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빠지고 ‘전략적 관계’로 새출발
‘반미 연대’인가 ‘평화 연대’인가

6년여 만에 정상회담을 열고 관계 복원을 알린 북(조선)과 중국은 앞으로 고위급 인적 교류와 경제·무역 협력을 활발히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중 정상회담은 형식만 놓고 봐도 남달랐다.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26개국 정상들이 참석했지만, 여타 국가와의 만남은 짧은 의례적 ‘회견’에 그쳤다. 중국이 정식 정상회담을 가진 나라는 러시아와 조선뿐이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조·중 정상회담을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번 전승절 행사는 중국의 조선에 대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 계기였다.

‘비핵화’ 빠지고 ‘전략적 관계’로 새출발

양 정상의 발언은 조·중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었다. 시진핑 주석은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 양자 관계 유지와 발전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총비서 역시 “세계 평화 수호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결심을 지지한다”며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양국 관계의 심화와 발전은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시진핑 주석은 △상호 고위급 교류와 전략적 소통 △각 분야의 실질적 협력 추진 △국제 및 지역 문제에서의 전략적 협력 △한반도 문제에서의 공정한 입장과 평화·안정 수호를 강조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무역 협력 심화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공정한 입장 높이 평가 △국제무대 협조 강화를 언급했다.

특히 관심을 끈 부분은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관련한 입장이었다. ‘한반도 비핵화’는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중국이 일관되게 견지해온 외교 원칙이었다. 이 때문에 조·중 관계가 다소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는 중국의 기존 ‘비핵화’ 입장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조선의 핵 억지력이 이미 전략적 단계에 도달했고, 소위 ‘북핵’에 따른 유엔 대북 제재가 조·러 동맹 등으로 사실상 무력화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조·중 관계의 장애물이 제거된 셈이다.

이번 회담 결과는 양국 관계가 전통적 우호를 넘어, 상호 이익과 지정학적 차원의 근본 이익을 위해 ‘전략적 의사소통과 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전략적 관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미 연대’인가 ‘평화 연대’인가

한편 이번 조·중 정상회담을 비롯한 중국 전승절 행사가 국제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적대와 대결의 ‘반미 연대’가 아니라, 평화와 상생의 국제질서를 지향하는 ‘평화 연대’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전승절 기념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세계가 평화냐 전쟁이냐, 대화냐 대립이냐, 상생이냐 제로섬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중국은 인류 문명과 진보의 편에 서서 평화 발전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인류 운명공동체 건설”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앞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제시한 “모든 국가의 주권 평등과 국제법 기반의 다자주의, 공정하고 안정적인 국제질서 구축”이라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 역시 같은 맥락이다.

조·중 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시진핑 주석의 구상이 논의되었고, 김정은 총비서는 적극적인 지지와 호응을 표하며 다자무대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외부 반응은 사뭇 달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승절 직후 SNS에 글을 올려 이를 “미국을 상대로 한 공모”라 규정하며 ‘반미 모의’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했다. 서방 언론 또한 이를 ‘북·중·러 반미 연대’ 혹은 ‘반서방 블록’으로 묘사했다.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 역시 ‘북·중·러 vs 한·미·일’이라는 대결 구도를 강조하며, “앞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프레임을 덧입혔다.

실제 행사와 회담장에서 적대적 언어가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미국과 서방 언론은 대립 구도를 선명하게 부각했다. 심지어 한·미·일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며 ‘신냉전’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따라서 이번 조·중 정상회담과 전승절 행사를 단순히 조·중·러의 ‘반미 연대 강화’로만 해석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이번 회담은 반미 연대 구축이 아니라, 국제질서 재편이 모색되는 가운데 조·중 관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계기이다.

 박다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