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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6일 토요일

누구의 양심?

강기석 | 2020-06-05 11:19:1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아! 바로 이 친구였구나!”
오늘(4일) 아침 한겨레 오피니언면에 실린 석진환 한겨레 이슈 부국장의 칼럼 ‘누구도 양심을 장담할 수 없다’는 칼럼을 읽고 비로소 알았다. 10여 년 전 어느 날, 치열하게 전개되던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정치검찰의 표적수사 와중에 나로 하여금 언론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을 갖게 하고 급기야 “나라도 수사와 재판의 전 과정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그 진실을 기록에 남겨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장본인을 발견한 것이다.
조중동과 그 아류 신문, 방송사에 대한 실망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진보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겨레에, 그 한겨레 기자가 쓴 칼럼이 내게 그토록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 정확한 내용이야 지금 기억에 남아있을 리 없지만 그 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거의 모든 정치인은 부정한 돈을 받는다. 돈을 받은 정치인은 수사가 시작되면 처음에는 거의 모두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한다. 한명숙 전 총리도 그럴 것이다. 검찰이 아무 증거없이 수사를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깨끗하게 정치를 해왔다는 한명숙 전 총리도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끝내 혐의가 밝혀질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칼럼은 당시 이명박 정권의 전 방위적인 야당인사 사찰과 탄압의 실상을 모른 체하고, 야당 지도급 인사에 대한 손톱만큼의 배려도 없었음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무죄 추정의 원칙마저 저버린 채, 오로지 검찰 입장에서 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의 글이었다.
오늘(4일) 석진환 부국장이 쓴 칼럼의 줄거리도 대동소이하다. 전부(9억 원)가 아니고 일부(3억 원)일지라도 한 전 총리의 유죄는 확실하지 않은가. 여전히 “결백하다”고 말하지만 법적 판단이 끝났고 재심도 어렵고 돈을 줬다는 한만호씨도 죽었으니 한 전 총리의 결백 주장은 이제 신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믿는 도끼가 ‘검찰’에서 ‘대법원 판결’로 바뀌었을 뿐 처음부터 한 전 총리 유죄 심증은 여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석 부국장에게 묻고 싶다. 
-대법원 전원합의 판결은 영원히 무오류인가?(대법원이 확정한 유신, 5공 시대의 무수한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1억 원짜리 수표는 어떤 혐의에 대한 물증인가.(검찰은 3억 원씩 3번에 걸쳐 한 사장이 한 총리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고, 변호인단은 오직 한 번 3억 원이 한 사장과 한 총리 지역구 보좌관 사이에 오고 갔을 뿐이라고 했다. 여기에 포함된 1억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보좌관이 한 총리 동생 전세자금으로 일시 빌려 준 것이다) 
-유죄는 검찰이 입증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무죄는 피고인이 입증해야 하는가.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인은 무죄 입증할 필요도 없이 무죄인 것 아닌가.(무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관마저도 1억 원짜리 수표 교환과 용처에 대해 보좌관과 한 총리 동생의 석명이 충분치 않다고 하면서도 이 수표가 한 총리로부터 동생에게 전달됐다는 검찰의 (유죄) 추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아닌가)
-수사과정에서 증거 날조 등 검찰의 부정행위가 드러난다면 그것이 어느 정도 재판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가(‘미란다 원칙’이란 것도 있는데 증인이나 증거나 조금이라도 조작됐다면 재판은 전면 무효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석 부국장이 우려했듯 재심 여부가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검찰의 무시무시한  조작질이 문제인 것이다. 그 조작질에 연루된 인물들은 지금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아직은 신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고 인간의 영역, 즉 법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이니 석 기자는 너무 안타까워 할 필요도 없다. 
한겨레는 안타까워(하는 척) 하는 대신 뉴스타파 등이 제기한 검찰의 불법 수사-기획 증거 날조 혐의- 취재에 매진해야 칭찬을 들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리 한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석 부국장은 왜 이런 칼럼을 썼을까? 내가 보기에 변명하기 위해서다. 스스로 토로했듯 10여 년 전 자신이 법조기자를 하면서 검찰의 뜻에 따라 처음부터 한 전 총리를 유죄로 몰아갔던 행위들에 대해 면죄부를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변명의 방법마저 치졸하다. 자신은 여전히 옳고 양식있는 기자로 인정받기 위해 한명숙 총리가 겪고 있는 희생을 그냥 덮자고 하면서 지금에라도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민주당을 ‘오만’으로 몰아 부치는 것이다.    
다음은 내가 쓴 책 ‘무죄’ 머릿글의 한 대목이다.
“나는 40여 차례에 이르는 한명숙 전 총리 1차, 2차 사건 1심 재판을 빠지지 않고 방청했다 (...) 그런데 해괴한 것은 현장을 열심히 들여다 본 사람들(1심 재판부)은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를 확신한 반면, 현장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사람들(2심 재판부)은 너무도 쉽게 유죄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
언론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판을 지켜 본 나 같은 기자는 검찰의 공소장이 얼마나 허술한가, 증인과 증거라는 것들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그럼에도 한 전 총리를 꼭 잡아 넣겠다는 집념만은 얼마나 강렬한가를 개탄하며 무죄를 확신한 반면, 현장에 잘 나와 보지도 않은 언론은 왜 빨리 한 전 총리의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나 안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검찰의 횡포가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언론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가 하나의 큰 원인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한겨레 지면에서 석진환 기자의 글을 자주 읽었을 수는 있지만 재판정에서는 그를 자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나는 그의 얼굴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그가 그의 칼럼에서 인용한 한 대목,
“인간의 양심은 절대 장담해선 안 된다고 한다”를 그에게 반사하고 싶다. 
“당신의 양심부터 잘 지켜라.”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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