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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7일 월요일

우격다짐·재생에너지 외면…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상누각’ 되나

 


평택 공장 잇는 송전탑 주민 반대 의견 또 ‘묵살 조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인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 2023.03.15. ⓒ뉴시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한 전력 공급 방안이 여전히 안갯속이다. 전력망 구축이 전제되지 않는 대규모 산업 단지 계획은 불확실성이 크다. 앞서 평택 반도체 공장의 전력망 구축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무시한 사업 강행으로 갈등이 격화한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기본적인 전력망 계획도 없이 무분별하게 용인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평택 반도체 단지와 경기 남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전력 수송망 구축 작업이 진행 중이다.

500kV 북당진-고덕 초고압 직류송전(HVDC) 2단계 사업은 올해 12월 준공을 목표로 한다. 북당진과 고덕에 변환소를 각각 설치하고, 송전선로 34.2km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평택 고덕산업단지에 들어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으로 보내기 위한 목적이다.

당초 2015년 준공 계획이었으나, 공사가 지연됐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당진 지역 주민들 반발이 거셌다. 당진화력발전소부터 북당진 변전소까지 이어지는 송전선로를 깔기 위해서는 80여 개의 철탑(송전탑)이 건설된다. 주민들은 건강권과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송전선로를 지상이 아닌 지중에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지중화하면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한국전력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거부했다. 당진시가 북당진 변환소에 대한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자, 한국전력은 소송을 제기했고, 3년에 걸친 소송 끝에 대법원은 2017년 한국전력의 손을 들었다.

산업부가 오는 2024년 말까지 준공하겠다고 밝힌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사업은 현재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당초 목표는 2012년 준공이었다. 해당 사업으로 당진시에 추가되는 송전탑은 총 27개다. 현재 당진에는 500개 이상의 송전탑이 설치돼 있다. 당진시 주민들은 “더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소들섬에는 멸종위기 1급종 흰꼬리수리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당진시가 환경부 동의를 얻어 지난해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당진시와 주민들은 소들섬을 지나지 않도록 섬을 둘러싼 호수에 지중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국전력은 사업을 강행했다. 당진시는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송전선로 진입로 공사에 대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한국전력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지난달 2심에서 한국전력이 승소했다. 당진시는 즉각 상고했고, 현재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뉴시스

수도권 전력 25% 쓰는 용인 클러스터, 전력망 계획은 불투명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도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한다. 삼성전자가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인 용인 클러스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과 200여 개의 반도체 팹리스·소재·부품·장비·기업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일간 전력수요는 2029년 0.4GW를 시작으로 점차 증가해 2042년 이후 총 7GW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단 조성과 기업투자가 마무리되는 2050년 전력 수요는 10GW 이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일간 10GW는 수도권 내 역대 최대 전력 수요량의 4분의 1 수준이다.

정부의 용인 클러스터 전력망 계획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2036년까지의 계획을 담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용인 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수립됐다. 정부는 우선 기존에 계획된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건설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서해안 해상을 활용해 송전선로를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호남권 발전소에서 남는 전력을 끌어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호남 지역에는 한빛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해 여수·삼천포·하동 석탄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송·변전 설비 구축이 불가피하다. 현재 호남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송전선로는 신옥천-세종, 청양-신탕정 2개뿐이다.

용인 클러스터를 위한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평택 반도체 단지의 전력망 구축 사례와 같이 송전탑 건설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차준국 당진참여연대 회장은 “기업이 발전소 인근에 공장을 짓든가 해야지, 장거리 송전선로를 연결하면 지역 주민들 피해가 크고, 전력 손실도 커 비효율적”이라며 “주민들과 환경 피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용인 클러스터 전력망 구축 과정에서 철탑 이슈가 전국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주민들이 대항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관련 소송도 송전탑 자체가 아닌 진입로 공사에 대한 다툼으로, 대법원 판결에서 당진시가 승소하더라도 송전선로 사업 진행을 막지는 못한다.

전원개발촉진법은 한국전력(전원개발사업자)이 산업부에 송전선로 등 전원개발 시행 승인을 신청하기 전에 주민공청회를 거치도록 하고 있으나, 주민 의견이 반영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자체와 환경부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얻어야 할 각종 인허가 절차가 산업부 승인으로 갈음된다. 산업부 승인만 이뤄지면, 한국전력은 주민들과 지자체 의견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할 수 있다. 이견이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갈등이 심화하고,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도 못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전원개발촉진법을 폐지하고, 관련 인허가 절차를 제대로 거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한 채 임기 만료 폐기됐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관련 소송에서 당진시 측 대리인을 맡은 하승수 변호사는 “건설 편의에 초점을 둔 전원개발촉진법은 민주성과 투명성, 주민 참여성이 결여됐다”며 “용인 클러스터 전력망 구축에 앞서 전원개발촉진법 폐지나 전면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어디서 끌어다 쓸지 계획도 없이 무분별하게 산업 단지 구축 발표부터 했다”면서 “향후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전탑 공사가 진행 중인 당진시 우강면 소들섬. ⓒ당진시청


재생에너지 안 쓰면 수출길 막히는데, LNG·원전 쓰라는 정부

발전원도 문제다. 용인 클러스터가 산업 경쟁력을 갖추려면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여야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고객사인 애플은 협력사들이 2030년까지 RE100을 달성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RE100은 공장에서 쓰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하겠다고 선언하는 캠패인이다. 자발적인 캠페인이지만, 고객사의 탈탄소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50년까지 세계 모든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달성할 방침이다. 먼저 2027년까지 모든 해외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완료한다. 2020년 미국, 유럽, 중국에 이어 지난해 베트남·인도·브라질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완료했다. 한국에서는 DX(세트) 부문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이 이뤄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탄소중립 청사진을 담아 발표한 신환경경영전략의 연장선에서 향후 용인 클러스터 구축 시 탄소중립 계획을 수립·이행할 것”이라면서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가운데 고객사와도 탄소중립 관련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평택 공장을 비롯한 한국 내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더디다. 반도체 생산은 여타 스마트폰·가전 생산보다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전체 사업장 전환율은 31%인데, DS(반도체) 부문만 보면 23%에 그친다. 전환이 완료된 해외 사업장을 빼면 한국 반도체 사업장의 전환율은 더 낮아진다. 삼성전자가 평택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 설치 규모는 시간당 0.4MW 수준이다. 평택 사업장 2단지 전력 수요만 하루에 2GW로 추산돼, 태양광 발전 설비는 턱 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는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은 국제 무역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역내로 들어오는 수출품의 제조 과정에서 EU 기준을 초과하는 탄소배출량에 대해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6년부터 시행한다. 철강과 알루미늄 등 6개 품목부터 적용하는데, 점차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만 규제 대상에 올라가 있으나, 앞으로는 사용 전력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 즉 간접 배출도 규제할 가능성이 크다. 배출권 구매는 일종의 관세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용인 클러스터의 재생에너지 전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생산 제품을 수출할 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삼성전자가 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거꾸로 간다. 용인 클러스터 전력 공급을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신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10차 전기본에 제시된 2030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1.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RE100 선언 기업에 LNG와 원전을 쓰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다”며 “정부의 전력망 TF 논의를 보면 재생에너지 관련 내용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계획된 재생에너지 발전량으로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RE100을 선언한 다른 기업 수요까지 충족하기 어렵다”며 “산업 경쟁이 심화할수록 재생에너지 비중이 거래 장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RE100 달성이 가능한 해외에 사업장을 짓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으나, 국가 차원에서는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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