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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4일 일요일

[단독] 14명 숨질 동안 ‘폐암 유발’ 학교급식실 개선은 ‘미적’…서울은 고작 12%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①] 교육청도, 교육부도, 노동부도 ‘우리 책임’이라는 곳이 없다

  • 남소연 기자 nsy@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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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2025-09-14 17: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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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9-14 18:17:

  • 경기도 한 초등학교 급식실. 급식실 안은 환기시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조리 연기가 가득 차 있고, 뜨거운 김이 폴폴 올라오는 대형 솥 앞에서 쉴 새 없이 조리용 삽을 휘젓던 A씨가 말했다. “저는 폐암 전 단계, 4A기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폐 결절 크기가) 0.2mm가 더 늘었어요.”

    지난해 겨울, 환기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해 주겠다는 약속도 있었지만, ‘더 급한 곳이 있다’는 이유로 미뤄졌다고 한다. 곁에 있던 정부 관계자에게 대책을 물으니, 실소를 자아내는 답변만 돌아온다. “할 수 있으면 다른 자리로 배치해서…” 이 급식실에서 일하는 급식노동자 5명 중 3명은 A씨와 마찬가지로 폐 관련 추적 검사를 받고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A씨는 말했다. “저희는 목숨과 바꿔놓고 이 일을 하는 거거든요. 할 때마다 불안해요.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도 들고.” 이 말을 하는 도중에도 A씨는 아이들의 밥을 짓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이 현장은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지난 7월 방문한 학교급식실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전국의 학교급식실에서 벌어지는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21년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고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학교급식실 앞에 ‘죽음의 일터’라는 수식어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산재 감축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이 시점에도, 학교급식노동자의 죽음에는 사과 한마디도, 책임 있는 대책도 전무한 실정이다. 민중의소리는 3편의 기획기사를 통해 학교급식실의 실태와 폐암 산재를 줄일 수 있는 대책에 대해 두루 짚어볼 예정이다.

    ‘폐암 산재’ 학교급식노동자만 200여명 달하는데
    학교급식실 환기설비 개선은 여전히 더뎌


    학교급식실은 집단 산재가 발생하는 일터다. 대량의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근골격계 질환도 심각한 수준이지만, 학교급식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폐암 등 폐질환 발병이다.

    정혜경 의원이 지난달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학교급식종사자 폐암 산재 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학교급식노동자 213명이 폐암으로 산재 신청을 했고, 이 중 178명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이마저도 2021년 이전 현황은 집계되지도 않은 수치인 데다가, 폐암 잠복기가 통상 10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올해도 한 분의 학교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숨져, 지금까지 공식 집계된 폐암 산재 사망자만 14명으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학교급식노동자의 죽음이 국가로부터 처음 ‘순직’으로 인정받았지만, 순직 인정 후 뒤따라야 할 국가 책임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학교급식노동자의 연이은 폐암 산재에도 미온적인 시도교육청은 올해 시민이 뽑은 최악의 살인기업 1위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안게 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시도교육청별 급식실 환기시설 정비 현황’ ⓒ민주당 고민정 의원실


    학교급식노동자들의 폐에 이상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조리흄’이라는 발암 물질이 지목된다. 조리흄은 고온으로 튀김과 볶음, 구이 등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로, 세계보건기구(WHO)도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환기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그나마 노출을 줄일 수 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를 줄일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으로 꼽힘에도 학교급식실의 환기시설 개선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고용노동부 등 여러 주체들이 얽혀있는 문제이기에, 어느 곳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탓이다. 모두의 책임은 결국 아무의 책임도 아니게 된다는 말을 14분의 학교급식노동자 영정 앞에서 꺼내야 할까.

    민중의소리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을 통해 확인한 ‘시도교육청별 급식실 환기설비 정비 현황(올해 8월 기준)’을 보면, 전국 학교 중 환기설비 개선 대상 학교는 10,804곳에 달한다. 지금까지 4,412곳이 개선돼, 평균 개선율은 41%로 나타났다.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은 ▲서울 12% ▲경북 23% ▲경기 33% ▲인천 33% ▲전남 37% ▲세종 39% ▲울산 40% ▲광주 40% 등 17개 시도교육청 중 8곳이다. 특히 다른 지역보다 학교급식노동자가 많은 경기 지역은 대상 학교 2,471곳 중 817곳만 개선됐으며, 서울 지역은 대상 학교 1,002곳 중 고작 117곳만 개선됐다.

    “예산이 부족하다”, “교육부는 지원만”
    교육청도, 교육부도, 노동부도 책임 미루기만
    학교급식노동자 보호할 곳은 어디에…


    학교급식실 환기설비 개선이 시작된 건 2021년부터다.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환기설비 개선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지만, 각 교육청에서는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고용노동부가 ‘급식조리실 환기설비 설치 가이드’를 만들어 배포하면서 환기설비 개선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이드가 학교 현장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자, 2년 뒤인 2023년 8월 ‘단체급식시설 환기에 관한 기술지침’ 개정으로 이어져 본격적인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당시 교육부는 환기설비 개선이 필요한 학교당 1억원씩 지원해, 2027년까지 17개 시도교육청이 환기설비를 개선하겠다는 대책도 발표했다. 하지만 길게는 5년, 짧게는 3년이 지나는 동안 추가적인 예방책이 더해지기는커녕 가장 기본적인 대책이라는 환기설비 개선조차 의미 있는 진척이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먼저, 개선 상황이 가장 저조한 서울교육청에 물었더니 ‘예산 부족’을 토로한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공사비 문제가 제일 크다. 오래된 학교를 대상으로 먼저 진행하고 있는데, 현장 여건이 좋지 않고 예상했던 공사비보다 1억원 가까이 더 나와 학교당 3~3억5천만원 정도 든다”며 “그래도 이번에 55곳의 학교급식실을 개선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을 추가경정예산(추경)안으로 편성했다. 공사비를 줄이는 연구용역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용역 결과가 올해 중 나온다고 하더라도 당장 획기적인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이 관계자도 “너무 낙후되거나 현장 여건이 너무 나쁜 곳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며 “그래도 공사비를 낮출 방안을 찾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구체적인 보완 대책을 논의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교육부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교육부는 예산을 지원하면서도 교육청마다 환기설비 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점검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 2027년까지만 교육부가 예산 지원을 하기 때문에, 이 기간까지 각 교육청에서 어떻게든 환기설비 개선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뿐이다.

    환기설비 개선 속도 자체에 대한 견해차도 존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노동부 가이드라인이 나온 뒤) 4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많이 진행돼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교육청의 입장을 들어보면 그 가이드는 현장에서 적용하지 못해 개정된 지침이 나온 게 2023년이었다. (목표 시점인 2027년까지는) 1년마다 20% 진행되면 되면 되는데, 여름방학은 기간이 짧아 보통 겨울방학에 집중적으로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2023년 겨울방학과 2024년 겨울방학 두 번 정도 거쳤으니 40% 정도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 그 정도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의 환기설비 개선 속도 수준이 지나치게 더딘 건 아니라는 반박이다. 

    교육부의 역할은 “지원”이라는 점도 수차례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건 처음부터 교육청의 업무인데, 교육부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줘야 하지 않냐고 해서 최대한 하는 게 예산 지원인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도 교육감이고 아예 분리된 상황이라 솔직히 저희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교육 정책이 아니라 산업 안전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부가 관장하는 것”이라고 책임을 미뤘다. 그러면서 “빨리 개선을 원한다면 노동부에 가이드가 아니라 법이든, 시행령이든, 하다못해 시행규칙에 넣어 강하게 규제해야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교육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을 묻는 말에도 “산재는 각 사업주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획기적으로 줄지 않는다면 노동부가 고민해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각각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노동부 관계자 역시 “교육부가 관련 예산을 편성해 각 교육청에 내려드리는 걸로 알고 있다”며 “더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저희도 고민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교육청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교육부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너무 교육청에만 넘겨두는 것 같아 저희도 아쉽긴 하다”고 말했다. 노동부 차원의 대책을 묻는 질문에는 “조리흄을 산업안전법상 유해인자로 지정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며 “학교급식노동자의 건강 관리를 위한 대책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오늘도 폐암 유발 물질 마시며 일하는 학교급식노동자들
    “서로에게 책임 떠넘기면 우리는 어쩌란 거냐”


    지난 6월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죽음의 학교 급식실 폐암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급식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학교 급식 조리사들이 폐암 산업재해 피해자 학교 급식 조리사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5.06.24. ⓒ뉴시스

    물론, 그동안 관계기관 사이에서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 5월에는 교육부와 노동부, 시도교육감협의회 등이 모인 관계기관 TF가 교육청마다 제각각인 폐암 예방 건강검진 기준을 하나로 정비하는 ‘건강검진 공통기준’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속적인 건강상태 모니터링을 통해 폐암 의심 관찰자 또는 희망자의 경우 폐CT를 찍도록 하고, 1차 검진 결과 ‘폐암 의심’ 이상일 경우 정밀 검진을 실시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역시 ‘권고’로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관련 공문에는 “각 시도교육청의 예산 상황 및 근로자의 의견청취 등 제반 사항을 고려해 변경 가능”하다는 단서도 달았다.

    올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파악해 본 결과, 17개 시도교육청 중 10개 지역에서 정기검진을 실시하지 않고 있고, 나머지 7곳의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정기검진 주기도 1년, 2년으로 각기 다르다.

    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기준이 권고로 그친 이유에 대해 “기준을 정하게 되면 오히려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현재 진행하는 것보다) 후퇴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일부 전문가들은 저선량 폐CT를 많이 찍는다고 (건강에) 좋은 건 아니라고 하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하루하루 폐암 유발 물질을 들이마시며 일해야 하는 학교급식노동자 입장에서는 관계기관의 소극적인 태도에 속이 탈 뿐이다. 벌써 200여명에 달하는 학교급식노동자들의 폐암 산재로 고통받고, 14명이 숨졌지만 여전히 누구 하나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학비노조 이재진 노동안전국장은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환기설비 개선인데, 5년간 절반도 채 개선되지 않았다는 건 굉장히 미흡한 수준”이라며 “폐암으로 14분이 숨지고,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폐암 산재 신청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현실적인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휴업이라도 해서 빠르게 진행되는 게 맞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재진 국장은 “산재가 이렇게나 많이 발생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책을 노동부든 교육부든 세워야 하는데, 노동조합이 이런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기 전까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이라며 “노조는 각 교육청 예산 교부 현황을 받아서 분석까지 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개선률이 낮다면)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제대로 쓰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데 전혀 안 하고 있다. 책임은 교육청에만 있다고 하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 교육공무직본부 이민정 노동안전국장도 “당장 학교급식실에서는 폐암 발병 원인을 계속 들이마시면서 일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적극적으로 나서서 고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이 문제를 책임지는 게 우리라고 인정하는 기관도 아무 곳도 없고, 완전히 무방비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가 바라는 건, 노동부는 노동부대로 법적 기준을 만들어 교육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완전히 지도록 하고,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법적 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관리하는 모습”이라며 “3자가 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저희는 결국 대통령에게 가야 하는 것인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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