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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2일 월요일

고 발 장

 

고발인 신상철, 피고발인 1. 김태영 2. 김성찬
신상철 | 2021-04-12 09:50:0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고  발  장


고 발 인    신 상 철 (****** - *******)
            서울 영등포구 *******************
            연락처 : ***************


피고발인  1. 김태영
               - 前 육군 대장 / 前 국방부장관
               - 현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 한국전쟁기념재단
               - Tel : 02-792-1949

              2. 김성찬
               - 前 해군 대장 / 前 해군참모총장
               - 前 경남 창원시 진해구 국회의원
               - 前 미래한국당(現 국민의힘) 최고위원


- 고 발 취 지 -

고발인은 피고발인을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사고를 당하여 반파 침몰한 천안함의 함수 인양(4/24) 당시 함수 자이로실에서 발견된 故 박○○ 하사의 억울한 죽음과 관련하여 <직무유기 및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죄>를 묻고자 고발하오니 철저히 조사하시어 엄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고 발 이 유 -

상기 피고발인 김태영과 김성찬은 2010년 3월 26일 밤 천안함 침몰사고 당시 각 국방부장관 및 해군참모총장의 직에 있던 자로서 천안함 반파 이후 함수와 함미의 이동방향 및 최종 침몰지점을 파악함에 있어 군 당국의 정보 및 전략자산을 통한 추적의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고받았을 뿐만아니라 함수의 경우 완전 침몰될 때까지 해경정이 선회하며 지키고 있는 등, 이동과 침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국민에게는 “함수와 함미가 침몰하였으며 현재 최선을 다해 수색하고 있다”고 거짓 발표를 반복하면서 골든타임에 해당하는 이틀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였고, 그 과정에서 무려 16시간 22분간이나 수면 위에 선체 일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함수를 확보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결과로 천안함이 반파된 후 함수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故 박○○ 하사가 죽음에 이르게 한 죄가 매우 크다 할 것입니다.

故 박○○ 하사는 완전히 전복된 함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자 그나마 공기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이로실까지 이동하여 그곳에 머물렀으나 군 당국이 수색을 방기함으로 인하여 결국 이틀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소진하였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에 고발인은 故 박○○ 하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피고발인들이 <직무유기 및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는 바, 이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고발에 이른 것입니다.

- 입 증 방 법 -

별첨 1. 천안함 안전당직자 故 박성균 하사 사망사고에 대하여 


2021년 4월 12일

고발인 신  상  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귀중

별첨 1.  천안함 안전당직자 故 박○○ 하사 사망사고에 대하여


1. 고발에 이르게 된 배경

고발인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후 천안함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천안함 사고와 관련 조사를 하던 중 이명박 정부 당시 국방부와 군 당국이 심각하게 사실관계를 왜곡, 조작,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방법으로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국가기관을 총동원하여 국민을 속이고 거짓 발표하고, 진실을 조작.왜곡.은폐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도, 납득할 수도, 방관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저는 언론과의 인터뷰와 칼럼 등으로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적극 알렸으며 그로 인하여 당시 군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고소 및 고발을 당하여 11년째 재판을 받고 있으며 작년인 2020년 10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현재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에 있습니다.

저는 1958년 서울 태생으로 한국해양대학에서 항해학을 전공하였으며 해군소위로 임관하여 진해함대사령부에서 APD함(전남함) 행정관, 인천5해역사령부에서 LSM 상륙함(대초함) 갑판사관 및 포술장 그리고 중위 때는 모교인 한국해양대학에서 훈육관으로 근무하고 제대한 후, 한진해운에 입사하여 극동-미주 항로 컨테이너선 항해사로 근무하던 중 거제 삼성조선소 신조선 감독으로 파견되어 8년간 13척의 선박을 건조 감독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여 저는 선박에 관한 한, 항해(航海)와 운항(運航)에 관한 지식 뿐만아니라 조선(造船)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선박과 관련한 업무에 있어 매우 다양하고도 특별한 경력을 갖고 있기에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당시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이 되었을 뿐만아니라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도 깊은 분석과 함께 많은 글과 인터뷰 그리고 250여 회의 전국 강연을 통해 진실규명의 과정을 소상히 알린 바 있습니다.

그런 중 이렇게 故 박○○ 하사의 사망과 관련된 특정 사안에 대하여 고발장을 접수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11년간 천안함 관련 재판을 받아 오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군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360kgTNT 규모의 폭발이 있었다고 하였음에도 어떻게 폭발로 인한 인체 손상의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오히려 폭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에 고발인은 작년 2020년 9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규명위’)가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과 접수 마감시한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고 긴급하게 관련 내용들을 정리하여 <군 당국이 발표한 천안함 사고 원인과 사망자의 사인이 합리적으로 부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작년 12월 규명위로부터 조사개시 통지를 받은 후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중, 최근 보궐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승조원 및 관련 분들이 규명위를 방문하여 천안함 재조사에 대해 강력 항의한 다음 날인 4월 2일 규명위는 긴급전원회의를 소집하여 제가 제기하였던 진정에 대하여 전격 각하 결정을 하고 4월 9일 통지서를 보내왔기에 고발인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이의신청서>를 작성하던 중, 천안함 사고로 인한 희생자의 사망 원인과 관련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고발인은 지난 11년 동안 천안함 재판을 받아오면서 천안함 사고로 인한 희생자의 사망원인과 관련 여러가지 의문점이 많았기에 그에 대한 문제제기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였던 것은 무엇보다 희생자 가족분들의 마음의 상처가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사안이기에 규명위에 조용히 진정서를 접수한 후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천안함 사고로 인한 희생자의 사망원인과 관련하여 관련된 분들의 강력한 항의로 인하여 언론의 집요한 취재가 이어지는 등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어 차제에 천안함 사고로 인한 희생자 가운데 제3의 부표 위치에서 변을 당한 故 한주호 준위의 사망사고 못지않게 <가장 억울한 죽음>이라 고발인이 판단하고 있는 故 박○○ 하사의 사망원인과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故 박○○ 하사가 사망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사고 직후 선내 수색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함장의 과실을 비롯 군 당국 수뇌부의 결정적인 오판과 거짓된 발표 그리고 직무유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증거와 근거가 있기에 그 책임을 묻고자 고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2. 故 박○○ 하사 함수에서 시신으로 발견

故 박○○ 하사는 기관부 대원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고 당일 <안전당직자>라는 순찰업무를 수행 중이었으며 선내 전반을 돌며 안전을 체크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사고 직전 기관부(후타실–기관실) 순찰을 마친 후 갑판부 쪽으로 이동하여 순찰업무를 수행중이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천안함 함수·함미의 구조 그래픽을 참조하여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천안함 반파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밤 9시가 넘은 시각입니다. 당시 함수 쪽에는 함교, 전탐실, 음탐실 등에서 항해장교(당직사관)을 비롯 갑판(항해), 전탐, 음탐, 조타, 견시 대원들이 당직을 서고 있었고 함미 쪽에는 기관 및 보수 대원들이 기관실 당직을 서고 있었으며 그 외 대원들은 각자의 침실 혹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사고 직후 배가 반파되었을 당시 함미 쪽은 기관부 대원들과 함께 떨어져 나가 불과 3분여 만에 침몰함으로써 전원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수는 옆으로 기울어진 채 상당 시간 떠 있었고 함수 쪽에 있던 대원 58명은 즉각 함수 갑판 위로 올라가 전원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 갑판 위로 올라온 대원들에 대하여 인원체크가 이루어졌으며 함장은 모두 탈출한 것으로 파악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유는 함수 쪽에서 당직을 섰거나 함수 쪽 침실을 쓰는 대원들에 대해서는 어느 방에 누가 있었는지 서로가 알고 있었으므로 갑판 위에서 크로스체크하며 인원을 점검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인원이 파악된 대원 가운데 기관부 소속은 상사 계급인 내기장과 내연장 두 대원이 있었지만 모두 함수 쪽 <원·상사 침실>을 쓰고 있었으므로 인원 파악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원 체크 당시 故 박○○ 하사가 안전순찰을 위해 갑판부쪽(함수)에 건너와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함수 쪽 어느 대원 누구라도 박 하사가 순찰하는 모습을 목격했었다면 사고 후 갑판 위에서 인원점검 당시 누군가 그 사실을 지적하였을 것이고 누구라도 다시 내려가 침수가 되지 않은 공간에 대해서라도 수색을 하였을 터인데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결과 함수 침몰 후 한 달 가까이 지난 4월 24일 함수를 인양하고 난 후 수색과정에서 故 박○○ 하사가 자이로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됨으로써 그가 사고 당시 함수 쪽을 순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 4월 12일 인양되어 4월 15일 수습이 완료되었던 함미에서는 박 하사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실종자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만 놓고 보면 그냥 안타까운 상황인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박 하사가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이 고발인의 분석입니다.

3. 인양 후 자이로실에서 발견된 故 박○○ 하사

故 박○○ 하사가 발견된 곳은 <자이로실>입니다. 위 기사 설명으로 잘 나와 있는 것처럼 자이로실은 지하2층 함정 방향을 표시하는 항해보조장비가 있는 공간입니다.

<지하2층>이라 함은 함수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즉 더 이상 내려갈래야 내려갈 곳이 없는 가장 낮은 곳입니다. 그런데 선체가 전복되고 난 후 그 공간은 가장 높은 위치가 됩니다. 즉, 공기가 남아 있었을 마지막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갑판 위에 모여 있었던 58명 가운데 누군가라도 “혹시 함수 내부에 누가 남아 있을지 모르니 다시 한번 수색해보자”라고 했거나, 구조가 완료된 후라도 “혹시 함수 내부에 누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잠수부를 즉시 투입하여 수색해달라”라고 군 당국에 요청했더라면, 구조되어 생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군 당국이 발간한 조사보고서에 <그림 3장-4-1>로 수록된 내용입니다. 천안함 함수 가장 아래에 위치한 공간은 13, 24, 25번 공간이며 그 가운데 24, 25번 공간에 있었던 하사와 상사는 탈출하였습니다.

그러나 함수에서 유일하게 13번 공간에 있던 박 하사는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발인이 분석하기에 박 하사는 사고 당시 13번 공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고 선체가 전복된 후 호흡을 위해 공기를 찾아 그 공간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라 판단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박 하사가 13번 공간에 있었다면 24번, 25번 공간에 있던 상사와 하사가 탈출하면서 박 하사를 발견하였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안은 생존자에 대한 조사 혹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으며 당시 24, 25번 공간에 있다가 탈출에 성공한 상사와 하사에게 물어보아도 알 수 있는 사항이겠습니다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의 사안입니다.

4. 천안함 함수는 무려 16시간 22분 수면 위에 떠 있었습니다

이 중요한 사실에 대해 정부 당국이든 누구든 그 심각성을 느끼지 않고 있는 현실을 고발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며 이와 관련 많은 글과 인터뷰, 강연 등을 통해 주장한 바 있습니다.

함수가 무려 16시간 22분간이나 떠 있었는데 정부와 군 당국은 그 사실을 숨긴 채 <수색중>이라며 거짓발표를 하였고 수면 위 모습을 드러낸 함수를 확보하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사고 다음 날 오후 함수가 물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방치하고 방관하였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11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천안함 반파 직후 함수·함미 모두 급속히 침몰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수가 상당 시간 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은 물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함수·함미가 침몰한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천안함 함미는 불과 3분여 만에 침몰

다음의 TOD영상은 국방부가 검찰에 제출한 천안함 반파 직후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캡처한 것입니다.

(좌)함수·함미반파 직후  (우)함미 침몰 직후 TOD 영상

국방부는 ‘침몰 순간(21:21:58)’이 잡혀 있는 TOD영상은 군사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아 반파순간의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만, 21:22:40초에 반파직후의 모습(좌) 그리고 21:23:38초에 함미가 완전히 물 속으로 사라진 직후의 모습(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방부가 주장하는 TOD 장비의 시간오류(1분40초)를 감안하더라도 천안함 함미는 ‘반파 후 불과 3분여’만에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미가 불과 3분여만에 가라앉은 이유는 선체 중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엔진 및 기관설비들이 모두 함미에 집중되어 있고 공기부력을 제공할 수 있는 침실 및 사무공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함미는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즉시 가라앉았으며 그로부터 이틀 후 최종적으로 가라앉은 지점으로부터 조류를 따라 불과 180m 정도 흘러간 지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 그러나 천안함 함수는 무려 16시간 22분간 표류하며 떠 있었습니다

반파직후 사고지점 인근에 가라앉은 함미와 달리 함수는 계속 표류하면서 남동 방향으로 흐르는 조류를 따라 이동하였으며 무려 16시간22분간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함수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16시간 22분 동안 떠 있었던 이유는 공기가 갇혀 있어 부력을 제공할 수 있는 침실과 업무공간이 함미에 비해 많고 상대적으로 엔진 혹은 기관장비와 같은 중량의 설비가 적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기가 존재했으므로 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공기는 그 안에 갇혀 있었을 대원에게 산소를 제공하는 유일한 공급원임은 물론입니다. 다음은 국방부가 조사보고서에 수록해 놓고 있는 함수의 이동경로입니다.

함수는 빨간점과 같은 경로를 따라 표류하며 이동한 후 사고 다음 날인 3월 27일 오후 1:37분 완전히 침몰하게 됩니다. 천안함 반파 후 무려 16시간 22분이 흐른 뒤입니다.

5. 국방부 및 군 당국의 거짓 발표

문제는 함수가 무려 16시간 22분간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다는 사실을 정부와 국방부는 언론이나 공식 브리핑을 통해 국민께 알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함수가 떠 있던 그 순간에도 “함수와 함미를 수색하고 있다”는 거짓 발표를 반복하였습니다. 

군 당국이 함수가 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초계함이 반토막 나고 침몰하니 정신이 없어 황망 중에 그 사실을 몰랐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해경은 현장에서 계속 함수를 선회하며 지키고 있었고(해경 501함 유종철 부함장의 법정증언) 해군작전사령부는 반파직후부터 침몰 시점까지 함수의 이동을 실시간 모니터링(추적)하였을 뿐만아니라 그 좌표를 현장의 탐색구조대에 통보해 주었다고 심승섭 해작사 작전처장은 법정에서 증언하였습니다.

(1) 해경 501함 유종철 부함장의 법정 증언

천안함 제2차 공판(2011. 9. 19)에 증인으로 출석한 해경 501호 유종철 부함장은 “천안함 함수에서 생존자를 모두 구조하고 난 이후 계속 천안함 함수를 지키고 있었으며 아침 일찍 천안함 함수를 해경 253호정에 인계하고 현장을 떠났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천안함 함수가 모습을 드러낸 채 표류하고 있는 상황을 해경 501함으로부터 인계받은 해경 253호정이 함수 주변을 돌며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고발인은 위 사진을 옹진군청 홈페이지에서 발견하고 백방으로 추적한 후 백령도 면사무소 직원 최○○씨가 촬영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유선으로 최○○씨를 설득하여 사진 일체와 사고 다음 날 오전 7:30분경 촬영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세상에 알림으로써 함수가 가라앉지 않고 표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심승섭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의 증언

천안함 제2차 공판(2011. 9. 19)에 출석한 심승섭 준장(해작사 작전처장, 사고 당시 대령,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해군참모총장 역임)은 “천안함 함수는 3월 27일 오후 13시37분에 완전 침몰하였으며, 해작사에서 함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증언하였으며 “그러면 그 위치를 현장 수색단에 통보해 주었느냐”는 질문에 “함수의 위치를 탐색구조대에 통보해 주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함수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함수를 확보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였던 군 당국의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지난 11년간의 천안함 재판 과정에서 뜨거운 공방이 이루어졌으며 고발인이 분석한 내용 또한 재판부에 관련 자료와 함께 제출하였습니다만, 그 원인에 대해 재판과정에서 분명하게 밝혀진 바도 없고 군 당국 또한 명쾌하게 설명한 바가 없습니다.

6. 국방부 및 군 당국이 함수를 확보하지 않았던 이유

군 당국이 천안함 함미·함수 확보를 서두르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제3의부표 인근에서 발생한 또 다른 상황 때문이었을 것으로 고발인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본 고발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므로 본 고발장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경우 관련 자료를 추가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1) 군 당국 - 함미는 전원 사망하였을 것으로 조기 결론 내렸을 것

함미가 46명의 대원과 함께 물 속으로 가라앉았음에도 함미를 찾기 위한 수색을 벌이지 않았던 이유는 천안함은 잠수함이 아니므로 침몰한 후 불과 5~10분 여 만에 전원 사망하였을 것으로 군 당국은 조기에 결론내렸을 것으로 고발인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고발인 역시 해군 장교로 근무하면서 천안함과 유사급 함선(전남함, APD함)에 승선하여 행정장교로 근무한 경력이 있으므로 그 사실을 잘 압니다. 함선의 선실은 많은 케이블 들이 상부로 지나가고 있어 침실 조차도 완벽한 수밀이 되지 않는 구조라 함미 침몰 후 불과 몇 분이내 침수가 이루어져 생존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46명의 소중한 생명과 함께 침몰한 함미를 찾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며, 내부적으로 찾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였음에도 수색중이라고 거짓발표한 것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비판받아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더구나 이미 TOD 영상을 통해 함미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시각과 위치도 정확하게 알고 있고, 당시 조류방향과 속도도 알고 있었기에 그 지점으로부터 동남방향으로 불과 수백m 이내에 함미가 가라앉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음에도 찾지 못하고 있는 듯 허위발표를 거듭하였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사고 다음 날 해경이 음파탐지기를 작동하여 함미를 발견하여 영상과 함께 군 당국에 통보해 주었음에도 그것을 묵살하고 하루를 더 허비하였던 것은 중대하고도 심각한 범죄행위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2) 군 당국 - 함수는 전원 구조되었다고 오판했을 것

함수의 경우 58명의 대원들이 갑판 위에 올라와 있다가 해경에 의해 전원 구조가 되었으므로 함수가 16시간 22분간 떠 있었다 하더라도 생존자들이 전원 탈출에 성공하여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고 오판하였을 것으로 고발인은 분석합니다. 그것이 함장의 보고에 의한 것이든, 자체 판단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이 중대한 직무유기임에 분명한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함수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며 故 박○○ 하사가 바로 그 억울한 희생자였던 것입니다.

7. 군 당국은 고귀한 생명을 구조할 기회를 방기하였습니다

첫째, 만약 천안함 함장이 갑판 위에서 생존자 인원 점검을 할 당시 혹시라도 함수 내에 남아 있는 대원이 없는지 보다 면밀히 수색을 했더라면,

둘째, 천안함 함장이 구조된 후 혹시라도 함수 내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조속히 잠수부를 투입하여 수색해 줄 것을 요청했더라면,

셋째, 군 당국이 날이 밝은 후 함수가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동안에라도 함수를 확보하여 수색을 실시했더라면,

故 박○○ 하사가 구조되어 생존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천안함 사고 직후 군 당국은 그들 나름대로 더 위중하다고 여겼던 다른 곳에서의 위급 상황에 우선 순위를 둔 결과 무려 이틀 동안이나 함미와 함수를 방치함으로써 그나마 공기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을 자이로실까지 이동하였던 故 박○○ 하사를 구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중대 범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8.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으로서 고발인의 역할

(1) 고발인은 故 박○○ 하사가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추적하기 위하여 함수가 떠 있는 사진을 확보한 후 경기도청, 옹진군청, 백령도 면사무소 등을 수소문하여 사고 다음 날 아침 용트림 바위 앞 언덕에서 천안함 함수와 해경정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촬영하였던 백령도 면사무소 최○○씨를 적극 설득하여 사진 전량을 메일로 전송받아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렸으며,

(2) 당시 함수를 지키고 있던 해경 501함 유종철 부함장을 법정 증인으로 신청하여 천안함 반파 이후 침몰될 때까지 해경 501함이 지키다가 오전에 해경253정에 인계했다는 증언을 확보하였고,

(3)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당시 대령)이었던 심승섭 준장을 법정 증인으로 신청하여 천안함 반파 이후 침몰까지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현장에 통보해 주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사고 초기 천안함이 좌초되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상부에도 천안함이 좌초되었다고 보고했다는 중대한 사실의 증언을 확보하였으며,

(4) 그 모든 증언과 사실관계를 분석하여 군 당국이 함미와 함수를 수색, 확보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기하였다는 사실을 밝혀내었고,

(5) 함수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던 故 박○○ 하사를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던 결과 박 하사로 하여금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등,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 희생자의 사망사고 진상규명의 노력을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지속함으로써 천안함 진상규명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군 당국의 중대한 범죄사실을 고발코자 하는 것입니다.  

결언(結言)

군 당국은 고귀한 생명을 구조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방기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희생자 가족을 포함 전 국민에게 거짓발표를 하였습니다. 이에 고발인은 故 박○○ 하사의 억울한 죽음과 관련하여 당시 군 당국의 최고 책임자인 김태영 前 국방부장관과 해군의 최고 책임자인 김성찬 前 해군참모총장을 <직무유기 및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죄>로 고발합니다.
 
부디 엄정히 수사하시어 엄벌에 처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2021년 4월 12일
고발인  신 상 철

[보도자료] 천안함 안전당직자 故 박○○ 하사의 억울한 죽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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