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상계엄-파면' 넉 달 동안 집회 이끈 박민주·김형남 비상행동 활동가
"윤석열 파면 이후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란 세력들이 활개 치고 다니고 있어요. 지금은 우리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사회 곳곳에 있는 내란 세력들을 청산해야 할 때입니다." - 박민주
"지난해 12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같은 당 김재섭 의원에게 '내가 박근혜 탄핵 반대할 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 다 찍어줬다'고 말했잖아요. 그 말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시민들이 끊임없이 증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김형남
두 활동가는 매번 무대 위에 있었다. 항상 행진을 이끄는 트럭 위로 올랐다. 두 사람이 외친 구호를 광장의 사람들이 연호했고, 두 사람이 택한 노래는 광장의 노래로 재탄생됐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윤석열퇴진·사회대개혁(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사회자로서 마이크를 잡았던 김형남·박민주 활동가는 그간 함께 광장을 지킨 시민들을 향해 "윤석열 파면으로 우리의 역할이 끝난 게 아니"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의 말처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윤석열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지난 8일 단체명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바꾸고 목표를 재정립했다.
김형남 활동가의 또 다른 직함은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이다. 2016년부터 군대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사건들을 상담하고 피해자를 지원해 왔다. 박민주 활동가 역시 한국진보연대와 자주통일평화연대에서 각각 자주통일국장과 조직국장으로 일하며 비상행동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두 활동가를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나 '내란부터 파면까지 넉 달 간의 소회'를 물었다. 또 시민과 함께 누볐던 광화문 일대를 찾아 두 사람이 바라는 미래가 무엇인지 들었다. 인터뷰 후 그들은 "저녁 집회에서 또 만나요"라고 인사했다. 두 사람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아래 두 활동가와 나눈 인터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겨우 원점 찾은 승리의 경험, 이젠 플러스로"
- 12.3 내란 사태 이후 비상행동이 67차례에 걸쳐 윤석열 퇴진 집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4개월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김형남 활동가(아래 김): "내란 이후 123일 동안 67번 집회를 열었으니 이틀에 한 번 이상 집회를 연 거네요. 제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불안함, 내지는 두려움이었어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결과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무거운 분위기들이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사람들을 계속해서 광장으로 불러내지 않았나 싶어요. 시민들도 다들 생업이 있을 것이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야 할 건데 그 와중에 이틀에 한 번꼴로 집회에 나와 싸운 거잖아요. 모두 각자가 겪고 있던 불안한, 두려운 감정을 어떻게 희망으로 전환해 낼 것인지 고민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민주 활동가(아래 박): "박근혜 이후 다시 국민 앞에 윤석열이라는 거대한 적이 탄생한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광장의 효용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이크를 잡는 내가 시민들을 설득해 보자', '어떻게 하면 광장에 나오는 일에 확신을 갖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졌고요. 그런데 바깥으로 나오는 시민들을 보면서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더라고요. 시민들이 정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광장에 나왔거든요. 이후 저는 '광장에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이 집회를 완주할 수 있도록 잘 끌고 가는 것', '집회의 분위기나 참가자들의 마음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 등에 집중했어요."
- 윤석열 파면 전 마지막 주말 집회(17차 범시민대행진)를 사회자로서 함께 진행했습니다. 당시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나요?
박: "그때가 탄핵 전 마지막 주말 집회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무대에 올랐어요. 17차 범시민대행진이 3월 29일이었는데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일 공지가 4월 1일, 실제 선고가 4월 4일이었으니까요. 집회 당시에는 '탄핵까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탄핵 국면이 계속 장기화하다 보니 '집회에 온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선고가 늦어질수록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17차 범시민대행진은) 그런 염려 속에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 "그때는 '계속해서 선고 일정이 안 잡히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참가자들의 감정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집회에 온 참가자도 시민 한 명이고, 집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 사람도 시민 한 명이니까요. 그렇지만 마이크를 쥔 사람이 '너무 불안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집회는 감정을 나누는 시간도 맞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해 내는 시간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감정을 불안을 넘어서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 비상행동에서 사회를 맡거나 행진할 때 시민들에게 전하는 발언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나요?
김: "저희 둘이 온라인에 공유 문서를 만들어 같이 쓰면서 완성하는 작업을 거쳤어요. 콘텐츠는 국면마다 좀 달랐는데요. 예를 들면 윤석열이 풀려난 직후(3월 8일)에는 '재구속 요구', '즉시 항고 않은 검찰 규탄' 이런 내용들이 주가 되고, 3월 15일쯤부터는 '헌법재판소의 선고 지연 규탄' 등 내용이 주가 되는 식이에요. 시점에 따라 계속해서 내용을 변주해서 발언문을 준비했습니다."
박: "헌법재판소 변론이 끝나고 (선고 일정만을 기다리던) 잠잠한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집회 대본을 쓰다가 토론을 참 많이 했어요. 집회 참가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슈를 계속 모니터링했고, 문장 첫머리에 들어가는 단어나 수식어까지도 계속 신경 쓰곤 했어요."
- 윤석열이 파면되던 순간엔 어떠셨나요?
김: "선고 당일 헌법재판소 인근 비상행동 집회 현장에 있었는데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왠지 파면할 것 같이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현장에 계시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또 저는 군인권센터에서 일하다 보니 선고 중간에 채상병 부모님도 생각이 나고, 생존 해병도 생각나고... 그래서 '그분들에게 지금 이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일을 겪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부정당하는 것, 폭로를 위해 낸 용기가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것, 목소리를 내도 바뀌지 않는 것 등이 되게 사람 마음을 병들게 하거든요.
어쨌든 저도 북받치는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그 순간 '내가 울기보다는 돌아봐야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눈물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또 울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선고 직후 저희가 같이 행진해야 하는데 민주님이 엉엉 울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라도 울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두 손으로 'T' 자를 그리며) 제 MBTI(성격유형지표)가 대문자 T(사고형)거든요(웃음)."
박: "(멋쩍게 웃으며) 제가 원래 진짜 울지 않는 스타일인데요. 당연히 윤석열이 파면 될 거로 생각해 왔고, 그래서 제가 선고 당일에 울 거라고 더욱 생각하지 못했어요. 옆에 있던 비상행동 막내랑 같이 부둥켜안고 생중계를 보는데 '파면한다'는 네 글자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냥 엉엉 소리 내며 울었어요. 무대에서 시민분들 얼굴을 열심히 보려고 했는데 지난 넉 달 동안 함께한 모습이 자꾸 기억나더라고요. 또 제가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원회 활동도 했거든요. 유가족분들과 전국을 돌 때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라 사무치기도 했어요.
제 서울 생활 자체가 윤석열 정권과의 싸움이었어요.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한 시점이 윤석열 당선 한 달 뒤였거든요. 윤석열 당선이 2022년 3월 10일이었는데, 한평생을 지역에서 살던 제가 활동가로 일하려고 2022년 4월에 서울로 온 거예요. 윤석열 정권 초기부터 싸웠던 제 서울 생활이 탄핵 선고 순간에 떠오른 거죠. 그래서 더 눈물이 콸콸 났던 것 같아요."
- 두 분에게 윤석열 탄핵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던가요?
박: "진짜 몇 안 되는 승리의 경험이요.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윤석열 정권의 만행으로 탄핵을 외치며 엄청나게 싸웠거든요. 그렇게 노력한 끝에 역사적인 승리의 경험을 눈앞에서 맞이한 거예요. 광장의 효용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그리고 또 우리 사회의 전환점이라고도 생각해요. '윤석열 정권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으니까요."
김: "지난 넉 달의 싸움은 윤석열이 우리 사회를 마이너스로 만든 것을 '0(원점)'으로 끌고 오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도 (내란 세력 등이) 계속 우리 사회를 마이너스로 끌고 가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요. 윤석열 파면 이후 집에 돌아갈 때 시민분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저는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왜냐하면 윤석열이 파면됐다고 내 인생이 갑자기 극적으로 변하는 게 없으니까. 내가 사는 집도, 집에 가는 길도, 밥 먹는 하루도 다 똑같으니까. 파면의 순간 차오르는 승리의 감정도 너무 중요하지만, 이제는 0을 플러스로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탄핵은 우리 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봅니다."
집회 플레이리스트, 두 사람이 꼽은 노래
- 비상행동에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박: "좀 많아요. 비상계엄 선포 당일에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인 날도 기억에 남고요. 12월 7일, 국회 탄핵소추안 1차 표결 때 국민의힘이 퇴장하고 그 추운 날 시민들과 국회 앞을 지키면서 버틴 날도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지난해 12월 21일~22일 남태령이요.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갔는데, 그때 농민분들이 하셨던 말이 생각나요. 청년들이 막 남태령으로 몰려와서 길바닥에서 같이 밤을 새우고, 영하의 추위도 견디고, 계속 '차 빼'라는 구호를 외치고, 춤 추고, 노래하니까 '윤석열은 쟈들을 못 이긴다'라고 하셨거든요. '즐기는 사람들은 이길 수가 없다'고 감탄하시면서요. 그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저는 얼마 전 3월 25~26일에 있었던 두 번째 남태령~경복궁 집회가 기억에 남아요. 정확히는 경복궁 인근에서 경찰이 트랙터를 끌고 가려던 오전 상황이요. 처음엔 (너무 이른 오전이라) 시민들이 20~30명밖에 없었는데요. (경찰의 견인을 막으려고) 트랙터 앞에 다 드러눕고, 끌려 나가면 다시 또 드러눕고. 이런 식으로 견인하는 길을 계속 막으며 시간을 벌었어요. 그런데 오전 6시쯤 지나면서 자꾸 골목, 골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남태령에서 건너왔다는 분, 소식 듣고 집에서 왔다는 분, 출근하다 왔다는 분... 저는 그 순간 이미 경찰의 기세가 꺾였다고 봤어요. 그 순간이 지난 4개월의 여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동력으로 그동안의 사기를 만들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요. 우리는 늘 그런 경험을 만들어 왔어요."
- K-팝을 활용한 집회와 행진이 떠올라요. 집회 플레이리스트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박: "저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아모르파티', '위플래쉬' 이렇게 세 곡이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집회 초반부터 자주 선곡한 노래였는데 가사가 너무 적절했어요. '이젠 기대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등의 가사가 있는데요. 윤석열이 갑자기 이상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거나 주변 내란 세력들이 헛소리할 때 적절했던 것 같아요. 중간중간 구호를 넣기도 좋았고요. '아모르파티'는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기세를 올리기 좋더라고요. '파면은 필수' 이런 식으로 개사하는 것도 좋았고요(웃음). '위플래쉬'는 말해 뭐하나요."
김: "비상행동이 집회나 행진을 할 때 사실 노래에 번호를 붙여서 소통해요. 그래야 뒤에 계신 음향 기사 선생님에게 설명하기 좋거든요. 짠 건 아닌데 '위플래쉬'가 공교롭게 18번이에요. '위플래쉬'는 사람들 기세를 쫙 당길 때 너무 좋은 노래예요. (비상행동 집회의) 상징곡이 됐죠. 그 외에 제가 자주 선택했던 노래는 '그대에게'입니다. 구호나 멘트를 넣어 같이 외칠 수 있는, 아주 잘 짜인 노래예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가사를 좋아해요. 노래가 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좋아요. 탄핵 국면에서 '그래도 우리가 이길 거야', '우리가 지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어'라는 멘트로도 이어질 수 있고요.
마지막 하나는 K-팝은 아닌데요. '민중의 노래'요. 처음엔 '민중의 노래'를 틀면 따라 부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다 외우시더라고요. 행진 선두에서 보면 참가자의 80%가 부르고 있어요. 그 밖에도 여러 노래가 있는데 참가자들이 연령을 막론하고 추임새를 따라 하세요(웃음). '우리가 광장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노래 하나를 온전히 외울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이었구나'를 느낄 수 있었죠."
- 두 분의 목청에 대한 호평도 있습니다. '쉬지 않고 사회를 보는데도 목이 쉬지 않는다'는 식의 칭찬인데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박: "저는 목이 쉬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작년 12월 남태령 대첩에 다녀오고부터 회복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때 '피곤하거나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목이 빨리 가는구나'를 깨달았죠. 그래서 요즘은 보조제들을 챙겨 다녀요. 주머니에 넣어뒀다 사회 보기 직전에 먹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나눠주고요."
김: "저도 살면서 목이 쉬어본 적이 없거든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고 그랬는데. 근데 또 기계가 아니라 자주 쓰면 닳잖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회복은 되는데 금방 또 목이 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물을 많이 마시고 있어요. 평소보다 3배 많이 마시니까 피부도 좋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집회를 앞두고는 금주하고요."
- 지난 4개월간 다양한 분들과 함께했는데 유독 고마웠던 사람은요?
박: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같이 집회를 만들어 주신 분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집회 때마다 시민 발언을 취합하신 분, 또 그런 시민분들에게 발언 수칙을 안내해 주신 분, 참석자 관리 자원봉사를 하신 분 등이요. 모두 고된 일이잖아요. '소매넣기'를 해주신 분들도 기억나요. 소매 안의 물건을 훔치면 '소매치기'인데, 되레 소매 안에 물건을 넣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분들을 그렇게 불렀어요. 그분들이 제 주머니에 사탕, 음료, 비타민 등을 넣고 가시는데 무대에서 내려오면 저도 몰랐던 간식이 나왔어요.
미안한 분들도 있어요. 저는 자주통일평화연대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현재 윤석열의 외환죄 관련 수사가 순탄히 진행되지 않잖아요. (단체에서) 접경 지역 주민들과 함께 수사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하는데, 제가 비상행동 집회를 챙길 때는 참여를 못했어요. 그럴 때면 다른 활동가분들이 대신 고생해 주셨어요."
김: "저희처럼 마이크 잡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표가 나는 일을 하는 거예요. 비상행동 음향 팀이나 조명 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주시고 있는 거고요. 그런 분들에게 참 감사하죠. 또 저희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이름 모를 시민들이 계산해 주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시민분들이 단순히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생까지도 생각하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군인권센터 활동가들한테도 되게 고마워요. 어찌 됐든 저 한 사람이 빠지면 그만큼의 일손이 비는 거잖아요."
- 단체 이름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김: "윤석열이 파면됐다고 끝난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지금도 내란 세력은 헌법재판관에 이완규를 지명하는 등 매일 뭔가 일을 벌이고 있잖아요. 앞으로도 저는 내란 세력이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아직 우리에게는 할 일이 남아 있어요. 우선은 내란 세력이 다시금 권력을 쥐지 않도록 해야겠죠."
박: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미 윤석열 파면 이후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사회 곳곳에 있는 내란 세력들을 우리가 다시 한번 힘을 모아서 청산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사회대개혁까지 이룰 수 있다고 봐요."
"문재인보다 더 압도적 득표 필요"
인터뷰를 마친 후 두 사람과 함께 광화문 인근을 찾았다. 비상행동이 시민들과 함께 쉼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행진한 곳이다. 광화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두 사람은 "독자들에게 한 마디만 더 전해도 되겠느냐"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번 승리의 경험을 바탕 삼아 다시 광장에 나와 싸워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내란 세력은 재집권하고 싶어 발악을 하고 있어요. 이를 함께 막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회대개혁이란 과제 역시, 우리가 얼마나 광장에서 싸우냐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핥기식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요. 반대로 우리가 조금만 더 열심히 싸운다면 우리의 바람에 가깝게 사회대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조기 대선 국면에서 우리는 윤석열 파면에 앞섰던 이들이 완주할 수 있도록, 그리고 또 새로운 정부를 구축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진행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41%대의 득표율로 이겼습니다. (윤석열 탄핵 직후인) 지금은 그것보다 더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차기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을 거예요." - 박민주
"비상행동 집회 참가자 수가 연인원으로 집계하면 1000만 명이 넘어요. 우리가 서로를 지켜낸 것에 저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말 감사해요. 아직 우리가 완수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정체화하고 어떻게 우리가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고민하면 좋겠어요. 이는 주최 측이나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난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같은 당 김재섭 의원에게 '내가 박근혜 탄핵 반대할 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 다 찍어줬다'고 말했잖아요. 그 말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시민들이 끊임없이 증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내란 세력들이 했던 일과 말들을 잊지 않을 거야. 바로잡아 나갈 거야'라는 감각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 김형남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