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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30일 화요일

이 다리는 만들 때부터 '끊길' 것을 압니다

다리는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존재다. 또한 모든 것을 이어주는 존재다. ‘이음과 매개, 변화와 극복’은 자기희생 없인 절대 이뤄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옛 다리부터, 최신 초 장대교량까지 발달되어 온 순서로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학기술은 물론 인문적 인식 폭을 넓히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기자말]
물은 이중성을 띠고 있다. 평온할 때는 무척 이롭지만, 화가 나면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다. 풍경도 바꿔버리고, 집이며 짐승이며 사람 목숨까지도 앗아가 버린다. 이런 물을 잘 이용하는 지혜가 곧 문명의 발달과정이었다.

물은 모든 생물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필수조건이다. 사람도 오래 전부터 물 근처에 모여 살았다. 가장 기본적인 생명을 보전하려는 욕구였다. 농업혁명 이후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 교역에 물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우마차와 물을 이용한 뗏목이 주요 운송수단이었다.

그러다 차츰 조선술이 발달하면서 배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물이 많아 수심이 깊은 곳은 배를 이용한 운송이 최적이다. 나루터를 중심으로 장시(場市)가 형성되었다. 이런 장시의 배후에 하나 둘 집단적인 마을들이 생겨나면서, 도시가 번성하였다. 세계 어디를 가든, 강과 바다를 끼지 않은 도시는 매우 드물다. 이렇듯 물은 인간문명의 원천이다.
물이 부족하고 수심이 얕은 곳에선 배를 이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도시 형성은 물론, 물류 흐름도 매우 제한적이다. 사람 왕래가 뜸한 한적한 곳으로, 주로 임시시설들이 들어선다. 그런 곳에서 발달한 것이 임시의 다리, 즉 가교(假橋)이다.

가교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특이하게 발달된 것이, 바로 '섶다리'다. 우리 조상들도 물을 가까이 했다. 물은 필연적으로 이수(利水)와 치수(治水)의 대상이다. 조상들은 치수 방법으로 수십 미터가 넘는 강과 하천을 안전하게 건널 방안에 고심했다. 그 일환으로 손쉽고 값싸며 자연친화적인 섶다리를 고안해 낸 것이다.

섶다리는 수심이 얕고, 주변에서 쉽게 나무를 구할 수 있는 곳에 만들어진다. 생활편의시설(Facility)로써 원시적인 형태를 띤 섶다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친환경 다리이다. 보통 갈수기인 10월에서 12월 사이에 만든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울력을 벌인다. 공역으로 마을 공동체의 재확인이며, 마을 축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다리가 놓여 서로 왕래해야 하는 두 마을 공동의 행사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리는 보통 초여름 장마철이나 초가을 홍수기에, 급류에 유실되곤 했다. 다리가 유실되어 사라졌다고 하나, 모든 것이 다시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간 것일 뿐이다. 순전히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다리이기 때문이다. 섶다리는 이렇듯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명멸하는 모습을 닮아 있다.

섶다리 놓는 과정
 
선창이 만들어진 모습 판운리에 섶다리를 놓기 전에, 강 양안에 선창 놓기를 완료한 모습
▲ 선창이 만들어진 모습 판운리에 섶다리를 놓기 전에, 강 양안에 선창 놓기를 완료한 모습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섶다리 놓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먼저 '선창 놓기'라 부르는 토목공사가 필요하다. 강이나 하천 양쪽 끝, 다리가 걸치는 부분에 흙과 자갈, 모래 등을 쌓는다. 그 끝에 '교대(橋臺 : 다리의 양쪽 끝에서 제방, 석축, 흙 등과 만나는 부분에 설치하여 다리를 걸게 만든 시설)' 역할을 하는 넓고 무거운 돌을 놓는다. 그 자중(自重)으로 선창 끝단의 지반을 안정화 시킨다. 또한, 흙 쌓기가 되어 있는 몸통 부위 토압(土壓)을 지지해, 선창 전체를 안정화 시킨다.
 
Y형 교각과 멍에목을 다듬는 모습 섶다리의 교각 역할을 하는 Y형 나무와 상판목 지지대 역할을 하는 멍에목을 다듬는 모습
▲ Y형 교각과 멍에목을 다듬는 모습 섶다리의 교각 역할을 하는 Y형 나무와 상판목 지지대 역할을 하는 멍에목을 다듬는 모습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그 다음 산에 올라가 Y자 모양의 나뭇가지를 자른다. 단단한 재질에 물에 강한, 수령이 오래된 나뭇가지를 사용한다. 보통 참나무나 물푸레나무를 많이 사용한다. 이 나무들이 '교각(橋脚 : 다리를 받치는 기둥으로 교량의 다리)' 역할을 한다. 교각 목은 어지간한 하중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높이 2.0∼2.5m, 두께는 20∼30cm 나무가 적당하다. Y자 모양의 나무 끝을 네모나게 깎아 다듬는다. 다듬은 나무들을 보(椺) 역할을 하는 '멍에목(옛 교량에서 개개 교각을 결구하는 보 역할을 함. 그 위에 귀틀목(석)이나 상판을 직접 얹을 수 있게 만든 부재)'에 네모난 홈을 파 끼워 맞춘다.
 
완성된 교각들 Y형 교각목을 멍에목에 끼워 완성한 모습
▲ 완성된 교각들 Y형 교각목을 멍에목에 끼워 완성한 모습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멍에목은 Y자형 나무보다는 더 두꺼워야 한다. 보통 육질이 단단한 소나무가 제격이다. 멍에목과 Y자형 나무가 결구된 홈 간극에 '쐐기(물건의 틈에 박아서 사개가 물러나지 못하게 하거나 물건들의 사이를 벌리는 데 쓰는 물건)'를 박아 단단히 고정시킨다.

멍에목의 길이는 1.5∼2m가 보통이다. 멍에목을 길게 하여, 다리 중간에 대피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멍에목의 길이가 다리 폭을 결정한다. 이런 작업들이 끝나면 비로소 교각이 완성된다. 그 다음 '경간(徑間 : 다리, 건물, 전주 따위의 기둥과 기둥, 교각과 교각 사이. 또는 그 사이의 거리)'을 결정한다. 경간이 결정되면 하천 너비를 경간 값으로 나누어, 교각 개수를 산정한다. 섶다리 경간은 보통 3∼4m 간격이 일반적이다.
 
교각을 경간에 따라 강바닥에 배치하는 모습 완성된 교각들을 미리 정해 둔 경간에 따라 강바닥에 세워 배치하는 모습
▲ 교각을 경간에 따라 강바닥에 배치하는 모습 완성된 교각들을 미리 정해 둔 경간에 따라 강바닥에 세워 배치하는 모습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완성된 교각을 경간에 맞춰 하천 바닥에 박아 세운다. 교각을 세울 때 하부지반을 안정화 시키는 힘든 기초 작업은 따로 하지는 않는다. 섶다리는 자중으로 버틸 수 있는, 하나로 잘 짜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상판목 걸기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사람이 지나다닐 상판목을 걸어 묶어 주는 모습
▲ 상판목 걸기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사람이 지나다닐 상판목을 걸어 묶어 주는 모습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세워진 교각 위에 '상판(上板 : 교량의 윗부분을 이르는 말로, 사람이나 차들이 직접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만든 곳)' 역할을 하는 길이 5∼6m의 곧은 나무들을 가로로 길게 걸어, 질긴 칡덩굴 등으로 단단히 묶어준다. 틈을 촘촘히 하여 나무들이 묶이면, 세로 방향으로 교각 넓이의 짧은 나무들을 엇갈려 묶는다.
섶다리 놓기 작업 모습 상판목 걸기와 섶 얹어 묶기, 흙 다져쌓기가 동시에 이뤄지는 모습
▲ 섶다리 놓기 작업 모습 상판목 걸기와 섶 얹어 묶기, 흙 다져쌓기가 동시에 이뤄지는 모습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섶을 엮는 모습 상판목을 촘촘이 걸어 묶고, 그 위에 섶을 두텁게 엮어 묶는 모습
▲ 섶을 엮는 모습 상판목을 촘촘이 걸어 묶고, 그 위에 섶을 두텁게 엮어 묶는 모습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그리고 그 위에 섶(솔가지나 잣나무가지)을 촘촘히 엮는다. 섶은 어느 정도 두께가 되도록 쌓아서 엮어야 하며, 상층부 가장자리는 가급적 하늘을 향해 세워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리가 완성되었을 때, 다리 위를 걷는 사람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게 된다. 섶이 다 엮이면, 그 위에 흙을 쌓고, 단단히 밟아주면 비로소 섶다리가 완성된다. 섶 위에 단단히 쌓인 흙의 무게로 안정화된 자중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두의 인간성을 유지시키는 배려의 공간

섶다리는 우마차를 위한 다리가 아니다. 가벼운 행장(行裝)으로 길을 나서는 나그네나, 가까운 들녘으로 일 나가는 농사꾼을 위한 다리다. 빈 지게면 충분하다. 맨몸으로 걷는 것도 좋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걸어도 위안이 되어 준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우선인 산골 강촌에서, 섶다리 하나면 모든 것이 위안이고 충족이다.

자연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욕심 부릴 까닭도, 남의 것을 탐해 빼앗을 필요도 없다. 섶다리를 건너는 넉넉하고 가벼운 마음이면 모든 산천이 품안에 안겨온다. 하늘과 바람과 별들이 안겨오는, 풍성하고 넉넉한 무위자연이다.
 
판운리_섶다리_겨울풍경 평창강에 있는 판운리 섶다리의 평화로운 겨울풍경
▲ 판운리_섶다리_겨울풍경 평창강에 있는 판운리 섶다리의 평화로운 겨울풍경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섶다리는 풍경과도 썩 잘 어울린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일부를, 강 위에 옮겨놓은 까닭이다. 구절양장 굽어 흐르는 강에서, 사방이 높은 산으로 막힌 마을에선 이 섶다리가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곳을 통해서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의 잡다한 것들이 들어온다. 물과 바람과 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 해원(解冤)하는 통로이다. 그들이 명(命)을 다해 자연으로 돌아가듯, 섶다리도 명을 다하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다리라는 임무를 마치고, 자연의 어느 한 구석으로 물러나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섶다리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어쩌면 끊김과 헤어짐을 예비하는 다리라는 생각이 든다. 섶다리가 번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떠안아 '윤회(輪廻)의 강'으로 떠나보내는 것은 아닐까? 강촌 사람들은 섶다리를 닮아갔고, 자연을 닮아간다. 그 다리 위에서 삶의 고뇌와 깊은 외로움을 위안 받았을 것이다.

섶다리는 질서와 안녕, 모두의 인간성을 유지시키는 배려의 공간이기도 하다. 양끝에서 서로 길이 엇갈릴 것 같으면, 누구라도 서로에게 먼저 건널 것을 권한다. 나이 드신 분이 반드시 우선이다. 무거운 짐을 이고 진 짐꾼이면 모두 양보하고, 병자나 임산부, 약자가 우선이다.

여럿이 같이 건널 때는, 가장 많은 책임과 부담을 진 자가 앞장을 선다. 특히 눈이라도 내려 다리 위가 미끄러워지면, 이런 원칙은 더욱 빛을 낸다. 섶다리는 이처럼 공동체가 유지되는 질서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담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포용과 관용의 다리이다. 이음을 바탕에 둔 모두의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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