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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3일 토요일

"너무 서울대 보내지마라"... 자유인 채현국 영원히 잠들다

 [현장] 노무현도 찾아갔던 학교, 효암학원 명예이사장... 추모 분향소에서 만난 사람들

21.04.03 18:32l최종 업데이트 21.04.03 19:06l
 양산 개운중학교에 마련된 고 채현국 효암학원 명예이사장의 분향소.
▲  양산 개운중학교에 마련된 고 채현국 효암학원 명예이사장의 분향소.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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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삶이란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깨우치는 과정이다.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가 썩는다. 공부를 하면 썩어도 덜 썩는다. 상 받는 아이들은 상 받지 못하는 아이들 덕분에 상을 받는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 2일 영원히 잠이 든 고 채현국(1935~2021) 효암학원 명예 이사장이 한 말이다. 고인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숱한 어록을 남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인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왔다. 아버지(채기엽)가 1956년 설립한 흥국탄광을 돕던 고인은 사업가의 길을 걸었고, 한때 '전국 소득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973년 재산을 모두 분배하고 사업을 정리했던 그는 이후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때 핍박받던 민주화운동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채기엽은 1968년 효암학원을 인수했고, 1974년 양산에 효암고등학교가 개교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 채현국 선생은 1988년부터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효암학원은 효암고와 개운중을 두고 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 개운중 추모분향소 조문 이어져 
 
큰사진보기강의하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예술터에서 열린 '쓴맛이 사는 맛' 초청 강연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예술터에서 열린 "쓴맛이 사는 맛" 초청 강연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2015.3.19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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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특1호(3층)에 마련되었다.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에서 보내온 조화가 놓여 있다.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는 개운중 중앙현관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했다.

학교 정문에는 "시대의 스승 채현국 명예이사장, 영원히 잠들다"고 쓴 추모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곳 추모분향소는 4일 오후 10시까지 운영된다.

분향소에는 류경렬 전 효암고 교장과 강호갑 효암고 교장 등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는 김일권 양산시장을 비롯해,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여태전 남해상주중 교장 등 각계에서 보내온 조화가 놓여 있다.

비가 내리는 속에 추모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2002년 12월 6일 '학교 수업'
 
큰사진보기 고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때인 2002년 12월 6일 양산 효암고등학교에서 수업했고, 이 학교는 교실 앞에 '노무현 대통령이 수업한 교실'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았다.
▲  고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때인 2002년 12월 6일 양산 효암고등학교에서 수업했고, 이 학교는 교실 앞에 "노무현 대통령이 수업한 교실"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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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선생과 관련한 일화는 많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도 눈에 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효암고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2002년 12월 6일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유세했던 노 대통령은 부산 지역 학교에서 수업하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김순남 교사(효암고)는 "당시 부산 쪽 학교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부담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 학교 쪽에)요청이 와서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했다.

현재 효암고 2층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수업한 교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당시 효암고 교장은 이내길 교장이다.

류경렬 전 교장은 전교조 출신이다. 류 전 교장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복직했고, 2002년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이듬해 교장이 되었다.

류경렬 전 교장은 "이사장님은 이념적 문제에 있어 앞서가셨던 분이다"며 "전교조 해직 교사를 더군다나 사립학교에서 받아들이고 그것도 교장에까지 임용한 것은 당시 전국 교육계에서도 유일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효암고 오기 전에 몇 번 만났다. 그때 하신 말씀 중에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권리도 있지만, 학생들은 공부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일방적으로 자기 욕구대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고 떠올렸다.

또 그는 "이사장께서는 '너무 서울대 보내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다"며 "졸업식 때 '이사장상'을 수여하시는데 상을 수여하면서도 '상을 받지 않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안 받는 사람이 있으니 상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지식인 허위의식에 단호했던 당당한 자유인"
 
큰사진보기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
▲  뉴스타파 <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중에서5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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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갑 교장은 "이사장님께서는 늘 자발성을 강조하셨다. 공부든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야 재미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시켜서 하는 일은 재미가 없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부터 학교에 오시지 못하셨다. 그 전에 학교에 오시면 학교운영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으셨고, 수목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 학교에 수목이 울창한 것도 고인 덕분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여태전 남해상주중 교장은 "채현국 선생을 수식하는 말들은 수없이 많다. '당대의 기인', '현대판 임꺽정', '거리의 철학자', '한때 전국 10대 거부' 등이다"며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만나는 입장에서 채현국을 바라볼 것이다"고 했다.

여 교장은 "제가 만난 채현국 선생은 우상과 허영을 넘어선 당당한 자유인이었다. 돈과 권력과 명예보다도 책과 사람과 대자연을 더 좋아했다"며 "특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지식인의 허위의식에 단호했다. 배움과 성찰의 끈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치열하게 질문하고 뜨겁게 사유하는 겸손한 자유인이었다"고 했다.

채현국 선생은 언론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갖가지 '어록'을 남겼다. 특히 "꼰대는 성장을 멈춘 사람이고, 어른은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이란 말은 '당당한 자유인'으로서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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