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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4일 수요일

지역 정체성 알리기, 우리말로 안 되나요

 

  • 전국적으로 외국어 표어 남용
    의미·지역 특색 알기 어려워
    "공공기관 쓰면 공신력 생겨"
    국민들도 개선 필요성 지적

    기사를 쓸 때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읽는 이에게 어떻게 잘 이해되도록 정리할까입니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외래어나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합성어를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일상 속에서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기관마저도 외래어·외국어 등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쉬운 우리말을 더 많이 쓸 수 있을까요? 이번 '우리말' 기획에서는 행정에서 쓰는 어려운 말, 생활과 밀접한 조례 등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고민해봅니다. 이 기획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지원으로,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와 함께합니다.

    우리 동네는 어떤 지역적 특성과 가치를 추구하고 있을까. 각 시군 대표 표어나 상품명을 보면, 그 지역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우리말 사용 문화가 확산하면서 시군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표어를 바꾸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외래어·외국어를 사용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표어도 적지 않다. 공공 기관의 우리말 사용은 의미 전달을 넘어 공신력을 갖기 때문에 중요하다.

    ◇공공기관 정체 모를 표어 = 지난해 창원시는 통합 10주년을 맞아 '플러스 창원'이라는 표어를 만들었다. 창원시는 "경계 없는 하나의 도시 창원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어디에나 더해질 수 있는 유연함, 무엇이든 더할 가능성, 더할수록 커지는 창원의 미래 가치 등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그러나 굳이 '플러스'라는 영어를 써야 했을까. 앞서 창원시는 '빛나는 땅', '환경 수도' 등을 표방했었다. 2011년 표어로 정한 빛나는 땅은 쉬지 않고 발전하는, 해가 지지 않는 풍요로운 도시라는 뜻을 담았었다. 2006년 선언한 환경 수도는 말 그대로 환경과 더불어 발전하는 생태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었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다.

    거제시는 '블루시티' 표어를 사용하고 있다. 블루시티는 바다를 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어다. 경북 영덕군도 '블루시티 영덕'을 쓰고 있다. 그러나 영어식 표어가 뜻하는 바는 얼른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도내에는 '액티브 양산', '굿모닝 지리산, 함양' 등도 있다.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뜻이거나 불필요한 영어식 표어를 사용하는 사례는 경남뿐만 아니라 다른 시도에도 넘쳐 난다. 너무 많다.

    강원 삼척시는 '원더풀 삼척', 원주시는 '다이내믹 원주', 경북 구미시는 '예스(Yes) 구미', 김천시는 '해피투게더(Happy together) 김천' 등 표어를 쓰고 있다. 모두 긍정적인 뜻이 있지만, 시군의 특색을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2015년 '아이서울유'를 표어로 새로 지정했다. 한글로 바꾸면 '나와 너의 서울'이라는 뜻인데, 어떤 가치를 담은 것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경북 경주시는 '골든시티(Golden City) 경주'로 신라 황금 유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천년 고도의 역사를 표현하기에는 아쉽다. '휴먼시티 수원', '스마트 행복도시 안양', '평화도시 하이(Hi) 연천', 'AI 교육도시 오산', '곤충도시 클린 예천' 등은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이 충분함에도 영어를 끼워 넣은 결과물이다.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표어 =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말을 써서 표어를 만드는 지방자치단체도 적지 않다.

    경남지역 대부분 시군이 우리말로 표어를 만들었다. '참진주(진주시)', '바다의 땅 통영', '하늘로 바다로 사천으로', '가야왕도 김해', '해맑은 상상 밀양', '군민 우선, 화합 의령', '안녕, 자연의 창녕', '거창한 거창', '수려한 합천' 등이 그 예다.

    경남도는 김태호 전 도지사 시절 '필(Feel) 경남', 홍준표 전 지사 때 '브라보(Bravo) 경남' 등을 표어로 썼다가 김경수 전 지사 때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으로 바꿨다.

    지자체 표어를 영어로 쓰는 게 좋을까? 우리말로 만든 표어를 알리는 게 진정한 국제화가 아닐까.

    이범건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지난해 10월 '공공 언어 개선의 사회철학 세우기' 학술 대회에서 "공공기관이 한두 개 외국어 낱말을 무심코 사용하다 보면 그 낱말은 공적 공신력을 얻어 다른 상황에서도 사용된다. 다른 외국어 낱말을 사용하는 데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며 "그런 용어가 공공기관에서 자주 쓰이다 보면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을 막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를 보면, 국민 33.4%는 공공기관이 작성한 안내문·홍보문 등 언어 표현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쉽다는 응답은 22.9%였다. 조사는 전국 20∼69세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 방식으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 언어 중 고쳐야 할 것은 불필요한 외국어·외래어 남용(39.2%·중복 응답), 낯선 한자어 등 어려운 단어(48.2%) 등이 꼽혔다.

    또 노래 제목이나 화장품명, 아파트·건물명, 음식 이름, 영화 제목, 기업명, 방송 프로그램 이름 등이 한글 표기 없이 외국어로만 적힌 것을 봤을 때 곤란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7.4%로 나타났다. 없다는 응답은 26.4%였다.

    공공 기관의 외래어·외국어 남용은 표어에서만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다. 함안군 '에코싱싱로드', 의령군 '토요愛(애)유통' 등 관광·행사·상품 등을 알리는 문구에서도 적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다른기사 보기 김희곤 기자 (hgon@idomin.com)
  •  2021년 08월 05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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