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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3일 토요일

바이든 취임식 최고의 복장, 나도 샌더스처럼 입어야지

 불필요한 옷 사지 않고, 해질 때까지 입기... 기후 위기 시대, 지구를 위한 '예의 바른 패션'

21.01.23 18:24l최종 업데이트 21.01.23 19:0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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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 워싱턴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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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입은 멋쟁이들이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한 사람. 슈트 입은 멋쟁이들 사이에 점퍼와 털장갑을 낀 80대 남성이었다. 모자 달린 점퍼와 알록달록한 털장갑을 낀 사람은 버니 샌더스 의원이었고, 그날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이었다.

대통령 취임식 날, 등산점퍼를 입는 건 무례일까 합리일까? 샌더스 의원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버몬트 사람들은 추위를 잘 안다. 멋진 패션은 잘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따뜻하길 원한다."

샌더스 의원을 얼핏 보면 그저 실속파 같기도 하다. 격식보다 쓸모를 더 중시하는 실용 인간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그는 털장갑을 낄 때조차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사람이다. 샌더스 의원의 복장은 따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친환경적이었다.

털장갑은 낡은 스웨터와 재생 플라스틱으로 짰다. 스웨터를 버리지 않고 울(wool)을 풀었고, 재생 플라스틱에서 섬유를 뽑았다. 그가 입은 외투도 그의 지역구인 버몬트 지역 기업에서 만들었다. 물건의 생산, 유통에 들어가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생산된 물건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상원 최초로 '탄소세' 도입안을 발의하기도 했을 만큼, 그는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이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재활용 장갑과 지역에서 생산된 외투야 말로 대통령 취임식에 가장 어울리는 복장이었을 것이다.

내가 복직날 7년 된 패딩 입고 간 이유 

버니 샌더스 의원은 취임식장에서 조금 창피했을까? 나는 창피했다. 1년 전, 나도 세련된 정장을 입고 우아한 매무새를 한 사람들 사이에서 7년 된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해서 처음 회의에 참가한 날이었다.

패딩 점퍼는 색이 바래거나 해진 것도 아니다. 여전히 따뜻했고 제 기능을 다 했다. 그러나 번듯하진 않았다. 7년의 겨울 동안 이 한 벌로 겨울을 났으니 어쩔 수 없다. 회의 시간, 내 차림새가 신경 쓰여 남모르게 속으로 아우성을 쳤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왠지 다들 나를 보는 듯, 자의식 과잉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렇지만 그다음 날도 같은 패딩을 입었다. 의무감 때문이었다. 지구를 구한다는 심정으로 복직 기념 새 외투를 사지 않았다. 새 옷 한 벌에 들어있을 탄소 배출물이 마음에 걸렸다. 옷이 멀쩡하다면, 그 옷이 닳을 때까지 입어야 했다.
 
 후손들이 지구에서 못 살까봐 번듯한 옷을 입을 수 없다. 오래된 패딩을 입고 마른 강바닥에서 쓰담 산책을 하는 일은 기후 위기 시대에 나를 치유하는 취미다.
▲  후손들이 지구에서 못 살까봐 번듯한 옷을 입을 수 없다. 오래된 패딩을 입고 마른 강바닥에서 쓰담 산책을 하는 일은 기후 위기 시대에 나를 치유하는 취미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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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환경 옷은 친환경 섬유로 만든 새 옷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옷을 오래 입는 것이다. 나의 TPO(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는 '기후 위기'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의 이번 생은 망했으니까. 지구를, 아니 나와 후손들을 구한다는 심정으로 복직 기념 새 외투를 사지 않았다. 창피해도 별 수 없다. 생존이 우선이니까.

복직 후 1년. 여전히 그 패딩 점퍼를 입고 다닌다. 이제는 8년 된 점퍼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옷, 그리고 끊임없이 버려지는 옷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옷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소중하게 입는 것.

샌더스 의원도 그랬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식만 생각한다면 국가 행사라는 경우에 맞게 정장을 입는 게 예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한 후, 잃어버린 미국의 시간을 생각하면 고어텍스 점퍼에 재생 플라스틱으로 된 털장갑이 합당하다. 기후 위기의 시대, TPO에 알맞은 차림은 샌더스 의원의 옷인지도 모른다.

어렵고 수고스럽지만 해야 할 일

샌더스 의원이 낀 털장갑과, 강원도 작은 바닷가 마을 직장인이 입은 8년 된 패딩의 파급력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샌더스 의원이 털장갑을 끼고 나오면 법이 바뀐다. 기업은 새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그의 옷은 웃음거리가 되기는커녕, 그의 지지자들이 공식 계정에 밈(meme: 온라인상의 패러디 그림) 경연 대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내가 패딩 한 벌을 고이 입는다고 해서 법이 바뀔 리도 없다. 기업이 변할 리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샌더스 의원처럼 입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예의 바른 옷을 입고 싶다. 옷의 수명을 2년 연장할 때마다 옷의 환경 영향이 20~30퍼센트 감소한다. 기후 위기로 인한 북극 한파라는 상황에서 가장 격식에 맞는 복장은 오래 입은 옷이다. 2021년에는 더욱 예의를 갖춘 옷을 입고 싶다.

태그:#제로웨이스트, #버니샌더스,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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