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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일 화요일

해저 3천m서 솟아 “펑,펑…” 화산재 동해 건너 일본까지

해저 3천m서 솟아 “펑,펑…” 화산재 동해 건너 일본까지

조홍섭 2016. 08. 03
조회수 1401 추천수 0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12-1> 울릉도 나리분지

분화구는 정상인 성인봉이 아니라 
섬 중턱 원형극장 같은 나리분지
야트막한 알봉은 이중화산의 증거
 
백두산 천지 같은 칼데라호는?
땅속 깊숙이 숨어 
하루 2만톤씩 용출하는 식수원으로
 
신령수 남동쪽 계곡엔
희고 검은 부석 응회암 등과 함께
150~200m 두께로 차곡차곡
 
수면 아래 백두산 맞먹는 규모
수천년 전 탄화목 다시 불 붙듯
부글부글 살아있는 화산

u0.jpg» 울릉도 나리분지 전경. 울릉도 화산의 핵심 부위는 화구 테두리인 성인봉 등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화구가 함몰해 칼데라 호를 형성했던 나리분지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갈라파고스 섬’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멀고 외딴 섬이어서만이 아니다. 서해와 남해의 많은 섬이 해수면이 낮았던 빙하기 동안 육지와 연결돼 있었지만 울릉도와 독도는 한 번도 대륙과 닿은 적이 없다. 대양에서 화산이 분출해 형성된 섬이기 때문이다. 
19일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을 때 첫눈에 뜨인 것은 자생 향나무가 자라는 깎아지른 절벽과 뾰족한 봉우리들이었다. 깊은 산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울릉도는 해저에서 3000m 높이로 솟아오른 둘레가 30㎞에 이르는 큰 화산체이다. 울릉도 해수면은 그 2000m 높이에 걸쳐 있다. 도동항은 울릉도 화산의 허리께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u1.jpg» 독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릉도 도동 항 일대. 높은 화산의 허리 위치에 놓여 있다. 조홍섭 기자

울릉도 화산의 분화구는 정상인 성인봉(해발 987m)이 아니라 섬 중턱인 나리분지(해발 500m)에 놓여 있다. 성인봉을 비롯해 말잔등, 천두봉, 미륵봉, 형제봉, 송곳산 등 섬의 높은 봉우리들은 커다란 화구의 테두리였다. 백두산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천지처럼 칼데라 호수가 울릉도에도 있었던 걸까. 
명이 등 산채와 함께 옥수수밭

u10.jpg» 울릉도에 한창이던 토종식물 섬바디.

궁금증을 풀기 위해 20일 북면에서 나리분지로 향했다. 화구의 북쪽 테두리는 분화 과정에서 무너지는 바람에 나리분지는 북쪽으로 열린 원형극장 모양이다. 섬바디의 흰 꽃과 참나리의 붉은 꽃이 흐드러진 비탈을 올라 나리분지 전망대에 올랐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이 아늑해 보였다. 부지깽이(섬쑥부쟁이), 고비, 삼나물(눈개승마), 명이(산마늘) 등 산채와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이 일본까지 화산재를 날려 보낸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불구덩이였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u2.jpg» 나리분지 안에 동그렇게 솟은 알봉. 울릉도의 마지막 분화였지만 폭발적인 분출이 아니라 걸쭉한 용암이 흘러 나온 채로 굳은 용암 돔 형태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분지 북서쪽에는 야트막한 언덕인 알봉(538m)이 솟아 있다. 화구 안에서 마지막 분화를 한 이중화산이다. 알봉 위로 구름이 밀려들어 분지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이곳이 칼데라 호수였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행한 추창오 경북대 지질학과 연구교수(지질학)는 “울릉도 칼데라 호는 지름 2㎞의 호수 가운데 알봉이 수면 위로 삐죽 튀어나온 형태였을 것”이라며 “호도가 있는 미국 오리건주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의 칼데라 호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Achmathur_Crater_Lake_Panorama_Spring_2016.jpg» 미국 오리건주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의 칼데라 호. 호수 가운데 이중화산이 작은 섬처럼 솟아있는 모습이 과거 울릉도 칼데라호와 흡사하다. Achmathur, 위키미디어 코먼스

분지 남서쪽 알봉 둘레길 옆에는 당시 호수 바닥에 쌓인 퇴적층이 드러난 작은 협곡이 있다. 진흙과 모래가 수평으로 가지런하게 쌓여 있고 얇은 부석층도 보였다.

화산암체를 이루는 조면암 암석 조각도 박혀 있었다. 추 교수는 “잔잔한 호수에 화산활동 산물이 조용하게 쌓인 흔적”이라며 “퇴적층에 큰 교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알봉 분출 이후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적어도 수천 년 전에는 울릉도에도 칼데라 호가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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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그릇' 작고 물 잘 빠져 고이지 못해

그렇다면 백두산 천지와 달리 왜 나리분지에는 호수가 남아있지 않을까. 울릉도의 화산활동을 연구해 온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나리분지의 규모가 크지 않아 모이는 강수량 자체가 작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단층이나 투수성 암석이 지하에 있어 물이 고이지 못하고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나리분지에는 물이 잘 빠지는 부석 등이 두껍게 쌓여 있다. 빗물은 치밀한 조면암을 만날 때까지 땅속 깊이 스며든다. 그렇다면 칼데라 호수는 사라진 게 아니라 땅속에 숨어 있는 셈이다.

마침내 그 물은 추산 용출소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칼데라 호숫물의 색깔은 용출소에서처럼 투명한 푸른빛이었을 것이다. 연중 수온과 수위변화가 없이 하루 2만t씩 나오는 이 용출수는 울릉도의 주요한 식수원이다.

u9.jpg» 나리분지에 스며든 물이 솟아나오는 추산 용출소. 조홍섭 기자

칼데라 호수는 화산이 대규모 폭발적 분화를 할 때 생긴다. 백두산을 비롯해 서기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이 그랬다. 

큰 폭음과 함께 가스와 화산재 등이 기둥을 이뤄 성층권에 이른다. 다량의 마그마를 뿜어낸 뒤 화도가 무너져내려 화구 안에 함몰지가 생긴다. 여기에 물이 고이면 칼데라 호수가 된다.

800px-Pinatubo91eruption_clark_air_base_s.jpg»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의 모습. 이후 몇년 동안 지구의 기온은 0.5도 떨어졌다. 마그마 분출량은 울릉도 화산과 비슷한 10입방킬로미터였다. Richard P. Hoblitt, USGS

ChrisTomnong _1280px-Mount_Pinatubo_20081229_01_s.jpg» 피나투보 화산 분화구가 함몰해 생긴 칼데라 호. 2008년에 촬영된 모습이다. ChrisTomnong, 위키미디어 코먼스

폭발의 흔적을 찾아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가다 신령수에서 남동 쪽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희고 검은 부석이 조면암, 응회암 조각과 함께 드러난 절벽에 쌓여 있었다. 그 두께는 150~200m에 이른다. 

마그마가 꾹 참았던 압력이 풀리면서 격렬한 폭발을 일으킬 때 급팽창한 마그마가 부석이 되어 날아간다. 옥수수를 튀길 때 ‘뻥~’ 소리가 나는 것처럼 걸쭉한 마그마 속에 든 수많은 공기방울이 일제히 터지면서 폭발하는 것이다. 탄산음료 병을 흔든 뒤 병을 땄을 때처럼, 부석에는 빠져나간 공기구멍이 많아 물에 뜰 정도로 가볍다. 나리 칼데라에도 호수 표면을 부석이 하얗게 덮고 물결 따라 넘실거렸을 것이다.
1만9000~5600년 전 사이 5차례 분화
u4.jpg» 분화구 안이었던 나리분지 계곡 사면에는 두꺼운 부석과 화산재 등이 쌓여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부석과 화산재가 굳은 암석으로 들어찬 계곡은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만 없을 뿐 거대한 화산의 분화구에 가까이 접근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추 교수가 검은 물체를 집어 들었다.

“탄화목입니다. 울릉도가 화산폭발을 일으켰을 때 불에 탄 나무의 숯이죠.” 탄화목에는 나이테도 선명했다. 불을 붙이니 수천 년 만에 다시 타오른 나무의 숯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u6.jpg» 나리분지에서 발견된 탄화목. 화석 폭발 때 불에 탄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 탄화목이 발견됐다. 곽윤섭 기자

u7.jpg» 탄화목 조각에 불을 붙였더니 숯처럼 타올랐다. 나무는 5600년 전 또는 1만9000년 만에 다시 타오른 셈이다. 조홍섭 기자
추 교수팀이 탄화목으로 확인한 나리분지의 분출 시기는 1만 8800년 전과 그로부터 1만년쯤 뒤인 8400년 전, 그리고 5600년 전이다. 탄화목의 주인은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로 나타났다. 가문비나무는 현재 울릉도에서 멸종했는데, 나이테로 보아 분화 때 263살 이상이었다.
울릉도는 1만9000~5600년 전 사이 적어도 5차례 분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약 1만년 전 폭발적 분화는 규모가 커 칼데라 호를 형성했고 화산재가 동해를 건너 일본 오사카 남항, 비와 호 바닥 등에서 검출됐다.

u5.jpg» 나리분지 바닥에 쌓여있는 부석층. 부석과 함께 분출된 화산재는 일본까지 날아갔음이 동해와 일본 본토 호수와 항구 퇴적층 조사에서 밝혀졌다. 곽윤섭 선임기자

손 교수는 “일반인은 물론 지질학계에서도 울릉도를 죽은 화산으로 취급했지만 사실은 최근 1만~2만년 사이 큰 규모의 분출 기록이 있는 살아있는 화산인 데다 수면 아래 숨어 있는 화산 규모가 백두산에 맞먹어 분출 가능성을 배제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울릉도/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 울릉도는 어떻게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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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칼데라가 형성되는 등 1만9000~5600년 전 동안의 격렬한 화산활동은 울릉도의 역사에서 최후기의 활동에 속한다. 이보다 덜 폭발적이지만 270만년 전부터 용암을 뿜어내는 화산활동이 간헐적으로 계속됐다. 울릉도 해안 산책로를 따라가면서 볼 수 있는 절벽의 다양한 화산암층이 초창기 화산활동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울릉도의 화산활동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독도는 울릉도와 비슷한 화학조성의 해저 화산으로 460만년 전 분화를 시작했다. 또 지상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련의 해저 화산이 울릉도와 독도 주변에서 발견됐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사부 해산, 심흥택 해산, 독도, 안용복 해산, 울릉도가 줄지어 서 있는 형국이다.
 이제까지 지질학계 일부에선 이를 열점(핫 스폿)에 의한 화산활동으로 설명해 왔다. 맨틀과 핵의 경계인 3000㎞ 깊은 지하에서 뜨거운 마그마인 맨틀 플룸이 지표면으로 상승해 지각과 만나는 곳에 화산이 분출하는데, 지각이 이동하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일련의 화산도를 형성한다는 이론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나 하와이 제도는 열점 화산활동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최근 다른 가설이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울릉도와 독도뿐 아니라 백두산, 한라산의 화산활동도 태평양판의 움직임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일본 동쪽에서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든 뒤 지하 600~700㎞ 깊이에서 더는 들어가지 못하고 정체하면서 맨틀의 상승류가 생긴다는 가설로 최근 학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울릉도나 제주도, 백두산 등이 해양판의 섭입대로부터 수백㎞나 떨어져 있지만 섭입한 태평양판의 독특한 거동 때문에 화산활동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스위스 연방공대 등 국제연구진이 울릉도 지하에 대규모 마그마가 분포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그 근거로 든 것도 “태평양판이 빠른 속도로 대륙판을 파고들면서 일으킨 상승류”였다(■ 관련기사울릉도 지하에 폭 300㎞ 두께 200㎞ 마그마 '꿈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 인터뷰: 추창오 경북대 연구교수(지질학)
"백두산 못지 않은 화산폭발…수수깨끼 가득한 섬,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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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버금가는 화산폭발이 울릉도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해안 산책로부터 나리분지와 성인봉 원시림까지 자연을 즐기며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추창오 경북대 연구교수(지질학·사진)는 연구를 위해 울릉도를 30번 넘게 드나들었다. 지질학자로서 무엇이 이 섬의 매력일까. 
“초창기 느긋하게 용암을 분출하다가 차츰 화산 꼭대기가 날아갈 정도로 폭발적인 화산으로 변신한 섬이어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지질학적 수수께끼를 품고 있습니다.” 
 그는 또 백두산을 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화산폭발을 일으킨 흔적이 나리분지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그 비밀을 탐색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울릉도는 3년 전 제주도와 함께 우리나라 첫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독도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간 30만 명이 찾는 대중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는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이 늘었지만 대부분 단체 관광객이어서 서둘러 관광지를 둘러볼 뿐 차분히 걸으면서 지질과 지형에 얽힌 몰랐던 사실을 알고 느낄 틈이 없는 것 같다”며 “그런 점에서 최근 가족단위 관광객과 도보여행객이 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주민들이 지질자원의 가치를 인식해 보전과 이용 활동에 참여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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