했다. 자연히 매립지에서 가까운 곳은 둥지 터로 인기가 높아 서로 차지하려 경쟁이 심했다. 이제까지 황새는 새끼를 기른 뒤에는 둥지를 방치했다. 그러나 매립지 주변에 상주하고부터는 1년 내 둥지에서 살았다. 먹이를 찾는 시간을 빼고는 대개 둥지에 머물면서 깃털을 다듬고 둥지를 수선하며, 무엇보다 다른 황새가 둥지를 가로채지 못하도록 지켰다.

그러다보니 매립지 근처 둥지 터는 동이 나 멀게는 48㎞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하는 황새도 있었다. 하루 100㎞ 가까이 날아도 소비하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번식기엔 28㎞ 떨어진 둥지가 가장 멀었는데, 이는 새끼가 있는 둥지를 오래 비워둘 수 없고 또 자주 먹이터를 오가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럽연합 차원의 쓰레기 대책으로 이런 전통적 매립지는 차에서 내려진 뒤 곧바로 복토하는 위생매립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급속한 매립지 환경변화가 황새에게 어떤 일을 초래할지 우려했다. 

지난 1월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안드레아스 플락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조류학자 등 연구자들의 논문을 보면 이런 현상이 포르투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럽 전역에서 홍부리황새 80마리에 위성 추적장치를 달아 조사한 결과 독일의 황새 6마리 중 4마리는 사하라 사막을 건너지 않고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쓰레기 매립장에서 겨울을 났다. 러시아, 폴란드, 그리스 황새는 남아프리카까지 날아갔지만 우즈베키스탄의 황새는 과거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월동했지만 이제는 양어장 쓰레기가 있는 타슈겐트까지만 갔다.

6_Bear-at-Garbage-Dump_2_CS (1).jpg» 터키의 한 쓰레기 매립지에 출현한 불곰. 스위스 취리히대 진화생물학 및 환경학 연구소

쓰레기 매립장이 이동이 손쉬운 새들의 행동에만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터키 북동부의 불곰 집단은 계절적 이동을 하는 드문 대형 포유류다. 이 곰들은 건조한 소나무숲에서 살다가 겨울잠을 앞두고 체중을 불려야 할 때가 오면 9~11월 동안 100㎞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다. 습하고 울창한 참나무 숲이 있어 도토리를 마음껏 먹어 지방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코지 스위스 취리히 대 동물학자 등 연구자들이 최근 <동물학 저널>에 낸 논문에서 불곰 16마리를 위성 추적장치로 연구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조사한 불곰 가운데 6마리는 전통적인 이동 행동을 했다. 그런데 10마리는 그런 장거리 이동 대신 도시 주변 쓰레기 매립장 주변에 상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힘들게 이동하지 않고도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7_bear-cubs-drinking-2014_CS.jpg» 개울에서 물을 마시는 터키의 야생곰 가족. 쓰레기 매립지의 존재는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스위스 취리히대 진화생물학 및 환경학 연구소

연구자들은 매립장이 폐쇄될 때 이들 불곰이 어떻게 될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장 그럴 듯하게 예상되는 사태는 먹이가 부족해 굶주린 곰들이 도시를 뒤지면서 사람과 충돌이 늘어나는 일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일을 막으려면 곰들이 서식지와 월동지 사이를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녹지 회랑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지도 매립지가 폐쇄되면서 그곳에서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삶터를 잃었다. 난지도에 기대어 살아가던 야생동물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볼 여유는 없었다. 분명한 건 쓰레기는 사람뿐 아니라 야생동물에게도 유용한 자원이고, 따라서 처리방법을 바꾸면 큰 영향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런 쪽에는 애써 눈을 감았던 게 아닐까.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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